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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는 롱소드의 표면을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드래곤 본은 무구 제작 재료 중 최고라 불리는 소재 중 하나였다.
연금술사나 대장장이는 듣기만 해도 흥분한다는 엄청난 재료다.
“이, 이게 드래곤 본……!”
실제로도 칼이 옆에서 입가에 흐른 침을 닦고 있었다.
“뭔데?”
“무슨 일이야?”
“레오가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진 검을 받았데!”
“뭐?”
“말이 되냐? 누가 그 귀한 걸 선물해?”
“레오 가족들이 보낸 거 아니야?”
“쟤 변방 왕국 귀족가잖아?”
“외가는 제르딩거인데.”
“에이, 아무리 제르딩거라도 드래곤 본으로 만든 검은 힘들지.”
1학년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고학년들도 1학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지자 의아한 얼굴로 시선을 주었다.
“무슨 일이지?”
할린드가 다가왔다.
그러자 주변에서 자기들끼리 떠들던 1학년들이 순식간에 침묵했다.
가공할 만한 할린드 효과였다.
그런 가운데 첼시가 손을 번쩍 들었다.
“할린드 교수님! 레오 오빠가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진 검을 선물 받았다고 해요!”
“드래곤 본?”
할린드가 미간을 좁혔다.
교수들도 이번 만찬식에서 레오가 많은 선물을 받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드래곤 본은 너무 과한 물건인데.’
드래곤 본으로 만든 무구는 성능도 성능이지만 그 희귀성 때문에 매우 높은 값어치를 가지고 있었다.
말 그대로 드래곤이 자신이 인정한 자에게만 주는 물건.
드래곤의 마력이 고스란히 깃든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인 물건이다.
결코 잘 보이기 위해 보낼만한 물건이 아니다.
“보낸 이는 누구지?”
할린드의 물음에 레오가 편지를 보며 말했다.
“편지에는 학생회장이 된 축하 선물이라고만 되어 있고 보낸 이는 적혀있지 않았어요.”
“흠.”
할린드가 미간을 좁혔다.
“네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걸 보낼만한 사람은?”
그 물음에 레오는 자연스럽게 드래곤 로드 멜리나를 보냈다.
레오가 아는 사람들중 이만한 물건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다.
‘하지만 멜리나는 아니야.’
레오가 힐끗 롱소드를 바라보았다.
멜리나라면 레오가 알아볼 수 있는 방식으로 자신이 보냈음을 알렸을 것이다.
“없는데요.”
레오의 말을 듣고 할린드가 고민에 빠졌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과한 선물이라.’
이미 루메른에 들어 올 때 검사를 거쳤겠지만, 혹시 몰랐다.
‘불과 작년까지 루메른에 타르타로스의 첩자가 숨어 든지 몰랐으니까.’
그렇다면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레오. 혹시 모르니 검은 잠시 맡아두겠다.”
명성이 커지고 주목을 받는 만큼 은밀하게 해악을 끼치려는 자가 생길 수 있었다.
할린드의 말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레오는 다시 검을 상자에 넣고 할린드에게 넘겼다.
그렇게 선물 배달로 분위기가 들뜬 가운데.
교수들 중에서도 상석에 앉아 있던 세드젠이 와인잔을 톡- 톡- 건드렸다.
쨍- 쨍- 쨍-
부드러운 유리 소리가 대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학생들이 대화를 멈추고 세드젠을 바라보았다.
“제군들. 지금부터 교장님의 말씀이 있겠다. 모두 주목하도록.”
그 말에 학생들이 먹던 음식을 내려놓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세드젠이 자리에 앉자 칼리안이 몸을 일으켰다.
“모두 시험을 치르느라 고생이 많았네. 올해 역시 가을이 돌아왔고 이제 학기 역시 1/4만을 남겨두고 있지.”
칼리안은 부드럽게 웃으며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졸업반인 5학년들은 마지막까지 뜻깊은 학교생활을 보냈으면 하고 후배들 역시 졸업하는 선배들을 잘 배웅해주는 시간이 됐으면 하는군.”
칼리안의 말에 5학년들이 어딘지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외부에서 ‘손님’들이 온다네.”
그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손님?”
“3대 클래스 학원이랑 합동 수업을 한 게 얼마 전인데…….”
“루세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손님이 와도 되는 거야?”
학생들이 당혹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칼리안이 말을 이었다.
“자네들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는 알고 있네. 하지만 그에 관해서는 걱정할 필요 없네. 어떤 의미에서는 루세전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테지.”
빙긋 웃은 칼리안이 와인 잔을 들어 올렸다.
“끝으로 한 달 후에 있을 루세전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건배하겠네.”
그 말에 학생들이 잔을 들어 올렸다.
“올해는 꼭 승리할 수 있도록!”
“건배!”
짝짝짝-!
칼리안의 만찬식 연설이 끝나자 박수 소리가 쏟아졌다.
본격적으로 만찬이 시작되고 학생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시험의 피로를 풀었다.
내일부터는 휴일인 만큼 루메리아 시티로 외박도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들 즐겁게 떠드는 와중에 만찬식에서 빠져나온 할린드는 마법학과 교수들을 불러 모았다.
“정체불명의 사람이 레오 학생에게 보냈다는 검이 이거군요.”
렌이 팔짱을 낀 채 평범하게 생긴 롱소드를 바라보았다.
“그래. 혹시나 저주 같은 게 걸려 있는 게 아닌지 자네들의 의견을 묻고 싶군.”
할린드의 물음에 렌은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롱소드의 표면을 쓸어보았다.
“확실히 드래곤 본이군요. 함유량이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나직이 중얼거린 렌이 옆의 교수에게 말했다.
“루 교수님. 혹시 알 수 있겠습니까?”
루 교수라 불린 중년인 여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품에서 단안경을 꺼냈다.
연금술 전공 교수인 루 교수는 귀한 소재에 관해 루메른 제일의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었다.
“어디 보자.”
표면을 자세히 관찰하던 루 교수가 감탄했다.
“순도 100%의 드래곤 본입니다. 이런 물건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단안경을 벗은 루 교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선물로 보내기에는 과한 물건입니다.”
“훗. 이걸 보낸 사람이 레오 학생의 가치를 알아봤다는 증거겠죠.”
렌 교수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렌을 싹 무시하며 마법학과 교수들이 검에 대해 자세히 검사를 하려 할 때였다.
“내가 보도록 하지.”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곳에는 알비가 다가오고 있었다.
“오, 알비 교수라면 이 검에 대해 손쉽게 조사할 수 있겠군요.”
마안의 마법사라 불리는 알비의 눈은 온갖 마법을 꿰뚫어 보는 힘이 있었다.
거기에는 타르타로스의 저주와 흑마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가 자리를 비켜 주자 검 앞에 선 알비가 마안을 발동시켰다.
키잉-!
황금색 빛과 요정의 마법술식이 알비의 눈에 떠올랐다.
잠시 후.
마안을 거둔 알비가 할린드에게 말했다.
“타르타로스의 흔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딱히 사용자를 해하는 마법도 존재하지 않군요.”
“그런가?”
“다만.”
“다만?”
“검 자체는 일반적인 기사가 쓰기 힘든 물건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이 검은 마법검입니다.”
“마법검?”
“예, 내부에 각인된 술식 구조를 본다면 주문 위력 부스트, 사용자 마력증가, 캐스팅 어시스트 등의 마법이 깃들어져 있습니다.”
“검의 소재도 소재지만 술식들도 대단하군요. 어지간한 마도 지팡이라고 해도 믿길 수준의 술식들입니다.”
렌이 감탄하더니 훗-! 하고 웃었다.
“레오 학생에게 이런 대단한 물건을 선물하다니! 어떤 혜안을 가진 자인지는 몰라도 레오 학생의 가치를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군요!”
“그렇겠지. 아무래도 이건 세이룬에서 보낸 물건 같으니까.”
우지직-!
렌의 얼굴이 굳었다.
“세이룬?”
할린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예. ‘별의 마법’으로 술식이 각인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여기 있는 술식들은 인간 마법사에게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별의 마법’ 사용자, 쉽게 말해 엘프 전용 무구인 셈이죠.”
알비가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다만 레오 플로브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다룰 수 있는 물건이죠.”
레오는 마치 당연한 듯 엘프들의 마법이라 할 수 있는 별의 마법을 사용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 레오에게 별의 마법을 전수한 건 다름 아닌 창시자인 루나.
현재 이 세상에서 레오만큼 별의 마법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엘프들 중에서 이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건 세이룬 뿐이니 세이룬의 높은 사람이 레오 플로브에게 선물을 보냈다는 결론이 나오죠.”
“과연.”
할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후…… 후후훗. 후흐흐흐흐. 으흐흐흐흐.”
그때 렌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걸 보고 주변 교수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뚝- 웃음을 멈춘 렌이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말했다.
“버립시다.”
“학생의 선물을 함부로 처분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알비 선배. 이건 그 음험한 귀쟁이 놈들의 비겁한 술수입니다. 이따위 알량한 선물을 보내 레오 학생의 환심을 사려는 더럽기 짝이 없는 음모라는 이야기죠.”
렌이 팔짱을 꼈다.
“그러니 이건 더러운 물건입니다. 레오 학생의 눈을 현혹시킬 물건! 그러니 버려야 합니다!”
“끌어내.”
할린드가 가차 없이 말하자 주변 교수들이 렌을 붙잡고 끌고 갔다.
“할린드 교수님!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그 검을 당장 버려야 합……! 읍! 읍!”
입까지 막고 끌려가는 렌을 무시한 할린드가 말했다.
“큰 문제가 없으면 레오에게 돌려주면 되겠군.”
“괜찮으시겠습니까?”
“무슨 뜻이지.”
“렌이 헛소리를 하긴 했지만 틀린 건 아닙니다. 이건 세이룬이 레오 플로브를 시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알비의 말대로였다.
영웅의 세계에서 가능성을 평가받는 루메른.
사막 횡단 마라톤을 통해 실력을 증명하는 아조니아.
각 영웅 사관 학교는 저마다 독특한 입학시험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이룬의 입학 시험은 ‘별의 마법’을 얼마만큼 잘 다루느냐이다.
이 마법검은 사용자가 별의 마법에 능숙하면 능숙할수록 더욱 큰 위력을 내는 검이다.
별의 마법의 숙련도를 평가한다는 점에서는 세이룬의 입학시험과 매우 유사했다.
세이룬의 의도가 너무 노골적인 셈이다.
알비의 말에 할린드가 피식 웃었다.
“의외군. 알비, 자네가 학교 일에 관심을 크게 가진다니 말이야.”
“일단은 루메른의 교수니까요.”
올해부터 알비는 강의를 하기 시작하며 학교 일에 참여하는 일이 잦았다.
원래라면 이런 만찬식에도 참석하지 않았을 그다.
그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아는 할린드로서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했다.
“의도가 어떻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지. 그리고 해볼 테면 해보라지.”
할린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세이룬이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루메른이 학생을 빼앗길 일은 없을 거다.”
할린드는 자신 있게 말했다.
“루메른은 최고의 학교이니 말이야.”
***
만찬식이 끝난 저녁.
1학년 남자 기숙사는 분주했다.
“자유다!”
“주말 동안 루메른을 떠나 신나게 놀자!”
시험이 끝난 직후에는 모두 진이 빠져 있었지만 만찬식을 치르고 저녁이 되자 소년 특유의 체력으로 활력을 되찾았다.
1학년 남학생 기숙사뿐만 아니라 모든 기숙사가 마찬가지였다.
외박 신청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레오! 넌 루메리아 시티에 안 가냐!”
“글세. 난 학교에서 느긋하게 쉴 생각인데.”
“넌 학교가 질리지도 않냐?”
칼이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넌 어차피 애들이 놀러 가자고 할 거 아니야? 데이트 신청 같은 거 없냐?”
“없어.”
칼의 물음에 레오가 피식 웃으며 대답할 때였다.
“야, 레오. 손님 왔어.”
“손님?”
다른 반 남학생이 레오를 부르러 왔다.
“오~ 역시 인기남.”
칼이 짓궂게 레오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누군데.”
“2학년 대표 릴 선배던데.”
그 말에 레오가 의아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칼도 궁금증이 일었는지 레오의 뒤를 따랐다.
기숙사 바깥으로 나가자 과연 릴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레오. 학생회장이 된 걸 축하합니다. 옆에 친구는?”
“칼 토마스입니다, 릴 선배님!”
“아. 그 피로회복제 만드는? 잘 쓰고 있습니다.”
릴이 절도 있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 릴의 태도에 칼이 살짝 당황했다.
루메른 고학년들은 보통 후배들에게 상당히 고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릴은 무려 2학년 대표임에도 1학년인 칼에게 칼같이 예의를 지켰다.
“고마워요, 릴 선배. 그런데 1학년 남자 기숙사까지는 무슨 일이세요?”
레오의 물음에 릴이 머뭇거렸다.
“저…… 이런 말 하기 조금 실례가 되는 건 알지만 레오. 이번 주말 동안 약속이 없다면 저와 1박 2일로 루메리아로 가 줄 수 있나요?”
“음. 딱히 약속은 없으니 상관없는데요.”
레오의 말에 릴이 밝은 표정을 짓더니 웃었다.
“예. 그럼 내일 새벽 6시에 마중을 나오겠습니다.”
“네.”
레오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릴은 그대로 돌아갔다.
칼은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뻐끔거렸다.
“2, 2학년 여자 선배랑 1박 2일로 데이트라고?”
“데이트가 아니라 고민 상담 같은데.”
“무슨 고민 상담을 1박 2일씩이나 하냐!”
“할 수도 있지. 어쨌든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하니까 난 일찍 잔다.”
레오는 그대로 기숙사로 돌아갔다.
“어? 칼! 여기서 멍하니 서서 뭐 하냐?”
그때 정원을 걷던 일리아나가 칼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야, 대박 사건 하나 가르쳐 줄까?”
“뭔데?”
“이번 주말에 레오가 릴 선배랑 1박 2일로 나간대.”
“뭐?”
일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박! 대박! 완전 대박! 데이트를 1박 2일로 해?”
“데이트는 아니라던데.”
“에이! 남녀가 1박 2일로 같이 있으면 데이트지!”
“그렇지?”
사춘기 소년, 소녀 특유의 상상력이 폭주한 두 사람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소문은 1학년 기숙사 전체로 삽시간에 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