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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가 그친 세이룬 워프 게이트 앞에 모인 세이룬 학생들의 위압감은 상당했다.
세이룬의 학생회장 리에니아는 그 모습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연병장으로 가자. 선생님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어.”
그 말에 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원 이동한다!”
루메른 학생들이 긴장된 얼굴로 리스를 따라 줄을 맞춰 이동하기 시작했다.
척! 좌악-!
그러자 세이룬 학생들이 마치 제식 훈련이 잘된 병사들처럼 길을 터주었다.
“으어- 기죽어라~”
절도 있는 그 모습에 칼이 고개를 저으며 너털거리며 중얼거렸다.
“흥! 흥! 이런 거에 누가 기죽을 줄 알고?”
일리아나가 반발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지나갈 때마다 눈을 부릅뜨고 있는 세이룬 학생들을 보며 찔끔한 표정을 지었다.
세이룬 학생들은 자신들의 경쟁 상대를 눈에 박겠다는 듯 루메른 학생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중 가장 시선의 집중을 받는 건 역시 레오였다.
레오가 지나갈 때마다 세이룬 학생들의 강렬한 시선이 꽂혔다.
1학기 수학여행 당시.
레오가 루나의 마법인 ‘꽃을 피우는 마법’을 해석한 것은 이미 세이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아직 전 세계에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세이룬에서는 유명한 사실이다.
처음에 꽃을 피우는 마법에 관해 알려졌을 때 대부분 엘프의 반응은 시조가 만든 무수한 마법 중 하나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세이룬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수천 년 세이룬 역사에서 소실 되었던 시조의 마법을 복원 해석한 게 세이룬의 학생, 심지어 엘프도 아닌 인간이라는 사실이 말이다.
하지만 학기 임무실습 도중에 루나의 입에서 직접 꽃을 피우는 마법에 대한 언급이 나왔다.
루니아와 하딘의 보고에 의해 꽃을 피우는 마법의 중요성은 더더욱 올라갔다.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레오에 관한 이야기는 세이룬 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루메른의 학생회장으로 레오가 선출되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세이룬 입장에서 레오는 이번 루세전의 최고 경계 대상 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세이룬 학생들이 모두 뚫어져라 레오를 바라보는데도 정작 레오는 태연하게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야, 레오. 세이룬 학생들이 무섭게 널 노려보고 있는데 괜찮아?”
“뭐가?”
“부담 안 되냐?”
“전혀.”
“난 가끔 너의 그 대범함이 부럽다.”
태연한 레오의 반응에 칼은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 칼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을 때였다.
세이룬 학생들 사이에서 낯익은 소녀를 발견했다.
에이란은 레오를 발견하더니 환하게 웃으면 손을 흔들었다.
레오가 그런 에이란을 보며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에이란이 수줍게 미소 지었다.
그 반응에 주변에 있던 다른 반 학생들이 다급하게 레오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야! 레오 방금 누구야?”
“아는 사이야?”
“엄청 미소녀던데! 다들 살벌하게 바라보는데 쟤만 미소 지어 줬다고!”
에이란은 다른 세이룬 학생들과 달리 루메른 학생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녀의 성격상 다른 학교 학생을 위협하라고 한들 위협이 될 리 만무했다.
다른 반 학생들의 반응에 칼이 훗-! 하고 웃었다.
“에이란에 대해 알고 싶어?”
“오! 칼 너도 아는구나!”
“수학여행 때 친해진 거냐?”
다른 반 학생들이 옳다구나 하고 칼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궁금해?”
“궁금해!”
“긴장을 푸는 건 좋은데 선배들이 노려보는데.”
레오가 소란스러워지는 남학생들을 보며 말하자 ‘크헉!’ 한 남학생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렇게 루메른 학생들이 세이룬의 대연병장에 도착했다.
먼저 길을 터주고 뒤를 따르던 세이룬 학생들이 자신들의 자리에 도열해 섰다.
루메른 학생들도 학년 대표를 선두로 해서 학년별로 정렬했다.
그런 가운데 대연병장 가운데 앞에 서 있던 단상에서 한 엘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륜이 느껴지는 그는 진중한 눈으로 루메른 학생들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환영한다, 인간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싹들이여. 내 이름은 베니트. 부족하지만 세이룬의 교장 자리를 맡고 있다.
베니트가 자신을 소개하자 루메른 학생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베니트.
[시조의 첫 번째 별]이라 불리는 마법사 영웅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시조의 모든 마법을 구사할 수 있는 강력한 마법사였다.
실제 루나의 세계를 공략해 그 힘을 계승한 남자이기도 했다.
세이룬의 교장직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대단한 영웅을 실물로 봤으니 루메른 학생들 입장에서는 절로 탄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번 세루전에서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으면 좋겠군. 세루전의 본격적인 시작은 모레부터. 그 이전까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으면 좋겠군. 이상이다.
무미건조한 환영 인사였다.
하지만 라이벌 학교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기도 했다.
짝- 짝- 짝-
루메른 학생들이 박수 쳤다.
단상에서 내려간 베니트는 그대로 학교로 돌아가 버렸다.
“자, 자. 그럼 이제부터 숙소로 안내해줄게.”
리에니아가 루메른 학생들 앞에 서서 빙긋 웃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대로 본격적인 세루전의 시작은 모레부터야. 그러니 준비된 숙소에서 푹 쉬어. 아, 학교 편의시설은 마음대로 사용해도 괜찮아. 그리고 저녁에 너희들의 환영 파티가 있을 예정이니까 참석하고 싶은 사람은 참석해 줘.”
그렇게 말한 리에니아를 필두로 세이룬의 학생회 임원들이 루메른의 숙소로 안내해주었다.
세이룬이 안내해준 숙소는 남녀, 학년 공용의 숙소였다.
물론 공용이라고 해도 자고 씻는 공간은 나뉘어 있었다.
공유하는 건 휴게실.
이곳에서 다음 날 있을 경기의 작전 등을 짤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학생들이 배정된 방에 짐을 풀고 휴게실이 모였다.
“우리 학교도 엄청 으리으리한데 세이룬은 더 대단하네.”
일리아나는 숙소 휴게실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영웅 사관 학교 중 가장 부자 학교잖아.”
넬라가 빙긋 웃었다.
“그나저나 환영 파티라. 기 싸움이 엄청날 것 같은데?”
“그렇겠지? 아까 세이룬 애들 노려보는 건 안 보였냐? 어후, 그냥.”
테이드의 중얼거림에 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환영 파티를 통해 기선 제압을 제대로 할 생각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안 갈 수도 없어.”
팔짱을 낀 첼시가 강경하게 말했다.
“우리가 가서 도리어 기선 제압을 해줘야 한다고!”
그 주장에 5반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 반장은 그런 거 잘하잖아. 가서 기선 제압 한 번에 해줘! 이미 첫 만남부터 우리는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란 말이야~”
“맞아! 레오 오빠! 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줘!”
첼시와 일리아나가 옆에서 느긋하게 앉아 있던 레오에게 말했다.
“기선제압?”
피식 웃는 레오를 보며 첼시와 일리아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 번 제대로 해볼까?”
“오! 역시 반장이야!”
“레오 오빠 파이팅!”
두 소녀는 의욕적으로 레오를 응원했다.
그걸 보며 테이드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괜찮을까? 너무 크게 한 방 먹일 것 같은데.”
“그렇기는 한데 지금 이 상황에서는 레오의 패기가 필요한 시점이니까.”
테이드의 말에 넬라가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난 살짝 불안한데.”
칼이 걱정스럽다는 눈으로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
초장부터 기선 제압을 시도한 세이룬에 맞서 루메른 학생은 전원 환영 파티에 참여했다.
환영 파티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루메른의 교수와 선생들까지도 참석한 상태였다.
레오는 파티장 한쪽에서 느긋하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은 엘프의 전통 요리를 먹어보겠다며 모두들 뷔페 앞으로 달려간 상태였다.
레오는 파티장 한쪽에 선 채로 세이룬 학생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였다.
“레오 학생, 여기 있었군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는 수학여행 때 봤던 세이룬 1학년 상급 1반의 담임 선생, 헤르디움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헤르디움 선생님.”
레오가 인사했다.
수학여행이 끝난 이후에도 헤르디움은 꾸준히 레오에게 관심을 보여왔다.
레오의 세이룬 전학 권유라던가 교환 학생 시도 등등.
이 모든 것들이 헤르디움의 주도하에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헤르디움으로서는 시조의 마법을 해석한 레오의 재능이 탐이 났다.
‘레오 학생이 엘프였다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헤르디움은 내색하지 않았다.
레오는 이제 1학년.
앞으로 세이룬과 더더욱 교류할 날이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레오가 세이룬에서 공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그런 때를 대비해서라도 레오 학생과는 좀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겠지.’
헤르디움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헤르디움 선생. 거기 있는 소년을 나에게 좀 소개해 주겠나?”
어떤 남자가 웃으며 다가왔다.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과 다르게 그 눈동자에는 차분한 기색이 가득했다.
레오는 그의 외모가 루니아와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엘런 룬드아. 루니아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의 친구.’
그리고 피오라의 어머니인 피리나의 맹약자이기도 했다.
“아! 엘런 선생님.”
헤르디움은 밝은 표정으로 엘런을 반갑게 맞이했다.
사실 세이룬의 선생들 대부분은 레오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레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선생은 레오를 직접 만난 헤르디움이나 딸과 맹약자를 통해 레오에 대해 들은 엘런 정도가 전부였다.
“이쪽은 레오 플로브입니다. 레오 학생. 이분은 엘런 룬드아 선생님입니다.”
“레오 플로브라고 합니다.”
“엘런 룬드아라고 하네.”
엘런은 부드럽게 웃으며 레오에게 손을 건넸다.
그 손을 레오가 잡으며 악수했다.
엘런은 흐뭇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는 헤르디움에게 말했다.
“헤르디움 선생, 잠시 레오 학생과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
“알겠습니다, 그럼 레오 학생.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랍니다.”
헤르디움은 웃으면서 자리를 떠났다.
피닉스의 맹약자끼리 통하는 게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헤르디움이 떠나자 엘런이 말했다.
“딸 아이가 여러 번 신세를 진 모양이더군.”
“아니에요, 저도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요.”
레오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레오를 보며 피식 웃은 엘런이 말했다.
“네 어머니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해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네 어머니에게 빚이 있다.”
“피리나님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
엘런이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레오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네게 빚을 대신 갚겠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그녀에게 진 빚은 평생 갈 테니. 다만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연락하거라. 최대한 너의 도움이 되어주마.”
“감사합니다.”
엘프 사회에서 최고 명문 가문인 룬드아 가주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 사회로 친다면 엘런은 제르딩거의 가주와 비견 되는 존재.
그리고 조금 전 도움이 되어주게겠다는 말은 절대 빈말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덤덤하게 받아들이다니.’
엘런은 감탄하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딸이 이 소년을 꺾겠다며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평생을 다해 좇을 목표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엘런이 피식 미소 지을 때였다.
“아빠…… 아니, 엘런 선생님.”
레오와 엘런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걸 발견한 루니아가 다급히 다가왔다.
그런 딸을 보며 피식 웃은 엘런이 레오에게 ‘이야기 나누게나’라고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런 엘런의 모습을 힐끗힐끗 보며 루니아가 물었다.
“아빠랑 무슨 이야기 했어?”
“별 이야기 안 했어.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곧 댄스 타임이 시작되거든. 너랑 춤을 추는 건 즐거웠으니까. 춤을 신청하러 왔어.”
루니아가 웃으며 말했다.
파앗-!
그때 파티장 내의 조명이 꺼졌다.
학생들이 당황할 때였다.
“신사 숙녀 여러분! 환영회는 즐기고 있습니까?”
마이크를 든 세이룬 남학생이 파티장 한쪽에 있는 단상 위로 올랐다.
그는 익살맞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파티의 사회를 맡은 이딘이라고 합니다.”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만 집중 되었다.
모두의 시선이 이딘에게 꽂혔다.
“본격적인 파티에 앞서 세루전에 대한 학생 여러분의 각오 한마디 듣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서요.”
이딘은 학생들을 쭉 훑어보며 빙긋 웃었다.
그와 함께 단상 위로 정령들이 거대한 트로피 하나를 들고 나타났다.
루세전 우승 트로피였다.
“이 트로피는 지난 수년 동안 우리 세이룬의 것이었죠! 물론 앞으로도 세이룬의 것일 겁니다.”
의미심장하게 웃은 이딘을 보며 루메른 학생 몇몇이 야유를 쏟아냈다.
“오우! 기분이 안 좋으면 실력으로 뺏어가세요.”
이딘이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리에니아에게 말했다.
“그렇죠? 회장님.”
“그럼! 그럼!”
리에니아가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세루전을 앞두고 세이룬과 루메른 학생회장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요. 우선 세이룬의 학생회장님의 말씀부터 들을까요?”
이딘이 리에니아에게 다가가 마이크를 들이 밀었다.
“각오 한마디 부탁드려요, 회장.”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할 거야. 그리고 이겨서 세루전은 세이룬이 이긴다는 전통을 이어나가겠어.”
씩- 웃는 리에니아를 보며 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루메른 학생회장님.”
“난 내 후임 학생회장에게 이야기를 양보하지.”
리스의 말에 이딘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웃으면서 레오에게 다가갔다.
“이야. 후임 학생회장이라. 아무리 학생회장이라도 1학년이 루메른 학생들을 대변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장난기 섞인 놀림에 세이룬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딘은 레오에게 다가갔다.
“그럼 루메른의 차기 학생회장. 첫 세루전을 앞두고 각오 한마디 들어도 되겠습니까?”
이딘은 레오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말했다.
그걸 받은 레오는 드넓은 파티장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걸 느꼈다.
레오는 마이크를 잡고 덤덤히 말했다.
“세이룬 학생 여러분, 지금까지 트로피 보관해줘서 고맙습니다.”
레오의 말에 이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이룬 학생들도 인상을 찡그렸다.
“트로피는 지금 많이 구경해두세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레오의 말에 이딘이 묻자 레오는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대답했다.
“앞으로 5년 동안 저 트로피 구경하기 힘들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