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탁- 타악- 탁-
분필 소리가 카페 전체에 울렸다.
킥킥- 숨죽여 비웃음을 날리던 에메랄 학생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멍한 표정을 지었다.
탁-
분필을 놓은 레오가 칠판에서 물러섰다.
그리고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 실라를 보았다.
“어때?”
“이, 이런 식의 접근도 가능하구나?”
화들짝- 정신을 차린 실라는 황급히 칠판 앞으로 다가갔다.
‘이게 대체 뭐야? 어떻게 해석한 거지? 이 마법이 발동이 된다고?’
에메랄 학원은 총 20명씩 한 조가 되어 조별 과제 연구를 진행한다.
그리고 조금 전 레오가 풀었던 문제가 바로 실라가 소속된 조의 조별 과제였다.
그런 과제를 거뜬하게 풀어 버린 것이다.
에메랄 학생 입장에서는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레오의 술식 풀이를 옆에서 지켜봤음에도 불구하고 절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이씨!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술식이 발동되는 건 알겠다.
그런데 어떻게 발동되는지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뚫어져라 칠판을 노려보던 실라가 힐끗 태연하게 분필을 돌리고 있는 레오를 보고는 이를 악물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물을 수 없었다.
“근데 말이야.”
“으, 응?”
“이렇게 접근하지 말고 보다 효율적으로 마법 발동이 가능할 것 같은데?”
“뭐?”
생긋 웃은 레오가 칠판의 내용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술식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 마법은 적은 열 마법을 이용해 많은 출력을 얻기 위한 마법 술식이잖아? 열이라면 화염 계열 마법이니까 화염 술식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하지만 그래서는 마력 소모량이 많아져. 그러니 바람 마법을 이용한 압축을 하는 거야.”
레오가 칠판에 마법 술식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걸 본 에메랄 학생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해조차 하기 힘든 복잡한 마법.
‘저게 어디가 효율이 좋다는 거야!’
‘머리 터지겠네!’
“이런 식으로 바람 술식으로 압축을 하면 화력을 더욱 키울 수 있지. 그러면 마나 소모도 줄일 수 있어.”
레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깐! 잠깐! 이렇게 하면 분명 마나 소모는 줄일 수 있지! 하지만 효율이 좋다는 건 단순히 그것뿐만이 아니야! 마법에 걸리는 시간이라던가 간단함도 고려 대상이야!”
실라의 지적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지금 세상에는 발동 술식이라는 좋은 게 있잖아?”
“이 복잡한 술식을 발동 술식으로 바꾸는 건 보통 일이 아니거든?”
실라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런 실라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야.”
“뭐?”
레오가 즉석에서 조금 전 해석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레오의 손에 불꽃이 일렁이더니 이내 바람에 의해 압축되어 에너지 덩어리로 변했다.
그걸 보고 실라가 입을 쩍 벌렸다.
“아직 실전에서 쓰기엔 실용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조금만 더 연구 하면 제법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것 같은데?”
레오가 마법을 해제하며 어깨를 으쓱거리자 실라의 몸이 떨렸다.
그러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말했다.
“그, 그렇구나! 너도 이런 쪽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구나? 그래! 과연 루메른이야! 이런 쪽으로 마법을 이미 연구하다니.”
실라가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하! 루메른에서 연구하는 걸 그대로 따라 했다니. 창피하네.”
“루메른에서는 딱히 이런 연구 같은 건 안 하는데?”
“뭐?”
“루메른에서도 여러 실험 마법 이론을 연구하기는 하지만 학교 차원에서는 하지 않아. 루메른은 신규마법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에 있던 마법을 전투 쪽에 특화하거나 응용하는 걸 주로 하니까.”
레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확실히 그랬다.
루메른 마법학과의 궁극적인 목표는 영웅 육성.
그렇다 보니 기존에 있던 마법 술식을 응용하고 실전 전투에 사용하는 걸 주로 연구한다.
렌 교수가 학문인 접근을 강조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주류가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보니 이런 독특한 실험은 루메른에서 잘 이뤄지지 않는다.
“자, 잠깐. 그럼 이 술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발동 수식으로 전환 시킨 건데? 지금 이 자리에서 즉석으로 했다고?”
실라가 눈을 부릅떴다.
“응.”
레오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실라가 뒷걸음질 쳤다.
다른 에메랄 학생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웃기지마! 넌 그냥 슥 보고 해석을 풀이했잖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아니면 그러는 게 가능할 리가 없…… 잠깐. 암산으로 했으면 가능하긴 하지만 그런 건 불가능…….”
“암산으로 했는데.”
“……!”
쩌저적-
실라를 포함한 에메랄 학생 전원의 얼굴이 굳었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라고! 사람이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 우아아아아아앙!”
충격을 받은 실라가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갔다.
“야! 조장 어디가!”
“가, 같이 가!”
“히이이이익?”
그런 실라를 따라 다급히 도망가던 에메랄 학생들이 레오와 눈이 마주치더니 질겁했다.
마치 괴물 보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에메랄 학생들을 보며 레오가 볼을 긁적였다.
“조금 심했나?”
***
집합 시간이 되었다.
600명이나 되는 외부 학생들은 모두 루메른으로 가기 위한 선착장 앞에 모였다.
“이번에 온 학생들은 모두 1학년이라고 하더라?”
선착장 벤치에는 레오를 사이에 두고 좌측에는 셀리아가 우측에는 첼시가 앉아 있었다.
“셀리아. 넌 루메리아 시티 돌아다니면서 시비 거는 애들 없었어?”
“시비? 딱히 없었는데?”
“첼시, 넌.”
벤치에 앉아 다리를 까딱거리며 에메랄 학생들을 바라보던 첼시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없었어. 왜? 혹시 레오 오빠에게 시비를 건 바보 같은 애들이 있었어?”
“응.”
“걔들도 참 재수가 없네. 하필 건드려도 널 건드리냐.”
셀리아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런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팔짱을 꼈다.
“내가 왜?”
“우리 학교 애들도 널 보고 절망하는 애들이 많은데 괜히 합동 수업 전에 기죽은 셈이잖아.”
어깨를 으쓱거리는 셀리아를 보며 첼시가 입을 막고 쿡쿡! 웃었다.
그때 선착장으로 인솔 교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인, 유라, 렌.
세 교수를 보고 첼시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난 가끔 우리 학교가 이해가 안 돼. 저 세 교수님은 붙여 놓으면 사건 사고를 터트리는데 왜 항상 큰 행사 같은데 붙여 놓는 걸까?”
둘이 붙으면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셋이 붙으면 더 큰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세 교수는 같이 움직일 때가 많았다.
첼시의 말을 듣고 셀리아가 동감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교관들은 모두 집합해라.”
아인의 말과 동시에 열 명의 학생이 앞에 섰다.
세 학원 학생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그들에게 꽂혔다.
“예, 예쁘다.”
“셀리아님……! 아름다우셔!”
“쟤가 첼시 르왈린이지?”
“저 마법학과 여자애는 누구지?”
“저 작은 여자애가 기사학과라고?”
“헤르긴 가문의 후계자님은 뭔가 다가가기 힘들 것 같아.”
남학생들이 넋을 놓고 루메른 여학생들을 보았다.
하지만 루메른 여학생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셀리아는 관심 없다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첼시는 팔짱을 끼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클로에는 관심 없다는 듯 평소처럼 마도서를 읽고 있었고 엘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가락을 정리했다.
오직 첸 시아만이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한편 여학생들도 반응은 비슷했다.
“와…… 그림에 나올 것처럼 생겼어.”
“와. 대박 잘생겼어.”
“무, 무섭게 생겼다.”
눈에 띄는 아바드, 듀란, 워레든이 여학생들의 이목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저 하얀 머리 남자애가 레오 플로브지?”
“올 클래스!”
“뭐랄까. 귀엽게 생긴 미소년이네. 난 좀 더 우락부락할 줄 알았는데.”
그때 몇몇 여학생들이 꺅-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첼시, 클로에, 첸 시아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한편 셀리아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저 버터가 뭐가 좋다고 난리들인지.”
“우리 오라버니가 왜 버터야!”
첼시가 발끈했다.
“조용히 해라.”
아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그런 아인을 보며 순간 세 학원의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 학생들은 비록 너희와 같은 학생들이지만 교관을 맡았다. 그러니 통제에 잘 따르도록.”
아인의 말에 여학생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교수님! 저희는 저 교관님이 좋아요! 저 교관님이 인솔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손을 든 이는 다름 아닌 기사 학원 이코트의 여학생이었다.
손가락으로 아바드를 가리키며 그녀를 보며 아인이 말했다.
“아바드 르왈린은 마법학과다. 이코트인 너희와는 관계없다.”
그 말에 여학생이 픽- 하고 웃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죠? 어차피 같은 루메른 학생인데? 학과가 좀 다르면 어때요?”
루메른 학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그 여학생을 보았다.
그녀를 따르는 학생들로 보이는 이들도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듀란 조차도 입을 쩍 벌렸다.
루메른에서 정당한 교수의 말에 떼쓰고 반항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물며 그게 아인 교수라면 더더욱!
“와…… 대박.”
“죽고 싶은 모양이네요.”
첼시의 감탄에 엘리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유라와 렌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이름이 뭐지?”
“시리나 피아입니다! 체야 공국의 공녀죠!”
시리나가 가슴을 활짝 펴고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체야 공국.
대륙 동부에 위치한 왕국으로 제법 규모가 큰 공국이다.
시리나의 말에 아인이 말했다.
“시리나 학생. 경고다. 세 번의 경고가 누적되면 바로 짐 싸고 학교로 돌아가야 하니 그렇게 알도록.”
덤덤하게 말한 아인 교수가 일정을 이야기 하려고 했다.
“잠깐만요! 대체 제가 뭐 때문에 경고를 받아야 하죠? 그리고 짐을 싸라고요! 내가 누군지 알고!”
시리나가 발끈했다.
“두번째 경고다. 세 번은 당하지 말도록!”
“아니! 진짜! 대체 내가 왜 경고를 받아야 하냐고요!”
시리나가 히스테릭한 표정을 지었다.
루메른은 누구나 선망하는 학교다.
비록 합동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곳에서 수업을 받는 건 엄청난 일이다.
그런데 그 수업을 받기도 전에 경고를 받고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시리나는 짜증을 부렸다.
“세 번째 경고다. 퇴교 처리하겠다.”
아인이 품에서 명단을 꺼냈다.
“이봐! 당신이 아무리 루메른의 교수라도 당신이 마음대로 날 쫓아낼 권리는 없어!”
흥분한 시리나가 아인에게 삿대질을 하며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며 유라가 중얼거렸다.
“선 넘네.”
“저런 학생은 늘 있었잖습니까. 근데 올해는 정도가 좀 심하긴 하군요.”
렌이 한숨을 쉬었다.
덥석-!
“헉?”
“잘 들어라. 시리나 피아. 네가 체야 공국의 공녀이든, 혹은 어느 왕국의 공주이든. 난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인의 싸늘한 목소리에 시리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곳은 루메른이고 루메른에서 교수의 말은 절대적이다. 이코트라면 모를까 그딴 알량한 권력 따위 루메른에서는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 내 눈앞에서 꺼져라.”
화악-!
“꺄아아아악!”
첨벙-!
시리나를 물속으로 집어 던진 아인이 굳어 있는 세 학원의 학생들에게 말했다.
“경고하겠다. 여기는 이코트도 에메랄도, 스카운도 아닌 루메른이다. 학생의 신분은 학생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며 서로 간의 서열도 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너희들을 루메른 학생들과 동등하게 대하겠다. 그러니 알량한 가문을 내세울 놈이 있다면 지금 당장 여기서 꺼져라. 이상이다.”
아인의 말에 다른 학원의 학생들이 숨을 죽였다.
그걸 본 첼시가 중얼거렸다.
“우리가 들었던 것보다 심한가 보네.”
“뭐가?”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옆에 있던 클로에가 마도서를 덮으며 말했다.
“3대 명문 클래스 학원 학생들은 루메른처럼 실력에 따라 학생들 서열이 정해지지 않는데.”
“뭐?”
“각 나라의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이 많이 입학하거든. 물론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지만 쟤들은 권력자들의 입김이 강한 편이래.”
첼시가 팔짱을 끼며 혀를 찼다.
“그래서 그런지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가문 믿고 까부는 철부지들이 잔뜩 있다고 들었어. 심지어 교수들도 눈치 본다던데?”
그 말에 레오가 중얼거렸다.
“한 며칠 간은 소란스럽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