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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45화 (145/483)

145.

“신?”

엘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레보스를 말하는 건가요?”

“그 더러운 입에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담지 마.”

“내 입은 깨끗해요.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양치를 하죠.”

‘이-’ 이를 보여주던 엘레나가 방긋 웃었다.

“아, 당신들은 교양이 없으니 그런 개념이 없겠죠? 게다가 마족 중에서도 시체나 줍고 다니는 네크로맨서니 냄새가 특히 심하겠네요.”

엘레나가 심각한 악취를 맡은 사람처럼 얼굴을 확 찡그렸다.

그 반응에 네크로맨서, 비네르의 몸이 파들파들 떨렸다.

“이, 이 망할 계집이……!”

엘레나의 말투에는 비네르를 살살 긁는 무언가가 있었다.

정확하게는 엘레나의 태도였다.

마족으로 살아온 만큼 비네르는 온갖 저주와 모욕에 익숙했다.

아무리 독설이 심하다고 해도 이성을 잃을 정도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엘레나의 눈빛과 태도.

마치 정말로 벌레를 대하는 듯한 그 고압적인 모습은 부아가 치밀어 오르게 하기 충분했다.

실제 엘레나는 비네르를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벌레 그 이상, 그 이하의 취급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하찮은 인간 따위가 감히 사령왕님의 선택을 받은 나 비네르를 그따위로 모욕하지 말란 말이다!”

콰가가가가가각-!

비네르가 흑마력을 일으키자 검은색 마법진이 생성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뼈의 칼날이 쏟아져 나왔다.

“갈기갈기 찢어 죽여주마!”

카가가가가가가각-!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키며 흑마법이 엘레나를 덮쳤다.

그걸 본 하딘이 눈을 가늘게 떴다.

‘상당한 고위 마족이군. 3급. 아니 이 정도면 4급 수준인가?’

마족의 계급은 총 7계급으로 나뉜다.

그리고 4급 수준이라면 어지간한 나라의 선봉 기사단도 간단하게 전멸시킬 수 있는 고위 마족.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엘레나가 말한 것처럼 ‘벌레’ 취급을 당할 정도가 아니었다.

“아하하하! 뚫린 입이라고 아무렇게나 지껄이더니! 꼴좋다!”

비네르가 속 시원하다는 듯 뼈의 무더기를 손가락질했다.

저 뼈 하나하나가 스치기만 해도 사람의 살을 간단하게 찢어 버릴 정도로 날카롭고 단단한 흉기였다.

그러한 뼈의 칼날을 뒤집어썼으니 살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다음은 너야.”

비네르의 표독스러운 살기가 하딘을 향했다.

“네놈은 어떻게 죽여줄까?”

이죽거리는 비네르를 보며 하딘이 말했다.

“애석하게도 넌 나를 죽이지 못한다.”

“요즘 영웅 후보생들은 주제 파악을 못 하네.”

비네르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몇 명이나 되는 영웅 후보생을 죽인 줄 알아? 너희 따위는 내 적수가 되지 못해. 너도 들어 봤지? 비네르라고. 나 너희들 사이에서 유명하잖아?”

“뼈 먹는 비네르?”

뼈 먹는 비네르.

100년 전부터 활동하여 수많은 영웅 후보생들을 살해한 악명 높은 마족.

“맞아. 이 몸이 바로 뼈 먹는 비네르지.”

비네르가 혀를 날름거렸다.

그녀가 만나온 모든 영웅 후보생들이 그랬다.

‘처음에는 스스로 영웅이라도 된 것 마냥 잘났다고 떠들지. 방금 저 계집처럼 건방지게 주둥이를 놀리는 애송이들도 많았지.’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다.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겁에 질리거나 도망치기 바쁘다.

그 자신감에 찬 얼굴이 공포에 물드는 순간은 비네르가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하딘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네르는 그러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하딘의 눈과 마주한 순간 멈칫했다.

하딘은 비네르를 쳐다보지 않았다.

이쪽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겁에 질린 메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걱정 마라.”

“하지만…… 천사님이…… 엔이…….”

“하? 아주 여유가 넘치네?”

비네르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따위 가짜를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너야말로 날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뭐?”

“이 정도에 당할 여자였다면 내가 목표로 할 가치도 없었겠지.”

딸각- 딸그락-

뼈 무더기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비네르의 안색이 대번에 변했다.

‘뭐야? 살아 있다고?’

비네르의 마법은 단순히 날카로운 게 아니다.

저 뼈의 칼날 하나하나가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무겁다.

그런 걸 정면으로 뒤집어썼다.

살아 있을 리 만무하다.

아니, 살아 있다 하더라도 빠져나올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콰아아아아앙-!

뼈 무더기가 폭발하듯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았다.

분홍색 마력으로 온몸을 휘감은 엘레나가 생긋 웃었다.

그걸 본 비네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비네르도 소문으로 들었다.

‘분홍색 마력을 지닌 흉악한 여자가 루메른에 있다.’

“엘레나…… 제르온.”

“딩동, 정답.”

발랄하게 미소 지은 엘레나가 마력을 일으켰다.

비네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엘레나의 마력에 의해 허공에 뜬 뼈 무더기가 바르르 떨리더니 검은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비네르의 흑마력이었다.

그와 함께 뼈의 칼날에 엘레나의 마력이 스며들었다.

네크로맨서의 마법은 크게 두 가지.

시체를 조종하는 사령술.

시체를 이용한 시체 마법.

어느 쪽이 되었든 지상의 종족들이 네크로맨서 마법의 통제권을 뺏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내 마법의 통제권을 빼앗았다고?!’

차라리 디스펠로 해제한 거라면 이해가 갔을 것이다.

하지만 마법의 통제권을 빼앗다니?

“이거, 필요 없으니 돌려줄게요.”

엘레나가 화사하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비네르를 가리켰다.

일순간 뼈의 칼날이 비네르를 향했다.

“자, 잠…… 꺄아아아악!”

콰가가가가가각-!

뼈의 칼날을 뒤집어쓴 비네르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인간은 저런 걸 맞으면 죽는데! 역시 바퀴벌레라 생명력 자체가 다르네요.”

새침하게 뒤돌아선 엘레나가 툴툴거리며 다가왔다.

그러고는 메린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 걱정했어요? 아휴~ 기특해라.”

그렇게 말한 엘레나가 이번에는 하딘을 흘겨보았다.

“당신은 내 걱정은 조금도 안 한 모양이군요.”

“네 걱정에 심력을 낭비할 이유가 있나?”

“어머, 말하는 것 좀 봐?”

심통 난 표정을 짓던 엘레나가 멈칫했다.

쩌저적-

하딘의 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딘 뿐만 아니다.

엘레나의 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이 동시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파칭-!

마치 유리가 깨지듯.

몸의 파편이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그와 함께 엘레나와 하딘이 가짜 세계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본 모습이 되었다.

“이건 대체……?”

하딘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엘레나는 메린을 보았다.

메린 역시 빛의 파편이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영웅의 세계를 공략했을 때와 비슷한 현상.’

하지만 명백하게 달랐다.

“키키키키킥.”

그때 웃음소리가 들렸다.

엘레나가 힐끗- 비네르를 보았다.

“하등한 놈들…… 감히 지금껏 건방을 떨었겠다?”

“주제 파악 못하고 건방을 떤 건 그쪽 아닌가요?”

“이 쳐 죽일 계집이!”

한마디도 지지 않고 이죽거리는 엘레나를 보며 비네르의 눈에 핏발이 섰다.

하지만 이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건방을 떠는 것도 끝이다!”

비네르의 얼굴이 희열로 물들었다.

“신께서…… 위대한 재앙의 불꽃께서 깨어나신다!”

화르륵-!

갑자기 비네르의 몸에 검은색 불꽃이 붙었다.

“아아! 그분의 목소리가 들린다……!”

비네르의 몸이 바르르 떨리더니 눈이 까뒤집어졌다.

“아하하하하! 목소리! 목소리가 들려! 꺄하하하하하하하!”

광소를 터트리기 시작하는 비네르를 보며 엘레나가 손을 휘저었다.

콰득-!

하늘에서 빛의 입자가 마치 단두대처럼 떨어져 비네르의 목을 쳐 버렸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지만 비네르는 미친 듯이 웃는 걸 멈추지 않았다.

“아무래도…… 신이란 건 역시 에레보스를 말하는 거겠죠?”

엘레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것 같군.”

하딘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오러를 일으켰다.

꾸물- 꾸물-

비네르의 몸이 비틀리더니 비대해지기 시작했다.

“이게 본 모습이군요.”

엘레나가 혀를 찼다.

“제정신은 아닌 것 같지만.”

“엘레나. 반드시 이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

“네. 단순히 대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 같군요.”

엘레나가 마력을 일으켰다.

“대재앙과 연관이 깊은 게 분명해요.”

***

레오와 루니아가 이변을 눈치챈 건 에레보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였다.

“레오…… 너!”

루니아가 눈을 크게 뜨고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레오를 보았다.

레오 역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간 루니아를 보며 미간을 좁혔다.

‘뭐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이 가득한 하늘.

거기에 금이 가 있다.

마치 세계가 공략된 것처럼.

하지만 공략과는 달랐다.

금이 간 곳에 환한 빛이 아닌 음울한 검은색 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 어둠은 레오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빛깔이었다.

‘에레보스의 화염.’

절대 꺼지지 않는 재앙의 불꽃.

일찍이 이 세상을 불태웠던 그 불꽃의 색깔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이 세계에…… 에레보스의 조각이 있는 거야.’

피브아가 했던 모든 말이 이해가 되었다.

어둠이 드리웠다.

‘그건 타르타로스 따위를 말하는 게 아니었어.’

레오의 손이 힘이 들어갔다.

‘에레보스를 말하는 거였어.’

전생부터 이어진 악연.

그 공포의 존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파티장 역시 웅성거리며 레오와 루니아를 보았다.

“네놈들은 대체 누구냐!”

“왕녀님을 어떻게 한 거지?”

몇몇 엘프들이 언성을 높였다.

그걸 본 시드가 소리쳤다.

“이 경사스러운 날에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침입한 것이냐!”

인간은 절대 들어 올 수 없는 곳에 인간이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이 세계의 주민들에게는 레오와 루니아가 아킨트와 세이자르 왕녀로 변장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엘프들 사이에서 살기가 일어났다.

원래라면 공략 실패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윈 없다.

‘세계가 망가지고 있어.’

레오의 머릿속으로 카일의 페이지 조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망가지고 조각만 남은 자신의 페이지처럼.

루나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증거가 사라지고 있었다.

만약 친구들의 페이지가 자신의 페이지처럼 망가지고 사라지게 되면 어떻게 될까?

히어로 레코드만이 영웅의 존재를 증명하는 지금의 세상에서.

모든 페이지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

레오가 눈을 감았다.

‘우리의 이야기가 잊히겠지.’

자신은 상관없다.

이미 잊힌 사람이니까.

하지만 친구들은?

각자의 이상을 품고 세상을 구하려 했던 대영웅들은?

레오가 시선을 돌려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루나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아킨트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루나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지막 모습과 겹쳤다.

언제나처럼 밝게 웃던 루나의 모습.

하지만 눈은 불안감으로 떨리고 있었다.

이 엘프는 언제나 기고만장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쉽게 기죽기도 하는 이상한 엘프였다.

‘야……!’

‘카일…….’

‘하지 마.’

‘둘 중 하나가 살아야 한다면…… 아르온과 드웨노를 짊어진 네가 남는 게 맞다는 걸 알고 있지?’

‘하지 말라고! 이 빌어먹을 년아!’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그 지지리도 말을 안 듣는 엘프는 평소처럼 끝까지 자신의 말을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이게 최선이야. 너도 나였으면 똑같이 했을 거야!’

‘아니야……! 아니라고!’

‘나까지 떠넘겨서 미안.’

둘 모두 죽을 거라면 좀 더 많은 걸 짊어진 쪽이 사는 게 맞다며 망설임 없이 자신을 살렸던 친구.

마지막에 가서 울 것 같은 얼굴로 사과하던 빌어먹을 친구.

모든 페이지가 사라지면.

자신처럼 잊게 될 것이다.

레오가 루나에게 다가갔다.

루나는 경계 어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당신 누구야. 아킨트 선생님은 어디 있어?”

“루나.”

이미 망가지기 시작한 세계다.

공략이고 뭐고 할 틈이 없다.

시조의 페이지를.

루나의 이야기를 지키는 방법은 단 하나.

‘세계를 망가트리고 있는 원흉을 제거한다.’

5000년 전에는 힘을 합쳐도 쓰러트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쓰러트린다.’

레오가 팔찌에 손을 댔다.

화악-!

그와 함께 레오의 손에 폴리움이 모습을 드러냈다.

위대한 엘프왕을 선택한다는 그 고귀한 지팡이는 레오의 손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걸 본 엘프들이 숨을 들이켰다.

루나 역시 눈을 크게 떴다.

“다시 한번 세계를 구할 때야.”

“뭐?”

“네 힘이 필요해.”

레오가 루나에게 폴리움을 건넸다.

번쩍-!

레오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진정한 주인을 만난 것처럼.

레오는 놀라고 있는 루나를 보며 말했다.

“도와줘.”

꽈악-

폴리움을 쥔 루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낯선 소년.

경계해야 할 마땅한 인간.

하지만 왜일까?

자신을 친근하게 부르는 저 목소리가 눈물이 날 정도로 그리운 이유는?

자신을 보며 밝게 웃는 저 미소가 슬퍼 보이는 이유는?

알 수 없다.

영문을 모를 소리.

하지만…… 루나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저 도움을 청하는 말에…….

“응.”

응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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