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24화 (124/483)

124.

“방금 그 애들은 어떻게 하신 겁니까?”

“걱정하지 말게. 단순히 멀리 보낸 것에 불과하니.”

당황한 얼굴로 묻는 영웅의 쉼터 직원에게 의욕 없는 얼굴로 대답한 그는 획-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드래곤이 왜 여기 있는 거지?’

드래곤.

지상의 최강의 종족이라 칭송받는 종족.

과거에는 지상 곳곳에 자리를 잡고 살았지만, 지금은 드래곤들의 왕국이라 불리는 드래고니아 외에서는 보기 힘든 종족이었다.

‘그런 드래곤이 루메리아 시티에 있다라.’

잠시 흥미가 생겼지만 이내 관심을 끊기로 했다.

지난 반년 동안 루메른에서는 제법 여러 이슈가 있었던 만큼 동향을 살피기 위해 드래곤이 찾아오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레오는 엘시에게 루메리아 시티를 구경시켜주었다.

그 와중에 영웅의 쉼터에서 있었던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자퇴생들이 교수들을 찾아다니며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종종 보였다.

몇몇 1학년들은 그 모습을 보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기였던 그들을 비웃었다.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지 못한 자의 명암이 확실하게 갈리고 있었다.

해가 질 무렵, 호텔로 돌아가자 익숙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지스 삼촌.”

“오랜만이구나, 레오. 잘 지냈느냐?”

“예, 잘 지냈어요.”

제르딩거 가문의 부가주, 지스가 레오를 보며 반갑게 웃었다.

호텔에는 지스 외에도 제르딩거의 기사들로 보이는 이들이 서 있었다.

제르딩거에서 호텔 자체를 빌렸기에 다른 이들은 없었다.

제르딩거의 기사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레오에게 보냈다.

루메른 1학년 학년 대표에다가 제르딩거에서 인정받은 혈족만 익힐 수 있는 피닉스 브레스를 익힌 소년.

기사들로서는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요? 가문에서는 어떤 결론이 나왔나요?”

셀리아가 긴장된 얼굴로 물었다.

‘얘가 나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네.’

계승권 문제에 관해 당사자인 자신보다 훨씬 더 관심을 쏟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결론을 말하자면 레오가 계승권을 얻는 건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아…….”

셀리아가 아쉬움에 찬 탄성을 내질렀다.

“왜요?”

어딘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 셀리아를 보며 지스가 쓰게 웃었다.

“일단 가문에서 레오가 정확하게 어떤 아이인지 잘 알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크지.”

“그래도 납득이 안 돼요! 레오는 레이나 고모님의 아들인데다가 제르딩거의 직계로 불려도 부족함이 없는 실력자잖아요!”

“가문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인데 지스 삼촌에게 따진다고 해결이 되겠어?”

발끈하는 셀리아의 이마를 톡 건드려준 레오가 물었다.

“미뤄졌다는 건 후에 판단하겠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래. 가문의 사람들이 널 직접 만나보고 판단한 후에 결정될 것 같구나.”

“그 말은…….”

“겨울 방학 때 제르딩거를 방문하렴.”

“알겠습니다.”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레오를 보며 지스가 빙긋 웃었다.

셀리아는 계속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따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걸 알기에 더 이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일단 집안 문제는 신경 쓰지 말거라. 지금 너희가 가장 신경 써야 할 건 바로 2학기니까.”

“네.”

“1학기와는 많이 다를 거다.”

“그렇게 다른가요?”

“그래.”

루메른 졸업생인 지스는 조카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루메른 아카데미라고 보면 된다.”

***

루메리아 시티에 머무는 동안 레오와 셀리아는 개학을 준비하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개학식 날.

루메른으로 향하는 선착장에 학생들이 모였다.

학년별로 선착장이 다르기에 고학년들과 만날 일은 없었다.

“어머! 반갑다! 방학 어떻게 보냈어?”

“잘 보냈지! 넌 살이 좀 탄 것 같은데?”

“방학 동안 별장에서 지냈거든.”

여학생들은 방학 동안 있었던 이야기로 수다를 떨기 바빴다.

“훗, 방학 동안 몬스터 토벌 좀 했지.”

“돌아가니까 파티 초청 때문에 정신없었어. 파티에 가니까 모르던 귀족 가문 여식들도 다 아는 척하는 거 있지?”

“내가 방학 때 어딜 갔었는지 알아?”

남학생들은 방학 동안 있었던 무용담에 대해 떠들어 댔다.

“이걸 보니까 개학이라는 게 실감이 나네.”

셀리아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빙긋 웃을 때였다.

“레오! 셀리아!”

“클로에!”

저 멀리서 클로에가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방학 잘 지냈어?”

“응! 넌 어땠어?”

“집안 문제 때문에 정신없었어.”

1반의 반장과 부반장인 만큼 둘은 절친이었다.

“레오는 어땠어?”

“뭐, 평범하게 보냈지.”

“평범? 아조니아 입학식에 참석한 게 평범이야?”

“아조니아 입학식?”

클로에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말해줄게.”

웃으면서 레오가 대답했다.

“요! 레오! 클로에! 셀리아!”

그때 세 사람을 발견한 칼이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셀리아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기하단 말이야. 칼이 2학기까지 살아남은 걸 보면.”

“훗. 이게 다 실력 아니겠냐?”

턱에 손을 대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던 칼이 킥킥 웃었다.

“근데 사실 나도 내가 살아남아서 신기하긴 해.”

1학기 때 열심히 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한계라는 게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도 이 자리에 있는 게 얼떨떨했다.

“어쨌든 레오, 저쪽에 반 애들이 모여있는데 그쪽으로 가자.”

“알았어.”

레오가 고개를 끄덕이고 셀리아와 클로에에게 말했다.

“조금 있다 봐.”

“응. 잘 가.”

“후하하하! 2학기 때는 1등 반 자리를 가져가 주마!”

칼이 웃으면서 도발하자 팔짱을 낀 셀리아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림없는 소리.”

1반과 5반은 세드젠과 할린드 덕분에 은연중 서로에 대해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다.

레오와 칼이 5반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여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인사를 해왔다.

“앗! 레오다!”

“레오, 안녕~”

꺅- 꺅- 웃으면 손을 흔들어주는 여학생들을 보며 칼이 씁쓸하게 웃었다.

“학교 성적도 좋으면서 여학생들한테 인기까지 많냐?”

“난 잘 못 느끼겠는데.”

“너 1학기 때 1학년 남학생 인기투표에서 3등 했거든?”

칼이 투덜거렸다.

“그런 투표는 대체 누가 한 거야?”

“누구긴. 내가 했지.”

1학년 전체를 상대로 장사하면서 여학생들에게 인기 투표를 했다고 설명해주었다.

“비공식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공신력이 있지. 후후훗.”

“그런 걸 왜 조사한 건데?”

“사진집 같은 걸 만들어서 팔까 했거든.”

킥킥 웃는 칼을 보며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순위가 궁금하긴 하네.’

“1등이 누군데?”

“아바드 르왈린.”

확실히 잘생긴 데다가 주변에 언제나 친절하고 늘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아바드는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웅 명가 르왈린 가문의 후계자이기도 했다.

실력, 외모, 성격.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남자다.

“2등은?”

“듀란.”

칼이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격이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지 외모랑 실력, 그리고 프라이드가 높으니까. 결정적으로 왕자님이고.”

기사 공국 모이라의 왕자인 그는 장남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실력 덕분에 차기 모이라의 왕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네가 3등. 듀란이랑 아주 근소한 차이야.”

“신기하네. 난 별로 체감을 못 했는데.”

“그럴 수밖에. 아바드랑 듀란은 매주 고백이나 편지를 받는데 넌 아무것도 못 받았으니까.”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왜 그렇지?”

“……네 주변 애들을 한 번 생각 해봐라.”

“주변 애들?”

레오, 칼, 첼시는 이미 학교 내에서 단짝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레오가 있는 곳에는 거의 첼시가 있었다.

거기에 5반의 부반장인 넬라는 학교에서 손꼽히는 미소녀.

학과 행사 때는 늘 붙어있다.

덤으로 반 일을 자주 돕는 일리아나도 어디 가서 꿀리는 외모가 아니다.

그 외에도 다른 반 반장들인 클로에, 첸 시아와도 사이가 매우 가깝다.

“결정적으로 셀리아. 너희 둘이 사촌이라는 건 비밀이잖아. 그걸 모르기 때문에 너희 둘이 사귄다고 착각하는 애들이 제법 많거든.”

입학식 때부터 붙어 다녔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여학생들이 네 주변에 다가올 생각을 못 하고 있단 말씀.”

칼이 히죽 웃었다.

“어때? 인기 많다니까 기분 좋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놀리는 칼을 보며 레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셀리아랑 사촌이란 게 알려지면 바로 1등으로 바로 치고 올라갈걸?”

“제르딩거에서 조만간 대외적으로 밝힐 거라고 하긴 하던데.”

“진짜? 학교 애들 반응이 재미있겠는데?”

칼이 히죽 웃었다.

“변방 왕국 출신이라고 은근히 널 깔보는 녀석들이 많아서 기분이 안 좋았거든. 뒷담 하는 녀석들도 여전히 많고.”

친구가 얕보인다는 사실에 칼이 분개했다.

그런 칼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을 때였다.

“앗! 반장이다!”

쾌활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일리아나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레오, 잘 지냈냐.”

“어서 와, 레오.”

테이드와 넬라도 반갑게 인사해 왔다.

전체적으로 5반의 분위기는 매우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열 개 반 중 1반과 더불어 단 한 명의 자퇴자도 없는 반이 5반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반과 달리 결속력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방학 동안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다들 분위기가 좋구나, 풋풋해. 젊음이 느껴져.”

확성 마법으로 커진 목소리로 누군가 말했다.

그에 따라 1학년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건 다름 아닌 검은 머리카락의 남자였다.

“누구야? 처음 보는 사람인데.”

“교수님인가?”

“아니, 1학년 담당 교수님 중 저런 분은 없었잖아?”

학생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의문의 남자를 보았다.

‘그때 그 드래곤.’

남자는 나태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욕도 넘치고 생기도 넘치는군. 나는 나이만 잔뜩 먹었는데 말이야. 에혀.”

‘뭐, 뭐야? 이 사람.’

의욕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고 푸념을 내뱉는 남자를 보며 1학년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추가)

“반갑다, 제군들. 내 이름은 리벤. 루메른의 교감이다.”

학생들이 눈을 부릅떴다.

루메른의 교감 리벤 교수.

지난 5년 동안 아카데미를 떠나 있었던 교수다.

그 덕분에 교감에 대한 건 5학년들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런 교감이 갑자기 나타났으니 1학년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리벤은 품에서 학생 명단을 꺼내 들었다.

“올해 입학생은 총 440명. 그중 2학기까지 살아남은 학생이 총 346명이군.”

94명의 학생이 자퇴한 셈이다.

언뜻 보기에는 많은 학생이 제적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루메른의 수준을 생각한다면 다른 해에 비해 오히려 많은 학생이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었다.

매년 1학년 1학기가 끝날 즘에는 매년 평균 2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제적 처리된다.

특히나 올해는 마안의 마법사 알비가 서부 입학시험을 담당한 덕분에 다른 해에 비해 입학자 수가 적었다.

그걸 생각한다면 94명의 자퇴자는 매우 적은 숫자였다.

“세간에는 너희를 황금 세대라고 부르고 있다. 다들 알고 있지?”

그 말에 1학년들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교장인 칼리안이 내게 직접 부탁했다. 1학년 2학기의 총괄 교수가 되어 달라고 말이야.”

리벤의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그런데 말이야, 귀찮단 말이지.”

그는 나태한 얼굴로 말했다.

그 말에 학생들이 당황했다.

“너희가 뛰어나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과연 내가 가르칠만한 수준인지는 모르겠구나. 그러니 증명해줬으면 한다.”

리벤이 손가락으로 루메른 쪽을 가리켰다.

“지금부터 너희는 루메른 정문으로 향해라.”

학생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미 입학식에서 크라켄 습격을 경험했기에 개학식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란 건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학교 정문으로 향하라니?

“경고하자면 쉽지는 않을 거다.”

의욕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리벤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쩌면 아무도 도착 못 할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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