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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장 한가운데 선 두 사람을 지켜보며 엘레나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어떻게 될지 흥미롭네요.”
그 중얼거림에 엘레나의 옆에 있던 타크온이 말했다.
“흥미로울 게 뭐가 있지? 레오 플로브가 리스 선배의 상대가 되지 않은 건 너무도 당연한 일이지 않나.”
주변 3학년들이 그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아무리 쟤가 대단하다고 해도 겨우 1학년이라고.”
그 말에 엘레나가 빙긋 웃었다.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죠, 하지만.”
엘레나가 눈을 반짝였다.
“레오군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능력이 많아요.”
레오를 바라보며 엘레나는 빙긋 웃었다.
“아마 이번 대련은 쉽게 끝나지는 않을 거예요.”
판을 깔아 놓은 건 엘레나다.
그녀는 레오를 학생회장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럴 능력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레오는 그 깔린 판을 이용해 스스로 학생회장이 되려 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지면 절대 놓치지 않아.’
노련한 레오의 대처는 엘레나를 언제나 놀라게 만들곤 했다.
잔뜩 기대 어린 눈으로 흥미진진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엘레나의 모습은 같은 동기생들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레오 플로브.’
타크온이 팔짱을 낀 채 레오를 바라보았다.
루메른의 고고한 여왕이 마치 그 나이 또래의 소녀와도 같은 풋풋한 모습을 보인다.
‘네놈은 대체 정체가 뭐냐.’
타크온이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한편.
“응? 드디어 시작된 건가? 흐아암!”
4학년 관중에서 안대를 차고 졸고 있던 하르크가 늘어져라 하품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 모습을 다른 4학년들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쳐 자다가 일어났냐?”
“잔 건 아니지. 몇몇 녀석들 경기는 잘 지켜봤으니까.”
킥킥- 웃은 하르크는 아직까지 잠에 덜 깬 얼굴로 음냐- 입맛을 다셨다.
그 모습을 보며 눈을 흘기던 4학년 여학생들이 살짝 얼굴을 붉혔다.
외모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뛰어난 하르크였다.
‘안 돼! 저 외모에 속으면 안 된다고!’
‘저 자식은 의욕 없는 잠탱이일 뿐이야!’
“그나저나 엘레나 제르온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4학년 마법학과의 튤 베니아가 안경을 고쳐 쓰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 하르크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정말로 레오 플로브를 학생회장으로 만들고 싶은 거야.”
“뭐 때문에 그런 짓을 하지? 1학년을 학생회장으로 만들어서 꼭두각시로 부리겠다는 건가? 하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자기가 학생회장이 되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텐데.”
“그런 생각도 없을걸.”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 온 하르크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마 저 1학년 꼬맹이에게 뭔가를 봤겠지. 다음에는 내가 붙어 보자고 할까?”
호전적인 호승심을 드러내는 하르크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쉰 튤은 조금 냉정한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만약 저 1학년이 학생회장이 되면 미리 포섭을 해놓는 게 좋으려나.’
4학년 입장에서는 엘레나가 학생회장이 되는 것보다 만만한 1학년이 되는 게 훨씬 나았다.
한편, 2학년들은 모두가 못마땅한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가 뭔데 학생회장님이랑 붙는다고 난리야.”
“저렇게 붙어서 망신을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지.”
그런 가운데 릴은 떨리는 마음으로 레오와 리스를 번갈아 보았다.
‘역시 레오에게는 학년 대표다운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나 같으면 절대 저렇게 못 하는데!’
대단한 후배라고 생각하며 릴이 감탄했다.
한편.
교수들 역시 이 대결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팝콘 팝니다! 팝-콘!”
“거기 너.”
“옙! 유라 교수님!”
어느새 관중석 주변에서 간식을 팔고 있는 칼에게 유라 교수가 다가갔다.
“팝콘 한 통 줄래? 카라멜 뿌린 걸로.”
“예!”
“고마워.”
생긋 웃으며 돈을 내던 유라의 손을 칼이 덥석 잡았다.
“유라 교수님.”
“왜?”
“음료도 안 사시겠습니까?”
“나 목은 안 마른…….”
스윽-!
칼은 종이컵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황금색 액체를 본 칼이 소곤소곤했다.
“지금 구입하시면 버터 오징어도 함께…….”
“하? 지금 신성한 대련 평가를 관람하는 교수에게 고작 이딴 걸 팔겠다는 거야?”
유라가 싸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칼이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윽! 너무 섣불렀나?’
“더 독한 건 없니?”
“……없는데요.”
“에잉. 배짱 부족한 녀석. 이런 걸로 간에 기별이나 나겠어? 나 때는 말이야! 엉? 쪼잔하게 맥주 같은 거 안 팔았어! 엉? 아주 비싼 술로다가! 엉?”
칼을 붙잡고 투덜거리면서도 유라는 버터 오징어까지 챙겨 관중으로 돌아갔다.
오징어를 입으로 씹으며 아인에게 유라가 말했다.
“선배도 먹을래요?”
“너나 먹어라.”
“아, 그럼 오러 좀 일으켜 주실래요?”
“왜?”
“시원하게 해서 먹게요.”
컵을 살랑살랑 흔드는 유라를 보며 아인이 정수리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한편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렌은 팔짱을 끼고 대련장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렌 교수님은 레오 학생이 학생회장이 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히 대찬성이지. 마법학과에서 1학년 학생회장이 탄생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나?”
“……아니. 레오 학생은 아직 마법학과 학생이 아닌데요?”
“게다가! 짐승 놈들과 귀쟁이들이 더 이상 레오 학생에게 더러운 추파를 던지지 않을 게 아닌가?”
렌의 말에 안나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학교 전체가 두 사람의 대결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대련장 한가운데 마주 선 두 사람 사이로 체이라가 다가왔다.
“그럼 둘 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멋진 모습을 보여줬으면 해.”
그 말을 남기고 체이라가 대련장을 내려갔다.
“이렇게 나를 지명할지는 전혀 예상을 못 했는데.”
“전 도움 받는 것보다 스스로 해결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자립심이 있는 건 좋은데 자신은 있는 거냐?”
“한 번 지켜봐주세요.”
“후후. 기대할게.”
레오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리스가 아공간 마법이 걸린 팔찌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아공간이 열리며 롱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보고 레오 역시 아공간을 열었다.
탁-! 휘리릭-!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무기를 본 리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리스뿐만 아니라 관중들도 웅성거렸다.
“창?”
“쟤 창을 쓸 줄 알았어?”
레오가 꺼내 든 무기는 다름 아닌 창이었다.
그 모습을 본 리스는 속으로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입학시험 때도 온갖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었다고 했지?’
입학한 이후에는 레오가 검만 사용했기에 모두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편, 1학년들도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쟨 뜬금 없이 웬 창이래?”
“쇼맨십 아니야?”
“레오가 그럴 성격은 아니잖아?”
5반 학생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였다.
“와! 와!”
첼시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흥분을 주체 못 하는 첼시를 보며 일리아나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래?”
“레오 오빠는 다른 무기도 잘다루거든!”
“뭐?”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는데!”
입학식 당시.
오러도 사용하지 못하면서 괴물을 막아냈던 레오의 모습을 목격했던 첼시로서는 그때의 상황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레오 오빠는 정말 멋있었는데!’
첼시가 양 주먹을 꼭 쥐었다.
한편, 대련장에서 리스는 검의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좋아, 그럼 얼마나 잘 다루는지 볼까.’
저벅-
리스가 레오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화악-!
레오는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 오는 리스를 향해 창을 고쳐 쥐고 빠르게 찌르기를 감행했다.
획-!
순간 리스가 창을 피했다.
엄청난 속도와 급소를 노리는 날카로움이 있었지만, 리스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무리였다.
‘검과 창의 대결에서 근접을 허용하면 안 되지.’
말 그대로 허무하게 끝날 수 있는 상황.
리스는 거침없이 레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번쩍-!
레오가 창을 쥐지 않은 다른 손을 휘둘렀다.
리스는 빠르게 반응해 뒤로 물러섰다.
레오는 어느새 아공간에서 검을 꺼내 휘두르고 있었다.
‘오른손에는 창, 왼손에는 검. 쌍수 무기라.’
제법 특이한 스타일의 전투법이라 생각하며 리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런데 무기 두 개의 특성을 살리면서 싸우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일 텐데?’
거리를 벌렸을 때는 창을 이용한 공격.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검을 이용한 방어.
언뜻 보기에는 밸런스가 잡힌 이상적인 전투방식이다.
하지만 어느 한쪽이라도 다루는 게 서투른 순간 순식간에 빈틈이 생긴다.
특히나 리스 같은 검술에 이골이 난 검사를 상대로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자신 있는 거냐? 레오.’
리스가 다시 레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휙-! 텅-!
레오가 휘두른 창을 리스가 막아냈다.
창대와 검날이 부딪히며 스파크가 튀었다.
콰가가가각-!
리스는 그대로 검날을 레오에게 향하게 한 채로 품으로 파고들었다.
챙-!
하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고 검으로 리스의 공격을 방어해냈다.
콱-!
하지만 자세가 불안정했다.
리스가 그대로 힘을 주어 밀어붙이자 레오의 몸이 휘청거리며 밀렸다.
“아!”
“너무 시시하게 끝나겠는데?”
아직 제대로 오러도 사용하지 않은 순수한 기술 vs 기술의 싸움.
그런데 그 싸움에서조차 너무도 허무하게 끝날 기미가 보이니 학생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리스 역시 봐주지 않고 빈틈을 노린 순간 레오를 끝장내려 했다.
순간, 레오가 검과 창을 동시에 손에서 놓았다.
일순간 무방비가 된 레오를 보며 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나를 당혹시킬 생각인가? 그런 생각이라면 수가 너무 얕은데?’
이 정도로 당황하기에는 리스가 겪어온 전투의 숫자는 너무도 많았다.
리스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무방비가 된 레오에게 검을 휘둘렀다.
휘익-! 탁-!
일순간 리스의 눈이 크게 뜨였다.
레오는 정확하게 리스의 검의 궤적을 읽고 검면을 손바닥으로 쳤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탁-! 타닥-!
마치 평균대 위에 올라간 곡예사처럼 몸을 띄운 레오를 떨쳐내기 위해 리스가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균형을 잡은 레오가 몸을 회전시켜 리스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콱-!
리스의 눈이 꿈틀거렸다.
어깨에 힘을 줘 공격을 버텨냈지만 묵직한 통증이 덮쳐왔다.
휘릭-!레오는 반동을 이용해 빠르게 리스의 뒤로 넘어왔다.
그리고 허공에 흩날리는 창대 끝을 잡고 순식간에 리스에게 공세를 퍼부었다.
캉! 카가각! 휘악! 콱-! 챙!
레오의 폭풍 같은 창격이 시작되었다.
리스는 그 공격을 막아내며 반격의 틈을 만들었다.
화악! 콱-!
리스가 휘두른 검을 레오가 창을 일자로 눕혀 창대로 막아냈다.
일순간 레오와 리스의 눈이 마주쳤다.
레오는 그 자세 그대로 리스에게 돌격하며 창대로 검을 밀어냈다.
퉁-! 콱-! 사악-!
접근을 허용한 레오가 그대로 발을 휘둘렀다.
하지만 리스는 순식간에 검을 회수해 레오에게 검을 휘둘렀다.
레오가 멀찍이 리스와 거리를 벌리고 바닥에 착지했다.
쥬르륵-!
오른쪽 어깨부터 가슴팍을 지나 옆구리까지.
교복이 날카롭게 잘렸다.
그리고 희미하게 실 같은 검상이 생겼다.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교복에 피가 배어 나왔다.
‘움직이는데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군.’
레오는 아린 통증을 무시하고 자세를 잡았다.
한편 어깨와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느끼며 리스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 애는 대체 뭐지.’
레오의 무술실력은 조금도 리스에게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경악스러운 창술과 체술을 선보이며 리스의 빈틈을 정확하게 찔러 유효타를 두 번이나 먹였다.
‘아니. 수 싸움에서는 나보다 명백히 위다.’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순수한 기술 싸움에서 레오는 학년 최강이라 불리는 리스를 압도한 것이다.
학생 모두가 경악에 찬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리스는 경이롭다는 눈으로 레오를 보았다.
일평생 검을 손에 쥐고 그걸로 정점에 오른 한 사람의 기사로서.
레오의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은 예술과도 같게 느껴졌다.
‘역시 레오는 천재를 넘어선 무언가야.’
감탄을 하며 리스가 오러를 일으켰다.
화르륵-!
제르딩거의 불꽃이 타올랐다.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해볼까?”
레오도 리스도 서로가 이게 준비운동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그럴까요?”
화륵-!
레오의 몸에서도 똑같은 불꽃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이이이잉-!
허공을 수놓는 수많은 마법진.
그걸 보며 리스가 검을 쥐었다.
“드디어 올 클래스의 힘을 볼 수 있겠는걸?”
콰가가가가각-!
화염의 회오리가 리스의 주변에 휘몰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