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16화 (116/483)

116.

“네놈들!”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고함을 내지르는 레이사르의 영웅 군단을 보며 아르가 살기를 드러냈다.

“지금 뭘 잘했다고 뻔뻔하게 지껄이는 거야?”

평소의 말랑말랑하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 소녀를 망설임 없이 베려 했던 자들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아르의 기세는 날카로웠다.

아르의 기세에 영웅 군단의 이들이 움찔 물러섰다.

그 모습을 본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정식 영웅 군단이 아닌 육성군이군.’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자를 전장에 세워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죽음뿐이다.

이 시대에도 영웅을 육성하는 과정은 있었다.

이들도 아르와 같은 영웅 후보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르와는 다르지만.’

시대가 달라서가 아니다.

재앙의 시대에도 진짜 영웅을 꿈꾸는 후보생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아니다.

이들이 영웅 군단에 들어 온 건 알량한 우월감이나 권력욕을 충족하기 위해서였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타고난 재능이나 가지고 있는 힘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차이야.’

“나는 레이사르의 영웅 군단의 제린이다!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건 영주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과 같다!”

맨 앞에 선 여인, 제린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아르에게 소리쳤다.

“영주의 명령이야? 아니면 레바이튼의 명령이야?”

레오가 싸늘하게 물음에 제린이 흠칫했다.

“역시, 있지도 않은 역병 핑계를 대고서 아이들을 모두 죽이고 샤텐을 회수하고 오라고 한 모양이군.”

고아원 아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레오의 말에 사태를 파악한 아르의 얼굴도 차갑게 변했다.

터벅- 터벅-

레오가 앞으로 나섰다.

“아무리 시대가 이 모양이라고 해도 선이란 게 있어.”

스릉-

표정이 사라진 레오가 레이사르의 영웅 군단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스스로 영웅이라고 칭하고 싶으면,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지.”

레오의 눈에 분노가 깃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목숨을 걸고 세상을 구하려는 녀석들에 대한 모독이니까.”

“맞아! 너희 따위가 영웅을 칭하지 마!”

아르도 레오의 말에 소리쳤다.

“건방진…… 끝까지 우리를 방해하겠다는 말이군.”

제린이 오러를 일으켰다.

“실력이 조금 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너희에게 세상이 넓다는 사실을 알려주도록 하마.”

철걱- 철걱- 철걱-!

제린의 몸을 갑옷이 휘감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은빛의 풀 플레이트 메일로 무장한 제린이 방패와 창을 고쳐 쥐고 레오에게 다가갔다.

그걸 본 레오가 아르에게 말했다.

“저건 내가 상대할게. 넌 다른 녀석들을 맡아.”

“알겠어.”

영웅 군단의 숫자는 모두 다섯.

오러를 쓰는 그들이 민간인 아이들을 학살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녀석들이 왔다면 골치 아팠겠지만, 이런 애송이들을 보낸 걸 보면 아직 영웅 군단을 완벽하게 장악한 건 아닌 모양이군.’

영웅 군단의 진짜 실력자들은 재앙의 시대를 헤쳐 온 역전의 용사들.

지금의 레오나 아르로서는 상대하기 벅찬 실력자들이다.

‘뭐, 그런 녀석들은 애초에 레바이튼의 명령 따위는 듣지도 않겠지만.’

무방비한 상태로 다가오는 레오를 보며 제린이 비웃음을 날렸다.

“어리석은 녀석!”

고오오오-!

창을 고쳐 쥔 제린이 날카로운 찌르기로 레오를 노렸다.

콰악-!

땅을 박차자 제린의 발이 움푹- 땅을 파고들었다.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오는 상대를 본 레오가 검을 아래서 위로 쳐올렸다.

‘그런 간단한 동작으로 내 공격을 막을 수 있을……!’

쩡-!

“……!”

제린이 눈을 부릅떴다.

오러가 담긴 창을 너무도 간단하게 쳐낸 레오가 말했다.

“그 실력으로 잘도 영웅 군단이라 칭하는군.”

“나를 모욕하는 건가!”

날카롭게 소리친 여인이 방패에 오러를 담아 레오에게 돌격했다.

그걸 본 레오가 검을 쥐지 않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화륵-!

오른손에 오러의 불꽃이 맺혔다.

“불꽃 속성 오러? 특이한 능력이군!”

지금 시대에는 오러의 발달로 오러에 속성을 담는 건 흔한 일이지만 재앙의 시대는 아니다.

레오의 불꽃을 보고 놀라던 제린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그 정도 불꽃으로 나의 방패를 저지할 수 있을까?”

방패를 본 레오가 주먹을 쥐었다.

“방어에 특화된 오러인 모양이군.”

화륵-!

레오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콰앙-! 화르르르륵!

불꽃이 휘몰아쳤다.

성나게 피어오른 불꽃이 제린의 오러를 날려 버린 것도 모자라 방패를 녹여 버렸다.

“꺄아아악!”

녹아내린 쇳물을 뒤집어쓴 제린이 비명을 내질렀다.

“실력도 장비도 조잡하네.”

검을 검집에 꽂아 넣은 레오가 다른 네 명을 상대하고 있는 아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통-!

아르가 도약하자 기묘한 소리가 들렸다.

콰악-!

“커헉!”

아르가 내지른 발차기에 영웅 군단 한 명의 갑옷이 박살 났다.

성난 고양이처럼 이빨을 드러낸 아르는 자신의 등을 노리는 검의 살기를 느끼고 가볍게 도약했다.

통-!

또다시 기묘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르의 몸이 튕기듯 치솟았다.

통-!

허공에서 발을 박차자 그대로 방향이 꺾였다.

‘탄력성?’

아르의 오러 특성을 본 레오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오러를 펼칠 때마다 아르의 몸이 자유자재로 튀었다.

그 엄청난 속도와 복잡한 움직임에 아르가 상대하는 네 명의 영웅 군단은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했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것 같군.’

마지막 영웅 군단의 등을 걷어찼다.

네 명의 기사가 게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그걸 본 아르가 코웃음을 쳤다.

“흥. 이런 주제에 영웅 군단은 무슨.”

그러고는 레오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불꽃의 오러가 네 오러 특성이었구나.”

모든 종족 중 오러를 가장 잘 다루는 수인답게 아르는 레오의 오러가 얼마나 강력한지 본 것만으로 예측할 수 있었다.

“한 번 붙으면 재미있는 싸움이 될 것 같네.”

레오의 실력을 확인 한 아르는 호전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때까지의 까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아조니아 추천 수험생다운 위엄 있는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뭐, 같이 학교를 다닐 테니까 조만간 승부를 낼 일이 있겠지. 너랑 있으면 학교생활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

평소와 같은 발랄한 미소를 지은 아르가 레오 쪽을 보며 말했다.

“너랑 나! 그리고 비실이 늑대까지 합치면 루메른을 이길 수 있을 거야!”

아르가 콧방귀를 뀌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렇게 잔뜩 기대하는데 루메른이라고 밝히기 미안한데.’

레오가 볼을 긁적일 때였다.

“후후훗, 어리석은 것들.”

제린이 비웃음을 흘렸다.

온몸은 화상으로 문드러져 있었고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감이 영웅 군단인 우리를 건드려? 레바이튼님이 네놈들을 가만둘 것 같아?”

까드득-!

이를 간 제린이 악담을 퍼부었다.

“멍청하긴! 더러운 고아를 위해 너희는 레이사르를 적으로 돌린 거야!”

조롱해대는 제린을 뚱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르가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두들겨 맞고 싶다는 소리지?”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는 살기 어린 고양이를 보며 제린이 흠칫했다.

레오가 손을 들어 그런 아르를 저지했다.

“애들을 데리고 여길 좀 피해 줄래?”

“뭐?”

“이 녀석이랑 할 이야기가 있어서.”

레오가 웃는 얼굴을 본 순간 아르는 등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뭔가 위험한 분위기.’

야생의 본능이 위기를 간파했다.

귀와 꼬리를 쫑긋 세우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르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부탁해.”

“알았어. 얘들아, 잠시 여기서 벗어나자.”

거부 할 수 없는 힘이 담긴 말에 아르가 아이들을 데리고 공터를 벗어났다.

그런 레오를 보며 제린이 비웃었다.

“하? 멍청하게 영웅 행세하더니 목숨이 아까워졌나 보지? 목숨 구걸이라도 하려고? 그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저 애들을 물린 건가? 네놈 역시 추잡하기 짝이 없…….”

“뭔가 착각한 것 같은데.”

스릉-

레오가 검을 뽑아 들고 제린에게 다가갔다.

“애들에게 보여줄 만한 게 아니라서 피하라고 했을 뿐이야.”

무덤덤한 얼굴로 말하는 레오를 보며 제린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레오의 붉은 눈과 마주친 순간 제린은 단번에 깨달았다.

눈앞의 소년은 살인에 거리낌이 없었다.

“오, 오지 마!”

제린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기어갔다.

“나, 날 죽이면 레바이튼님이 네놈을 가만두지 않…….”

“어차피 그놈은 내가 널 죽이든 말든 가만 안 있을 녀석이야. 약속된 시간까지 네 보고가 올라가지 않으면 직접 오겠지.”

레오의 싸늘한 시선이 제린에게 향했다.

“그리고 난 그놈이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 없거든. 널 살려 둘 이유는 없어.”

“그, 그렇다면 나를 인질로…….”

“너한테 그만한 가치가 있어?”

레오가 검을 들어 올렸다.

노을이 지는 회색 하늘 아래.

아무 감정이 깃들지 않은 레오의 눈은 너무도 소름끼쳤다.

레오의 검이 단두대처럼 내려왔다.

“잠……!”

서걱-!

깔끔하게 목을 베어 버린 레오는 남은 네 명의 목숨도 망설임 없이 끊어 버렸다.

레오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단순히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다면 레오 역시 목숨까지는 빼앗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든 걸 알고 왔어.’

살려 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망설임이 없군요.”

“익숙하거든.”

뒤에서 나타난 엘시의 말에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이런 변절자들이나 배신자를 처리하는 건.”

재앙의 시대를 지옥으로 만드는 건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 뿐만이 아니었다.

스스로 영웅이라 칭하며 죄 없는 이들을 죽이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레바이튼과 제린 같은 자들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았다.

그리고 그들의 목숨을 끊은 건 다름 아닌 카일이었다.

각자 이루고 싶은 목적이 있었던 친우들에게 그런 더러운 일을 맡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말 샤텐을 얻기 위해 내 친구들을 죽이려 한 걸까요?”

엘시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그래.”

“…….”

엘시는 대정령이지만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한 정령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전장에서 타르타로스와 싸웠고 이후에는 아곤과 함께 언젠가 나타날 진짜 영웅을 기다려 왔다.

사람의 악의를 접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이건 엘시가 처음 본 세상의 추악한 면모일 것이다.

‘원래라면 아르온의 동생들이 살해당한 모습을 봤겠지.’

처음 만났을 때 이 세상을 구할 가치가 있느냐 물었던 이유를 알게 된 레오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을 구한다는 건 이런 녀석들도 구한다는 소리니까.’

결국 그렇게 염원하던 리시나스와의 계약도 하지 않았다.

‘당신은 이 세계가 구할 가치가 있다고 보시나요?’

‘물론.’

리시나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루나와 아르온, 드웨노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카일 뿐이었다.

엘시의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은 건.

그래서 엘시는 카일을 선택한 것이다.

‘세상에 실망했음에도 우리의 여정에 참여한 이유는…… 그래도 세상을 구하고 싶어서겠지.’

헬 카이저와의 싸움이 끝난 후, 소멸하던 가운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웃음을 짓던 엘시가 떠올랐다.

‘그래도 역시 찾으면 좋겠어요.’

‘뭘?’

‘세상을 구할 이유요.’

계약자의 마지막 유언을 떠올리며 레오가 입을 열었다.

“엘시.”

엘시는 어느새 카일이 처음 만났을 때처럼 얼굴에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장담할게.”

다시 태어난 날.

요람 속에서 바라봤던 창밖의 밤하늘을 떠올리며 레오가 웃었다.

“밤하늘의 별빛은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름다울 거야.”

엘시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니 이 세상을 구할 가치는 있어.”

멍한 표정으로 레오를 바라보던 엘시가 환하게 웃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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