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자신과 똑같이 생긴 분신을 보며 일리아나는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알비 교수님의 마법인가?’
알비가 마안의 힘으로 요정의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호전적인 성격의 일리아나라도 처음 보는 마법 앞에서는 섣부르게 덤벼들지 못했다.
그렇게 일리아나가 경계하고 있자 일리아나의 분신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비웃었어? 지금 이 분신이 날 비웃었다고!”
발끈한 일리아나가 삿대질했다.
하지만 마력을 일으키는 자신의 분신을 보며 당황하며 마법에 대응할 준비를 했다.
번쩍-!
“헉?”
발동된 마법을 본 일리아나가 깜짝 놀랐다.
분신이 사용한 건 다름 아닌 일리아나의 주특기 마법인 ‘샤이닝 블레이드’ 였다.
쏟아지는 빛의 칼날을 보며 잠시 당황하던 일리아나가 히죽 웃었다.
“거울 흉내에요?”
일리아나는 똑같이 샤이닝 블레이드를 발동시켜 분신의 공격을 상쇄시켰다.
“환영 계열 마법 같은데 저한테는 그런 거 안 통해요!”
자신만만한 얼굴로 소리친 일리아나가 마법을 전개했다.
어느새 결투 구도는 일리아나vs일리아나가 되어 버렸다.
학생들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결투를 바라보았다.
사실 알비vs일리아나의 결투는 전혀 흥미로울 게 없었다.
말 그대로 결과가 뻔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비가 미지의 마법을 이용해 일리아나와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내자 승패를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화려한 빛의 마법이 결투장 위를 수놓았다.
두 사람의 일리아나가 빠르게 이동하며 서로를 향해 마법을 날려댔다.
잠시 후, 마법학과 학생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진짜 일리아나지?”
알비의 마법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단순히 고차원적인 환영 마법이라고 생각했던 걸 비웃기라도 하듯 일리아나와 똑같은 마력량에 똑같은 마법을 사용했다.
진짜 일리아나가 둘이라고 해도 믿길 정도였다.
그런 가운데 칼이 중얼거렸다.
“더 예쁜 쪽이 분신이 아닐까?”
“과연!”
“그럼 저쪽이 진짜네!”
“야! 죽을래! 똑같이 생겼는데 더 예쁘고말고가 어딨어!”
정확하게 가짜를 찾아내는 학우들을 보며 일리아나가 발끈했다.
“바보야! 애들은 신경 쓰지 말고 결투에 집중해!”
“아차!”
일리아나가 화들짝 놀라며 전투에 집중했다.
분신은 점점 더 상대하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나랑 똑같은 마법을 쓰는데 왜 이렇게 차이 나는 거야? 역시 알비 교수님이 만들어낸 분신이라 나보다 강한 건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순간.
분신이 어떤 마법을 발동시켰다.
일리아나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마법을 보며 깜짝 놀랐다.
‘샤이닝 레인?!’
방학 동안 일리아나가 완성 시켰던 고유 마법이다.
그 마법이 자신에게 쏟아지자 일리아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충격에 대비할 때 분신과 마법이 동시에 사라졌다.
승패가 정해지자 힘이 풀린 일리아나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훌륭하군.”
알비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게 극찬이라는 걸 아는 일리아나는 얼굴을 살짝 붉히고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 감사합니다.”
“다음 사람 올라오도록.”
일리아나가 결투장을 내려갔다.
이후에 마법학과생들은 일리아나와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그렇게 학생들의 패배가 반복될 때 가장 먼저 분신을 상대로 승리한 건 다름 아닌 첼시였다.
“대단하네. 우리랑 똑같은 마법을 사용해도 전체적으로 스펙이 높은 느낌이었는데.”
“응? 무슨 소리야? 나랑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던데?”
칼의 말에 첼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첼시를 보며 주변 학생들이 당황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알비의 분신이 자신들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는 와중에 클로에와 아바드는 차례차례 알비의 분신을 쓰러트렸다.
그 모습을 보며 마법학과 학생들이 혀를 내둘렀다.
“첼시보다 쉽게 이기네.”
“기사학과에서 셀리아, 시아, 듀란을 괴수 삼인방이라고 부르던데 우리도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크윽!”
그러는 와중에 1학기 중간고사까지 마법학과 3위를 차지하고 있던 에미오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다.
‘저것들이랑 내 차이는 대체 뭐야!’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학생이 결투를 끝냈다.
마지막 남은 학생, 레오가 학생들의 시선을 받으며 결투장 위로 올라갔다.
“반장은 어떠려나?”
일리아나의 중얼거림에 첼시가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오 오빠야 당연히 이기겠지! 개학식 때 교감님의 마법을 통과한 건 레오 오빠뿐이잖아?”
“그렇긴 해.”
첼시와 일리아나가 떠들고 있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에미오가 코웃음을 쳤다.
“레오 플로브의 진짜 실력은 올 클래스일 때 발휘 되는 거 몰라? 대부분의 마법학과 학생이 탈락한 이 결투에서 레오 플로브가 순수하게 마법 전투만으로 알비 교수님의 분신을 이길 수 있을 리 없지.”
첼시가 인상을 찡그렸다.
“레오 오빠는 마법 결투 능력도 엄청 대단하거든? 그리고 넌 1학기 때 비행 마법 대결에서 레오 오빠에게 처참하게 졌잖아.”
“그때는 비행 마법을 대결하는 시험이었어. 무력 충돌이 있긴 했지만, 녀석은 오러까지 사용했지.”
에미오가 단언하듯 말했다.
“난 순수한 마법 대결에서 녀석에게 지지 않아.”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는 에미오를 보며 첼시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수한 마법사도 아닌 레오 오빠에게 순수 마법 대결로 이기는 게 뭐가 자랑이라고…… 그리고 순수 마법 대결에서도 레오 오빠가 이길 것 같은데.’
학생들이 저마다 승패를 예측하는 가운데 렌이 자세를 바로잡고 레오에게 집중했다.
‘방학 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번 볼까?’
그 모습을 본 안나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방학 동안 레오 학생에 대한 렌 교수님의 집착이 더 심해졌어.’
방학 동안 렌과 안나는 학교에 머물면서 레오를 마법 학과로 전향시킬 수 있는 수업을 준비했다.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렌에게 붙잡힌 안나였지만 그녀는 새삼 렌이라는 인간이 얼마나 천재인지 알게 되었다.
방학 동안 렌이 준비한 2학기 수업은 마법 전투 수업이었다.
물론 그건 단순한 마법 전투 수업이 아니었다.
‘마법으로 기사와 소환사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수업.’
말 그대로 마법의 우수함을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한 수업으로 레오를 두고 마법학과가 다른 학과에게 하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인 내용이었다.
처음 렌의 계획을 들었을 때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졌다.
어떻게든 설득하려 했지만 렌은 듣지 않았다.
‘레오 학생의 올 클래스 재능을 폄하할 생각은 없네! 아니! 오히려 난 1학기 동안 레오 학생의 재능을 완전히 오판하고 있었지!’
마법에 관해서는 절대 타협이 없는 렌이 다른 재능을 인정하고 한발 물러서게 만든 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레오 학생에게 마법이 가장 어울린다는 생각은 변함없네! 아니! 1학기가 끝나고 더욱 확신하게 되었지! 마법만이 레오 플로브라는 학생을 완전하게 만들 수 있네! 그러니 레오 학생의 주력은 무조건 마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이론파 교수인 렌이 실전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 전투학을 준비할 때만 해도 안나는 과연 수업으로 레오를 혹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론이 주력이라면 실전은 역시나 살짝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렌의 준비과정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마법사인 나도 혹할 정도니까. 진짜 렌 교수님도 천재는 천재야.’
방학 동안 렌의 철저한 수업 준비는 계속되었다.
문제는 방학이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 생겨났다.
안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
그날도 어김없이 렌의 교수실로 향하기 전 학과 사무실에 들른 안나는 1학년 마법학과 담당 교수인 렌에게 온 편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 온 거지?”
의아한 얼굴로 편지를 든 안나가 발신인을 확인했다.
“세이룬 아카데미?”
안나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렌의 교수실로 향했다.
“어서오게, 안나 부교수. 오늘도 즐겁게 수업 준비를…….”
“고향에도 못 돌아가고 하는 수업 준비가 즐거울 것 같아요?”
“후후. 솔직하지 못하군. 자네가 내 수업 준비를 돕는 걸 즐거워한다는 것쯤은 이미 파악하고 있네. 안나 부교수. 자네도 어쩔 수 없는 마법사란 소리지.”
으스대는 렌을 보며 안나는 부정하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고 편지를 건넸다.
“편지가 왔어요.”
“어디서 보낸 편지인가?”
“세이룬 아카데미에서요.”
“세이룬?”
라이벌 학교라 할 수 있는 세이룬에서 편지가 오자 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편지를 읽고 후하하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이 인간이 또 왜 이러지?’
“역시 레오 학생은 마법사에 어울리는 인간이야! 이걸 보게! 안나 부교수! 세이룬에서 레오 학생의 마법 재능을 인정하고 칭찬하는 글일세! 미래에 대마법사가 될 학생을 잘 가르쳐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군! 후하하하하! 역시 우리 루메른의 라이벌다워! 재능을 알아보는 눈이 확실해!”
“뭐, 레오 학생은 성운의 시조의 마법을 해석했으니까요.”
아직 정식 발표는 나지 않고 있었지만, 레오가 복원해준 루나의 마법은 엘프 마법계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안나는 감탄하며 렌이 건네준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렌이 미처 보지 못한 뒷 내용을 확인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후후후! 뒷 내용이 궁금해지는군. 안나 부교수. 편지를 주게.”
“교, 교수님. 이건 읽지 않는 게…… 딱히 중요한 내용도 아니고…… 그, 그러니까! 수업 준비! 수업 준비를 하죠! 네?”
안나가 어떻게든 렌에게 편지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무슨 내용이길래 그렇게 당황하는 건가?”
“아, 안 돼요! 교수님! 보시면 안 돼요!”
안나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편지는 기어이 렌의 손에 들어갔고 그 모습을 본 안나가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로 편지를 읽어가던 렌의 얼굴에서 표정이 점점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읽은 렌이 ‘후후후’ 웃음을 터트렸다.
화르르르륵-!
손아귀에 있던 편지가 불타 사라졌다.
“이 귀쟁이들이 미쳤나.”
평소 온화한 것으로 유명한 렌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험악한 말이 나왔다.
그는 어느 때나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 편지 내용은 그를 격노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렌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안나가 오들오들 떨었다.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레오 플로브를 교환학생으로 세이룬에 초빙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기간이다.
최소 한 학기.
즉, 1학년 중 절반을 세이룬에서 공부시키라는 얘기였다.
한 학기 전체를 다른 학교에서 공부하게 되면 수업 진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거기에 더해 편지에는 ‘레오 플로브 학생은 별의 마법에 대한 뛰어난 이해 능력을 가지고 있음으로 세이룬에서 공부하는 것만이 레오 학생의 마법 능력을 제대로 끌어낼 수 있다’ 라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그러니까 뭐야? 전학이라도 보내라 이 말인가? 후후후. 재미있군. 재미있어.”
“교, 교수님. 진정하세요. 진정.”
안나가 어떻게든 렌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노력했다.
렌은 화날 일이 있어도 그걸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한 번 뚜껑이 열리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진다.
자신이 찾아낸 최고의 보물 같은 학생을 내놓으라는 무례한 요구는 그의 분노를 극에 달하게 하기 충분했다.
“걱정 말게, 안나 부교수. 나는 지극히 냉정하니 말일세. 후후후.”
하지만 웬일인지 렌은 차분했다.
“이것 역시 다 레오 학생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생긴 일 아닌가? 후후후, 세이룬도 보는 눈이 있어.”
빙긋 웃던 렌이 싸늘하게 말했다.
“수업 내용은 변경하겠네. 지금은 내부의 적이 중요한 게 아니야. 이번 루세전에서 세이룬 놈들을 완전히 개박살 내버리겠네.”
이마에 힘줄이 솟은 렌이 살벌한 미소를 지었다.
이건 단순히 애제자를 빼앗기는 문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세이룬이 루메른을 향해 도전장을 내민 것이나 마찬가지다.
루메른의 졸업생으로 자부심이 강한 렌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응해야 하지 않겠는가?
“후후후. 세이룬 마법 선생들의 면상을 바닥에 갈린 슬라임처럼 만들어 주겠어.”
***
방학 때 일을 떠올리며 안나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후에 아조니아에서도 레오 학생을 전학 보내라는 요청이 있었을 때는 정말로 교수실을 다 부숴버리셨지.’
안나가 방학 때 일을 떠올리는 사이.
레오는 알비와 대치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다른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알비의 마안이 빛남과 동시에 미러 포스가 발동되었다.
‘미러 포스. 적과 똑같은 분신을 만들어내는 마법.’
환영 계열 마법 중 최강이라 평가받는 마법이다.
물론 대상이 시전자의 힘을 아득히 뛰어넘는 존재라면 발동되지 않는 마법이다.
‘하지만 약한 상대에게는 완전히 똑같은 자신을 만들어내지. 마치 거울처럼.’
그리고 미러 포스는 복제한 대상의 힘을 한계치까지 끌어낸다.
그래서 대부분의 1학년이 자신의 분신에게 패배한 것이다.
분신이 ‘진짜’ 보다 능력 활용이 좋기 때문이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낮은 상대에게는 거의 무적에 가까운 힘을 발휘하는 마법이다.
완성된 레오의 분신이 마력을 일으켰다.
번쩍-!
허공에 수놓은 마법 술식을 본 학생들이 경악했다.
“저건…… 별의 마법?”
“잠깐! 레오 녀석 별의 마법을 저렇게 능숙하게 쓸 수 있단 말이야?”
학생들의 경악을 뒤로하고 별의 마법이 레오에게 쏟아졌다.
레오는 자신을 덮치는 마법을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지잉-!
레오의 눈에 마력이 깃들었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정-!
마법 술식이 파괴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레오의 코앞에 다다른 마법이 순식간에 해제된 것이다.
“어떻게 막아낸 거지?”
“마법을 쓴 낌새는 없었는데.”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레오 녀석, 어떻게 한 거야?”
칼이 당황해하자 첼시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법을 디스펠 한 거야.”
“뭐?”
칼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바드와 클로에 역시 놀란 눈으로 레오를 보았다.
‘알비 선배님의 미러 포스는 대상을 복제하는 마법. 복제가 쓰는 마법은 결국 자신의 마법이야. 그러니 저렇게 간단하게 디스펠이 가능하지.’
실력 있는 마법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기술이다.
문제는 그 실력 있는 마법사의 기준이 어디까지나 교수 레벨, 즉 렌이나 알비 급의 마법사에게 해당한다.
그걸 고작 1학년인 레오가 해내고 있다.
‘아아…… 세이룬에서 레오학생을 노리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할 수밖에. 저토록 뛰어난대 누구나 침 흘릴만 하지!’
렌의 몸이 희열로 떨렸다.
‘레오 학생은 루메른 마법학과 역사상 최고의 마법사로 이름을 남길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겠어! 세이룬이 됐든 아조니아가 됐든 절대 빼앗기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