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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의 눈빛을 본 시드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껴졌다.
‘뭐냐, 이 눈빛은.’
레오의 눈에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족에 대한 적대감, 두려움 등등.
응당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을 감정이 전혀 없었다.
그저 고요했다.
마치 길가에 있는 쓰레기를 치우는 듯한 작은 혐오감만 엿보일 뿐이었다.
단언컨대 이런 눈을 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영웅이라 불리는 자들조차도 이런 눈을 하지 않았다.
일순간 레오의 살기에 압도된 시드는 공포를 느꼈다.
정신을 차린 시드는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네놈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비웃음을 날린 시드는 빠르게 평온을 되찾았다.
“이 세계는 우리가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지. 용케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린 모양이지만…… 그것뿐이다. 네놈들이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걸 할 수 있지.”
싸늘한 미소를 짓는 레오를 보며 시드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지금 당장 여기서 죽여야 하나?’
그런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시드는 현재 바르하르룬의 교감의 몸에 들어온 상태다.
그리고 오랫동안 학교 전체를 장악해 왔다.
그가 바르하르룬 전체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 맞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뒤에서의 이야기일 뿐.
다른 이들 앞에서 대놓고 힘을 쓸 수는 없다.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는 오랫동안 신과 지상의 종족들과 적대해 왔다.
재앙의 시대 이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정체가 발각되는 순간 이때까지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레오는 그걸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행동한 것이다.
대외적인 장소에서는 힘을 쓸 수 없다.
그렇다고 권력을 이용해 아킨트를 억압할 명분도 없다.
그걸 알고 대놓고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싸늘한 눈으로 시드를 바라본 레오가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을 노려보던 시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네놈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준비해 왔다.
‘너희가 떠받들던 대영웅이 그저 무력하게 불타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되겠지!’
타르타로스의 목적은 단순히 루나의 세계를 망가트리는 게 아니었다.
완전히 불타 없애는 것이다.
더 이상 힘을 계승하지 못하도록!
저 얼굴이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걸 떠올리며 시드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대영웅이 불타 사라지는 걸 보며 절망하는 네놈의 목을 내가 직접 쳐주마!’
희번덕거리는 시드의 눈빛에도 레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루나에게 다가갈 뿐이었다.
‘이 세계의 공략은 루나가 별의 마법의 기초를 만드는 순간 공략될 거야.’
왕녀와 인사를 나누고 다가오는 루나를 보며 레오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루나의 힘만으로 완성되어야 해.’
별의 마법은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다.
존재하지 않던 완전 새로운 마법 법칙.
순수하게 단 한 사람의 힘으로만 완성된 마법.
그 마법을 창조하는데 그 어떠한 도움을 줘서는 안 된다.
그 순간 별의 마법은 루나가 만든 마법이 아닌 누군가의 도움에 의해 완성된 마법이 되고 빛을 잃게 된다.
“루나. 왕녀님과는 대화를 나누었나?”
“네! 그런데 왕녀님이 많이 바뀌신 것 같아요.”
“바뀌어?”
“네. 이전에는 절 싫어했는데 지금은 저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시던데요?”
그 말에 레오가 왕녀 쪽을 보았다.
이미 파티장의 대부분의 엘프들은 그녀와 인사를 끝낸 상태였다.
그렇기에 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레오가 눈을 빛내며 왕녀와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섰다.
잠시 후.
자신의 차례가 되자 레오가 고개를 조아렸다.
“아킨트, 왕녀 전하에게 인사 올립니다.”
“반가워요. 아킨트.”
“예. 그런데 왕녀 전하, 루메른에 대해서 아시는 게 있습니까?”
무릎을 꿇은 레오가 세르지아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그 물음에 일순간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네. 알지요.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에요. 아킨트는 세이룬에 대해서 알고 있나요?”
“물론 알고 있지요.”
거기까지 대답한 레오가 웃으면서 물러났다.
남들이 듣기에는 이상한 대화였을 것이다.
실제로 주변 이들은 의아한 눈으로 레오를 보았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서로를 확인하는 효율적인 암호였다.
‘지금 시대에 미래의 영웅 사관 학교에 대해 아는 이가 없을 테니까.’
루나에게 돌아가며 레오가 속으로 생각했다.
‘루니아가 왕녀라.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겠군.’
한편 루니아 역시 레오의 뒷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레오가 분명해.’
엘레나일 수도 있지만, 말투나 분위기를 본다면 레오였다.
루니아가 심호흡을 했다.
‘에레보스에 관한 걸 레오에게 알려야 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파티장 내에 음악이 끊겼다.
그와 함께 파티장 입구로 오늘의 주인공, 엘프왕 에르겐이 모습을 드러냈다.
장내에 있던 모든 엘프가 정중하게 무릎을 꿇었다.
“생신을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고위 엘프들의 축하에 에르겐이 미소 지었다.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였다니…… 고맙군. 모두 이 자리를 빛내 줘서 감사하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오늘은 즐겁게 파티를 즐겨주길 바라네.”
그렇게 말한 에르겐은 가장 상석으로 가 앉았다.
그러한 에르겐 앞에 파티에 모인 엘프들이 줄을 섰다.
음악이 흐르고 다시 파티가 시작되었다.
루나는 구석에서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너답지 않게 긴장하는군.”
“그야! 에르겐 전하께 다시 후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나니까요.”
루나가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이곳 파티에 온 이유도 연구 성과를 엘프왕에게 전하고 후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고립되긴 했지만, 루나는 그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노력을 해온 것이다.
“일이 조금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거야.”
“네?”
레오의 말에 루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가 레오가 가리킨 쪽을 본 루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곳에는 다름 루니아가 다가오고 있었다.
루나는 고개를 숙여 예를 갖췄다.
그런 루나를 보며 심호흡한 루니아가 레오에게 말했다.
“한 곡…… 추실래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엘프는 음악과 춤을 사랑한다.
파티 때 함께 춤을 추는 건 그들의 문화였다.
그렇기에 춤을 신청하는 게 이상할 건 없다.
“영광입니다.”
레오는 부드럽게 웃으며 루니아를 데리고 파티장 가운데로 향했다.
음악에 맞추어 두 사람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너 레오 맞지?”
“그래, 루니아.”
레오의 말에 루니아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냈어?”
“재앙의 시대 이전이라는 것과 루나의 세계라는 것.”
“나도 거기까진 알아냈어. 공략 조건은 예상 가는 게 있어?”
“그래.”
“뭔데?”
“루나가 별의 마법을 만드는 거야.”
“과연.”
레오의 말을 듣고 루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응?”
“이 세계에 타르타로스가 있어.”
그 말에 루니아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지금 이 파티장에도 있어.”
레오의 손을 쥔 루니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과거의 타르타로스라는 거야?”
“아니. 우리처럼 바깥의 놈들이 이 안으로 들어온 거야.”
루니아가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너도 뭔가 알아낸 게 있는 거야?”
놀라지 않고 빠르게 납득을 하는 루니아를 보며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영웅의 세계에 마족이 침입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말 그대로 세계가 뒤집힐만한 엄청난 사건이다.
그런데도 루니아는 레오의 말에 조금의 의문도 가지지 않고 납득했다.
레오는 루니아가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아 냈다고 확신했다.
레오의 물음에 루니아가 심호흡을 했다.
“레오, 놀라지 말고 들어.”
“뭔데.”
“이 세계에…… 에레보스가 있어.”
살짝 떨리는 루니아의 목소리에 레오는 순간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에레보스가 있다고?”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아?”
“내가 직접 봤어.”
춤을 추면서 자연스럽게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루나를 보고 가까스로 진정 되었던 몸이 다시 떨렸다.
“루니아.”
레오의 부름에 루니아가 고개를 들었다.
원래 모습에서는 키가 얼마 차이 나지 않지만, 지금은 명백하게 났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루니아를 보며 레오가 웃었다.
“괜찮아.”
자신이 알고 있는 레오의 목소리가 아니다.
루니아는 알지 못하는 과거 속 인물의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 담긴 힘은 레오의 것이었다.
마치 방금 전 루나의 모습을 봤을 때와 같았다.
마음속의 공포와 불안감이 가신다.
루니아의 떨림이 멎는 걸 느끼며 레오가 말했다.
“그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해 줄래?”
***
“재미없네요. 이런 소모전.”
엘레나는 따분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휘저었다.
파지지지직-!
푸른색 뇌전이 사방으로 퍼졌다.
파바바바바밧-!
그워어어어어!
감전된 스켈레톤 나이트들에게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딱-!
퍼석-!
손가락을 튕기자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뒷골목은 말 그대로 시체의 천국이었다.
끝도 없이 언데드가 쏟아졌다.
숫자도 숫자지만 그 종류도 다양했다.
하급 언데드를 시작으로 상급 언데드까지.
말 그대로 이곳은 하나의 둥지였다.
그워어어!
골목 안쪽에서 구울이 걸어 나왔다.
하지만 일반적인 구울과는 달랐다.
갑옷을 입고 손에는 조잡하지만, 무기를 들고 있었다.
“구울병.”
풍겨오는 악취에 엘레나가 미간을 좁혔다.
하딘이 검을 고쳐 쥐었다.
살랑- 바람이 불어와 악취를 날려버렸다.
구울이 내뿜는 악취에는 독기가 서려 있었다.
물론 엘레나와 하딘 정도 되는 실력자에게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 엘레나와 하딘은 메린과 함께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돌려보내기에 메린은 너무 깊게 관여했다.
‘발각되면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르지.’
엘레나는 겁에 질린 메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고작해야 과거에 존재했던 인물이다.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감쌀 이유는 없다.
하지만 엘레나도 하딘도 메린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아무리 위대한 영웅도 세상의 모든 이들은 구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눈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이들이라도 지켜야 했다.
그것이 영웅 후보생의 덕목이었다.
그것이 설령 과거에 이미 사라진 사람이라고 해도 말이다.
‘하딘은 그렇게 생각을 하겠지. 고지식하니까.’
메린의 머리에서 손을 뗀 엘레나가 손가락으로 구울들을 가리켰다.
지잉-!
손가락 끝에 빛의 입자가 생성되었다.
엘레나가 메린을 감싸는 이유는 별다른 게 없었다.
그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번쩍-!
밝은 빛과 함께 뿜어 져나온 백색의 광선이 구울병들을 날려버렸다.
‘그리고 지킬만한 힘이 있기 때문이고.’
터벅- 터벅-
앞서 걸어가는 엘레나가 머리카락을 살살 꼬았다.
“슬슬 귀찮네.”
그녀의 눈에 짜증이 어렸다.
“그냥 이 더러운 뒷골목을 다 날려 버릴까?”
“그건 안 된다.”
“왜요?”
“마법을 쓰면 주변 일대가 날아갈 테니까.”
“흐응. 어차피 이런 쓰레기 소굴. 좀 날아가면 어때요?”
“흐응- 영웅 후보생답지 않은 생각이네.”
또각- 또각-
골목 안쪽에서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한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엘레나도 하딘도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야 기어 나왔네요.”
엘레나가 반갑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의가 없는 계집이네. 기어 나왔다는 표현이 뭐니? 내가 개라도 된다는 거야?”
그 물음에 엘레나가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 제가 착각을 하게 만들었네요. 본인이 강아지 정도는 된다고 착각하신 건가요? 전 바퀴벌레라고 생각했는데…….”
“뭐?”
“강아지는 귀엽기라도 하지, 당신은 징그러운 버러지일 뿐이잖아요? 그러니 바퀴벌레가 딱이죠.”
“이 계집이 입에 걸레를 물었나……!”
네크로맨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이내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뭐, 마음껏 떠들어. 너희는 곧 죽을 테니까.”
“어머, 아무리 징그러워도 바퀴벌레는 바퀴벌레일 뿐이랍니다. 벌레에게 죽는 사람 봤어요?”
엘레나가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자 네크로맨서가 코웃음을 쳤다.
“아니, 너희는 죽어.”
네크로맨서가 싸늘하게 웃었다.
“곧 신께서 눈을 뜨실 거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