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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25화 (125/483)

125.

“너무 뜬금없는데?”

“어쩌겠어. 우리 학교가 뜬금없이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게 하루 이틀이야?”

“하긴.”

테이드의 중얼거림에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말을 듣고 테이드도 납득 해버렸다.

1학기 때까지만 하더라도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하던 1학년들이었지만 지금은 다들 태연했다.

모두 돌발 상황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만큼 이 정도는 덤덤히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그럼.”

학생들의 시선이 리벤에게 향했다.

“시작.”

리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1학년 전체가 동시에 루메른을 향해 튀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리벤이 턱을 쓰다듬었다.

‘다들 반응들이 좋군. 이렇게 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건 역시 경험치의 차이인가.’

이번 1학년들은 모두 학과대항전에서 위기 사태를 경험했다.

‘셀리아, 시아, 듀란, 아바드, 클로에, 첼시, 워레든, 엘리자. 그리고 레오. 당시 기간테스를 토벌한 건 이 아홉 명. 세간에서는 이들만 주목하고 있지만…….’

다른 학생들도 몬스터와 싸웠다.

그 경험이 이번 기수를 남다르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가끔 있다니까, 이런 세대가.’

특별한 세대.

원래는 한 세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영웅이 이런 특성을 보이는 기수에서는 여러 명 나온다.

‘지금 5학년들도 이랬었지.’

5학년들 역시 걸출한 인재가 많아 주목받았던 세대다.

하지만 리벤은 1학년들을 가르칠 의욕이 나지 않았다.

‘지난 수백 년 동안 루메른 출신 중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영웅이 있었던가? 아니. 루메른뿐만 아니라 다른 영웅 사관 학교 역시 마찬가지야.’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영웅이 탄생했다.

영웅이 되는 건 커다란 시련을 이겨냈다는 의미.

그렇기에 대부분의 영웅은 영웅의 지위를 손에 넣은 데 만족하곤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해.’

신들이 히어로 레코드를 하계에 선물한 이유.

그건 바로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를 완전히 토벌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궁극적인 목표는 ‘영웅’ 이 된 듯하지만.’

리벤은 오랜 세월을 루메른의 교수로서 살아왔다.

그가 드래곤이라는 걸 아는 자는 루메른 내에서도 극소수.

100년 전, 그는 드래곤 로드에게 루메른의 학생을 지도하라는 명령을 받고 루메른의 교사가 되었다.

용족의 수명은 대략 300년.

리벤은 자신의 수명의 상당 부분을 루메른의 교수로서 살아온 것이다.

재앙의 시대 이후.

지혜의 왕 리시나스의 유지를 이어 드래곤들은 영웅을 선택하고 보필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드래곤의 인정을 받은 영웅은 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리벤 역시 처음에는 의욕이 넘쳤다.

머지않은 미래에 위대한 대영웅들의 유지를 이어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를 쓰러트릴 영웅이 탄생하리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세계정세는 수백 년째 큰 변화가 없었다.

끝없이 타르타로스와의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었지만, 그 역시 지지부진한 상황.

‘지금 시대의 아이들은 영웅 그 너머의 이상을 바라보는 아이들이 드물지.’

그래서 의욕이 나지 않았다.

‘나이를 먹은 것도 있고.’

순식간에 사라진 학생들을 보며 리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랫동안 변화가 없는 세계는 드래곤을 지치게 하기 충분했다.

‘은퇴할 때가 된 건가?’

***

바다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드넓은 루메리아 호수에는 여러 개의 섬이 있다.

그 중앙에 있는 거대한 섬에 바로 드넓은 루메른 아카데미가 있다.

‘생각해보면 이곳도 재앙의 시대 이전에는 호수가 아니었지?’

세계의 중앙.

지금은 루메른 아카데미가 자리 잡은 곳이지만 원래 이곳은 드래곤들의 땅이었다.

‘에레보스가 나타나고 가장 먼저 공격당한 땅이라고 했었던가?’

전생에서도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기에 레오도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에레보스 토벌을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던 시절에도 현재 루메리아 시티가 있는 곳 주변에는 온 적이 없었다.

과거에 대해 떠올리던 레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각오해라! 레오 플로브!”

파지지지직-!

강렬한 스파크가 튐과 동시에 황금색 번개의 오러가 번쩍였다.

콰지지지직-!

파바바바바밧-!

“으아악! 피해!”

“저기서 멀어져!”

느닷없는 공격에 학생들이 기겁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주변에 휘몰아치는 번개는 각자의 수단으로 방어했다.

“피했군.”

오러 스텝으로 물 위에 선 듀란이 레오를 보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을 본 레오가 팔짱을 꼈다.

“지금은 딱히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게 아닌데 왜 덤벼든 거야?”

“경쟁을 하라는 말은 없었지만, 경쟁을 하지 말라는 말도 없었지.”

듀란의 눈에 강한 투쟁심이 휘몰아쳤다.

“그렇다면 싸우지 않을 이유가 없지. 방학 동안 네놈을 꺾기 위해 수련을 했다. 덤벼라, 레오 플로브.”

파지지지지직-!

듀란이 몸에 번개의 오러를 휘감았다.

그걸 본 레오가 머리를 긁적였다.

“아, 개학 첫날부터 힘쓰기 싫은데.”

“훗. 건방진 녀석. 그런 여유도 곧 사라질…….”

“거기 있었군요! 레오 플로브!”

앙칼진 목소리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화악-!

최상위 환수종, 델피누스를 탄 엘리자가 눈을 치켜뜨고 돌격해오고 있었다.

“각오하세요!”

델피누스가 물보라를 만들어냈다.

“헉! 엘리자 헤르긴까지?!”

“피해! 피해!”

“쟤들 사이에 휘말리면 뼈도 못 추려! 물러서!”

주변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공격을 퍼붓는 또 다른 최상위 실력자, 엘리자의 등장에 학생들이 후다닥- 레오와 거리를 벌렸다.

그러면서도 딱히 도망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듀란과 엘리자.

두 사람 모두 이번 기수 최상위 실력자임과 동시에 한 성격 한다는 공통점을 지닌 학생들이다.

거기에 누구보다 레오를 꺾고 싶어 한다.

그래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학년 대표 자리를 노리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 둘은 특히나 호전성이 강했다.

‘이런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놓칠 수야 없지!’

‘개학 날부터 재미있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 중 하나가 싸움 아니겠는가?

학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세 학생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레오는 자신을 덮치는 파도를 보며 한숨을 쉬고 마력을 일으켰다.

“프리징.”

쩌저저저저적-!

레오를 덮치던 거대한 파도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하지만 예상했다는 듯 엘리자는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엘리자의 영력에 힘을 얻은 델피누스가 입을 벌리더니 포효를 내질렀다.

까아아아아아아아악-!

강력한 음파 공격에 얼음이 순식간에 부서졌다.

레오는 순간 골이 띵- 하고 울리는 걸 느끼고 오러를 일으켜 음파 공격에 저항했다.

같이 있다가 휘말린 듀란 역시 얼굴을 구겼다.

정면에서 음파 공격을 버텨낸 두 사람과 달리 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학생 중 저항력이 떨어지는 몇몇 학생은 그대로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물러서서 지켜보던 학생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구경하다가 잘못하면 큰일 날 수도 있겠는데?’

모두가 긴장하는 가운데 듀란의 날카로운 시선이 엘리자에게 향했다.

파지직-!

엄청난 속도로 오러 스텝을 밟으며 엘리자에게 접근한 듀란이 검을 치켜들었다.

콰가가가가각-!

벼락과도 같은 검격이 내려치자 엘리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영력을 일으켰다.

“루리! 움직여!”

엘리자의 영력으로 강화된 델피누스가 그대로 잠수했다.

그 모습에 듀란이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물속 깊숙이 잠수하면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콰릉-!

듀란의 검에서 벼락 소리가 울리자 구경하던 학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야! 야! 튀어! 광역 공격이다!”

“으아아아아악!”

“학기 초부터 번갯불에 구워지고 싶지 않다고!”

듀란이 검을 내지르자 주변 일대에 벼락의 폭풍이 휘몰아쳤다.

가까스로 공격의 사정권에서 벗어난 학생들은 듀란의 공격을 방어해낸 레오를 보며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공격의 직접적인 타겟이 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만한 공격에 휩쓸렸음에도 태연한 레오의 모습은 놀랍기 그지없었다.

“과연 이런 공격으로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군.”

듀란이 그런 레오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릴 때였다.

고오오오오오오오-!

물속에서 심상치 않은 기척이 느껴졌다.

푸화하하하하학-!

수면 위를 뚫고 나온 생물체들을 본 학생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쿠아 고르고스!”

물뱀 형태의 몬스터로 물에서 마주하게 되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수중 몬스터였다.

아쿠아 고르고스 다섯 마리가 화가 난 듯 듀란에게 달려들었다.

델피누스의 능력 중 하나인 지배 능력이었다.

그런 아쿠아 고르고스를 보며 듀란이 코웃음을 치며 검을 휘둘렀다.

번쩍!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황금색 섬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엄청난 속도의 검격이 아쿠아 고르고스를 베어 버렸다.

그 깔끔한 검격에 아쿠아 고르고스의 머리가 모두 떨어졌을 때였다.

촤아아아악-!

물의 회오리가 듀란을 덮쳤다.

얼굴을 구긴 듀란이 검을 휘둘렀다.

촤악-!

물의 회오리를 베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충격의 여파로 튕겨져나갔다.

듀란의 얼굴에 살기가 깃들었다.

“흥!”

어느새 물 위로 올라온 엘리자도 코웃음을 치며 듀란을 노려보았다.

“죽고 싶은가 보군. 날 방해하다니.”

“당신이야말로 날 방해하지 마세요.”

듀란의 싸늘한 목소리를 엘리자가 표독스럽게 받아쳤다.

서로를 노려보던 두 학생의 입가에 살벌한 미소가 걸릴 때였다.

“너희는 개학 날부터 기운이 넘치는구나?”

레오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두 사람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빨리 결판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뿐이다.”

“이번에야말로 학년 대표 자리를 가져가겠어요.”

“그래서, 너희 둘이서 날 협공하려고?”

“그런 저열한 짓거리는 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라. 레오 플로브.”

“이 인간과 힘 같은 걸 합칠 이유도 없을뿐더러 그렇게 당신을 쓰러트려도 아무 가치가 없죠.”

“그럼 누구부터 덤빌지 정해.”

“당연히 나다.”

“웃기지 마요. 나부터예요.”

둘 사이에 또다시 불똥이 튀었다.

그 모습을 본 레오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둘이서 먼저 싸워서 이기는 쪽이랑 승부를 겨룰게. 그게 맞지 않겠어?”

레오의 말을 듣고 듀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간단명료해서 좋군. 덤벼라, 엘리자 헤르긴.”

“바라던 바에요. 듀란 모이라.”

성질머리 더러운 걸로 유명한 두 사람이 서로를 노려보더니 이내 엄청난 싸움이 시작되었다.

학년 최상위 실력자들의 화려한 싸움을 넋 놓고 구경하던 다른 학생 중 한 명이 문득 레오에게 물었다.

“어디 가? 둘 중 하나랑 승부를 겨루기로 한 거 아니었어?”

“응. 근데 지금 당장 승부를 겨룬다고는 말 안 했잖아.”

“뭐?”

“그럼 난 먼저 간다.”

레오가 손을 흔들어주고 획 가버렸다.

듀란과 엘리자는 서로를 쓰러트리는데 정신이 팔려 레오가 떠나는지도 알지 못했다.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학생들이 측은한 시선으로 듀란과 엘리자를 보았다.

‘야, 너희들 레오에게 당했어.’

‘어휴. 저러고 레오가 없다는 걸 알면 얼마나 허탈할까.’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한 학생이 중얼거렸다.

“야. 저러다가 레오가 먼저 간 거 알고 화나서 주변에 화풀이하면 우리 모두 큰일 나는 거 아니야?”

“…….”

학생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눈치를 보던 학생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떠났다.

잠시 후.

주변에 자신들만 남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 듀란과 엘리자도 싸움을 멈추었다.

그리고 레오 역시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두 사람의 얼굴에 엄청난 분노가 일었다.

“레오 플로브! 너 이 자식!”

“당신 진짜아아아아아!”

레오에게 당했다는 걸 알게 된 두 사람의 허망한 격노가 사방으로 퍼졌다.

하지만 레오는 이미 저 멀리 두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는 위치에서 앞서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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