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관계요?”
“그렇네. 입학 후부터…… 아니. 입학 전부터 자네에 대해 쭉 조사를 해 봤네.”
칼리안이 빙긋 웃었다.
“자네는 입학 때 기사 지망으로 입학했지. 자네의 외가가 제르딩거이니만큼 당연한 일이겠지.”
아직 레오의 외가가 제르딩거라는 건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사실.
하지만 루메른의 교장이 학생의 가족 관계에 대해 알아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상한 건 자네가 입학 전까지 올 클래스로서의 능력을 보이지 않았다는 걸세. 마법과 소환에 두각을 드러낸 건 루메른에 입학한 후이지. 아니, 단순히 두각을 드러낸 정도가 아니었지.”
레오는 이론으로는 각 학과의 상위권 학생들과 대등하거나 그 이상의 경지에 올랐다.
기사로서는 압도적인 기술과 오러 컨트롤 능력을 선보였다.
마법사로서는 마법 술식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랐으며 소환술은 무려 첫 수업 때 피닉스와 계약을 했다.
하나만 하더라도 단순히 천재로 정의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심지어 레오는 그 모든 능력을 갖춘 올 클래스였다.
그런 가운데.
시작의 영웅 카일이 실존했다는 증거가 속속히 밝혀지고 있다.
시작은 여름 방학 당시 아조니아의 입학시험.
그때까지만 해도 학계에서는 시작의 영웅과 살아남는 영웅이 동명이인이라는 시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카일의 이름이 역사 속에 실존했다는 게 알려지고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의 영웅 카일의 존재가 증명되었다.
“자네들이 본 동상이 어느 시대의 것인지,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에 기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네만.”
그 장소가 가드스론이라는 것을 아는 건 레오밖에 없다.
루이나와 엘레나, 하딘은 그곳이 정확하게 어딘지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시작의 영웅 카일이 실존했을지도 모른다는 확률은 엄청나게 올라갔지.”
칼리안이 빙긋 웃었다.
“그래서 카일과 같은 능력을 지닌 자네가 카일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네.”
“관계라면?”
“자네…… 혹시 카일의 영웅의 세계를 공략한 적이 있나?”
칼리안의 물음에 레오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만약 레오가 카일의 세계를 공략했다고 한다면 카일의 존재는 확실해진다.
역사에서 올 클래스의 능력을 가졌던 자는 두 명뿐.
카일과 레오다.
‘결국 둘 다 나지만.’
레오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가 실존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좋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에레보스와 타르타로스는 카일을 증오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 대영웅, 특히 카일의 영웅의 페이지를 찾아서 파괴하고 있다는 게 알려졌다.
그런 상황에서 레오가 카일의 힘을 계승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진다면 타르타로스가 적극적으로 레오를 노리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지금도 주목하고 있을 게 분명해. 그런 상황에서 본격적인 표적이 된다면 지금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들어.’
아직은 힘이 부족했다.
‘최소한 전생의 힘을 어느 정도 되찾은 다음에 관계가 있는 걸 밝혀야 해.’
“타고 나기를 올 클래스로 타고 났다는 건가?”
“네.”
“평소에 카일에 관심이 깊지 않았나? 듣기로는 시작의 영웅을 연구하는 동아리도 만들 계획이라고 하던데.”
1학기 때는 학과 일정 때문에 동아리 활동을 못 하고 있었지만 일단 동아리 신청은 해놓은 상태다.
칼리안의 말에 레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관심이야 있죠. 역사상 올 클래스라고 알려진 건 시작의 영웅이 유일하니까요.”
레오의 말에 칼리안이 흠- 하고 한숨을 쉬었다.
잠시 레오를 바라보던 칼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걸 물어보기 위해 온 거라네.”
끙차- 하고 칼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는 않았겠지만, 학과 일정을 계속 쉴 수는 없겠지. 내일부터는 수업에 나가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럼 몸조리 잘하게.”
칼리안이 병동을 나갔다.
병동에 남은 엘레나가 빙긋 웃었다.
“레오군. 정말 시작의 영웅과 관련 없어?”
“없는데요.”
덤덤하게 말하는 레오를 보며 엘레나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생각해요?”
“여자의 감.”
빙긋 웃은 엘레나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새침하게 말했다.
“뭐, 알려주기 싫다면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어.”
그렇게 말한 엘레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오군. 전에 나에게 부탁이 있다고 했지? 그게 뭐니?”
“들어주시게요?”
“응.”
순순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엘레나를 보며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가는요?”
“없어.”
엘레나의 말에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요? 갑자기 왜요.”
“궁금해졌거든.”
다리를 꼬고 턱을 괸 엘레나가 웃었다.
“네가 앞으로 어디로 나아갈지 말이야.”
눈을 빛내며 레오를 바라보는 그 모습은 이때까지의 엘레나와는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순진무구한 구석이 있었다.
순수하게 누군가를 동경하는 눈빛.
평소 엘레나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레오는 그 모습이 또래답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이제야 좀 또래답네요.”
“그러는 넌. 너무 애늙은이 같은 거 알고 있니?”
인상을 찡그리며 툴툴거린 엘레나가 물었다.
“그래서. 내게 부탁하고 싶은 게 뭐니?”
“금서고에 들어가고 싶어요.”
그 말에 엘레나가 멈칫했다.
“금서고?”
“네.”
“이유는?”
“히어로 레코드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거든요.”
“이번 사건 때문에?”
“아니요. 이전부터 생각했던 거예요.”
엘레나가 물끄러미 레오를 바라보았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히어로 레코드에 대해 조사하려고 했다니.
‘과연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엘레나의 눈이 일순간 가늘어졌다.
“알겠어.”
엘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그래도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 볼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는 레오를 보며 엘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오 플로브. 얜 대체 정체가 뭘까?’
***
다음 날 아침.
병동에서 퇴원한 레오는 반으로 향했다.
아직 온전한 몸 상태는 아니었다.
에레보스의 불꽃에 입은 상처는 그리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레오는 온몸에서 고통을 느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미 수업 시간이 아슬아슬했기에 교실동 복도는 한산했다.
드르륵-
레오가 5반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같은 반 학생들의 시선이 레오에게 꽂혔다.
“헉? 반장이다!”
“레오다!”
“야! 레오! 너 성운의 시조의 세계를 공략했다면서!”
우르르르르-!
같은 반 친구들이 우르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동급생들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영웅의 세계는 누구나 공략하기를 염원하는 일종의 꿈과도 같았다.
그 대영웅의 세계를 경험했으니 1학년들로서는 선망의 눈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루나님은 만나 봤어?”
“역시 아름다우시지?”
“뭐라고 말 좀 해봐!”
앞을 가로막은 동급생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나 일단 자리에 앉으면 안 될까?”
“야! 5반 반장 왔데!”
“어디? 어디?”
“야! 레오 플로브! 이야기 좀 풀어 봐!”
어느새 4반과 6반에서도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벼르는 학생이 많았는데 입원 기간이 늘어나다 보니 궁금증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
관련 정보는 루메른 상부에서 통제한 상태.
그렇다고 또 다른 공략자인 엘레나에게 찾아가 감히 물을 자는 없었기에 모두가 레오가 퇴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1학년 교실동 전체에 혼란이 찾아왔다.
그걸 보고 레오가 한숨을 쉬었다.
“흥! 공략은 엘레나 선배님이 거의 다 한 거 아니야?”
“운 좋게 그 자리에 있었던 주제에 대단한 것 마냥 주목받다니.”
“엘레나 선배님이랑 있으면 나도 공략할 수 있겠다.”
몇몇 이들이 아니꼽다는 듯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킬킬거리며 조롱을 보내는 다른 반 학생들의 말에 5반 학생들이 사나운 표정을 지을 때였다.
“헛소리를 하는군.”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1반의 듀란이 인파를 헤치고 오고 있었다.
듀란은 조롱에 가까운 눈빛으로 레오를 비웃던 이들을 바라보았다.
“기간테스 사건 때도 꼬랑지를 말았던 놈들이 말이 많군.”
“뭐라고?”
“너 말 다 했냐?”
듀란의 말에 레오를 비웃던 학생들이 발끈했다.
그들을 보며 듀란이 사납게 웃었다.
“한번 해보자는 건가?”
파지지직-
듀란의 몸에서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그런 듀란을 보며 발끈하던 이들이 움찔하더니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자기 반으로 들어갔다.
듀란은 성질머리가 더러운 걸로 유명하다.
수틀리면 이 복도에서 망설임 없이 무력 행사를 할 녀석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같잖다는 표정을 지은 듀란은 인파를 헤치고 레오 앞에 섰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레오 플로브. 이야기는 들었다. 성운의 시조의 세계를 공략했다지?”
“어쩌다 보니.”
레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을 주변 학생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듀란은 걸핏하면 레오에게 대항심을 불태우는 학생으로 유명했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만큼 자존심도 강했다.
그렇다 보니 레오에게 뒤처지는 걸 절대 용납하지 못하기도 했다.
“레오가 시조의 세계를 공략했다고 실력을 증명해보라고 결투 신청하는 거 아니야?”
“쟤라면 그러고도 남아.”
“평소에는 쿨하고 멋있는데 반장이랑만 관련되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일리아나. 너 그런 취향이었어?”
“……! 아니거든?!”
5반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그렇게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듀란이 말했다.
“그래서. 성운의 시조는 어땠지?”
“뭐?”
“어떠냐고 물었다.”
위압감 넘치는 표정과 목소리와 다르게 듀란은 레오에게서 루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혹시 싸움이 날까 봐 긴장해서 따라왔던 1반 학생들은 맥빠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수학여행 갔을 때 듀란은 성운의 시조와 관련된 엘프 물품을 전부 샀지?”
“성운의 시조님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어.”
“왕자님이니까 원하는 건 하고 봐야 직성이 풀리나 봐.”
1반 학생들이 수군거리자 듀란의 서늘한 시선이 그들에게로 향했다.
그러자 1반 학생들이 합죽이가 되었다.
그렇게 교실동 전체가 소란이 일 때였다.
“복도에서 뭘 하는 거지?”
싸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10초 주겠다. 모두 각자 교실로 돌아가지 않으면 오늘은 상당히 즐거운 하루가 될 것이다.”
“으아악!”
“비켜! 비켜!”
“듀란! 우리만 놓고 가지 마!”
할린드의 등장에 1학년 전체가 패닉에 빠졌다.
루메른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공포의 상징.
비록 이번 1학년 중 할린드의 손에 자퇴 처리당한 학생은 아직 없지만, 그의 공포는 여전했다.
실제로 교칙 위반으로 걸렸다가 험한 꼴 당한 걸 본 적 있는 학생들은 절대 할린드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았다.
5반 학생들도 허둥지둥 자리에 앉았다.
문제는 반을 빠져나와 5반 앞까지 왔던 학생들이었다.
많은 인파 때문에 병목 현상이 일어나 반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 와중에 벽을 달리며 재빠르게 1반으로 복귀하는 듀란의 모습은 번개와도 같았다.
10초가 지나자 할린드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학생들의 명찰이 뜯겨나가 할린드의 손 위로 날아갔다.
“안 돼에에에에!”
“한 번만 봐주세요! 할린드 교수님!”
학생들의 절규가 복도를 가득 메웠지만 할린드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5반으로 들어가 냉담하게 문을 닫았다.
쾅-!
터벅- 터벅- 터벅-
5반 학생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가운데 교탁 가운데로 간 할린드가 출석부를 놓았다.
그리고 힐끗- 레오를 한 번 보고는 반 학생들을 보며 말했다.
“공지 사항이 있다.”
그 말에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합동 수업 일정이 잡혔다.”
할린드의 말에 5반 전체가 놀랐다.
“네? 다른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이랑요?”
테이드의 물음에 할린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다른 영웅사관학교 학생들이 아니다.”
“그럼?”
할린드가 분필을 들었다.
타악- 타악-
칠판에 글자를 쓴 후 툭- 하고 분필을 놓았다.
“3대 클래스 명문 학원 학생들과의 합동 수업이다.”
그 말에 5반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3대 클래스 명문 학원.
기사 학원 이코트.
마법 학원 에메랄.
소환 학원 스카운.
각 클래스의 최고봉을 달리는 학원이다.
하지만…….
“너희들로선 2지망이었던 학교지.”
할린드가 싸늘하게 말했다.
“그리고…… 자퇴 처리 이후 너희들이 가게 될지도 모르는 학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