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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
차가워진 가을 공기를 느끼며 레오는 기숙사를 나섰다.
1학년 기숙사 정원에는 릴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부터 미안합니다, 레오. 그럼 출발할까요?”
“네.”
레오와 릴은 곧바로 루메리아 시티로 나가는 첫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나갔다.
원래는 배가 있을 시간이 아니었지만, 한정된 주말 동안 시간을 쪼개어 움직일 학생들을 위해 아침 일찍부터 배가 준비되어있었다.
실제 레오와 릴 말고도 몇몇 이들이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타고 아침 일찍 루메리아로 넘어온 릴은 선착장 주변 식당으로 레오를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요깃거리가 될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레오 앞에 앉아 헛기침했다.
“에헴. 이렇게 함께 루메리아로 나와달라고 요청한 이유에 대해 말해주겠습니다.”
“뭔가요.”
“임무 때문입니다.”
“임무라.”
임무.
루메른 학생은 영웅 후보생으로 세계 각지의 분쟁을 중재하거나 의문의 사건을 해결하는 등.
영웅이 해결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지곤 한다.
1학년들 역시 일전에 대대적으로 임무 실습을 진행했다.
하지만 임무 실습의 경우에는 실전이라고는 해도 학생 레벨로 수행이 가능한 난이도의 임무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임무‘실습’이 아닌 ‘임무’는 다르다.
정말로 실력 있는 학생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에 보통 3학년 때부터 임무를 받는다.
그런데 릴은 학년 대표라고는 해도 2학년에 임무를 맡았다.
‘확실히 대단하긴 해.’
“2학년 때부터 임무라니. 역시 릴 선배는 대단하네요.”
“그, 그런! 치켜세우지 마십시오! 그렇게 따지면 레오가 더 대단하죠! 1학년에 학생회장이 되지 않았습니까? 루메른 역사상 최초잖아요!”
레오의 칭찬에 릴이 당황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릴을 보며 레오가 웃음을 터트렸다.
‘원래 이런 실력자라면 프라이드가 대단한데 말이야.’
현재 루메른 2학년 절대 부동의 넘버 원.
심지어 선배들도 인정하는 ‘괴수’라는 별명을 가진 여학생이지만 희한하게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우등생이기도 했다.
‘경험만 쌓인다면 대단한 정령술사가 될 거야.’
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레오가 물었다.
“그래서. 임무에 합류해달라는 건가요?”
“예.”
“다른 선배들도 있을 텐데 왜 하필 저를?”
“이번 임무는 사실 제게 주어진 단독 임무입니다. 레오에게 합류를 요청한 이유는 레오와 한 번쯤 파티를 맺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점원이 샌드위치를 가져와 두 사람 앞에 놓았다.
릴은 샌드위치를 들어 크게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레오가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같이 갈게요. 주말에 할 것도 없었고 릴 선배에게 주어졌다는 임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니까요.”
레오의 말에 릴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함께 나온 우유를 쭉- 들이켠 릴은 품에서 임무서를 꺼냈다.
“고마워요! 레오!”
“그래서, 어떤 임무인가요?”
“그게 아직 임무 내용을 확인은 하지 않았습니다. 지명 임무이기도 했고 레오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싶다고 하니 레오와 함께 임무를 확인하라는 지시가 있었거든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레오가 샌드위치를 먹으며 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릴은 임무서의 봉인된 밀랍을 뜯어 내용을 확인했다.
[루메리아 시티 동쪽에 있는 제로디아 성터에 있는 귀빈 안내.]
내용은 그게 끝이었다.
릴이 조금 당황한 얼굴로 뒤를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제로디아 성터라면 가는데 한나절은 걸릴 거리군요. 과연 그래서 임무 기간이 1박 2일이었던 거군요. 그런데 그 폐허에 귀빈이 있다니?”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릴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학교 측에서 이상한 의뢰를 할 리는 없으니…… 일단 준비를 하고 출발하죠.”
“그래야겠네요! 합!”
릴이 의욕적으로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었다.
양 볼을 크게 부풀리며 빠르게 샌드위치를 삼킨 릴은 쭉- 우유를 삼켰다.
“자! 레오! 어서 가죠!”
“저 아직 다 못 먹었는데요.”
“앗차!”
릴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미, 미안해요. 의욕이 앞서다 보니.”
“그럴 수도 있죠.”
레오는 피식 웃으며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며 가게 밖을 나가며 말했다.
“릴 선배는 어딘지 남자다운 구석이 있네요.”
“음, 군인 집안인 영향이 있는 것 같네요. 어릴 때부터 오빠와 같이 전쟁놀이를 하고 놀았거든요.”
척- 절도 있게 선 릴은 군기가 잡힌 군인처럼 척척 걸으며 물었다.
확실히 릴은 말투도 절도가 있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제 말투나 행동이 이상하다고 할 때가 많지만요.”
“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오, 고마워요. 레오.”
릴이 빙긋 웃으며 레오와 함께 가게서 멀어졌다.
“호오.”
팔락-!
그때 가게 한쪽에 있던 남자가 신문을 접었다.
그러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2학년 대표와 릴 루체와 1학년 대표 레오 플로브라.”
드륵- 쨍그랑.
“재미있겠는데?”
자리에서 일어난 남자는 동전 몇 개를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모자를 눌러 쓴 후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
“야, 레오 녀석 진짜 루체 선배랑 새벽에 나가던데?”
“1학년 최초 아니냐? 여학생이랑 외박한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녀석은?”
아침부터 1학년 기숙사는 한 가지 화제로 모두의 관심이 쏠려 있었다.
다름 아닌 레오와 릴에 관한 소문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셀리아 주변으로 여학생들이 잔뜩 몰렸다.
“셀리아! 셀리아! 2학년 릴 선배랑 레오가 사귄다는 게 사실이야?”
“아니지? 거짓말이지? 그치!”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하며 묻는 동급생 친구들을 보며 셀리아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나야 모르지. 그런데 너희들이 왜 그렇게 흥분이야?”
“왜긴! 우린 레오의 팬클럽이란 말이야!”
“……레오한테 그런 게 있었어? 역시 학생회장은 다르네. 팬클럽 같은 것도 생기고.”
셀리아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도 있거든?’
‘얘도 이런 쪽으로 은근히 둔감하다니까.’
주변에 있던 1반 학생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셀리아를 바라보았다.
참고로 레오의 팬클럽은 최근에 생겼다면 셀리아의 팬클럽은 학기 초부터 존재했다.
그때 셀리아 앞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듀란이 코웃음을 쳤다.
현재 1반 학생들은 각자 모여 루세전 선발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참이었다.
1반은 학기 초부터 반 평균 1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이번 루세전 대표팀 선발에도 굉장히 적극적인 반 중 하나였다.
듀란은 특유의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흥, 레오 플로브가 누구랑 사귀든 그게 이렇게 소란 떨 일인가? 안 그런가, 클로에?”
듀란은 1반 반장인 클로에에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동의를 구하듯 되물었다.
“뭐?”
클로에의 푸른 눈이 차갑게 희번덕거렸다.
그걸 보고 주변 1반 학생들이 흠칫했다.
하지만 클로에 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듀란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녀석이 누구와 연애하든 수련에만 소홀히 하지 않으면 상관없지.”
사아아아-!
“히이익?”
“클로에? 클로에?”
클로에 주변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자 1반 학생들이 기겁하며 클로에에게서 멀어졌다.
“릴 선배라면 소문난 우등생이니 그녀와 사귄다면 레오 플로브에게도 도움이 많이 되겠지. 꽤 어울릴 것 같기도 하군. 놈이 더 높은 위치에 오르게 되면 더더욱 쓰러트릴 가치가…….”
쩌저적-
“야! 그만해! 분위기 파악 좀 해라!”
결국 클로에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셀리아가 덤벼들어 듀란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그런 셀리아를 보며 얼굴을 구긴 듀란이 손을 떨쳐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듀란, 저기 좀 봐.”
하울이 한숨을 쉬며 클로에 쪽을 가리켰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는 클로에를 발견한 듀란이 움찔 몸을 떨었다.
성질머리 더럽기로 유명한 듀란도 한 수 접어 줄 정도로 지금 클로에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왜 저러는 거지?”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냐?”
“아오! 눈치가 없어요! 눈치가!”
셀리아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식당 안으로 첸 시아가 들어왔다.
“첸 시아!”
“오늘이야말로 널 우리 부로 영입하겠다!”
“야아아압!”
첸 시아를 발견한 기사학과 학생들이 달려들었다.
그걸 보고 주변 학생들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1학년을 통틀어 최고의 체술 능력을 가진 첸 시아는 운동 동아리에서는 말 그대로 원하는 인재였다.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기에 따로 동아리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운동 동아리에서는 호시탐탐 첸 시아를 노렸다.
점점 노골적으로 선배들이 달라붙자 첸 시아는 학과 선배들에게 선언했다.
‘동급생 중 저에게 체술로 한 방 먹이는 분이 있다면 그 동아리로 들어갈게요. 주말 아침마다 덤비세요.’
빙긋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 이후부터 습격은 주말 아침 식당의 일과가 되었다.
물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한 학생은 없었다.
그 덕분에 동아리 선배들에게 끔찍한 지옥 훈련받는 1학년들은 어떻게든 첸 시아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팔락-
첸 시아가 가볍게 손을 털었다.
콰득!
“꾸엑?!”
뻐엉-!
“커헉!”
뿌득!
“꺄아악!”
첸 시아는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며 무자비한 반격을 가했다.
주먹에 맞고 날아가고 발에 차여 굴러다니며 관절이 뽑히는 등.
웃는 얼굴로 살벌하기 짝이 없는 반격을 가하는 첸 시아의 모습을 보며 구경하던 1학년이 중얼거렸다.
“오늘은 왠지 평소보다 손속이 더 과한 것 같지 않아?”
“그러…….”
휘익-! 쿵-!
“……네.”
구경꾼은 옆으로 날아와 처박힌 동급생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첸 시아 오늘 엄청 무섭다.”
평소와 다름없는 웃는 얼굴이 무섭다며 동급생들이 벌벌 떨었다.
“쟤들은 왜 아침부터 히스테릭이래?”
5반 학생들이랑 같이 아침 식사를 하던 첼시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아무렇지 않아?”
테이드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뭐가?”
“레오랑 릴 선배랑 데이트 간 거.”
그 물음에 첼시가 빙긋 웃었다.
“나는 언제나 레오 오빠랑 가까이 있는데 릴 선배가 레오 오빠랑 연애 쪽으로 접점이 있는 걸 한 번도 못 봤는 걸?”
“그래?”
“응. 그리고 레오 오빠가 다른 사람이랑 사귀면 사귀는 거지.”
“…….”
첼시는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스푼을 입에 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테이드는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아침 첼시를 놀렸던 칼과 일리아나는 식당 한쪽에 처참한 모습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을 넬라가 치유의 오러로 치유해주고 있었다.
아침부터 심기가 불편한 첼시를 놀린 대가를 톡톡하게 치른 둘이었다.
‘레오, 빨리 와서 해명 좀 해줘라.’
테이드는 반 친구를 속으로 부르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
레오와 릴은 루메리아 시티를 벗어나 반나절에 걸쳐 제로디아 성터에 도착했다.
레오는 폐허가 된 성터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루메른에서 말한 귀빈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은 아닌데.’
이곳은 300년 전 대륙 중부에 있던 요새였다.
당시 루메른의 교장이었던 제로디아가 단신으로 군단장을 진격을 막아냈던 성터.
그녀는 끝없는 정령들을 소환해 군단장의 진격을 막아 낸 것으로 유명했다.
그렇다 보니 이곳은 정령술사에게 있어 성역과도 같은 곳이다.
성터에 들어서기 전 릴이 교복을 가다듬었다.
루메른의 학생으로서, 또 정령술사로서.
이곳에 방문하면 위대했던 선대 영웅에게 예를 차릴 이유가 있었다.
레오 역시 릴을 따라 옷을 가다듬고 성터로 들어갔다.
“저것 보십시오, 레오. 제로디아님께서 바람의 대정령을 소환해 군단장의 흑마법을 막아낸 흔적입니다!”
거대한 성벽이 나 있는 상흔을 가리키며 릴이 흥분했다.
“저도 언젠가 제로디아님처럼 바람의 대정령을 소환하면 좋겠습니다.”
눈을 반짝이며 꿈에 부푸는 소녀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을 때였다.
휘오오오-!
바람이 불어왔다.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릴 역시 마찬가지로 멈칫했다.
콰가가가각-!
거센 칼바람이 레오와 릴을 덮쳤다.
재빠르게 공격을 피한 레오는 자세를 바로잡고 모습을 갖춰가는 바람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소환된 바람의 정령이 레오와 릴을 향해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장난질이 심하군요.”
릴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영력을 일으켰다.
“나오십시오! 정령술사!”
휘오오오오-!
릴의 주변으로 강력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 모습을 본 레오가 바람의 정령을 바라보았다.
‘정령술사가 소환한 정령이 아니야.’
레오 역시 영력을 일으켰다.
‘상위 정령에게 명령을 받는 정령이야.’
그리고 눈앞의 정령은 상당한 고위 정령이다.
이만한 정령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정령이라면…….
‘대정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