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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으로 버텼다고?’
토루아가 사용한 중력 마법은 사용자를 제외한 주변의 중력을 조작하는 마법이었다.
주변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고난도 마법.
술식 역시 매우 복잡하고 그런 만큼 사용하기도 상당히 어렵다.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매우 강력한 마법이다.
물론 이 마법에도 약점은 있었다.
결국 마법인 만큼 술식을 해제하거나 항마력을 높여 저항하면 그만이다.
토루아도 이 마법에 대처할 수 있는 1학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처하는 건 예상 못 했네.’
“힘으로 억지로 버티다니. 마법사답지 않은 걸?”
“전 올 클래스니까요.”
레오의 말에 토루아가 팔짱을 꼈다.
마법학과의 5학년으로서.
또 최고의 마법학과 학생으로서 토루아는 레오의 자질을 아쉽게 여겨왔다.
딱히 레오의 기사로서의 재능과 소환사로서의 재능을 외면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레오가 가징 장점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마법’이라고 토루아는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흥미였다.
하지만 레오를 알게 될수록 레오만큼 마법사에 어울리는 인간도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지금도 그 사실은 변함이 없지.’
세드젠이 이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단순히 1학년만을 위한 건 아니었다.
학교를 떠나는 5학년들에게 조금이라도 아쉬움이 없도록 1학년들에게 가르침과 조언을 해주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학교를 떠난다고 루메른과 연이 끊기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5학년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뭐라도 하나 더 하고 가라는 교수님의 배려겠지.’
힐끗- 세드젠을 본 토루아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토루아 역시 앞으로 루메른을 이끌어 나갈 후배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독려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이 애한테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까?’
토루아는 레오에게 어떠한 조언을 해 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토루아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쿠궁-!
“케헥!”
“커억?”
레오와 팀을 짠 다른 학생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압박감이 더욱 거세졌다.
레오 역시 무릎이 휘청거렸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팔다리가 후들거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중력이 온몸을 짓눌렀다.
하지만 레오의 무릎은 꺾이지 않았다.
토루아가 빙긋 웃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화악-!
‘계속 강해지는군.’
억지로 마법에 저항하던 레오가 씩- 웃으며 토루아를 보았다.
그 순간.
화악-!
클로에와 아바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걸 본 토루아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디스펠?’
이때까지 그 누구도 토루아의 중력 마법을 디스펠 하지 못했다.
하지만 클로에와 아바드는 마법학과 1학년 중 1, 2위를 다투는 실력자.
빠른 시간에 토루아의 마법을 디스펠하는 데 성공했다.
화악-!
레오 역시 빠르게 디스펠에 성공하며 토루아의 마법 영향력에서 벗어났다.
그 뒤를 이어 첼시 역시 마법을 디스펠 했다.
“얍!”
첼시가 순식간에 토루아와 거리를 좁혔다.
화악-!
토루아가 첼시를 피해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에게 걸린 중력마법이 풀렸다.
“역시! 주변 일대를 장악한 마법이라 사용자가 발을 떼면 풀리는구나!”
“그걸 꿰뚫어 보다니. 제법이네. 역시 마법학과 3등.”
토루아는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철퍽- 철퍽-
그러자 허공에서 마법진이 열리며 푸른색 물컹거리는 물체 여덟 개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 본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슬라임 같은데.”
“토루아 선배님이 소환 마법도 사용하셨었나?”
소환마법.
소환술과 마법을 융합시킨 기술이다.
대표적으로 마법사가 사역마를 부릴 때 사용하는 기술이다.
사역마는 환수나 정령이 아닌 마법으로 강화된 생물이 일반적이다.
여덟 마리의 슬라임들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사람의 형상을 취해갔다.
그걸 본 첼시가 당황했다.
“나?”
“딩동댕. 정답.”
토루아가 빙긋 웃었다.
“이 슬라임은 내가 만든 키메라야. 상대의 모습과 능력을 카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지. 이름은 디토야.”
“모습과 능력을 카피한다고요? 아무리 토루아 선배가 대단해도 생명 마법 공학 쪽은 전문이 아닌데 그런 대단한 키메라를 만드는 게 가능한가요?”
클로에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자 토루아가 눈을 깜빡였다.
그러더니 클로에의 모습을 한 슬라임에게 다가가더니 쪼그리고 앉아 치맛자락을 살짝 들추었다.
“뭐 하세요!”
클로에는 얼굴이 시뻘게져 항의했다.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슬라임이 희롱당하자 괜히 창피해진 것이다.
토루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깜빡였다.
“후배군. 열다섯 살이면 아직 풋풋한 나이는 맞는데. 취향이 너무 소녀하지 않니? 토끼는…….”
“악! 악! 악! 악!”
클로에는 발작하듯 고함을 지르며 토루아의 말을 막았다.
순간적으로 마법을 이용해 목소리까지 키웠기에 중간에 토루아의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특히 소리에 민감한 아바드와 첼시는 귀까지 막아야 했다.
토루아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깜빡이더니 레오를 보며 말했다.
“이래서는 레오군을 꼬실…….”
“아아아아아악!”
이번에는 연병장 전체가 떠나가라 클로에가 소리쳤다.
연병장에 있는 모든 이가 깜짝 놀라 귀를 막고 클로에를 보았다.
모두는 붉어진 얼굴로 어깨를 들썩이는 클로에를 한 번 본 후 문제 제공의 원인인 토루아를 바라보았다.
“이봐. 토루아. 후배를 너무 괴롭히지 마.”
자무아의 핀잔에 토루아가 쿡- 쿡- 웃었다.
“미안. 너무 귀여워서.”
“아무리 귀여워도 이렇게까지 괴롭히는 건 민폐…….”
“하압!”
화르르륵-!
셀리아의 기합과 함께 바스테라 전용구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자무아의 이마에 정통으로 꽂혔다.
콰아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현 1학년 기사학과 탑인 셀리아의 막강한 화염의 오러가 담긴 공격.
특히나 바스테라와 상성이 좋은 불꽃의 오러가 담긴 공격이다.
1학년은 물론이고 2, 3학년조차 전통으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릴 공격이었다.
툭- 팅- 팅- 팅-
하지만 공은 허망하게 바닥에 떨어져 튕겼다.
“흐음.”
셀리아의 공에 맞아 고개가 꺾였던 자무아가 목을 주무르며 히죽 웃었다.
“이번 건 조금 뻐근한데?”
“큭.”
벌써 세 번째 공격이었다.
듀란, 첸 시아에 이어 셀리아의 공격.
하지만 자무아는 그 공격을 모두 정면으로 맞아 주었다.
그런데도 처음 서 있던 그 자리에서 한 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자무아가 선언하듯 말했다.
“열 번 선공을 양보할게.”
“예?”
셀리아가 당황했다.
“여기서 난 너희가 열 번 공을 던질 때 동안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어.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너희 승리다.”
자무아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정한 패널티를 전략적으로 행동해도 좋아. 한 골 넣고 시간을 보내도 돼. 세드젠 교수님은 내용이야 어쨌든 5학년인 나를 이기면 좋은 점수를 주실 분이야. 그건 내가 장담할게.”
자무아의 말에 첸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렇게까지 편의를 봐주시는 이유가 뭐죠?”
“너희가 기사학과를 이끌어갈 녀석들이기 때문이지. 난 뛰어난 후배들이 좋거든.”
자무아가 히죽 웃었다.
“5학년 선배로서 너희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기회를 주는 거지.”
“그거 감사하군요.”
파지지직-!
듀란이 셀리아의 손에서 공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그의 이마에는 힘줄이 솟아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호의는 이쪽에서 거절합니다.”
콰가가가가가각-!
날카롭다 못해 파괴적인 번개의 오러가 넘실거렸다.
그걸 보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언제 저렇게?’
번개 속성은 불꽃처럼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속성이다.
하지만 ‘속도’ 에도 특화되어 있는 만큼 듀란은 위력과 속도를 함께 추구해 왔다.
그렇다 보니 셀리아의 불꽃 오러 보다는 공격력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걸 부정하기라도 하듯 현재 듀란의 손에 어린 번개의 오러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담고 있었다.
화악-!
듀란이 공을 치켜들었다.
번쩍-
황금색 섬광과 동시에 번갯불이 튀기며 공이 듀란에게 직격했다.
파지지지직-!
사방으로 스파크가 튀었다.
툭-
하지만 공은 허망하게 바닥을 뒹굴었다.
“이걸로 한 번이다.”
자무아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하울이 공을 가져왔다.
그리고 질린다는 눈으로 자무아를 보았다.
‘이게 철벽 자무아 선배.’
리스, 울타, 토루아, 자무아는 5학년 최강자들이라 불렸다.
하지만 리스, 울타, 토루아와 달리 자무아의 이미지는 상대적으로 화려하지는 않았다.
리스처럼 압도적인 공격력을 지닌 것도 아니며 토루아처럼 다양한 마법을 쓰지도 못한다.
그렇다고 울타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대인전에서 만큼은 누구보다 까다로운 상대가 자무아였다.
자무아의 무서운 점은 ‘방어력’.
절대 쓰러지지 않는 괴물 같은 체력과 방어력 덕분에 ‘철벽’ 이라 는 이명을 가지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끝까지 버티고 버텨 파티원들의 목숨을 지켜온 남자.
‘아무리 1학년 기사학과 최강인 저 세 사람이라고 해도 과연 바스테라로 자무아 선배를 움직이게 하는 게 가능할까?’
아무리 바스테라가 위험하고 실전에 가깝다고 해도 실전과는 달리 제약이 있는 스포츠.
세 사람과 팀을 이룬 이들은 자무아를 어떻게 쓰러트려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울.”
“응?”
“공 좀 줄래?”
하울은 자신 앞에 다가온 셀리아에게 공을 건넸다.
그걸 받은 셀리아가 빙긋 웃었다.
“고마워.”
살짝 얼굴을 붉힌 하울이 헛기침을 했다.
“시아, 듀란 모여 봐.”
셀리아는 옆에서 경기를 하고 있는 레오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
“내게 작전이 있어.”
***
“어때? 내 슬라임들 대단하지?”
토루아는 팔짱을 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외모도, 능력도 똑같아!”
“확실히 대단하군요.”
아바드가 손바닥을 펼쳤다.
“윈드 스톰.”
콰가가가각-!
거대한 회오리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럼 이 정도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는지 볼까요?”
“음. 그건 무리겠는걸?”
콰가가각-!
토루아의 말과 동시에 여덟 개의 슬라임이 갈려 나가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이내 꾸물꾸물 뭉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응할 수는 없어도 내구력이 뛰어나서 금방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그리고…….”
토루아가 들고 있던 공을 휙- 하고 후배들의 골대로 던졌다.
“이건 바스테라야. 너무 슬라임에 한눈 팔려있는 거 아니야?”
가벼운 손짓과 달리 마법에 의해 엄청난 가속도가 붙은 공을 아바드가 급하게 공을 막으려 할 때였다.
“핌불레르트.”
쩌저저저저적-!
작은 주문과 동시에 엄청난 냉기가 휘몰아쳤다.
냉기는 얼음의 벽을 만들어 공을 붙잡은 것도 모자라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던 슬라임들까지 모두 얼어붙게 만들었다.
마법을 쓴 클로에가 후우- 하고 지팡이를 거두었다.
그녀의 주변으로 엄청난 냉기가 휘몰아쳤다.
“어라? 새로운 고유 마법이네?”
토루아가 눈을 빛냈다.
화르르륵-
토루아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번쩍-!
그와 함께 허공에서 지팡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1학년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마법사가 지팡이를 쥔다는 건 단 하나를 의미했다.
‘본격적으로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