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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18화 (118/483)

118.

“나를 알아?”

아르온은 조금 당혹스러운 얼굴로 처음 보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알지.”

그 모습에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해야 하는 건 눈앞의 용자를 각성시키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오랜 시간 함께 전장을 누빈 레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네 동생들이 위기에 빠졌어.”

“뭐?”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던 아르온이 레오의 말에 놀랐다.

“오늘 밤, 네 동생들이 모두 죽을지 몰라. 네 힘이 필요해”

아르온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돌려 남부 끝자락.

자신의 집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획실히 무언가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고오오오오오-!

오러가 휘몰아쳤다.

순하던 황금색 눈동자의 동공이 세로로 가늘어졌다.

눈은 날카롭게 떠졌고 몸의 근육이 조금 부풀어 올랐다.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왔다.

단번에 도약하기 위해 아르온이 난간에 발을 올렸다.

그러다가 문득 레오를 돌아보았다.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었던가?”

“어.”

“언제.”

“머지않은 미래에.”

순간 아르온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야.”

“아!”

레오의 말을 듣고 아르온이 그대로 난간을 박찼다.

콱-!

보이지 않는 속도로 튀어 나가는 아르온의 뒷모습을 보며 레오가 웃었다.

‘소중한 사람을 위해 뛰어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구나.’

***

레이사르 남부 끝자락.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는 곳에 두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왜 이런 구역질 나는 곳에 다시 와야 하는 거지.”

비록 레바이튼의 실세라 하더라도 역병이 터진 곳의 주민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아무에게나 할 수 없다.

특히 실제 역병이 존재하지 않다는 게 밝혀지면 일이 귀찮아질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으로 완벽하게 따르는 이들 소수만을 보낸 것이다.

“무능한 놈들.”

결과적으로는 실패했기에 레바이튼이 직접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레바이튼이 공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치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 서 있는 아르를 보며 눈을 꿈틀거렸다.

“하, 진짜 저런 애새끼 하나에게 당한 거야?”

“너도 네 부하들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꺼지는 게 좋을 거야.”

“건방진 녀석이, 지금 누구에게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레바이튼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는 레이사르의 영주가 될 몸이다. 앞으로 대대손손 지상의 사람들에게 칭송받는 영웅이 될 몸이라고.”

“웃기지 마셔. 미래에 너 따위를 칭송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뭐라고?”

“너 같은 건 역사의 한편에도 기록되지 않아. 아, 기록은 되겠네.”

아르가 사납게 웃었다.

“재앙의 시대에는 너 같은 쓰레기도 있었다고.”

히어로 레코드는 신이 기록한 영웅의 발자취.

영웅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신의 이름으로 보증된 ‘진실’이다.

새로운 히어로 레코드의 발견에 따라 기존의 역사서가 폐기되고 새로운 역사서가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레오와 아르가 이번 세계를 공략해내면 5000년 전 인물인 레바이튼인 역사에 기록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후대 사람들은 영원토록 그를 비난하게 될 것이다.

아르의 말을 들은 레바이튼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감히!”

흥분한 레바이튼이 아르를 향해 돌격했다.

콰앙-!

어느새 손에 거대한 대검을 쥔 레바이튼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하나하나 스치면 사망에 이를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하지만 아르의 눈은 검의 궤적을 확실하게 보고 있었다.

화악-!

“……!”

“힘만 센 허접한 공격이네.”

“이익!”

대검의 위에 올라타 조소하는 아르를 보며 레바이튼이 검에 마력을 방출시켰다.

파바바바밧-!

푸른색 스파크가 튀었다.

하지만 마법이 덮치기 전 아르는 폴짝 뛰어 레바이튼과의 거리를 벌렸다.

“전사는 아닌 것 같은데. 실력에 비하면 무기가 아까워.”

영주성의 무기고에서 강력한 무구들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레바이튼은 온갖 강력한 마법 무구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어려서부터 온갖 이능을 접하고 영웅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온 아르는 오직 무기에만 의존하는 레바이튼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마법사가 전사 흉내를 내다니.”

레바이튼의 실력을 꿰뚫어 본 아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아르의 말대로였다.

근접전은 순수하게 마법 무구의 힘을 빌렸을 뿐.

레바이튼은 순수한 마법사였다.

그래서 무기를 다루는 실력은 볼품없었다.

“한심해!”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실속은 없다.

“누굴 더러 한심하다는 거냐! 너저분한 녀석!”

레바이튼이 일갈했다.

“이 내가 쓰레기라고? 나는 영웅이다! 레이사르를 지배할 대영웅이 될 몸이란 말이다!”

아르의 눈에 살기가 치솟았다.

“대영웅이란 말을 입에 담지마!”

격노한 아르의 온몸에 있는 털이 곤두섰다.

발끝에 오러를 압축시켰다.

콰앙-!

아르의 몸이 응축된 탄력으로 인해 화살처럼 레바이튼을 향하 쏘아졌다.

“크윽! 리, 리플렉션 실드!”

콰앙-!

아르의 발차기가 레바이튼의 보호 마법에 막혔다.

쩌저저적-!

레바이튼이 만들어낸 마력의 벽에 금이 갔다.

그걸 본 레바이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꿰뚫지는 못했다.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만큼 레바이튼의 보호 마법은 단단했다.

“우랴아아아아아아!”

마법에 의해 자신의 힘이 되돌아오는 걸 느낀 아르가 포효를 내지르며 용자의 숨결을 사용했다.

발끝에 담긴 오러의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되돌아 오는 힘을 흘려보내면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다음 공격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르는 물러서지 않았다.

대영웅이라는 칭호를 함부로 입에 담는 눈앞의 변절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되돌아 오는 자신의 힘을 오기로 되돌려 주었다.

오른발이 거대한 무언가에 쥐어짜이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그러나 아르는 신경 쓰지 않고 눈을 치켜들고 발을 내질렀다.

‘이 개자식의 면상을 걷어차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려!’

우지직- 콰아앙!

“케헤엑?!”

아르의 발차기가 그대로 레바이튼의 몸을 걷어찼다.

처참하게 튕겨져나간 레바이튼이 몇 번이고 건물 벽을 뚫고 무참하게 날아갔다.

“허억. 허억.”

오른발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아르가 숨을 몰아쉬었다.

짝- 짝- 짝-

“제법이네. 아니, 놀라워.”

아르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향했다.

“어머니의 말씀이 옳았어. 지상의 영웅들은 아직 위험해.”

“흥! 당신도 날려 버려 줄 테니 이리 와”

아르가 발을 허공에 휘두르며 으르렁거렸다.

그런 아르를 보며 여인이 웃었다.

“어머, 정말로 할 수 있겠니? 새끼 고양이?”

우직-! 우지지직! 콰지직!

인간의 가죽을 벗어 버리고 몸집이 거대해진 여인을 보며 아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히려 나한테 잡아 먹히지 않으면 다행 아닐까?”

거대한 거미의 하체에 상체만 인간의 모습을 한 마족이 아르를 조롱했다.

허리 밑에 달린 입 부분에 달린 입에서 소름끼치게 혐오스러운 입이 날름거렸다.

“마, 마족?”

아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압도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어떻게? 마족의 냄새가 나지 않는 거지?”

눈앞의 마족에게서는 그 어떠한 마족의 악취가 조금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초목이 우거진 숲의 냄새가 났다.

뒷걸음질 치는 아르를 보며 여인, 탈라투니아가 생긋 웃었다.

“글쎄. 내가 요정왕의 팔을 씹어 먹었기 때문이 아닐까?”

마물 여왕 실라투나의 딸.

거미 공주 탈라투니아.

요정왕의 반지 덕분에 마족의 기척이 지워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은밀하게 난민 도시에 잠입했다.

10년 전 영웅 연합과의 전투에서 싸웠던 당시 아곤이 사용했던 검, 샤텐에 대정령이 깃들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요정왕의 팔과 함께 반지를 씹어 먹은 이 탐욕스러운 마족은 대정령을 집어삼키기 위해 레바이튼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럼.”

흉측스러운 거미 다리가 들어 올려졌다.

“죽으렴.”

화악-!

거대한 송곳처럼 거미의 앞다리가 아르를 꿰뚫으려 했다.

콱-!

순간 아르의 앞에 그림자가 치솟더니 공격을 막았다.

“드디어 나섰구나, 샤텐.”

탈라투니아가 혀를 날름거렸다.

그런 탈라투니아를 보며 엘시가 말했다.

“샤텐은 내가 머문 검의 이름일 뿐이에요. 내 이름은 엘시에요.”

“이름은 상관없어. 내가 널 잡아먹는다는 게 중요하니까.”

쩌억-!

입을 벌린 탈라투니아가 엘시를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었다.

콱-!

순간 탈라투니아의 몸이 딱- 멈추었다.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린 탈라투니아는 붙잡힌 자신의 그림자를 노려보았다.

표정이 사라진 엘시가 힘을 사용했다.

“어라?”

그림자를 빼앗긴 탈라투니아의 앞발이 부들부들 떨리며 치켜세워졌다.

화악-!

콱-!

그리고 탈라투니아의 앞발은 망설임 없이 본인의 목을 꿰뚫어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거미발들은 기괴한 각도로 뒤틀렸다.

그림자를 빼앗긴 탈라투니아는 말 그대로 실이 걸린 인형이었다.

그리고 그 실을 마음대로 조종하는 건 다름 아닌 엘시였다.

“10년 전이랑 달라진 게 없네요. 거미 공주.”

아곤과 탈라투니아를 한 번 패퇴시켰던 엘시가 생긋 웃으며 손을 까딱였다.

우드득-!

탈라투니아는 시야가 반전된 걸 느꼈다.

목이 처참하게 꺾인 것이다.

눈을 깜빡거리던 탈라투니아가 광소를 터트렸다.

“꺄하하하하하하하하! 재미있네! 재미있어!”

우드득! 우드드득!

기괴한 각도로 뒤틀렸던 발들이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꿰뚫리고 뒤틀린 몸은 순식간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나라조차 멸망시킨다는 전율스러운 거미 공주의 힘에 무한에 가까운 생명력이 주어진 것이다.

순식간에 회복하는 탈라투니아를 보며 엘시 역시 당황했다.

콰악-!

“컥?”

순식간에 날아든 탈라투니아의 앞발이 엘시의 몸을 꿰뚫었다.

엘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콰가가가각-!

상처에서 뿜어져 나온 어둠의 조각들이 탈라투니아의 몸을 난도질했다.

순식간에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찢겨나갔다.

“어때? 10년 전과 다르지?”

머리 위는 날아가고 입만 남은 탈라투니아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계약자도 없는 미숙한 대정령이 실라투나의 딸인 나를 혼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크흑!”

“어디 대정령은 무슨 맛일지 한입 먹어 볼까?”

쩌억-!

처참하게 난도질당하는 가운데도 탈라투니아는 탐욕스럽게 입을 벌렸다.

무한의 생명력을 가지게 된 탈라투니아는 말 그대로 죽지 않는 재앙과도 같았다.

엘시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순간.

화악-! 콰득!

아르가 날아와 탈라투니아의 턱을 걷어찼다.

이상한 각도로 뒤틀린 탈라투니아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새끼 고양이가.”

공포에 질린 아르였지만 다시 전의를 불태웠다.

“그 겁쟁이는 세계를 구했어.”

왜인지 모르게 레오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용자의 뒤를 쫓는다면! 여기서 겁에 질려 가만히 있을 순 없어!’

이를 악문 아르가 다음 공격을 탈라투니아에게 먹이려 했다.

퍼억!

“컥!”

순간 머리가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거미다리 중 하나가 아르의 머리를 후려친 것이다.

“넌 나중에 후식으로 먹어 줄게.”

머리에 피를 흘리며 구석에 처박힌 아르를 보며 조소한 탈라투니아가 엘시에게 관심을 돌렸다.

“우으……!”

아르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괜찮니?”

“어?”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아르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이 크게 뜨였다.

“힘내 줬구나.”

아르의 몸이 떨렸다.

아르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달랐다.

정확하게는 어렸다.

하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용기를 준 동화 속 인물.

세상을 구한 동경의 대상.

“아르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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