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188화 (188/483)

188

레오는 첸 시아와 함께 곧바로 동아리동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레오 도령은 영웅 연구 동아리를 만든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문득 떠오른 듯 검지를 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첸 시아를 보며 레오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했지. 만들기 전에 학생회장이 되었지만.”

“그거 아쉽네요. 레오 도령이 만든 동아리에 가입할까 생각 중이었는데 말이에요.”

“영웅에 관심이 많나 봐?”

“영웅담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첸 시아의 말대로였다.

영웅의 시대라 불리는 만큼 많은 이들이 영웅을 선망한다.

그런 만큼 영웅담 역시 선망의 대상.

루메른 학생을 아무나 붙잡아 물어보면 누구나 좋아하는 영웅담이 하나씩 있다.

“그래?”

“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첸 시아가 말했다.

“멋있잖아요.”

어딘지 모르게 머나먼 이상을 바라보는 듯한 그녀의 중얼거림에 레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너는 될 수 없을 것처럼 말을 하네.”

첸 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레오를 바라보았다.

“영웅을 꿈꿔서 루메른에 입학한 거 아니었어?”

스치듯 말을 하며 걸어가는 레오의 뒷모습을 보며 첸 시아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레오 도령은 가끔 진짜로 아저씨 같은 거 알아요?”

“그래?”

“거봐. 부정도 안 하잖아요.”

첸 시아는 레오 곁으로 와서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아저씨가 어려진 건가?”

‘다시 태어난 거긴 하지.’

역시 묘하게 예리하다고 생각하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러는 사이 동아리동에 도착한 두 사람은 곧바로 학생회 일을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볼까?”

“음. 원예부가 가까운데 거기부터 갈까요?”

“그러자.”

고개를 끄덕인 레오는 첸 시아와 함께 원예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원예부 주변 일대를 본 레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거의 정글이잖아?’

이제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는 시기.

학생들도 춘추복을 입는데 원예부 주변 일대는 마법으로 인해 후덥지근한 기후를 만들고 있었다.

작은 정글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원예부로 들어가자 수많은 식물이 보였다.

그걸 본 레오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환수계열 식인 식물도 섞여 있는데?”

“네. 루메른의 원예부잖아요. 평범한 걸 키울 리 없잖아요?”

어깨를 으쓱거린 첸 시아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미술부나 음악부는 꽤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긴 하죠. 하지만 루메른 동아리 활동 중에는 위험한 것이 제법 많아요.”

학생회 임원인 첸 시아는 학교 전체에 관한 일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평범한 과일나무도 있고요.”

지나가다가 손을 뻗어 사과를 하나 따 와삭- 먹는 첸 시아.

레오는 그녀가 손을 뻗은 나무를 보았다.

나무에는 사과 이외에도 다양한 열매가 섞여 있었다.

‘이 정도면 거의 키메라인데.’

마법 공학 쪽에 상당한 일가견이 있는 자가 원예부인 게 분명했다.

레오와 첸 시아는 부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커다란 꽃봉오리 중 몇 개가 입을 쩍 벌리더니 레오와 첸 시아에게 덤벼들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기겁했을 상황이지만 레오와 첸 시아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딱히 1학년 최고의 학생들이라서가 아니다.

이 정도로 놀라서야 루메른에서 살아남지 못했다.

레오는 덤벼드는 꽃봉오리를 피해 줄기를 붙잡아 제압했고 첸 시아는 손가락 끝을 튕겨 꽃봉오리에 딱밤을 먹였다.

파악-!

물론 손가락에 맞은 식인꽃은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삐익-

그때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날뛰던 식인 꽃들이 이내 잠잠해졌다.

“누가 온 거야? 웬만해서는 원예부에 방문자들이 잘 안 오는데?”

수풀을 헤치고 한 여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4학년 뱃지와 마법학과 앰블럼을 한 그녀는 연두색 머리카락에 녹색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첸 시아가 말했다.

“학생회에서 왔어요.”

“응? 넌 첸 시아잖아? 루세전 때문에 온 거야? 그리고…… 레오 플로브?”

원예부 4학년은 레오를 보더니 흠칫했다.

“시찰 왔는…….”

“아이고! 학생회장님!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4학년은 레오가 1학년이라는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더니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 손을 비볐다.

“무더운 온도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죠? 방문하신다면 방문하신다고 진작 말씀하셨어야죠! 자자! 안으로!”

이게 1학년을 대하는 4학년의 태도가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그녀의 태도는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확실히 예산이 걸리다 보니 민감하군.’

동아리 부장들은 단순히 고학년이 아니다.

루메른의 동아리 활동은 동아리 활동이라기에는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면이 강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도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관련 분야에서는 동아리 수준을 넘어선 연구도 심심치 않게 진행된다.

그리고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비용.

그렇다 보니 동아리 부장들은 원하는 연구를 마음껏 진행할 수 있도록 언제나 연구비에 굶주려 있었다.

‘1학년? 그게 뭐? 학생회장이라고! 돈줄이라고!’

원예부 부장, 니네아는 상대가 고블린이라 할지라도 허리를 ㄱ자로 접을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동아리실로 레오와 첸 시아를 안내한 니네아는 동아리 문을 걷어차며 말했다.

“모두 고개 숙이고 무릎 꿇어라! 돈 주…… 아, 아니! 차기 학생회장님께서 행차하셨다!”

“헉?”

“하, 학생회장?”

원예부원들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레오와 첸 시아 주변으로 우르르 몰렸다.

“어서 와!”

“방문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플랜카드! 플랜카드!”

학생들이 열렬한 환영을 보냈다.

그들 모두가 마법학과와 소환학과 학생들이었다.

“흥. 귀한 분께서 누추한 곳에 행사하셨네요.”

그때 동아리실 가장 안쪽에 있던 1학년, 엘리자가 평소처럼 손톱을 다듬으며 말했다.

“원예부였어?”

“네. 꽃을 좋아해서요.”

후-! 하고 손톱에 입김을 분 엘리자가 소파에서 일어났다.

“꽃을 좋아하는 것 치고는 바깥에 꽃이 하나도 없던데.”

“그, 그거야! 원예부 선배들의 취향이 워낙 괴랄하니까……!”

“괴랄? 이런 괴랄한 곳에 우리 엘리자 아가씨께서는 왜 남아 있으실까?”

니네아가 빈정거리듯 말하자 엘리자가 코웃음을 쳤다.

“흥! 제가 원예부 부장이 된다면 저 이상하기 짝이 없는 식물들을 모조리 치워버리고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들 거예요!”

“안 돼애애애애!”

니네아는 절규하며 엘리자에게 매달렸다.

“그러지 마! 내가 4년 동안 열심히 키운 아이들이란 말이야! 내 자식과도 같은 애들이야! 엘리자! 그러지 마! 엉엉!”

엘리자 같은 엘리트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원예부의 부장이 될 게 분명했다.

머나먼 미래에 자신이 애써 키운 식물들이 모두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니네아는 진심으로 서럽게 울었다.

“아, 알았어요! 안 그럴 테니까……. 꺄아악?! 치마 그만 잡아당겨요!”

엘리자는 기겁하며 니네아를 떨쳐내려고 했다.

4학년 선배로서도 부장으로서도 전혀 위엄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성깔 있는 걸로 유명한 엘리자는 니네아에게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천적이군.’

레오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엘리자는 가까스로 니네아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헛기침을 했다.

“흠! 어쨌든 학생회 일로 왔다면 시찰 및 예산 측정 때문이겠죠?”

엘리자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럼 나와 이야기 좀 할까요?”

그 물음에 레오가 힐끗- 니네아를 바라보았다.

“원예부 부장님이 따로 계신 거 아니야?”

“제가 부부장이에요. 그리고 예산 문제도 다 제가 처리하고 있죠.”

엘리자의 말에 레오가 니네아를 보았다.

“응. 엘리자가 들어오고 나서 동아리 살림이 엄청나게 나아졌어.”

“부장님이라는 분이 마음에 드는 식물이 있으면 부예산을 털어서라도 사시는 분이라서요.”

“세상에,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선배예요! 선배!”

“어쨌든 엘리자! 루세전을 대비해 예산을 잔뜩 뜯어…….”

“도움 안 되니까 끌고 가요.”

엘리자가 차갑게 말하자 원예부 3학년들이 니네아의 양팔을 잡고 끌고 갔다.

“이거 하극상이야! 야! 아아악! 1학년의 말이나 듣고! 너희는 선배로서 자존심도 없……. 읍! 읍! 읍!!”

“선배가 할 말은 아니에요.”

“조용히 따라와요. 추가 예산은 엘리자에게 맡기고.”

그 모습을 보며 첸 시아가 쿡쿡 웃으며 품에서 메모를 꺼냈다.

엘리자는 부실 한쪽에 소파와 테이블에 두 사람을 앉히고 그 앞에 앉았다.

우아하게 손뼉을 치자 다른 1학년 학생이 다과를 내왔다.

“비싼 차네요.”

첸 시아가 차를 홀짝이며 감탄하자 엘리자가 찻잔을 잡으며 웃었다.

“원예부니까요. 상업 동아리랑 연동해서 찻잎 사업도 진행 중이에요.”

“칼에게 그런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네.”

루메른 동아리에서는 능력만 된다면 얼마든지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

물론 수익의 일부는 루메른에 지불해야 하지만, 애초에 루메른이라는 브랜드값이 주는 가치는 엄청나기에 그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예산 증액은 경제 실적도 크게 방영된다는 거 알고 있죠?”

“알고 있어. 그런데 이 정도로 수익이 있으면 추가 예산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루세전이잖아요. 준비할 게 많아서요.”

“얼마나 원하는데.”

“기존 원예부의 1년 예산만큼이요.”

그 말에 레오가 첸 시아를 보았다.

첸 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지나치게 많다는 의미였다.

“1/4로 해.”

“타협은 없어요. 우리는 이만큼 예산을 타낼 근거 자료도 모두 준비해놨다고요.”

대륙 북부의 유명 영웅 명가, 헤르긴 가문의 후계자인 엘리자는 소환사로서 뿐만아니라 가주로서의 후계자 훈련도 확실히 받았다.

그런 만큼 이런 서류 작업이나 예산 문제에 매우 능통했다.

“흠.”

문서를 검토하는 레오를 보며 엘리자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추가 예산 증액은 합리적인 자료만 제출하면 금액이 얼마라도 가능하지.’

엘리자가 우아하게 다리를 꼬았다.

‘레오 플로브. 실력으로 학생회장의 자리를 손에 놓긴 했지만 업무 능력도 그만큼 좋을까?’

엘리자는 아직 학생회장인 레오가 학생회장 직함으로 시찰 나온 것 자체가 학생회에서 그를 시험해보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그렇기에 그에 부응하도록 최선을 다해 상대해줄 생각이었다.

‘뜯을 만큼 뜯어주겠어.’

“자료는 확실하네요.”

학생회 일을 충분히 해 왔던 첸 시아가 살짝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첸 시아 역시 이런 쪽으로는 엘리자보다 능력이 떨어졌다.

“원예부는 루세전에서 뭘 하려고 하는데?”

엘리자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 그건…….”

“세이룬 원예부의 식인 식물과 싸울 거야! 지난 4년 동안 우리 원예부가 승리하고 있…….”

“선배님들!”

엘리자가 날카롭게 소리치자 다른 원예 부원들이 다시 니네아를 끌고 갔다.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엘리자가 말했다.

“어, 어쨌든! 세이룬을 이기는 게 중요하잖아요? 우리는 그 예산이 절실해요!”

사실 그만큼 예산은 필요 없다.

그저 앞으로 있을 부 활동을 좀 더 쾌적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에 예산 증액을 요청한 것이다.

‘예산은 받아 낼 수 있을 때 최대한 받아내야 하니까!’

엘리자가 턱을 치켜들었다.

“우리는 우리의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거예요.”

레오와 첸 시아가 고학년 학생회였다면 동아리 일을 훤히 꿰고 있으니 꼬투리 잡을 부분이 있을 테지만, 두 사람은 동아리 활동에는 눈이 어두웠다.

‘어떻게 하지.’

첸 시아가 볼을 긁적일 때였다.

레오는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화르륵-!

삐약?

피오라가 소환진을 타고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엘리자가 움찔했다.

‘피, 피닉스?’

“피오라.”

삐약?

레오는 엘리자가 요구했던 예산 증액의 1/4을 쓴 결재서류를 피오라의 부리에 물려 주었다.

“가서 저 사람한테 사인받아 와.”

뺙-!

쓸데없는 심부름을 시켰다는 생각에 피오라가 서류를 뱉어냈다.

그런 피오라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너만 할 수 있는 일이야.”

그 말에 멈칫하더니 피오라가 고개를 척-! 치켜들고는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류를 물고 엘리자에게 통통통- 뛰어갔다.

뺙- 뺙-!

“으으……!”

엘리자는 붉어진 얼굴로 당황하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길 자신이 없었다.

드륵-!

“가자. 쟤가 알아서 사인받아 올 거야.”

레오가 첸 시아를 끌고 원예부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첸 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괜찮을까요?”

“사인 받아 올걸.”

“엘리자 양은 제법 강경해 보였는데요.”

“소환사는 피닉스라면 껌뻑 죽거든.”

그 말에 첸 시아가 고민하더니 이해가 간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조금 너무 한 것 같네요.”

“협상이 불리할 것 같으면 약점을 잡고 집요하게 물어뜯으라고 내 친구가 그랬거든.”

“음? 그런 친구분이 있었나요? 영웅이 떠올리기에는 조금 비겁한 발상 같네요.”

놀라는 첸 시아를 보며 레오는 속으로 생각했다.

‘영웅 중의 영웅이라 불리는 리시나스가 했던 말인데.’

사기꾼이라고도 종종 불렸던 지혜의 왕을 떠올리며 레오가 첸 시아를 보았다.

1학년 중에서는 가장 어른스러운 첸 시아였지만 아직 순수한 면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아닌가? 아르온을 제외한 나와 다른 녀석들이 더러운 건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