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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샤샤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졸지에 이상한 걸 떠안게 되었군.”
“이상한 건 절 말씀하시는 건가요, 주인님?”
말투까지 이상하게 변하여 몸을 배배 꼬는 아티를 보며 레오는 관자놀이를 눌렸다.
레오는 전생에 자신과 계약 했던 파트너, 알부스를 떠올렸다.
그는 소환술사로서 카일의 역량을 믿고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었다.
카일 역시 알부스를 믿고 함께 싸웠다.
하지만 군단장, 사령왕과의 전투에서 알부스를 잃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놈에게 맹약자를 두 번이나 잃었군.’
군단장 중 최강이라 불리는 사령왕에게 카일은 엘시와 알부스.
두 맹약자를 잃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며 레오가 씁쓸한 미소를 지을 때였다.
“아아-! 순백의 환상이라 불리는 페가수스를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 취급하다니.”
아티는 레오가 자신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자 오히려 기뻐했다.
감성에 젖어 있던 레오는 머리가 아파지는 걸 느꼈다.
‘요즘 3대 환수들은 진짜 하나같이 머리에 나사 하나씩 빠지는 게 특징인가?’
삐약거리는 피닉스.
장난질 치다가 쫓겨난 페어리 프린스.
거기에 변태 페가수스까지.
환수술사라면 꿈으로밖에 꿀 수 없는 환상의 조합.
물론 앞에 이상한 게 붙는 바람에 레오 입장에서는 환장의 조합이었다.
“그래서, 주인님. 저는 어디서 머물면 될까요? 마구간이라도 전 상관없어요. 아니, 오히려 좋……!”
“제발 좀 조용히 해줄래? 페가수스라는 환수의 이미지를 더 이상 망치지 마.”
깊은 한숨을 쉰 레오가 말했다.
“일단 내가 부를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 너한테 소개해줄 녀석들이 있으니까.”
일단 계약하게 되었으니 다른 계약자들에게도 소개해줄 필요가 있었다.
“넵! 여기 풀숲에 숨어 주인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바스락- 바스락-
아티는 풀숲에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다시 한번 깊게 한숨을 쉬고 방으로 돌아갔다.
방은 여전히 피오라와 키르안의 항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레오는 한 손으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소환학 교과서를 주워 두 사람을 향해 마구 휘둘렀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끝내라고 했지?”
레오에게 간단하게 무력 진압당한 두 환수는 방 한쪽에 무릎 꿇고 앉아 손을 들었다.
착한 엘시는 두 사람이 어지른 방을 부지런히 치웠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너희들에게 소개해줄 녀석이 있어.”
[누군가요?]
엘시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레오가 영력을 일으키며 말했다.
“새 동료야.”
레오는 소환진을 그려 아티를 불러냈다.
냉큼 소환진을 타고 넘어온 아티는 획-! 획-! 방을 둘러보더니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마구간이 아니잖아.”
레오는 아티에게 페가수스다움을 바라는 걸 포기하고 말했다.
“잠시 동안 나의 맹약자가 된 아티라고 해. 모두 인사해.”
그 말에 엘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페가수스와 계약을 한 건가요?]
“그래.”
[만나서 반가워요. 그림자 정령 엘시라고 합니다.]
엘시는 아티 앞에 날아가 다소곳하게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며 인사했다.
그런 엘시를 보며 아티 역시 우아하게 원피스 자락을 들어 올리며 마주 인사했다.
“페가수스, 아티라고 해요.”
그렇게 말한 아티는 방구석에 손을 들고 멀뚱멀뚱 자신을 바라보는 두 환수를 발견했다.
“피닉스와 요정?”
참으로 기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일평생을 살아도 한 번도 보기 힘든 3대 환수인 피닉스, 요정, 페가수스를 한자리에서 보는 건 엄청난 일이다.
게다가 그 3대 환수의 계약자가 무려 한 사람이다.
소환술 역사상 3대 환수와 모두 계약한 소환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어떠한 영웅도 이루지 못한 전대미문의 위대한 업적.
“둘 다 왜 무릎 꿇고 손 들고 있나요?”
“기지개를 켜고 있었어요.”
[스트레칭하고 있었지.]
벌을 서던 두 사람은 은근슬쩍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푸는 척했다.
그러고는 아티 앞에 서고 척-! 하고 팔짱을 꼈다.
“난 피오라라고 해요. 여기 대장은 나니까 앞으로 나를 대장이라고 부르면 돼요.”
[내가 이 집단의 우두머리야. 날 두목이라고 부르도록.]
자존심 강한 두 환수가 찌릿- 서로를 노려보았다.
“내가 대장이에요! 이 날개 없는 요정!”
[내가 두목이야! 짜리 몽땅 병아리!]
대장이네 두목이네 다시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둘을 향해 레오가 소환학 교과서를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며 아티가 입을 떡 벌렸다.
자신의 맹약자가 3대 환수의 계약자인 것도 모자라 다른 환수들까지 저런 취급이라니?
그런 아티에게 엘시가 씁쓸하게 웃었다.
[충격적이겠지만 익숙해져야 할 거예요. 레오는 3대 환수라고 특별 취급 같은 거 안 해주거든요. 키르안은 여길 보고 지옥이라고…….]
“여긴 천국인가요?!”
[……?]
“당신이 여기 관리자님이었군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주인님! 저한테도 책을 휘둘러 주세요!”
신입에게 관리자라고 확실하게 인증받은 엘시는 레오에게 달려가는 아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3대 환수들은 다 이상한 건가?]
물론 절대 아니었다.
***
다음 날 마법 수업.
마법 수업 교관으로 대기하던 클로에가 레오에게 물었다.
“레오. 피곤해 보이네? 어제 잘 못 잤어?”
밤새도록 계약자들에게 시달린 덕분에 레오는 눈이 퀭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없다.
괴수에 가까운 레오의 강인한 체력은 하루 정도 날뛴다고 지칠 수준이 아니었다.
다만 계약자들을 관리하는데 엄청난 정신력을 소모했다.
대영웅의 강인한 정신력조차 지치게 할 정도로 3대 환수들은 대단했다.
“어, 밤에 잠깐 뭐 좀 하느라고.”
피곤한 표정을 짓는 레오를 보며 클로에가 물었다.
“피로 회복 포션 좀 줄까?”
클로에의 손에는 마법으로 추가한 얼음까지 동동 띄운 칼의 피로 회복 포션이 들려있었다.
포션을 빨대로 쪽쪽- 마시며 클로에가 말했다.
“이거 피로도 풀리고 의외로 별미거든.”
입학 때부터 칼의 피로 회복 포션을 애용해온 클로에가 빙긋 웃었다.
칼은 자신의 최고 인기 상품인 피로 회복 포션에 맛까지 더한 상태였다.
덕분에 여학생들 사이에 더욱 인기가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면 나야 고맙지.”
레오의 말에 클로에는 품에서 새 포션을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레오가 클로에의 손에 쥐어진 포션병에 아무 생각 없이 손을 뻗는 게 빨랐다.
“어?”
클로에가 당혹스러운 탄성을 내질렀다.
클로에의 손에서 포션병을 가져간 레오는 빨대에 입을 대고 두 모금 정도 마셨다.
땡볕이 내리쬐기 시작한 여름 아침.
차가운 피로 회복 포션은 정신을 들게 만들기 충분했다.
피로가 가시는 걸 느끼고 레오는 빙긋- 웃으며 포션병을 돌려주었다.
“확실히 정신이 좀 드네. 고마워.”
“어, 어…… 그러니까.”
“레오 학생, 잠깐 이쪽으로 와주세요.”
렌의 부교수인 안나의 부름에 레오가 다가갔다.
클로에가 황급히 레오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 이거 어떻게 하지. 잠깐. 당황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잖아? 쟨 별생각도 없을 텐데!’
레오가 떠나고 클로에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어쩔줄 몰라했다.
‘그, 그냥 빨대 때고 마셔? 아니. 어차피 한 모금 정도 남았는데 굳이 마실 것까지야. 아니. 근데 아깝잖아?’
클로에는 두근두근하며 입을 아- 벌리고 살짝 떨리는 손으로 빨대를 입에 가져다 대려다가 급히 손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근데 이거 진짜로 간접 키스? 아, 아니야! 아까워서 마시는 거야! 아까워서……!’
“뭐해?”
“흡?”
너무 놀라 자신도 모르게 빨대를 물어 버린 클로에가 토끼만큼 커진 눈으로 돌아온 레오를 보았다.
꿀꺽-!
피로 회복 포션을 한 모금 마신 클로에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안나 부교수님이 수업 준비 다 끝났다고 오래.”
“아, 알았어!”
레오의 말에 다급히 대답한 클로에는 먼저 걸어가는 레오의 뒷모습을 보았다.
땡볕이 내리쬐기 시작한 여름 아침.
클로에는 포션병 속에서 녹아내리기 시작한 얼음을 힐끔 보았다.
짤랑-!
얼음이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혼자서 당황하고 어쩔줄 몰라한 게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야속한 뒷모습을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뚱한 얼굴로 바라보던 클로에가 빨대를 입에 물었다.
스르르릅-!
빨대가 공기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려 퍼졌다.
***
안나를 따라 마법 강의실 앞에 도착했다.
두 개의 마법 강의실이 있는 가운데 안나가 몸을 돌렸다.
“여러분은 이제 각각 두 강의실에서 수업을 진행해주세요.”
그 말에 클로에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안나 부교수님. 저랑 레오는 교관으로 수업을 돕는 역할인데 왜 강의를 해야 하나요?”
그 말대로였다.
교관으로 뽑힌 학생들은 교수의 수업을 돕는 형태이지 수업은 진행하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입학 후보생들을 가르치라니.
레오와 클로에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렌 교수님의 명령이에요. 두 사람이 충분히 입학 후보생들을 가르칠 실력이 된다고 했어요. 복습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했죠.”
빙긋- 웃는 안나였지만 속으로는 깊은 한숨을 쉬고 있었다.
‘교수님! 왜 네 사람에게 강의를 시키는 건가요!’
‘내년에 입학할 학생들도 미리 알아야지! 자신의 1년 선배들의 위대함을! 레오 플로브의 위대함을 경배해야 할 거 아닌가!’
‘아니! 그 네 사람 보고 의욕 꺾일 거라는 생각은 안 해보셨어요?!’
‘오우! 오우! 안나 부교수! 사자는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리는 법이라네! 그런 나약한 정신을 가진 학생은 루메른 마법학과에 필요 없네!’
‘사자가 새끼를 낭떠러지에서 떨어트리는 건 잘못된 낭설이거든요?’
안나는 극구 렌 교수를 말렸지만, 그는 안나의 말을 들어 먹을 위인이 아니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안나는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최근 새치가 늘어난 것 같아.’
반년 전까지만 해도 반년에 한 번 있을까 하던 렌 교수의 발짝이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났다.
물론 그 원흉은 눈앞의 레오 플로브였다.
‘사표를 써야 하나?’
안나는 깊은 푸념을 내뱉었다.
“아바드랑 첼시는요?”
“두 사람은 렌 교수님의 담당이 아니라 오아르 교수님 밑에서 수업을 돕고 있으니 아마 다른 형태로 수업을 진행할 거예요.”
에메랄 학생이 300명이나 되다 보니 렌과 또 다른 1학년 마법학과 교수 오아르가 반반 나누어 수업을 진행했다.
당연하게도 입학 후보생 수업도 반으로 나뉘어 렌과 오아르, 각자의 방식대로 수업을 듣고 있었다.
물론 로테이션이 이루어지면 오아르가 담당하는 학생들이 이쪽으로 올 테니 한쪽 교수 수업만 들을 일은 없었다.
안나의 말에 레오와 클로에가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어쩔 수 없지.”
“최선을 다해볼게요.”
그렇게 말한 두 사람은 각각 두 교실로 들어갔다.
그런 두 사람의 뒤를 향해 안나가 말했다.
“두 사람도 수업을 번갈아 가면서 진행할 거예요.”
‘일단 레오 학생과 클로에 학생이니까.’
마법 이론에 한에서는 1학년 학생 중 따를 자가 없었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고학년들 보다도 더 이론에 능통하니까.’
안나 역시 크게 수업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입학 후보생들이야.’
안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의욕 상실 같은 걸 하지 말아야 할 텐데.’
*
“실패라. 한심하군요. 고작 1학년 한 명에게 가로막혀 실패하다니.”
“고작 1학년? 페가수스의 맹약자를 고작 1학년이라 부른단 말인가?”
분노한 목소리로 말하는 동포를 향해 칼리안의 비서, 에레나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페가수스의 맹약자든 뭐가 됐든 1학년 애송이 아닌가요? 하긴, 그 정도 수준이니까 고작 ‘인간’ 에게 당했겠죠. 당신을 위해 이 내가 이렇게 수고 고 있는데 고작 그따위로밖에 못 하나요?”
짜증스럽게 말하는 에레나를 보며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랫동안 루메른에 침입해온 게 당신 덕분에 허사가 되게 생겼어요. 어떻게 책임지실 건가요?”
에레나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미 꼬리를 밟혔어요. 곧 루메른은 나를 추격해낼 거예요. 이렇게 된 이상 이번 작전은 무조건 성공해야 해요.”
“어떻게 하자는 거냐?”
“간단해요. 당신이 날뛰면 돼요.”
“나더러 루메른을 상대하라는 건가? 지금의 나는 순식간에 소멸할 뿐이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완전히 지워진단 말이다!”
“지금 도박을 시도하지 않으면 당신은 영영 되살아날 기회를 잃게 될 텐데요?”
에레나의 비웃음에 남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대신 날뛰어주고 싶어도 전 한 ‘조각’ 일 뿐이라서요. 그러니 차라리 당신이 루메른을 공격하는 게 더 적합하지 않겠어요?”
“알겠다.”
그렇게 말한 남자가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에레나는 안경을 고쳐 썼다.
‘그나저나 그 애송이. 올 클래스일 때부터 거슬렸는데 페가수스와 계약까지 했다고?’
에레나의 눈에 증오가 어렸다.
‘하필 페가수스라니. 정말 증오스러울 정도로 닮았군.’
오래 전.
자신과 몇 번이고 싸워온 한 인간을 떠올린 에레나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그 혐오스러운 카일과 너무 닮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