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42화 (142/483)

142.

엘레나는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엘프 소녀에게 다가갔다.

배를 걷어차인 노예소녀. 메린의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엘레나가 마력을 일으켰다.

우웅-!

부드러운 빛과 함께 메린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에, 엔. 너 마법을 쓸 수 있었어?”

메린은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온 친구가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금의 난 엔이 아니에요, 메린.”

“뭐?”

당황하는 메린을 보며 엘레나가 활짝 웃었다.

“네 친구의 몸을 빌려서 나쁜 사람들을 처단하러 왔거든요.”

자신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는 엘레나를 보며 메린은 당황했다.

친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세상을 알기에는 지나치게 어린 소녀는 엘레나의 말에 믿음이 갔다.

“처, 천사님인가요.”

“어머, 착하기도 해라.”

엘레나가 활짝 웃으며 메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철퍽-!

그때 질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엘레나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메린. 이제 내가 눈을 뜨라고 할 때까지 눈을 감고 있는 거예요, 알았죠?”

“네, 넵.”

메린이 눈을 꼭 감았다.

몸을 일으킨 엘레나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상체가 날아간 상태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는 사르만을 보며 말했다.

“그대로 누워 있지 그러셨어요? 그쪽이 덜 아플 텐데.”

“이 빌어먹을 계집이!”

반쯤 날아간 얼굴이 재생되면서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

방금 전의 깔끔한 외모와는 다른 흉측한 모습.

보통 사람이라면 비명을 지르거나 헛구역질을 했을지도 모를 모습이었지만 엘레나는 덤덤했다.

“말을 함부로 하시네요.”

엘레나가 빙긋 웃었다.

“곱게 죽기 싫으신가 봐요?”

엘레나의 눈이 진한 분홍빛 안광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걸 본 사르만이 흠칫했다.

엘레나의 눈에서 뿜어져 분홍빛은 점점 짙어지더니 이내 붉은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걸 본 하딘이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또…… 강해진 건가?’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하딘은 전형적인 세이룬의 학생이다.

세이룬의 학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선택받은 엘프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엘프야말로 최고라는 종족주의적 사고방식.

입학부터 세이룬의 상급 1반이 되어 학년 대표가 되었을 때는 자신이 그 엘프 중에서도 선택받은 사람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영웅을 꿈꿨지.’

세이룬의 학생이라면.

아니, 영웅 사관학교의 학생이라면 응당 목표로 해야 할 지향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하딘의 목표는 영웅이었다.

그리고 루메른과 세이룬의 학교 대항전에서 같은 1학년 소녀를 만났다.

엘프들은 종족의 특성상 모두 아름답다.

그러한 엘프들조차도 넋을 잃고 바라볼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가졌던 소녀.

학교의 자존심을 건 대결에서 하딘은 철저하게 패배했다.

‘아무것도 해보지도 못했지. 말 그대로 격이 달랐으니까.’

그건 하딘이 일평생 살면서 처음 경험한 ‘격’ 이었다.

그때 이후 하딘의 목표는 엘레나로 바뀌었다.

세이룬에 있는 뛰어난 선배들도.

그렇다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영웅도 아닌 자신과 같은 1학년의 소녀를 뒤좇게 되었다.

‘결코 동경 같은 감정은 아니었어.’

하딘은 엘레나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녀가 어딘지 모르게 뒤틀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 속에 숨겨진 삐뚤어짐과 잔혹성.

결코 동경의 대상으로 삼을만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하딘은 엘레나를 목표로 하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럴수록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결코 같은 선상에 설 수 없다는 걸.’

영웅 사관학교끼리는 학과대항전 이외에도 마주칠 일이 많다.

특히나 같은 학년이면 더더욱 활동 동선이 겹친다.

쫓아가도 쫓아가도.

만날 때마다 더욱 벌어진 차이가 보였다.

그 사실에 절망조차 들지 않았다.

그저 헛웃음이 터져 나올 뿐.

그만큼 다르게 태어났다.

목표로 하고 있기에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천재라고 선망받고 칭송받는 눈앞의 소녀는 단순히 천재라고 부를 수 없다.

말 그대로 그렇게 태어났다.

‘영웅이 되기 위해 태어난 선택 받은 사람.’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하딘은 포기하지 않았다.

“네, 네년은……!”

“그러니까.”

어느새 핏빛으로 변한 눈동자에서는 숨 막힐 정도로 지독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소름 끼치는 살기와 다르게 엘레나의 얼굴은 너무도 평온했다.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엘레나가 검지로 입가를 가렸다.

“입조심 하라니까요.”

번쩍-! 콰가가가가각-!

허공에 마법진이 생성되더니 빛의 사슬이 쏟아져 나왔다.

천 년 전.

철혈의 마법사라는 별명을 가졌던 엘프 영웅, 티아르의 상징과도 같은 마법.

아이젠 언블루트.

그 마법의 영웅마법 버전이다.

상대의 뼈와 살을 분쇄하는 이 마법은 엘프 영웅이 남긴 마법임에도 엘프들에게 있어서는 이단으로 취급되는 마법이었다.

티아르는 분명 이 마법으로 영웅의 자리에 올랐지만, 마법은 너무 잔인했다.

당시에도 지금에도 시조가 만든 별의 마법을 더렵혔다며 규탄을 받고 있는 영웅이다.

당연히 엘프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마법을 익히는 게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위력만큼은 확실하다.

‘철저하게 타르타로스를 사냥하기 위한 마법.’

엘레나의 마법은 잔인하게 사르만을 유린했다.

철퍽-!

피와 살점이 된 사르만을 보며 엘레나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소름 끼치는 피와 살의 축제를 만들었음에도 그 모습은 너무도 천진난만했다.

“아직도 살아 있나요? 재미있는 장난감이네요. 아무래도 저주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죠? 어디 보자…… [무효] 저주로군요.”

순식간에 사르만의 능력을 파악한 엘레나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것 말고는 볼 게 없네요.”

엘레나의 얼굴에 흥미가 사라졌다.

여왕에게 흥미가 사라진 적은 장난감으로서의 가치도 없다.

그렇다면 그 끝은 하나뿐.

화르르륵-!

엘레나의 손끝에 진홍색 화염이 생성되었다.

얼굴을 회복하던 사르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래도 당신과의 만남은 흥미로웠어요.”

방긋, 어여쁜 미소를 지은 엘레나가 사르만을 불태워버렸다.

“어, 어떻게.”

얼굴만 남게 된 사르만은 공포에 찬 눈으로 엘레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런 사르만을 내려다보며 엘레나가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머리카락 끝을 살살 꼬며 말했다.

“날 이기고 싶다면 군단장의 심복 정도는 데려오세요. 당신같이 하찮은 마족은 내 상대가 안 되니까. 그럼 잘 가요.”

빙긋 웃은 엘레나가 발로 사르만의 머리를 짓밟았다.

그러자 남은 머리 조차 불타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몸을 돌린 엘레나는 조금 전 잔혹한 모습을 보여줬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경쾌한 걸음으로 하딘 앞에 섰다.

그리고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당신은 재미있어요, 하딘.”

“뭐가 말이지.”

엘레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파지직-!

하딘을 구속하고 있던 마도구가 간단하게 파괴되었다.

“내 본 모습을 아는 사람들은 둘 중 하나거든요. 두려워하거나, 경멸하거나.”

엘레나가 양손을 뒤로 빼고 새침하게 깍지를 꼈다.

“그런데 당신은 처음 만났을 때와 같아요.”

핑그르- 뒤돌아선 엘레나가 가벼운 걸음걸이로 엔에게 다가갔다.

“날 목표로 삼고 있어요. 못 따라잡는 걸 알면서도.”

“어리석다고 생각하나?”

“아니요. 그게 당신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기도 하고요.”

엘레나가 빙긋 웃었다.

“분명 당신은 멋진 영웅이 될 거예요.”

어려서부터 많은 영웅을 보아온 엘레나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런 엘레나를 보며 하딘이 물었다.

“너는 아직도 영웅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나?”

그 물음에 엘레나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 끝을 살살 꼬았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나도 영웅을 동경해요.”

그 말에 거짓은 없다.

“하지만 성격이 못돼먹어서 말이죠. 아마 신들께서는 날 영웅으로 인정 안 하지 않을까요?”

엘레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결정적으로…… 난 영웅이 별로 되고 싶지는 않거든요.”

타인을 이끄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사람을 이끄는 자가 영웅인 건 아니다.

‘누군가를 위해 희생도 할 줄 알아야지.’

엘레나는 영웅을 동경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싫어했다.

아니, 증오했다.

‘내 소중한 걸 뺏어갔으니까.’

그렇기에 영웅은 동경해도 그들의 삶마저 동경할 수는 없었다.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죠. 아, 그리고 이 애도 데려가요.”

엘레나가 엔을 가리켰다.

“왜지?”

“여기 내버려 두면 분명 큰일을 당할걸요? 당신도 눈치챘잖아요. 지금 시대에는 당신이 알고 있는 고귀한 엘프들이 없다는 걸요.”

쿡쿡- 놀리듯 말하는 엘레나를 보며 하딘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알겠다.”

“그런데 어쩌다가 감옥에 갇혔어요? 뭐, 뻔하죠. 또 흥분해서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죠?”

“할 말이 없군.”

“순순히 인정하다니. 재미없어라.”

툴툴거린 엘레나가 말했다.

“어쨌든 하딘. 당신도 지금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고 있죠?”

“그래.”

엘레나는 엔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엔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소녀를 보며 엘레나는 화사하게 웃었다.

마법에 의해 지금의 대화는 엔이 듣지 못했다.

“타르타로스가 우리처럼 영웅의 세계에 들어와 있어. 이건 전대미문의 사건이야.”

“맞아요.”

엘레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어쩌면 세계의 판도가 뒤집힐지도 모를 일이에요.”

***

루나는 아킨트의 연구실에 들어왔다.

“상담을 해주시겠다니 아킨트 선생님답지 않으시네요.”

“나와 네 사이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죠. 아킨트 선생님은 단순히 선생님이 아니라 제 마법 스승님 같은 분이니까요, 그리고…….”

“그리고?”

“아니. 아니에요.”

루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가 삼킨 말이 무엇인지 레오는 알 수 있었다.

‘아버지 같은 사람.’

그런데도 루나와 지금의 아킨트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레오는 알고 있었다.

‘역사가 완전히 뒤틀린 거야.’

루나가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과의 유대조차 멀어질 정도로.

분명 아킨트는 지금도 든든한 루나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바르하르룬 내에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건 아까 전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루나를 괴롭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고립시켰던가.’

루나는 엘프왕의 후원을 받는 최고의 학생이었다.

창고 같은 데서 마법 연구를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혼자서 자료를 찾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아무리 이 시대의 엘프들이 썩었다고 해도 머리조차 썩은 건 아니다.

그들도 모두 루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깨달았을 것이다.

엘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도사가 탄생했다는 것을.

비록 자신들의 기준으로 신분이 낮다고 해도 이 시대의 엘프들에게 루나는 경외의 대상이었다.

재앙의 시대 이전부터 루나는 유명했다.

그런 루나가 이런 취급을 받고 있다.

자신감을 잃고 어깨와 귀를 축 늘어트리고 있다.

‘타르타로스 놈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역사를 바꾼 건 확실해. 하지만 대체 이유가 뭐지?’

영웅의 세계에서 꿍꿍이를 벌리고 있다.

‘아마 내 페이지가 그렇게 된 것과 연관이 깊겠지. 공략을 방해하는 건가? 아니. 누가 들어 온 것도 아닌데 공략을 방해할 이유가 있나? 잠깐, 공략?’

추리를 하던 레오가 멈칫했다.

지상의 이들에게 영웅의 세계의 공략은 시련을 이겨내는 것.

하지만 똑같은 조건이라면 타르타로스의 공략 조건은 뭘까?

‘그들에게 있어 영웅은 가장 위협적인 적. 영웅의 시련을 이겨내고 돕는 건 놈들의 역할이 아니야.’

타르타로스는 영웅을 방해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설마…… 놈들은 놈들의 방식으로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는 건가?’

어린 시절의 루나라고는 하나 여전히 강대한 마법사. 군단장급의 마족이나 군단장의 심복급 마족이 아니라면 루나와 싸우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루나를 죽인다는 선택지는 없다.

그렇다면 영웅의 위업을 방해하기 위해 번거로운 행위를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리고 이 세계의 공략 목표는 별의 마법을 완성하는 걸 돕는 것.

타르타로스의 목적이 별의 마법을 완성하는 걸 방해하는 거라면 그들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거기까지 생각한 레오가 이를 뿌득 갈았다.

‘감히 루나의 세계를 더럽혀?’

“사실 요새 많이 힘들어요.”

고개를 푹 숙인 루나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갈등이 있을 때 무의식적으로 하는 버릇이었다.

“……내가 과연 바르하르룬에 어울리는 엘프인지.”

루나의 눈이 떨렸다.

“정말로 내가 추구하는 마법이 대단한 것인지.”

자신감을 상실한 루나를 보며 레오는 루나가 꺾인 상태란 걸 직감했다.

타르타로스의 계획은 거의 성공 단계였다.

하지만 레오는 그들을 비웃었다.

‘고작 한 번 꺾은 걸로 될까?’

“루나.”

“네?”

“내가 장담할게.”

레오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대영웅이라고 특별한 건 없었다.

대영웅도 좌절하고 절망하며 의지가 꺾인다.

아니, 오히려 대영웅은 그 누구보다 많이 좌절하고 절망했으며 수도 없이 꺾였다.

그런데도 에레보스라는 토벌을 이룬 이유는 간단했다.

단지 그때마다 일어섰을 뿐이다.

그리고 레오는 루나를 일으키는 마법의 단어를 알고 있다.

오직 그 시절을 함께 헤쳐나간 동료들만이 할 수 있는 그 말을.

레오는 잘 알고 있었다.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지.’

“바르하르룬은 너라는 엘프를 키우기 위해 존재해 왔던 거야.”

루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넌 후대에 누구보다 존경받는 엘프가 될 거야. 왜냐고?”

토끼 눈이 된 루나를 보며 레오가 장담했다.

“넌 장차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가 될 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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