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26화 (126/483)

126.

1학년들은 각자의 방식을 이용하여 아카데미로 향했다.

기사학과 학생들은 오러 스텝.

마법학과 학생들은 플라이 마법이나 윙 마법.

소환학과 학생들은 비행 환수와 정령.

학기 초였다면 이 드넓은 루메리아 호수를 건너는 데 애를 먹을 학생들이 많았겠지만 지금 루메른 1학년 중 호수를 건너지 못할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모두 성장했다는 거겠지.’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하늘을 날아가며 레오가 생각했다.

루메리아 호수에 사는 수중 몬스터들이 학생들을 습격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지만 모두 거뜬히 대응했다.

“이 정도면 크라켄이랑 붙어도 해볼만 할 것 같은데?”

“농담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라.”

동기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은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루메른 아카데미까지 가라는 이유가 뭐지?’

학생들의 실력을 테스트해보려는 건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난이도가 너무 쉬웠다.

리벤의 정체가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꿰뚫고 있는 레오는 쉽지 않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걸 예측했다.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아.’

레오가 그렇게 확신하고 있을 때였다.

눈앞에 뿌연 안개가 자욱하게 깔렸다.

루메리아 호수에 자주 안개가 끼었기에 다른 학생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안개 속으로 들어선 순간 레오가 얼굴을 굳혔다.

‘이건……!’

레오가 눈을 부릅떴다.

‘용언 마법?’

화악-!

용언 마법을 인지한 순간 레오의 시야가 변했다.

‘이건 좀 심하잖아.’

레오가 알고 있는 마법이었다.

오래전 지혜의 왕, 리시나스가 개발한 마법.

‘정확하게는 저주지.’

리시나스가 타르타로스의 강력한 힘 중 하나인 저주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용족의 저주.

‘나이트메어.’

화악-!

완전히 풍경이 바뀌었다.

그걸 본 레오가 심호흡했다.

이 저주의 특성은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싸우기 싫은 상대와 싸우는 저주.’

거기까지 생각한 레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여인을 보며 ‘역시’ 하고 중얼거렸다.

눈앞에 아름다운 여인.

그건 다름 아닌 리시나스였다.

***

루메른 아카데미 내에서 1학년 담당 교수들이 심각한 얼굴로 눈앞의 마법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속에서 루메른으로 향하던 학생들이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게 보였다.

“아…….”

“저, 저런…….”

교수들 사이에서 안타까움에 찬 탄식이 쏟아졌다.

정신을 잃고 물에 빠진 학생들은 자신의 그림자에 삼켜졌다.

삼켜진 학생들은 병동으로 이동되었다.

교수들 사이에서 교감 리벤은 강력한 환영 마법을 다루는 사람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 마법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 교수들은 처음 리벤이 1학년들을 시험한다고 했을 때 크게 반발했다.

‘말도 안 됩니다!’

‘고학년들이라면 모를까! 1학년이 통과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만큼 리벤의 마법은 교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말도 안 되는 시험으로 지금의 1학년들의 의지를 꺾고 싶은 교수는 한 명도 없었다.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아니네. 말 그대로 리벤 교감이 학생들의 역량을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간단한 테스트라네.’

칼리안의 설득에 1학년 교수들은 개학 첫날부터 리벤에게 학생들을 맡겼다.

그 결과 이거였다.

버티지 못하고 정신을 잃어가는 학생들을 보며 교수들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평소라면 힘차게 담당 학생들을 응원했을 세드젠 조차도 팔짱을 낀 채 무표정한 얼굴로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1반 학생들도 여러 명 보였다.

“엘레강스 하지 못하군.”

얼굴을 찡그리며 중얼거린 세드젠이 할린드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떻게 보나?”

“교감에게도 생각이 있겠지. 우리보다 더 오랫동안 루메른의 교수직을 맡아온 사람이니까.”

할린드와 세드젠은 리벤의 정체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루메른에 있는지도 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군.”

드래곤인 리벤이 1학년들을 직접 지도해 준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은 없겠지만, 리벤은 1학년들을 지도할 의욕이 보이지 않았다.

루메른의 목표는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는 영웅 후보생을 키우는 것.

그렇다고 절대 넘을 수 없는 불가능한 시련에 학생들을 내모는 건 아니다.

리벤은 말 그대로 1학년들을 지도하는 걸 거부하기 위해 이번 시험을 준비한 셈이다.

루메른의 교수들은 자신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한다.

학생들이 곧 세계를 변혁시킬 인재로 성장할 것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드젠은 그러한 철학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교수였다.

그래서 학생들의 가능성을 외면하는 리벤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효율을 중시하는 할린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보다 더 큰 걸 바라보기에 생기는 시각의 차이일지도 모르지.”

할린드가 학생들을 보며 말했고 세드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카일.”

레오의 앞을 가로막은 리시나스가 웃으면서 가로막은 길에서 비켰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자신이 막고 있던 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아가.”

“너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레오가 피식 웃었다.

상대가 리시나스라면 레오와 결코 싸울 리 없다.

두 사람의 만남이야말로 세계를 구하기 위한 첫 발자국.

서로에 대한 그 누구보다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굳건한 신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동료가 자신을 공격할 리 없다는 걸 레오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건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싸워도 상관없나.’

레오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린 소년의 손이 아닌 수많은 전장을 넘나든 상처투성이 어른의 손이었다.

시야 역시 달라져 있었다.

나이트메어는 환영을 보여주는 저주.

결국 실존하지 않은 가짜다.

레오가 가장 상대하기 싫은 상대로 리시나스를 인식했다면, 환영 역시 레오를 레오가 아닌 카일로 인식한다는 소리다.

레오는 회색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리시나스를 지나쳤다.

그런 카일을 올려다보며 리시나스가 빙긋 웃었다.

“힘내.”

그 말과 함께 리시나스가 모습을 감추었다.

풍경이 바뀌고 어둠만이 남게 된 공간.

“힘내…… 라…….”

어느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레오가 씁쓸하게 웃으며 검을 뽑았다.

“힘내야지.”

화르르륵-!

불꽃의 오러가 터지듯 폭발했다.

레오의 눈이 빛났다.

룬어를 조합해 만드는 마법과 다르게 용언마법은 드래곤의 언어인 용언을 조합해서 만드는 마법이다.

다른 종족은 사용은 고사하고 해석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리시나스의 유지를 이어받은 레오는 마법 술식을 어렵지 않게 이해했다.

‘지금 몸 상태로 사용은 불가능하지만.’

해석은 그리 어렵지 않다.

게다가 이 용언 마법은 리시나스가 만든 것.

콰득-!

마법 술식이 뭉쳐 있는 곳을 향해 검을 뻗었다.

빠지직-!

공간 전체에 금이 가더니 이내 어둠이 산산조각이 나며 걷혔다.

번쩍-!

플라이 마법이 해제되어 추락하던 레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철벅-!

오러 스텝을 이용해 물속에 빠지는 걸 피한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주변 학생들이 그림자에 삼켜지는 게 보였다.

‘해를 끼칠 생각은 없나 보군.’

드래곤이 만든 저주 계열의 마법이기에 1학년들 수준으로는 도저히 파훼할 수 없었다.

꾸욱-!

레오가 다리에 힘을 주었다.

콰앙-!

다리에 뭉친 오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레오는 엄청난 속도로 루메른을 향해 달려갔다.

1학년들이 도착할 루메른의 선착장에 먼저 와 서 있던 리벤이 중얼거렸다.

“역시 나이트메어는 너무 심했나?”

의욕 없는 얼굴로 루메리아 호수를 바라보던 리벤이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릴 때였다.

파바바바바밧-!

물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 리벤 앞에 착지했다.

리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레오는 그런 리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도착했는데요.”

살짝 삐딱한 목소리로 말하는 레오를 보며 리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마법을 풀고 나온 거지?”

“그냥 풀고 나왔죠.”

“허.”

레오의 말을 듣고 리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리벤을 보며 레오가 물었다.

“그런데 보통 불가능한 걸 시험이라고 내지는 않지 않나요?”

뼈가 있는 말에 리벤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는 터덜터덜, 선착장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는 오랫동안 루메른의 교감으로 지내왔다. 그러면서 영웅이 된 많은 학생을 보았지.”

리벤이 씁쓸하게 웃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영웅 이상의 이상을 꿈꾸는 학생이 없었어.”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드래곤의 선택을 받은 건 바로 검성 칼리안이다.

그가 현시대에 가장 위대한 영웅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너무 오랫동안 정체된 세계를 보고 의욕을 잃고 있었네. 그래서 너희의 가능성을 보려 하지 않으려 했지.”

리벤이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니 사죄하마.”

드래곤은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만큼 남에게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 사실을 아는 레오는 진심 어린 리벤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너의 꿈은 뭐지?”

리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걸 이루어낸 이 학생의 꿈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실로 오랜만에 흥미가 이는 학생이 아닐 수 없었다.

리벤의 말을 들은 레오가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에레보스의 완전한 소멸이요.”

리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상상도 못 한 대답이다.

감히 에레보스라는 이름을 입에 담는 것조차 힘든 일인데 그러한 에레보스를 소멸시키겠다고 선언하는 1학년이라니?

다른 이였다면 어리석다.

터무니없다 비웃을 목표였지만 리벤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심장이 떨리는 걸 느꼈다.

“학생들에게 실망한 건 오랜 세월 루메른의 교사로서 활동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레오가 리벤의 눈을 직시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알죠?”

“무얼?”

“지혜의 왕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계를 구한 겁니다.”

레오의 말에 리벤이 눈을 부릅떴다.

“수천 번 좌절해도, 수천 번 실망해도. 그게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레오는 항상 선두에 서서 토벌대를 이끌던 리더를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지혜의 왕의 후예라면 어떤 때라도 포기하지 않는 게 맞지 않을까요?”

“자네…… 내 정체를……?”

리벤은 레오가 자신의 정체를 꿰뚫어 봤다는 걸 직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교감님.”

그런 리벤을 보며 인사한 레오가 선착장을 벗어나 루메른의 정문으로 향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리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위대한 지혜의 왕이시여…… 당신의 의지를 저에게 상기시키는 저 소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리벤은 모든 드래곤이 존경해 마지않는 위대한 존재.

리시나스를 떠올리며 아공간에서 학생 명단을 꺼냈다.

그리고 페이지를 넘겼다.

가장 첫 페이지에 레오의 사진이 보였다.

‘과연, 저 아이가 레오 플로브였나.’

첫 페이지를 넘기면 바로 정체를 알 수 있었던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리벤은 자신이 얼마나 나태했는지 깨달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내 어리석음으로 다른 이의 가능성을 외면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저 소년은 대체.’

학생 명부를 닫은 리벤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황금 세대 정도가 아니다.

‘어쩌면 멈춰 있던 세계의 판도가 뒤흔들릴지도 모르겠어.’

오랜 세월 가까이서 많은 영웅을 지켜본 리벤은 직감했다.

레오가 단순히 영웅의 자질을 가진 소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더 위대한 자리에 오를 영웅도 아니다.

리벤의 머릿속으로 한 단어가 떠올랐다.

‘대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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