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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말도 안 돼!”
“저게 가능해?”
3학년과 4학년들 사이에서 경악스러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 2학년들 경우에는 찰나의 순간 일어났던 레오와 리스의 공방을 보는 것조차 벅차 두 사람이 얼마나 경이적인 움직임을 펼쳤는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1학년 기사학과 탑들은 주먹에 힘을 주었다.
한편, 5학년 관중석에서는 자무아가 팝콘을 먹으며 중얼거렸다.
“저 정도였나? 저건 대단하다 못해 징그러운 수준이군.”
혀를 내두르는 자무아의 반응에 옆에서 무언가를 쓰고 있던 토루아가 힐끗- 대련장을 보며 말했다.
“저 정도니까 리스가 학생회장으로 추천한 거겠지.”
“그렇긴 하군. 그나저나 토루아. 너 며칠 전부터 대체 뭘 그렇게 쓰고 있냐.”
“졸업 연기 신청서.”
“…….”
토루아의 말에 자무아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써 열 번째 퇴짜를 맞았어.”
이미 졸업 논문까지 다 작성한 토루아가 전례 없던 신청서를 제출하자 마법학과 교수들은 뒷목을 거꾸로 잡았었다.
사유는 다름 아닌 마법 연구.
“어디 보자.”
자무아의 말에 토루아는 순순히 졸업 연기 신청서를 건넸다.
“졸업 연기 신청서. 1년을 더 루메른에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사유, 마법 연구. 구체적인 연구 계획. 레오 플로브의 ‘바이블’ 마법 술식 분석 연구 및 레오 플로브 집중 관찰?”
졸업 연기 신청서를 바라보던 자무아가 말했다.
“넌 이게 될 거라고 보냐?”
“음…… 집중 관찰은 역시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으니 빼는 게 좋을까?”
진지한 토루아를 보며 자무아가 한숨을 쉬었다.
학교에서 가장 똑똑하기로 유명한 친구건만 마법과 관련되면 바보가 되어버린다.
친구에게서 관심을 끊은 자무아는 다시금 대련장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 어떻게 할 거냐. 레오.’
기술 대결에서 레오는 놀랍게도 위를 점했다.
하지만 전투력은 기술만으로 좌지우지되는 게 아니다.
특히나 레오가 도전하고 있는 상대는 학생 최강 리스 제르딩거다.
‘그 정도로는 지금의 리스를 상대로 버티기 힘들 거다.’
***
레오는 자신에게 날아오는 불꽃의 회오리를 보며 검을 다잡았다.
‘제르딩거의 불꽃이 아니군.’
제르딩거의 불꽃은 피닉스의 불꽃.
그렇다 보니 일반적인 불꽃과는 그 위력과 느낌이 달랐다.
‘히어로 스킬을 이용한 기술이군.’
빠르게 공격을 파악한 레오가 피식 웃었다.
‘날 시험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한 레오가 몸속에 잠들어있는 불꽃을 일깨웠다.
고오오오오오오! 화르르르르륵-!
타오르는 홍염의 불꽃이 레오가 쥐고 있는 창에 어렸다.
척-!
창을 고쳐 쥔 레오가 투척 자세를 취했다.
콰가가가각-!
레오가 가진 불꽃이 창으로 빨려 들어갔다.
모든 불꽃이 빨려 들어가자 레오가 이를 악물었다.
“흡-!”
후앙-!
리스가 일으킨 불꽃의 회오리를 향해 레오가 창을 던졌다.
화악-!
창이 엄청난 속도로 불꽃의 회오리를 향해 날아갔다.
콰앙-!
일순간 레오의 창과 리스의 불꽃의 회오리가 격돌했다.
고오오오오-!
일순간 폭발하듯 레오 창에서 피닉스의 불꽃이 뿜어져 나와 리스의 불꽃을 집어삼켰다.
같은 불꽃이라도 격이 다르다.
최강의 불꽃이라 불리는 피닉스의 불꽃은 모든 걸 집어삼켰다.
괜히 불꽃을 사용하는 영웅 명가 중 제르딩거와 룬드아가 최강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막을 줄이야.’
리스가 감탄했다.
조금 전 리스가 사용한 불꽃은 1000년 전 소멸한 불의 대정령 이타르안의 불꽃이다.
영웅의 세계를 통해 얻은 공략 보상으로 비록 온전한 대정령의 불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절대 약한 불꽃이 아니다.
‘그 불꽃을 잡아먹다니.’
리스는 자신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레오의 창을 보고 웃었다.
‘불꽃을 다루는 능력 역시 대단하구나.’
텁-!
콰앙! 화르르르륵-!
리스가 레오가 날린 창을 낚아채자마자 거대한 불꽃의 화염이 대련장을 휩쓸었다.
관중석에 있던 모든 이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대련장에는 관중석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 보호 마법이 펼쳐져 있었다.
그 보호 마법을 뚫고 살이 익을 것만 같은 강렬한 열기가 전해질 정도로 레오의 불꽃은 막강했다.
하지만 레오의 공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준비해 두었던 마법을 일제히 해방시켰다.
번쩍! 콰가가가강-!
폭격이 쏟아지듯.
강력한 화염의 마법이 리스가 있던 자리에 쏟아졌다.
말 그대로 현재 레오가 오러와 마법으로 펼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을 담아 리스에게 퍼부었다.
고학년들이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물론 리스는 레오가 모든 만반에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는 도를 뛰어넘은 수준이다.
아무리 공격에 특화된 제르딩거의 불꽃을 타고났다고 해도 지금 레오의 공격력은 놀라운 수준이었다.
의외로 덤덤한 건 1학년들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리스가 서 있던 곳을 주목하는 가운데.
불꽃을 뚫고 리스가 모습을 드러내자 감탄사를 터트렸다.
리스는 레오의 맹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모습으로 불꽃을 뚫고 나왔다.
“역시 리스 선배야.”
“저 정도 공격을 별 어려움 없이 막아내다니!”
학생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한편 교수들은 당연하다는 듯 리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옷자락조차 타지 않다니. 대단하네요.”
렌의 부교수 안나가 혀를 내두르자 렌이 팔짱을 꼈다.
“확실히 레오 학생의 마법과 오러를 이용한 공격력은 놀라운 수준이야. 하지만 상대는 리스 제르딩거.”
렌이 눈을 가늘게 떴다.
“피닉스 나이트라 불리는 학생 최강이다. 루메른은 물론이고 현재 영웅 후보생 중 세이룬, 아조니아, 데미안을 통틀어 최고의 실력자인 데다가 불꽃의 사용자의 역량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리스 제르딩거 보다 뛰어난 이는 얼마 없을 거다.”
영웅 명가, 제르딩거의 후계자이자 기사로서 불꽃 능력에 관해서는 세계적인 반열에 오른 남자가 바로 리스였다.
“지금 레오 학생의 수준으로 리스 학생에게 불꽃을 이용한 싸움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레오 학생은 그걸 몰랐던 걸까요?”
“모르진 않을 거다.”
렌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다만 도전이겠지.”
“도전?”
“그래. 자신의 불꽃이 리스에게 얼마나 통할지 도전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무모한 행동 아닌가요?”
“후후후! 안나 부교수! 그래서 레오 학생이 대단한 거다!”
렌의 입가가 귀에 걸렸다.
“레오 학생은 리스 학생이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 하고있는 중이다! 얼마나 대범한 학생인가! 5학년 최강을 시험하는 저 배짱! 이것이야말로 그가 마법학과에 어울리는 학생이란 증거지!”
“아, 예.”
안나가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요즘 들어 렌은 레오에 관한 거라면 뭐가 됐든 마법학과와 연관 지으려는 모습을 보였다.
일전에 바이블 구현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안나는 폭주하는 렌을 진정시키기 위해 두꺼운 마도서로 거의 뒤통수를 후려쳐 기절시키기까지 했었다.
‘진짜 그만둬야 하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사의 발작에 안나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레오는 자신의 공격을 큰 피해 없이 막아낸 리스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재앙의 시대 때도 저 나이에 저 정도 실력을 쌓은 기사는 없었는데.’
5000년의 세월 동안 다듬고 발전해 온 기술들과 영웅의 세계라는 수단이 있다고 해도 경이로운 수준이라는 건 변함 없다.
‘불꽃을 다루는 능력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최고야.’
레오가 검을 다잡았다.
물론 레오는 지금 당장 리스와 동등한 수준의 불꽃을 내뿜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레오 스스로 화상을 각오해야 얻을 수 있는 불꽃.
게다가 동등한 위력의 불꽃을 낸다고 하더라도 위력이 같다면 리스에게 닿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지금의 너로서는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을 거다, 레오.”
“그렇겠죠.”
리스의 말에 레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러와 마법으로는 리스 형님의 불꽃에 대항할 수 없죠.”
순순히 인정하는 레오를 보며 리스가 웃었다.
“그럼 어떻게 할 거지?”
“간단하죠.”
레오가 웃었다.
“힘에는 힘으로 상대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 아니겠어요?”
“힘?”
리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레오는 리스의 불꽃을 상대할 수 없다고 인정했다.
‘다른 속성의 힘을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방법이 있다는 건가?’
레오가 사용하는 또 다른 오러.
카일의 회색 오러를 이용해도 리스에게 대응할 수 없다.
말 그대로 체급이 다른 무모한 싸움.
그런데 힘으로 맞서겠다니.
‘무슨 생각이지?’
리스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런 리스를 보며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끝났네.”
고학년들 사이에서 그러면 그렇지라는 반응이 흘러나왔다.
처음에 레오가 리스에게 유효타를 먹였을 때만 놀라웠지만 그게 끝이었다.
리스는 봐주는 것 없이 레오를 상대했다.
이제 순식간에 대련이 끝날 게 분명했다.
“그래도 저 정도면 1학년 치고는 대단한 거 아니야?”
“흥! ‘1학년 치고’겠지! 학생회장은 어림도 없어!”
여기저기서 야유와 불만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1학년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흥미로웠지만. 이걸로 끝이네요.”
엘리자가 손가락 끝을 정리하며 투덜거렸다.
“그러게 나랑 붙을 것이지 왜 학생회장님과 붙어서는.”
“엘리자. 너 가끔 보면 5반 반장을 짝사랑하는 것만 같은 언행을 하는 거 알아?”
“그런가요?”
“컥! 컥!”
“그런 건방진 소리를 하는 게 이 입인가요?”
“이, 입! 컥! 입이 잘못! 케헥! 했으- 허억- 입을 때리-컥 목은 왜 졸…… 케헥!”
언제나 가지고 다니는 채찍을 이용해 같은 반 친구의 목을 획- 감아 버린 엘리자가 환하게 웃었다.
가까스로 빠져나와 목을 붙잡고 켁- 켁 거리던 여학생이 툴툴거렸다.
“어쨌든 대련은 끝났어. 1학년 학생회장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
“맞아요. 1학년 학생회장은 말도 안 되죠.”
엘리자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슥-
레오가 손을 올렸다.
우웅-!
“소환술?”
엘리자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레오 플로브는 지금까지 중요한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소환술을 사용한 적 없었지? 올 클래스라고 했지만 소환술 능력은 오러와 마법에 비해 확실히 떨어졌어.’
물론 레오의 소환술이 절대 부족한 건 아니다.
강력한 소환수만 없을 뿐. 레오의 환수나 정령을 다루는 솜씨는 엘리자조차도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환술로 상황을 바꿀 수 없어.’
엘리자가 턱을 괴었다.
‘지금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건 힘이야. 힘의 차이가 이렇게 나는 이상 기술이 무용지물이란걸 모르지는 않을 텐데?’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한 생각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상황에서 레오가 어떤 소환수를 소환할지 궁금증도 일었다.
화륵-!
레오의 손바닥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퐁-!
삐약-!
그리고 나타난 빨간색의 작은 병아리를 보고 모두가 일순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소환된 빨간 병아리는 수많은 인파가 자신을 주목한다는 사실에 일순간 몹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우아하게 날갯짓하며 레오의 손바닥 위에서 날개를 펴고 가슴을 활짝 폈다.
그리고 마치 굉장한 환수인 것처럼 고개를 치켜들었다.
“귀, 귀여워!”
“저거 뭐야! 갖고 싶어!”
여기저기서 상황과 맞지 않은 귀여움에 탄성을 내질렀다.
한편 1학년 소환학과생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야, 저거 첫 수업 때 레오가 계약한 병아리잖아?”
“그러게.”
“지금 저 상황에서 저걸 왜 꺼냈데?”
소환학과생들이 수군거리는 와중에 엘리자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그, 그때도 느낀 거지만 정말 사랑스러운 환수군! 그런데 저 아이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지?’
5학년 관중에서도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 환수로 대체 뭘 하겠다는 거지?”
“귀여움으로 리스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려는 게 아닐까?”
자무아와 토루아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일 때였다.
“잘 지켜봐 두는 게 좋아.”
가만히 경기를 주시하던 울타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무아와 토루아가 의아한 얼굴로 울타를 보았다.
“진정한 대련 평가는 지금부터일 테니까.”
***
삐약-
리스는 자신을 보며 호전적으로 울며 날갯짓하는 피오라를 보며 볼을 긁적였다.
“저기, 레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귀여운 환수를 꺼내면, 내가 손대기가 조금 그렇거든.”
“걱정 마세요.”
레오는 웃으면서 영력을 일으켰다.
“……?”
화르륵-
피오라의 깃털이 한올 한올 불타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전혀 귀엽지 않게 느껴질 테니까요.”
화르르륵-!
레오의 주변으로 심상치 않은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걸 본 리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고오오오오-!
그 불꽃은 피오라를 중심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하나의 불꽃으로 변한 피오라의 몸이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확-!
일순간 타오르던 불꽃이 멈추었다.
그리고…….
삐아아아아아아악-!
콰가가각-!
피오라의 포효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열기가 뻗어 나왔다.
“큭!”
순간 리스는 머리가 울리는 걸 느끼며 휘청거렸다.
‘피어?’
자신이 고작 피어에 압도당했다는 사실에 경악하던 리스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어느새 레오의 팔뚝에 앉은 아름다운 불새를 보고는 입을 떡 벌렸다.
리스는 그 불새의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
자신이 사용하는 불꽃의 근원.
“피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