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38화 (138/483)

138.

“제라. 지금 나에게 소리를 친 거야? 제정신이야?”

히르키안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에 하딘이 빙의한 것으로 생각되는 왜소한 인상의 남학생은 싸늘한 표정을 받아치듯 말했다.

“너야말로 제정신인가? 너 따위가 대체 뭐길래 루나님을 모욕하는 거지?”

“하, 어이가 없네. 별 시답지 않은 놈이 나한테 화를 내? 그것도 그 신분도 미천한 계집을 모욕해서? 너 미쳤냐?”

주변 학생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녀석 왜 저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베스론 가문은 바르하르룬을 좌지우지하는 거대 가문.

그런 가문의 후계자인 만큼 평소의 제라는 히르키안 앞에서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숨죽이고 사는 인물이었다.

그런 제라가 뜬금없이 분노하여 히르키안에게 고함을 치니 학생들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르키안은 반에서 손꼽히는 실력자, 반면 제라는 가장 성적이 안 좋은 학생이기도 했다.

“어이가 없군. 당장 네놈을 손봐주고 싶지만, 교칙상 선생의 허락 없이 학생 간의 결투를 할 수 없지. 지금 수업의 선생님이 아킨트 선생님인 걸 감사히 여겨…….”

“결투를 허락하지.”

“예?”

레오의 말에 히르키안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쪽 역시 너와 결투를 하고 싶어 하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허락을 안 할 이유도 없지.”

“오늘은 아킨트 선생님답지 않으시군요. 순순히 결투를 허락하시다니 말입니다.”

만족스럽게 웃은 히르키안은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연무장 중앙으로 올라갔다.

“내 앞에 서라, 제라. 네놈에게 격이란 걸 보여주마.”

그 말에 제라가 히르키안 앞에 섰다.

“쟤가 진짜 오늘 죽으려고 작정을 했네.”

“히르키안! 그 자식 이 기회에 퇴학시켜 버려!”

히르키안에게 붙은 학생들이 소리치며 킬킬거렸다.

반 최고의 실력자와 반 꼴찌의 결투.

누가 봐도 결과는 뻔했다.

“어떻게 처리해줄까?”

히르키안이 싸늘하게 웃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고오오오오오-!

다른 이의 눈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연녹색의 마력이 일렁였다.

그걸 본 제라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막강한 마력.’

하지만 레오는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마력 낭비로군.’

제라…… 정확하게는 하딘에게 히르키안은 미지의 상대였지만 레오가 보기에는 크게 위협적인 상대로 보이지 않았다.

미래에는 악명을 떨친 히르키안이지만 지금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어디 세이룬 3학년 대표의 실력을 좀 볼까?’

세이룬 3학년 학년 대표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하딘이다.

‘그런 실력자가 단순히 온실 속에서 자라온 화초를 못 이길리 없지.’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은 이 시대의 영웅들 보다 뛰어난 실력자들이 많다.

괜히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을 모두 각 분야의 천재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이때는 재앙의 시대 이전이야.’

고귀하고 명예를 중시했던 하이 엘프들이 타락한 이유도 너무 오랫동안 평화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체는 변질을 불러오니까.’

재앙의 시대 이후 영웅의 시대 역시 평화의 시대라 불리고 있지만 완벽한 평화는 아니었다.

타르타로스는 여전히 건재했고 그들과의 전쟁은 5000년 동안 지속 되고 있다.

게다가 언제 다시 재앙이 부활할지 모른다는 공포까지.

영웅의 시대와 비교한다면 신의 시대는 아무런 위협이 없는 태평성대와도 같은 시대였다.

‘있어 봤자 종족 간, 나라 간의 전쟁이 전부지.’

그것 역시 엄청난 대사건이지만 재앙을 경험한 레오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레오가 생각에 잠긴 사이 히르키안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 주문을 들은 제라, 하딘의 눈이 꿈틀거렸다.

‘처음 듣는 주문인데? 저 거대한 마력으로 대체 뭘 하려는 거지?’

하딘은 레오의 예상대로 지금 시간대에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랬기에 처음 듣는 미지의 주문에 경계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딘이 긴장할 때였다.

휘리리릭-!

주문이 완성되자 강력한 바람이 불었다.

그걸 본 하딘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콰가가가가가각-!

강력한 바람을 일으키는 바람 마법을 본 하딘이 심호흡을 하고 오러를 일으켰다.

우웅-!

그걸 본 주변 학생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오, 오러?”

“제라 녀석! 대체 언제 오러를 배운 거야?!”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그걸 본 레오가 턱을 쓰다듬었다.

‘제라라는 녀석은 원래 오러는 쓰지 않는 모양이군. 하긴. 복장만 본다면 마법사네.’

세이룬 학생들은 루나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덕분에 별의 마법은 필수적으로 익혀야 했다.

‘아니. 모든 엘프가 별의 마법을 익히려고 하지.’

별의 마법은 엘프들에게 있어 긍지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엘프가 마법의 종족으로 불리는 것이다.

하지만 엘프가 마법의 종족으로 불린 것은 ‘성운의 시조’ 루나 이후의 일.

이때의 엘프들에게는 마법이 필수가 아니었다.

당연히 마법의 종족으로 불리지도 않았다.

‘애초에 듀얼 클래스가 몹시 귀했지.’

콰가가가각-!

하딘의 검에서 폭풍이 뿜어져 나왔다.

쿠가가가가각!

“하압!”

하딘의 폭풍의 검격이 히르키안의 마법을 갈라 버렸다.

그걸 본 히르키안은 물론이고 주변 학생들도 눈을 부릅떴다.

“대, 대체!”

경악한 표정을 짓는 히르키안을 보며 하딘이 미간을 찌푸렸다.

“마력은 거대하지만, 별거 없군.”

그 말에 히르키안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해졌다.

“뭐, 뭐라고!”

“이런 조잡한 실력으로 감히 시조님을 비웃었다는 건가? 네가 그러고도 엘프라고 할 수 있나? 어이가 없군.”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루나 그 계집이 시조? 너 오늘 정말 뭐 잘못 먹었냐?”

“아무래도 네놈에게는 벌이 필요하겠군.”

하딘이 검 끝으로 히르키안을 가리켰다.

“각오해라.”

“자, 잠…… 커억!”

하딘의 일방적인 구타가 시작 되었다.

종족의 자긍심이라고 할 수 있는 루나를 모욕한 상대에게 하딘은 차가운 분노를 토해냈다.

그렇게 하딘이 히르키안을 거의 혼수상태로 만들 때였다.

화악-!

레오가 빠르게 두 사람 사이에 개입했다.

그리고 손으로 하딘의 팔목을 잡았다.

텁-!

그 말에 하딘의 싸늘한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말리지 마십시오.”

“나도 더 두들겨 패게 내버려 두고 싶은데 말이죠.”

레오가 하딘에게 들릴 정도만 작게 말했다.

“이대로 더 팼다간 영웅의 세계 공략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하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레오 플로브인가?”

“예. 일단 제가 모은 정보에 대해 설명드릴 테니 지금은 제 이야기에 따라 주세요.”

그 말에 하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딘의 팔목을 놓은 레오가 말했다.

“결투를 하라고 했지만 손속이 과하구나, 제라.”

“죄송합니다.”

분노한 레오의 목소리에 제라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걸 본 주변 학생들이 생각했다.

‘저 녀석은 이제 퇴학이다.’

정당한 결투라지만 베스론 가문의 사람을 저 지경으로 만들다니.

누가 봐도 퇴학은 피할 수 없었다.

“수업은 종료다. 너희들은 히르키안을 병동으로 데려가라.”

“예, 옙.”

“제라. 넌 나를 따라와라.”

레오는 권위적인 선생을 연기하며 하딘에게 명령하듯 말했고 하딘은 그러한 레오의 말을 따랐다.

수업이 해산되었다.

레오는 방금 전 자신을 수업에 데려왔던 조교로 보이는 엘프를 향해 말했다.

“거기.”

“옙!”

“내 방으로 가자.”

“방이라면…… 아킨드 교수님 개인 연구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개인 연구실? 그런 게 있으면 좋지.’

레오는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남자 조교가 레오의 곁에 섰다.

“네가 앞장서라?”

“네?”

“난 제라 학생을 훈계하겠다.”

“아, 알겠습니다.”

조금 이상한 대화였지만 조교는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다.

지금 제라의 행동은 확실히 선생들에게 한 소리를 들어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조교는 뒤에서 들리는 날 선 레오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떨었다.

그러는 사이 다른 학생들이 히르키안을 부축했다.

그 사이에서 한 여학생이 빤히 하딘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여학생이 혓바닥을 날름거렸다.

‘아무래도 쥐새끼가 들어온 모양이네.’

여학생은 비웃음을 날리며 학생들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조교의 안내를 받아 아킨트의 연구실로 들어온 레오와 하딘은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되었다.

연구실에 들어온 두 사람은 서로 눈짓하더니 연구실 내부를 철저하게 탐색했다.

편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대화가 새어나갈 만한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서로가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런 가운데 하딘이 살기를 드러냈다.

“이해할 수 없군! 대체 뭐하는 놈이길래 감히 루나님을 그따위 식으로 모욕할 수 있지! 엘프의 수치 같은 놈!”

냉정한 성격의 하딘답지않게 매우 감정적인 모습이었다.

성운의 시조 루나를 모욕했다.

그 하나 자체만으로 엄청난 분노를 느낄만큼 엘프에게 있어 루나는 특별한 존재였다.

하물며 그는 지금이 정확하게 어느 시대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 하딘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이해하세요. 시대가 시대니까요.”

“그게 무슨 뜻이지?”

“잘 들으세요. 지금 우리가 있는 세계는 재앙의 시대 이전의 세계입니다.”

레오의 말에 순간 하딘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지? 재앙의 시대 이전 시대라니? 재앙의 시대 이전의 영웅들에 관한 기록은 히어로 레코드에 남아 있지 않아.”

카일, 리시나스, 루나, 드웨노, 아르온.

다섯 사람이 시작의 영웅들이라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 아니다.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된 최초의 영웅들이기에 시작의 영웅들이라 불린 것이다.

그런데 재앙의 시대 이전이라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하딘을 보며 레오가 진지하게 말했다.

“네. 하지만 히어로 레코드에 기록된 영웅 중에 재앙의 시대 이전부터 살았던 영웅들은 있잖아요?”

그 말을 듣고 하딘의 얼굴이 굳었다.

“잠깐.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이 세계가 대영웅의 세계라는 건가?”

“예.”

“설마…….”

“네. 여긴 루나의 세계입니다.”

하딘의 몸이 떨렸다.

“시, 시조님의 세계라는 증거는.”

“조금 전 직접 만났으니까요.”

“뭣? 시조님을 직접 만나 뵈었다고!”

하딘이 눈을 부릅뜨고 레오에게 달려들었다.

“시조님은 어떻게 생겼지! 문헌에 나오는 것처럼 한 떨기 꽃 같은 모습인가? 역시나 몹시 자애로우시겠지! 그리고 별조차 고개 숙일 정도로 아름다운 오오라를 흩뿌리시던가? 아아! 내가 루나님을 직접 만나 뵐 수 있는 날이 오다니! 이 무슨 영광이란 말인가!”

냉정하던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진 하딘은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는 생각했다.

‘실제 모습 보면 오열하겠네.’

물론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 아니라 환상이 무참히 박살 나서 나오는 눈물일 게 분명했다.

“아름답다기보다는 귀여웠죠?”

“뭐라?”

“제가 본 건 어린시절의 루나였거든요.”

“……!”

하딘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 어릴 때란 말인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어리단 거지?”

“루니아랑 비슷하거나 더 어린 정도.”

“소녀 시절의 시조님의 모습을 영접할 수 있다는 건가……!”

희열에 몸을 떠는 하딘의 모습을 본 레오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엘프, 변태였나?’

루나가 본다면 징그럽다고 걷어찰지도 모를 모습이다.

레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쩐지 그래서 대화가 어긋난거였군.”

하딘은 조금 전 히르키안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런데 그놈은 대체 뭐길래 어린 시절의 루나님을 모욕하는 거지?”

“이유가 있겠죠.”

레오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바르하르룬에 다니는 엘프들은 모두 좋은 가문의 엘프들이다.

하지만 레오가 알기로 루나는 고아 출신이었다.

그런데도 순수하게 재능만으로 하이 엘프가 될 수 있는 바르하르룬에 들어왔다.

그런 만큼 그 능력은 학창시절부터 다른 엘프들을 압도했다.

‘그래서 다른 학생들에게 찍힌 거지.’

“어쨌든 지금 제가 알고 있는 정보는 그 정도예요. 첫 번째. 이곳은 루나의 세계라는 것. 두 번째. 재앙의 시대 이전이라 아직 타르타로스가 없다는 것.”

그 말을 듣고 하딘이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이 세계의 공략 목표는 대체 무엇이지? 시조님이 세운 위업인 만큼 보통 위업은 아닐 텐데?”

그 말을 듣고 레오가 고민에 빠졌다.

‘루나의 위업이라…….’

“너무 많아서 예상이 안 되네요.”

“하긴 성운의 시조님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위업과도 같은 분이니.”

음음-! 고개를 끄덕이던 하딘이 말했다.

“일단 천천히 공략 목표에 관해서는 천천히 알아낼 수밖에 없겠군. 일단 루니아와 엘레나와의 합류도 중요해. 그리고 재앙의 시대라면…….”

하딘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별의 마법은 사용을 자제하는 게 좋겠군. 이때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 체계인 만큼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거야.”

5000년의 세월의 벽이 있는 만큼 이 시대의 마법과 지금 시대의 마법은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세대와 세대가 이어져 온 마법이다.

아무리 변했다고 해도 유사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금 특별한 마법이라고 얼버무릴 수 있지만, 별의 마법은 아니다.

‘루나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만들어낸 마법 체계인 만큼 알려지면 난리가 날 게 분명해.’

지금 시대의 엘프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지만, 당시에 루나가 별의 마법을 사용했을 때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

하딘의 말대로 별의 마법을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어떤 후폭풍이 있을지 알 수 없다.

확실히 세이룬의 던전 공략자인 만큼 이런 부분에 관해서는 노련함이 엿보였다.

‘잠깐. 별의 마법?’

별의 마법에 대해 고민하던 레오가 무언가를 떠올렸다.

‘루나가 별의 마법을 연구한 건 학생시절부터라고 했어.’

무언가 실마리가 잡힐 것만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똑- 똑-

누군가 연구실에 노크를 했다.

레오가 문을 열었다.

그곳에는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사들이 서 있었다.

“아킨트 교수님. 교장님의 호출이 있습니다.”

“교장님이 왜 날 보자고 하시는 거지?”

“조금 전 수업에 있었던 일 때문에 부르십니다.”

그렇게 말한 엘프 기사들은 연구실 안에 있는 하딘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바르하르룬 상부에서는 제라 학생을 구금하라는 명령도 떨어졌습니다.”

그 말에 레오가 힐끗, 하딘을 보았다.

하딘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일단 따르겠다’ 는 듯 눈짓을 보냈다.

“데려가라.”

하딘은 기사들에게 구금당해 끌려갔다.

‘여러모로 꼬이네.’

레오가 혀를 차며 기사들을 따라 교장을 만나러 갔다.

‘바르하르룬의 교장이 누구더라?’

레오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카일로서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교정을 빠져나온 레오는 기사들의 안내에 따라 바르하르룬 외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떤 탑 앞에 선 레오가 멈칫했다.

레오는 카일 시절에도 바르하르룬에 온 적이 없다.

하지만 이 탑의 건축 양식은 익숙한 형상이다.

마치 하늘을 향하는 듯한 높은 탑.

위대한 존재들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건축 양식.

‘신의 탑.’

“들어가시지요.”

기사들은 탑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듯 입구에 대기했다.

레오가 탑 입구로 다가가자 스르륵- 문이 열렸다.

쿠웅-!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레오는 탑 내부를 살폈다.

벽에는 다양한 엘프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리고 한가운데에는 어떠한 지팡이가 전시되어 있었다.

레오는 지팡이로 다가갔다.

매끄러운 형태의 나무줄기 형상의 지팡이.

끝에는 거대한 잎사귀 형태의 연푸른색 보석이 매달려 있었다.

‘폴리움.’

루나의 상징.

아니, 재앙의 시대 이전 엘프의 상징과도 같은 지팡이.

그리고 루나가 목숨을 잃을 때 함께 바스러졌던 태초의 세계수로 만든 엘프들의 보물.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강대한 마력을 품은 마도 지팡이였다.

레오가 앞에 선 순간.

우웅-

마도 지팡이 순간 공명을 일으켰다.

그에 레오가 놀랄 때였다.

“신기하군.”

위에서 들린 목소리에 레오가 고개를 들었다.

“오랫 동안 엘프왕들 조차 외면해온 폴리움이 너에게 반응했구나.”

자애로운 목소리로 레오를 바라보는 그의 눈을 본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남자의 눈은 인간의 것과 달랐다.

고리 형태의 동공.

모든 걸 꿰뚫어 보는 지혜로운 눈.

‘그렇지…… 지금은 재앙의 시대 이전이지.’

몇 번이고 만났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초월자의 눈을 보며 레오는 납득 했다.

‘신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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