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
레오를 바라본 타르타로스의 마족이 서늘한 눈으로 레오를 노려보았다.
“또 나를 방해하겠다는 건가?”
“그렇게 됐네.”
화르륵-
레오의 몸에서 화염의 오러가 일었다.
그런 레오를 본 마족이 손을 뻗었다.
지잉-!
허공에 핏빛의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걸 본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일순간 시야가 차단되었다.
어둠이 찾아오자 레오가 몸을 낮추었다.
‘저주.’
시야를 차단하는 저주.
레오가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내가 대응할 시간도 없이 찰나의 순간 저주를 걸었어.’
전생과 비교해 레오는 저주에 대한 내성이 떨어져 있다.
어쩔 수 없다.
잠재능력을 비교한다면 전생의 카일 보다 지금의 레오가 우위다.
언젠가 레오는 전생의 힘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해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잠재능력은 위라고 하더라도 전생의 막대한 힘과 비교한다면 지금은 부족하다.
그런 만큼 타르타로스의 고위 마족들이 작정하고 저주를 쓴다면 레오는 저주에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저주를 걸기 전.
레오는 어떤 저주인지,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이라 하더라도 알 수 있다.
그건 힘과 관계없는 ‘경험’ 의 영역.
그 경험은 레오가 가진 힘보다 더욱 강한 힘을 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무색하게도 레오는 순식간에 저주에 걸렸다.
‘저주에 특화된 마족인가?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라면 거의 군단장 수준인데?’
시야가 차단된 상태에서 레오가 오러를 일으켰다.
‘다른 감각은 빼앗기지 않았어.’
촉각, 후각, 청각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거기에 더해 레오는 오러를 이용해 온몸의 신경을 자극시켰다.
‘초감각.’
감각을 극대화시키는 용자 아르온의 기술.
초감각은 정찰뿐만 아니라 전투에서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기술이다.
극도로 초감각을 단련한 아르온의 경우 미래를 예측하는 수준까지 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정도 경지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레오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솟았다.
화악-
사방에서 마법의 기척이 느껴졌다.
레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공격의 궤적이 그려졌다.
화악-!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마법을 레오가 목을 꺾어 피했다.
콰앙-!
“아니!”
마족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의 눈에는 레오가 방금 전 공격을 ‘보고’ 피한 것처럼 느껴졌다.
번쩍! 콰가가강-!
레오는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붉은색 마법의 광선을 몸을 움직여 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확하게 마족이 있는 방향으로 돌격해왔다.
‘저주가 걸리지 않은 건가?’
잠시 레오를 바라보던 마족이 이내 그 자리를 피했다.
‘고작해야 영웅 후보생 1학년 애송이가 저주를 피하다니. 나도 갈 때까지 갔군.’
스스로에게 조소를 날리는 마족이었지만 그는 냉정했다.
‘아무리 페가수스의 계약자라고 해도 저주가 통하지 않는다면 숨겨둔 무언가가 있을 터.’
섣부르게 싸우다가 당하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다.
그는 이번 루메른 습격에 모든 걸 걸었다.
더이상 뒤로 물러날 곳이 없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한편 시야가 차단된 상태에서 마족을 물린 레오는 마족의 손등을 꿰뚫었던 검을 회수하며 몸을 돌렸다.
‘꽤 신중하군. 굉장한 고위 마족 같은데 말이야.’
아무리 페가수스의 계약자라고 해도 1학년이라면 방심할 법도 한데 그런 기색이 없었다.
레오의 얼굴을 본 마족의 눈이 꿈틀거렸다.
‘이 애송이, 아직 시야가 돌아오지 않았군? 그럼 대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거지?’
아무리 영웅 후보생이라고 해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그렇기에 아무리 힘을 잃었어도 저주만 통하면 쉽게 가지고 놀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눈앞의 1학년은 자신의 공격에 완벽하게 대응하고 있다.
마치 시야가 차단된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마냥.
‘증오스러운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영웅들조차도 이렇지는 않았거늘!’
오래전.
수많은 영웅을 역사의 저편으로 묻어왔던 마족으로서는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이 애송이는 대체……!’
전율하는 그의 머릿속으로 실라투나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만약 레오 플로브와 만나게 된다면 방심하지 않는 게 좋아요. 영 느낌이 좋지 않은 애송이거든요.’
‘그건 그놈이 올 클래스라서 그런 건가?’
‘맞아요.’
‘이해할 수 없군. 올 클래스든 뭐든 간에 고작 1학년 애송이에 불과할 텐데? 아무리 내가 힘을 잃었어도 나는 타르타로스의 군단장. 리스 제르딩거도 아닌 그깟 애송이를 조심하라고 하다니 자존심이 상하는군.’
‘그만큼 올 클래스는 특별하니까요.’
‘하, 타르타로스의 지배자라고 으스댈 때는 언제고 고작 5000년 전에 사라진 대영웅과 닮았다는 이유로 1학년을 신경 쓰다니. 실망스럽군.’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하지만 그 애송이가 이때까지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으로 만들어 왔다는 사실만은 잊지 마세요.’
현존하는 9명의 군단장.
그중 재앙의 시대 이전부터 살아온 마물 여왕, 사령왕, 거인왕은 격이 다른 존재였다.
단순히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이 아니다.
재앙의 시대 당시에 존재했던 다른 군단장들이 대영웅들에게 토벌당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토벌당하지 않고 살아남은 괴물들이다.
위대한 지혜의 왕 리시나스가 에레보스와 3대 군단장.
3대 군단장의 토벌을 포기하고 에레보스 토벌을 우선으로 잡은 건 일종의 도박수였다.
3대 군단장을 모두 쓰러트리고 난 후 토벌대의 전력이 온전할 것이라고 리시나스도 장담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로 그 도박은 성공했지만, 그 덕분에 3대 군단장은 5000년이 지난 지금도 토벌되지 않는 공포의 존재로 군림하고 있다.
그때 실라투나를 비웃기는 했지만, 그는 왜 그녀가 그토록 올 클래스라는 이유만으로 레오를 경계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알겠다.
눈앞의 1학년은 격이 달랐다.
‘이 녀석은 살려 둬서는 안 된다.’
훗날 타르타로스 전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적으로 성장할 게 분명했다.
‘아무리 공격에 빠르게 대응한다 해도 결국 시야가 차단되었다면 한계가 있을 터.’
“레오 플로브여, 군단장인 내 손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군단장?”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고오오오오오-!
그와 함께 주변의 그림자들이 검붉은색으로 물들더니 일제히 레오를 덮쳤다.
시야가 차단되었지만, 초감각으로 날이 선 감각은 레오의 머릿속으로 공격의 위력과 경로를 자연스럽게 그려지게 만들었다.
‘이건 보지 않고는 조금 힘들겠는데.’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레오의 시야를 막고 있던 저주가 풀렸다.
레오의 시야에서 초점이 돌아오자 군단장의 눈이 꿈틀거렸다.
‘이렇게 빠르게 풀었다고?’
저주를 푸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압도적인 내성의 힘으로 풀어 버리는 것.
또 다른 하나는 몸을 얽매는 저주의 술식을 해석해 풀어 버린 것이다.
어느 한쪽이든
쉽지 않은 방법이었다.
‘이놈은 대체 뭐지?’
알면 알수록 놀라웠다.
화르르륵-!
레오가 오러를 발산했다.
콰가가가강-!
피하기 애매한 궤적으로 날아오는 공격은 불꽃의 오러로 쳐내고 그 외의 공격은 몸을 날려 빠르게 피해냈다.
초감각에 의해 동체 시력 역시 빠르게 상승했기에 공격을 피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타닥-
바닥에 착지한 레오를 보며 군단장이 말했다.
“저주를 어떻게 푼 거지?”
“감각 교란 계통의 저주는 몸속에 흐르는 마나를 꼬는 저주잖아? 마나의 흐름만 다시 정렬하면 간단하게 풀리지.”
입꼬리를 말아 올리는 레오를 보며 군단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방식으로는 그렇게 빨리 해주할 수 없을 텐데? 무슨 술수를 쓴 거냐.”
“술수? 그딴 거 없어.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단순 무식하게 풀어 버린 거야.”
레오가 톡톡- 머리를 건드렸다.
“이것 보다 복잡한 저주도 많이 풀어봤거든.”
“있을 수 없는 일! 나 키고르스의 저주보다 강력하고 복잡한 저주를 사용하는 마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키고르스? 저주왕? 키고르스라고?”
저주왕 키고르스.
수십 년 전 검성 칼리안에 의해 토벌당한 군단장이다.
“오래전에 사라진 군단장을 자처하는 건가? 타르타로스도 갈 데까지 갔군.”
“멋대로 생각해라. 어차피 네놈은 여기서 죽을 테니까.”
키고르스의 말에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힘은 군단장이라고 하기에는 형편없는 수준이야.’
만약 군단장이라면 마주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육체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다.
군단장이라고 함은 말 그대로 존재 자체만으로 전율에 가까운 재앙.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영웅들이 힘을 합쳐야 겨우 쓰러트릴 수 있는 악몽과도 같은 존재다.
‘하지만 저 센스는 확실히 군단장급이야.’
타르타로스와의 압도적인 전투 경험.
특히나 군단장과도 수없이 싸워온 레오였기에 빠른 대응이 가능했던 공격들이지 아마 다른 이들이었다면 대응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었을 공격들이었다.
‘만약 진짜 키고르스라면 교장이 완전한 토벌에 실패했을 수도 있어.’
레오가 검을 다잡았다.
‘군단장이라고 생각하고 상대하자.’
레오가 자세를 낮추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키고르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에게 군단장의 공포를 가르쳐 주마.”
고오오오오오-!
허공에 시커먼 공간이 열렸다.
그와 함께 그곳에서 온갖 이형의 괴물들이 쏟아지듯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본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군단장은 개개인의 힘도 힘이지만 그보다 더 위협적인 건 마족을 생성하는 권능이었다.
생명체를 잡아먹고 에너지로 축적해 마족을 만들어 낸다.
마치 지옥문이 열린 것처럼 하급 마족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레오가 영력을 일으켰다.
화악-!
순백의 소환진과 동시에 아티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티. 마족들을 상대해줘.”
[네, 주인님!]
파지지지직-!
아티의 몸에서 백색의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콰지지직-!
아티가 돌격하자 쏟아져 나온 마족들을 짓밟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놈! 자신의 가장 강력한 공격 수단을 마족들을 처리하는데 쓰는 것이냐!”
키고르스가 비웃음을 날리며 레오를 향해 돌격해왔다.
고오오오오오오! 꾸물- 꾸물-!
사람의 형체를 잃어간 그의 몸에 여러 개의 눈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사람 형체의 살덩어리가 된 키고르스를 보며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모습.
하지만 의태를 집어 던지자 흑마력이 더욱 상승했다.
고오오오오-!
검붉은색 흑마력에 휘감긴 팔을 치켜들었다.
저주왕이라 불리는 군단장답게 온갖 저주로 도배된 팔이 레오를 노렸다.
스치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게 할 강력한 저주 덩어리.
피하려고 하니 주변에 온갖 저주가 도배 되었다.
“피할 수 없다! 막는다해도 네놈은 죽음에 이를 것이다!”
희열에 찬 비웃음을 내지르는 키고르스를 보며 레오가 웃었다.
“이봐.”
“……!”
그 여유로운 웃음에 키고르스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사령왕이 한마디 했을 것 같은데.”
“뭐라?”
“군단장치고는 경박하다고 말이야.”
“네놈이 어떻게!”
오래전.
사령왕이 했던 말을 하는 레오를 보며 키고르스의 눈들이 부릅떠졌다.
“어떻게……!”
“그럴 것 같더라고.”
화르르륵-!
레오의 앞에 붉은색 소환진이 생성되었다.
그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불타는 새를 보며 키고르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피닉스?”
“그놈은 시체나 만지는 주제에 품위를 신경 쓰는 놈이잖아?”
사령왕을 떠올리며 비틀린 미소를 지은 레오가 오러와 마력을 일으켰다.
화르르륵-!
제르딩거의 홍염.
룬드아의 작열.
피닉스의 불꽃을 베이스로 만든 불꽃이 피오라를 감쌌다.
콰아아아아아아악-!
마치 태양을 휘감은 것처럼 빛나는 피오라가 날갯짓 했다.
“고작 피닉스의 불꽃으로 군단장을 막을 것이라 생각 한 거냐!”
화르르르륵-!
피오라의 불꽃이 잔재만 남은 군단장의 몸을 불태웠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키고르스의 몸이 더더욱 비대해져 갔다.
그걸 본 레오가 인상을 썼다.
‘이걸로 죽지 않는 건가?’
고오오오! 콰앙-!
키고르스의 주먹이 레오를 때렸다.
쾅-!
레오의 몸이 처박히듯 영웅의 전당의 문에 등이 부딪혔다.
콰앙-! 후두둑-!
영웅의 전당 내부로 날아든 레오의 몸이 그대로 문을 뚫고 벽에 처박혔다.
후드드득-!
대리석 조각이 흘러내렸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았다.
‘저주는 피오라의 불꽃에 모두 타 버렸어.’
파닥-! 파닥-!
빨간 병아리의 모습으로 돌아온 피오라가 다급히 레오의 어깨에 앉았다.
삐약?
“괜찮아.”
파앗-!
박힌 몸에 힘을 주어 벽에서 빠져나온 레오가 바닥에 착지했다.
골이 띵하고 울렸다.
입은 피해는 물리적인 피해뿐.
그마저도 일순간 오러 아머를 전개해 데미지를 반감시켰다.
하지만 그렇게 대응했음에도 타격이 엄청나다.
‘힘을 잃었다고 해도 군단장은 군단장이라는 소리군.’
레오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일깨웠다.
벌써 루메른에 한 학기 이상을 다녔고 대서고도 수없이 이용했던 레오였지만 영웅의 전당에 들어온 건 처음이었다.
다른 학생들이야 영웅의 무구에 관심을 가졌겠지만, 레오에게는 그다지 관심 가는 물건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개를 든 레오가 키고르스 쪽을 보았다.
잿더미가 되었음에도 키고르스는 어떤 검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드디어……! 드디어!”
‘저게 대체 뭐라고 저걸……?’
희열에 찬 표정으로 어떤 ‘낡은 검’ 에 다가가는 키고르스를 보며 얼굴을 구기던 레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가 빠지고 녹슨 검이었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도 엄청난 ‘마나’를 품고 있는 게 보였다.
비록 낡은 검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영웅이 사용했던 무구라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레오가 놀란 건 검이 강력한 마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검의 손잡이 끝에 새겨진 장식 때문이었다.
검은 낡았음에도 장식만큼은 새것처럼 빛났다.
검을 만든 장인이 검 보다 그 장식에 더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식.
그리고 그 검은 레오가 본 적이 있는 검이었다.
‘드웨노의 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