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레오가 원예부를 방문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동아리 전체로 퍼졌다.
루세전을 앞둔 시기였기에 예산 문제로 민감한 시기였다.
그렇기에 동아리들은 레오의 등장을 전체적으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중에는 만만한 1학년 차기 학생회장에게 예산을 더욱 뜯어내겠다는 꿍꿍이를 가진 동아리도 제법 많았다.
“이건 추가 예산 지급이 안 될 것 같은데요?”
“헉?!”
레오의 말을 들은 마법 공학부 부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왜? 왜? 왜! 왜 추가 예산이 안 되는데! 원예부는 받았다면서!”
4학년 마법 공학부 부장, 제임 덱트가 발끈하여 물었다.
그런 제임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마석의 소모를 극단적으로 줄이는 공간이동 마법 술식. 지난 2년 동안 진행해 온 마법 공학부의 장기 프로젝트였죠?”
“그래! 완성만 되면 이때까지 받아 쓴 예산보다 더 막대한 돈이 들어올 연구라고!”
“솔직히 말하세요. 선배가 보기에 어느 정도 완성된 것 같아요?”
“거의 완성됐어!”
“거의요?”
레오가 무표정한 표정을 지었다.
그 말에 제임이 움찔하더니 말했다.
“저, 절반.”
“절반?”
“어려운 부분은 전부 다 해결했으니 이제 자잘한 부분만 남았다고!”
“선배님은 내년에 졸업반이잖아요. 마법 공학부 부장이 졸업하면 이걸 누가 이어서 해요?”
“내게는 유능하고 똑똑한 후배들이 있어!”
제임의 말에 마법 공학부원들이 한숨을 쉬었다.
툭하면 이것도 이해 못 한다고 갈구던 제임이다.
그런데 다급해지니 유능하단다.
‘어쩜 전임 부장이랑 똑같을까.’
‘아니, 그래도 예산을 타려면 입을 맞춰야지.’
마법 공학부원 모두가 이 마법 연구에 최소 반년 단위의 시간을 투자해 왔다.
그러니 어떻게든 예산을 더 타내고 싶었다.
“맞아, 레오. 우리가 선배님을 이어서 프로젝트를 이어 나갈 거야!”
“그래, 졸업한 선배님 때부터 해온 연구인 만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어!”
1, 2, 3학년들이 연구의 필요성을 어필했다.
‘뭐, 이론상 불가능한 건 아니지.’
레오는 마법 술식을 보았다.
실제로 굉장히 연구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성과를 낸다는 건 머나먼 이야기의 마법 술식이었다.
“그래도 루세전에서 발표할 만한 건 아니잖아요. 추가 예산은 루세전을 대비한 예산인데요?”
첸 시아의 말에 제임이 후- 하고 한숨을 쉬더니 이마에 손을 올렸다.
“이런, 이런. 이래서 기사학과는 안 된다니까. 마법 연구는 진행 중이여도 발표 가치가 있어. 실제로 우리 마법 공학부는 루세전 때마다 세이룬 교수들에게 훌륭하다고 칭찬받아 왔다고!”
“네. 그래서 실용적인 마법 술식을 발표한 세이룬 마법 공학부에게 매번 평가에서 뒤처졌다고 여기 나와 있는데요?”
첸 시아가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제임이 발끈했다.
“마법은 탐구와 창조의 영역! 꿈도 없이 실용적인 것만 추구하는 세이룬 마법 공학부와 우리를 비교하지 마라!”
“옳소! 옳소!”
“우리 마법 공학부는 모든 걸 걸고 이 마법을 완성 시킬 생각이다! 그래서 세계에 변혁을 일으킬 거라고!”
마법 공학부 학생들이 제임의 연설에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자! 그럼 우리 마법 공학부가 왜 추가 예산이 필요한지 하나하나 설명해주마! 칠판! 분필!”
제임의 외침에 마법 공학부 학생들이 간이 칠판과 분필을 가져왔다.
“공간이동 마법은 공간과 공간을 접어서 이동하는 원리잖아? 머나먼 공간에 입구가 닿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큰 공간을 접어지니 힘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 그래서! 공간을 작게 몇 번이고 접는 거지! 마치 스프링처럼! 그럼 소모되는 마나가…….”
복잡한 설명을 시작하는 제임을 보며 첸 시아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첸 시아는 마법에 문외한.
이런 어려운 설명을 들으면 이유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레오는 제임의 설명을 들으며 호오- 호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 말에 제임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렌 교수님과 토루아 선배도 우리 연구가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마법 공학부가 성과도 없이 많은 예산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는 렌과 토루아의 영향이 컸다.
마법학과에서 입김이 상당한 데다가 부학생회장이었던 토루아가 지지를 보내니 이때까지 예산 걱정은 없었다.
‘레오 플로브 역시 일단은 마법사! 그러니 우리 연구를 인정해주겠지!’
제임이 그렇게 확신하며 분필을 놓았다.
“어때?”
“대단하네요.”
“그치? 그러니까 추가 예산을…….”
“근데 이 상태면 추가 예산이 아니라 내년 예산까지도 깎아야 할 것 같은데요.”
우지직-!
생각지도 못한 레오의 말에 제임의 몸이 굳었다.
“너! 내 설명을 이해 못 했지?”
“너무 잘 이해했죠. 그러니 깎아야 할 이유를 이제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
레오는 분필을 들어 제임이 일장 연설한 칠판에 가져다 대며 고쳐야 하는 부분, 개선해야 하는 부분을 모두 지적했다.
탁-
분필을 놓은 레오는 입을 뻐끔거리는 제임을 보며 말했다.
“이 방향으로 연구하면 예산을 절감할 수 있죠. 그러니 깎아야겠죠?”
레오가 말한 건 제임도 알고 있는 개선점이다.
설명을 안 한 이유는 어떻게든 예산을 타 먹을 건수를 내기 위해서였는데 레오가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자, 잠깐! 우린 이 마법 말고 다른 연구도…….”
“이 마법을 마법 공학부의 명예를 걸고 완성해서 세계에 변혁을 일으키겠다면서요. 그러니 다른 연구는 신경 쓰지 말고 이 연구에만 몰두해야죠. 시아. 예산 삭감 체크 해서 엘레나 선배에게 보고하자.”
“알았어요, 레오 도령.”
“헉? 에, 엘레나?”
실무를 맡은 하르크는 마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법과 관련된 건 엘레나에게 맡길 게 분명했다.
그리고 엘레나는 이사장 대리이기도 하다.
학교 예산의 근원과도 같은 존재다.
‘쓸데없이 돈을 줄여서 좋겠네요.’
엘레나는 이런 식으로 가차 없이 예산을 삭감할 게 분명했다.
마법 공학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던 토루아는 졸업 예정.
또 다른 버팀목인 렌의 경우에는.
‘레오 학생이 예산을 삭감하라고 했다고? 삭감하면 되겠군.’
이라고 할 게 뻔하다.
렌이 레오를 마법학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결국 제임은 레오의 바짓단을 붙잡고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예산 삭감만큼은! 추가 예산 없어도 되니까! 제발!”
다른 마법공학부원들도 레오의 발을 붙잡고 빌고 빌었다.
결국 마법공학부는 추가 예산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이후 방문한 곳은 기사학과 학생들이 주축이 된 육체 단련부 ‘더 파워’ 였다.
레오와 첸 시아는 근력 운동을 하는 ‘더 파워’의 부원들을 보며 말했다.
“……추가 예산 지원이 필요하십니까?”
“있지. 근육을 단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보조제를 사야 하거든.”
“그거 도움이 되기는 하나요?”
“물론이지. 보아라! 멋진 팔뚝을!”
더 파워의 부장 4학년 딕 비클러가 팔에 근육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근육이 꿈틀거리는 걸 보고 첸 시아가 감탄했다.
“레오! 그대도 알겠지만, 실전에서 오러와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육체 단련도 중요하다. 우리 더 파워는 육체 단련으로 좀 더 높은 경지를 목표로 하고 있지! 봐라! 이 아름다운 육체를!”
흡! 하는 힘주는 소리와 함께 딕의 전신에 근육이 솟아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실전에는 굳이 그렇게 근육을 안키워도 되잖아요. 추가 예산은 없는 걸로 할게요.”
“아니, 그렇게 단호하게 말하지 말고. 조금만…… 응? 절반이라도 좋으니까. 아니 1/4이라도……!”
딕은 후배에게 애원했다.
레오가 1학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추가 예산을 타내려던 꿍꿍이를 가졌던 동아리들은 최악의 경우 예산 삭감까지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되자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레오는 동아리 부장들에게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로 취급되고 있었다.
“어서 와, 레오.”
미술부에 들른 레오를 셀리아가 반겨주었다.
“미술부 부장님은.”
“네가 무섭다고 도망가셨어. 미술부는 추가 예산 필요 없다면서.”
셀리아는 아까까지만 해도 레오에게 예산을 타내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던 부장이 소문을 듣고 도망간 걸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을 듣고 레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오기 전에 도망갔다고? 흐응? 혹시 찔리는 거라도 있나?”
“아니! 찔리는 거 없어! 없다고!”
미술부 동아리 창고에 숨어 있던 미술부 부장 미리아 줄릿이 기겁하며 창고 문을 박차고 달려왔다.
헐레벌떡 뛰어온 그녀는 거친 숨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미, 미술부에 온 걸 환영해! 온 김에 이번 루세전에 출품할 작품들 보고 갈래?”
“예.”
레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아의 안내받으며 레오와 첸 시아는 만들고 있는 작품을 구경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피닉스 그림이었다.
“멋진데요? 특히 불꽃의 표현이 굉장하네요.”
“그치? 이건 셀리아가 그린 거야.”
“호오.”
레오가 감탄하며 사촌을 바라보았다.
셀리아는 새침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 셀리아의 그림만큼이나 멋진 조각도 있었다.
레오는 그 조각을 보며 멈칫했다.
조각은 다름 아닌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루나였다.
‘참 안 어울리네.’
헛웃음을 터트리며 물었다.
“이건 누구 작품이에요?”
척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실력이었다.
“워레든이야.”
“워레든? 걔도 미술부였어?”
“응. 자주 오지는 않지만, 조각 실력 하나만큼은 굉장해.”
“호오.”
레오는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작품 감상이 끝난 레오를 향해 미리아가 물었다.
“다 본 감상은 어때?”
“훌륭하네요.”“그럼! 미술부는 매년 작품전에서 세이룬의 미술부를 이겨왔단 말씀!”
에헴! 하며 자신만만하게 가슴을 쫙 펼치는 미리아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그럼 이제 예산 얘기를 해볼까요? 미술부 예산이 너무 많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털썩-
미리아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공포에 질린 눈으로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제, 제발 삭감만큼은…….”
“농담이에요.”
레오는 웃으며 미술부를 떠났다.
마중 나오던 셀리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레오.”
“왜?”
“너 즐기고 있지.”
“응. 재미있네.”
‘……벌써부터 이런 데 나중에 얘가 본격적으로 학생회장 일을 시작하면 얼마나 무서울지 상상도 안 가네.’
자기 사촌이라면 공포 정치를 하고도 남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셀리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날 저녁.
루메른의 연례행사인 만찬식이 진행되었다.
매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면 루메른은 전 학년을 모아 만찬식을 거행했다.
여름의 끝을 알리고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
그리고 가을은 카일이 에레보스를 쓰러트린 계절이기도 했다.
이 만찬식은 평화를 되찾은 날을 축하하는 의미도 섞여 있었다.
‘그때는 가을인지도 몰랐지만.’
영웅의 탑 옆에 붙어 있는 대강당.
전 학년들이 자리에 앉아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바람의 정령들이 대강당 위를 누비며 무언가를 학생들에게 선물했다.
새로운 희망을 알렸던 시기인 만큼 이 시기에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평소 갖고 싶은 선물을 주는 전통도 있었다.
레오 역시 매년 이맘때쯤 부모님에게 여러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조금 이상했다.
“……선물량이 장난 아닌데?”
레오는 바람의 정령들이 바쁘게 자신에게 선물상자를 가져오는 걸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칼은 선물상자에 적힌 이름들을 확인하고는 혀를 찼다.
“각 나라와 세력의 권력자들이네. 네가 학생회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선물 공세를 하나 보네.”
지익-!
레오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상자의 포장을 뜯고 내용물을 확인했다.
안에는 목걸이가 나왔다.
“와, 이거 디에든의 아티팩트잖아?”
칼이 감탄했다.
“디에든이라면 첼시가 애용하는 마법 공방이었던가?”
“그래. 어지간한 귀족가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곳이지.”
혀를 내두르며 칼이 목걸이를 유심히 살폈다.
“실드 마법이 걸려 있네. 이거 엄청난 고가품인데 이런 걸 선물해? 어지간히 너한테 잘 보이고 싶나 보다.”
칼의 말에 레오는 목걸이를 상자에 넣었다.
“딱히 필요 없는데.”
“없는 것보다는 좋잖아?”
칼이 킬킬 웃으며 선물상자를 몇 개 보았다.
“이건 보낸 사람 이름이 없는데?”
칼의 말대로 소박하게 갈색 종이로만 포장된 기다란 상자에는 보낸 사람의 이름이 없었다.
“외부에서 반입되는 물품들은 들어올 때 안전 검사를 한 번씩 하니 위험한 물건은 아니겠지만…… 수상한데?”
옆에서 음식을 먹는데 열중하던 첼시가 우물우물- 파스타를 먹으며 말했다.
지익-!
레오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포장을 뜯었다.
오래된 매끈한 나무 상자가 보였다.
레오는 뚜껑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딸칵-!
그리고 안에서 나온 건 밋밋하게 생긴 롱소드와 편지였다.
“롱소드?”
“뭐지, 평범해 보이는데.”
첼시와 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호화로운 선물을 보내는 가운데 평범한 롱소드라니.
“특이한 마나가 느껴지긴 하는데…….”
“잠깐, 이거 본 적 없는 소재인데?”
연금술사 집안인 칼이 놀라며 말했다.
레오는 롱소드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쓸어보며 중얼거렸다.
“드래곤 본이군.”
“뭐?”
“드래곤 본?!”
경악에 찬 외침에 주변의 시선이 레오에게 쏠렸다.
레오는 편지 내용을 확인했다.
작고 정갈한 글씨체였다.
-학생회장이 된 걸 축하드려요. 부디 잘 써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