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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건방져!”
“그동안 해석되지 않았던 루나님의 마법을 해석했다고 뭐라도 된 줄 아는 거야 뭐야?”
세이룬 학생들이 인상을 쓰며 레오를 노려보았다.
루메른 학생들은 통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와중에 이딘이 히죽 웃었다.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레오 플로브. 하지만 세이룬은 오랫동안 루메른의 벽이었는데 자신 있습니까?”
“올해부터는 많이 다를 겁니다.”
“자신만만하네? 차기 루메른의 학생회장.”
리에니아가 레오 또각- 또각- 레오 앞으로 다가갔다.
“그 말은 올해 루메른은 네가 있어서 다르다는 거니?”
“예.”
리에니아가 할짝- 혀로 윗입술을 훑었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상대를 쓰러트리면 훨씬 보람찬 법이지.”
훗- 하고 웃는 리에니아의 모습에 루메른의 3, 4학년들은 몸을 떨었다.
리에니아.
세이룬의 학생회장으로 지난 5년 동안 최고의 영웅 후보생으로 평가받았던 학생이다.
그 실력과 행보는 루메른의 리스와 비견되는 수준.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3, 4학년들이 몸을 떨 이유는 없었다.
3, 4학년들이 그녀를 보고 몸서리치는 이유는 그녀의 특징 때문이다.
그녀의 별명은 사냥꾼.
표적으로 정한 상대를 무조건 쓰러트리고 마는 집요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청초한 외모 속에는 상대를 철저하게 짓밟는 사디스트적인 성향까지 감추고 있었다.
루세전으로 몇 번이고 그녀의 그런 점을 경험한 3, 4학년들에게 리에니아는 말 그대로 공포였다.
그녀가 그런 반응을 보이자 몸서리치는 건 루메른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세이룬 학생들 역시 흠칫했다.
그녀에게는 오만하고 콧대 높은 세이룬 학생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녀가 학생회장이 된 이후로 괜히 반항했다가 철저하게 짓밟힌 학생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레오 앞에 선 리에니아가 황금색 눈을 반짝이며 손을 뻗어 레오의 턱을 살짝 잡았다.
“시조님의 마법을 복원하고, 시조님의 세계를 공략한 넌 쓰러트릴 가치가 있어. 후후, 이 누나에게 당하고 엉엉 울지 마렴. 아, 네가 우리 세이룬에 공부하러 와도 되겠네. 시조님의 마법을 복원했을 정도니 세이룬에 들어올 자격이 있을 테니까. 이참에 세이룬에 오는 게 어때? 그러면 네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는 트로피도 가질 수 있잖아?”
“저 여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안 되겠네요.”
파티장 한쪽에서 관심 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고 있던 엘레나가 서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 엘레나?”
엘레나의 분홍색 눈동자가 서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감히 레오군에게 더러운 수작을 부리다니.”
“지, 진정해! 엘레나! 너까지 저기 끼어들면 난리 나!”
“세이룬 학생회장이 그냥 농담하는 거잖아?”
기겁한 3학년들이 어떻게든 엘레나를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루메른의 여왕이라 불리는 그녀를 말릴 수 있는 학생은 몇 없었다.
동급생들을 무시한 엘레나가 진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때 누군가 엘레나에게 어깨동무했다.
“우리 후배님이 왜 또 심기가 불편하실까.”
“토루아 선배.”
“레오군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 네가 선택한 학생회장이잖아?”
토루아의 말에 엘라나가 힐끗- 레오를 바라보았다.
한편 비슷한 일은 교사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읍! 읍!”
“야이 미친놈아! 학생 일에 네가 왜 끼려고 그래!”
유라는 눈을 뜨고 광분하는 렌을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노력했다.
아인은 한숨을 쉬며 뒤에서 렌의 목을 팔에 걸어 저지하며 남은 손으로는 입을 막고 있었다.
그때 할린드가 다가왔다.
“또 소란인가.”
“하, 할린드 교수님!”
유라가 차렷 자세를 취했다.
평소라면 할린드의 등장에 진정했을 렌이었지만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린드는 그런 렌을 보며 아인에게 턱짓했다.
“처리해.”
우드득-
아인이 망설임 없이 팔에 힘을 주어 렌을 기절시켜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주변 루메른 교수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할까요?”
유라가 태연하게 묻자 할린드는 덤덤히 대답했다.
“밖에 갖다 버려. 추운 데서 눈 좀 맞으면 정신을 차리겠지.”
아인과 유라는 망설임 없이 렌을 바깥에다 내버리러 갔다.
그렇게 세 교수가 참으로 눈물 나는 선후배 사이의 돈독한 우애를 보여주는 사이.
레오는 턱을 잡은 리에니아의 손을 치우며 웃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전 뺏는 쪽이 더 재미있어서요.”
“어머나. 나랑 취향이 비슷하네.”
리에니아가 빙긋 웃었다.
“그럼 넌 세루전 우승 트로피를 만질 일이 없을 걸?”
“뺏어와서 대충 어디 전시해 놓을 테니 만질 일 없겠죠.”
별것 아니라는 듯 말하는 레오를 보며 리에니아가 살짝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학교생활 내내 루세전 트로피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데 루메른의 이 1학년은 트로피를 길가에 돌아다니는 돌멩이 취급이다.
게다가 어떤 도발을 하든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치는 게 꽤 얄밉게 느껴졌다.
‘여유가 상당하네.’
살짝 골이 난 리에니아가 트로피로 다가가 들어 올리며 약 올리듯 흔들었다.
“흥이다. 넌 평생 이 트로피를 루메른으로 못 가져갈걸?”
‘회장님!’
‘유치하게 왜 그러세요!’
유치한 도발에 세이룬 학생들이 얼굴을 가렸다.
그런 리에니아를 멀뚱멀뚱 바라보던 레오가 왼쪽 손목에 걸려 있던 폴리움에 마력을 불어 넣은 후 원래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흔들며 물었다.
“세이룬은 이런 거 없죠?”
똑같이 유치하게 대응하는 레오를 보며 리에니아가 흠칫했다.
“어흠! 그, 그럼 학생회장님들의 각오를 들었으니 다음 행사로 넘어가겠습니다!”
더 이상 내버려 뒀다가는 학교 양측 모두가 심각하게 유치해질 것으로 판단한 이딘이 다급히 화제를 넘겼다.
루니아는 태연하게 폴리움을 팔찌로 만드는 레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회장도 유치하지만 진짜 너도 너다. 애도 아니고 왜 그래?”
“나나 너도 애인데.”
“난 아니거든? 남이 없는 걸로 도발하는 유치한 행위에 내가 발끈할 것 같아?”
코웃음을 치는 루니아를 바라보던 레오는 손바닥을 펼쳤다.
퐁-!
그 위로 피오라가 소환되었다.
레오는 피오라를 살짝살짝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넌 이런 거 없지?”
그 말에 루니아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렸다.
아마 파티장만 아니었다면 당장 레오의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주먹을 꾹 쥐며 뿌득-! 이를 가는 루니아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효과가 매우 훌륭하네.”
“너! 세루전 때 봐! 아주 묵사발을 만들어 줄 테니까!”
발끈한 루니아가 획 떠났다.
그리고 레오에게 다가오던 에이란의 손목을 잡고 가버렸다.
“루, 루니아 양?!”
“에이란! 저 녀석은 적이야! 적! 가까이하지 마!”
“그럴 수가……! 레오님!”
울상을 지은 에이란이 애타게 레오를 불렀다.
레오는 그런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오! 레오! 완벽하게 도발했잖아!”
“그래! 기선제압에서 승리한 거라고!”
칼과 테이드가 웃으며 다가왔다.
“1학년 경기에서 최대한 내 주변에 안 있는 게 좋을 거야.”
“응?”
“왜?”
“루니아가 앞뒤 안 가리고 나한테 돌격해 올 거 같거든.”
그 말에 칼과 테이드는 수학여행 때 레오의 멱살을 잡고 광분하던 루니아를 떠올리며 몸을 덜덜 떨었다.
***
“칼리안이여. 올해 루메른의 1학년은 모두 심상치 않은 모양이더군. 대단해.”
야심한 밤.
세이룬의 가장 높은 곳.
별의 광장에서 세이룬의 교장, 베니트가 덤덤히 말했다.
그런 베니트의 말에 칼리안이 껄껄 웃었다.
“내가 대단할 게 뭐가 있나? 그저 아이들과 교수들이 열심히 해준 거지.”
검성 칼리안.
시조의 첫 번째 별 베니트.
두 사람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영웅이다.
현시대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라면 손에 꼽히는 위인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전장을 헤쳐나간 전우였다.
“그래서 자네가 직접 보니 어땠나?”
칼리안이 차를 홀짝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이룬의 가장 높은 곳.
마법에 의해 세이룬 상공에 떠 있는 이곳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별을 관측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였다.
물론 누구에게나 허락된 공간은 아니다.
세이룬의 초기부터 있었던 곳인 만큼 주요 회의가 있을 때 주로 사용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맑은 날이면 밤에 무한하게 펼쳐진 별이 보이는 장소였다.
칼리안 역시 항상 이곳에 올 때면 감탄하곤 했다.
칼리안의 말에 베니트가 덤덤하게 말했다.
“자네와 리벤 경이 선택한 이유를 알겠더군.”
베니트는 아까 전 스쳐 지나가듯 바라보았던 레오를 떠올렸다.
“시대를 짊어질 만한 재목이야. 네르지아가 탐을 낼 만한 인재더군.”
네르지아.
드래고니아에서 파견된 세이룬의 교감이다.
그리고 그는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영웅 육성에 관심이 많았다.
자기 손으로 위대한 영웅을 탄생시킬 것이라는 야망을 가진 드래곤이었다.
“네르지아가 탐내고 있다라.”
칼리안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루메른이든 세이룬이든 레오 플로브가 성장할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지.’
교장으로서 올바른 태도는 아니겠지만 고작 학교에 연연하기에는 칼리안과 베니트는 너무 오래 살았다.
그저 시대를 맡길만한 인재가 진정한 영웅으로 탄생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래서. 루세전 전에 이렇게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최근 북부 지방에서 ‘히어로 헌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칼리안의 눈이 꿈틀거렸다.
히어로 헌터.
지상을 배신하고 타르타로스에게 붙은 자들.
그중에는 히어로 레코드의 힘을 계승한 자들도 적지 않다.
말 그대로 타르타로스에서 영웅들을 죽이기 위해 만든 집단.
“물론 감히 엘프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위협이 되는 건 확실해.”
“편지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지 않았나?”
칼리안이 미간을 좁히며 묻자 베니아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몰라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었네. 세이룬과 루메른을 오가는 편지나 마법 통신은 얼마든지 도청당할 수 있으니.”
“과연. 그래서 루메른에 영웅 소집을 요청해서 우리 쪽 영웅들을 불렀던 거군.”
당연히 세이룬 측에도 엘프 영웅들이 있다.
그런데도 루메른에도 영웅 소집을 요청했었다.
명목은 혹시 모를 타르타로스의 움직임을 견제하기 위한 요청이었지만 루메른의 영웅들까지 동원하는 건 조금 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이유가 있었다.
“루메른의 교수들과 영웅들에게 전해두게. 별일은 없겠지만 만에 하나가 있을 수 있으니 말일세.”
루세전은 취소할 수는 없었다.
타르타로스나 히어로 헌터가 걱정된다는 이유로 매년 치러오던 루세전을 중단하는 건 더 큰 혼란과 불안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럴 바에는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전력을 집결시키는 게 옳다고 생각한 베니트였다.
칼리안이 고개를 끄덕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하늘을 보며 칼리안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일이 없었으면 좋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