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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세 명의 기수들이 일제히 선두로 치고 나갑니다! 가장 선두에 선 자는…… 에이란! 세이룬 1학년 차석! 에이란 에이사르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루메른의 듀란 모이라와 엘리자 헤르긴이 맹추격하고 있군요!]
에이란은 긴 은발을 휘날리며 최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한 줄기의 바람처럼 달려나가는 에이란의 뒤를 뒤따르며 듀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마검사인가? 발이 상당히 재빠르군.”
파지직-
듀란의 몸에서 맹렬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황금색 번개를 몸에 두른 듀란이 자세를 낮추었다.
파바바바바밧-!
듀란이 엄청난 속도로 에이란과 거리를 겹쳤다.
“실력 좀 보여주실까? 세이룬의 차석!”
콰가각-!
듀란이 번개같이 검을 뽑아 에이란을 위협했다.
화악-!
“……!”
순간 에이란이 몸을 폴짝 뛰어 듀란의 공격을 피했다.
통-!
그리고 마치 허공에 땅이라도 있는 듯 공중을 밟으며 자세를 바로잡고 듀란과 거리를 벌렸다.
너무도 간단하게 자신의 공격을 피하는 에이란을 보며 듀란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재미있군.”
척 보기에도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세이룬 차석은 마법이 주력인 마검사가 아닌 육체를 움직이는 데 특화된 마검사였다.
파바바바밧-!
듀란의 몸에 흉포한 번개의 오러가 휘몰아쳤다.
호승심이 생긴 듀란이 검을 치켜들었다.
번쩍! 파지지직-!
듀란의 검이 피뢰침이 된 것처럼 하늘에서 한 줄기의 벼락이 검에 꽂혔다.
파바바밧-!
더욱 맹렬한 번개의 오러를 휘감은 듀란이 다리에 힘을 주었다.
콰가각!
“검을 뽑아라! 에이란 에이사르!”
무시무시한 듀란의 검격이 에이사르의 등을 노렸다.
에이사르는 이번에도 가볍게 몸을 튕겨 사방에서 쏟아지는 변칙적인 듀란의 검격을 모조리 피해냈다.
듀란의 눈이 꿈틀거렸다.
첫 공격이야 가벼운 탐색전이라고 하지만 이번 공격은 꽤 복잡한 패턴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에이란은 그 공격을 귀신같이 피해냈다.
게다가 그런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을 보여주면서 듀란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후후. 과연 세이룬의 차석이라는 건가? 만만하게 볼 게 아니군!”
듀란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휘익-!
“또 무식하게 또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만 하고 있군요.”
그때 살짝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엘리자가 윈드 와이번을 타고 듀란의 곁으로 따라붙었다.
폭풍을 온몸에 두른 윈드 와이번이 삐-! 하고 물었다.
마치 주인과 같이 듀란을 조소하는 것 같았다.
“재수 없는 주인에 재수 없는 애완용 탈것이군.”
듀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엘리자의 윈드 와이번이 꼬리로 듀란의 머리를 치려고 했다.
퍽-!
물론 듀란은 손쉽게 공격을 막아내고 말했다.
“가죽을 벗겨줄까?”
듀란이 눈을 번뜩였다.
하지만 윈드 와이번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무례한 말을 한 당신을 응징하고 싶지만, 지금은 루세전이 우선이니 봐주도록 하죠.”
엘리자가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내 들었다.
“보세요. 사냥감은 어떻게 잡는지 제가 보여 줄 테니까요. 가자! 삐삐!”
조소한 엘리자가 윈드 와이번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엄청난 속도로 에이란에게 돌진하는 윈드 와이번의 뒷모습을 보며 듀란이 중얼거렸다.
“저놈의 환수 이름은 도저히 익숙해 지지가 않는군.”
오만하고 콧대 높은 엘리자는 주력 환수들 역시 하나같이 호화롭기 그지없다.
하나, 하나가 전장을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환수들이지만 그 이름들은 적응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귀여웠다.
듀란이 혀를 차든 말든 빠르게 에이란에게 접근한 엘리자가 말했다.
“삐삐. 저 엘프의 앞을 폭풍으로 막으세요.”
그 말에 윈드 와이번이 엄청난 속도로 하늘 위로 치솟았다.
그리고 하강하며 가속도를 붙여 순식간에 에이란을 가로질렀다.
그러면서 에이란 앞에 폭풍을 휘몰아치게 했다.
고오오오오-!
윈드 와이번의 특수 능력, 대기 조작으로 보이지 않는 공기의 벽이 에이란의 앞을 가로막았다.
에이란의 속력이 줄기 시작하자 엘리자가 빙긋 웃으며 채찍을 휘둘렀다.
휘리릭-! 텁-!
“좋아, 잡았…… 꺅?”
회심의 미소를 짓던 엘리자는 다시 속도를 회복하여 폭풍을 뚫고 돌진하는 에이란에 의해 몸이 딸려갈 뻔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엘리자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뭐죠? 어째서 삐삐의 폭풍이 통하지 않는 거죠?”
“아니무스의 갑옷이군.”
“잠깐! 당신 지금 어디 타는 거예요!”
어느새 도약해서 자신의 뒤에 올라탄 듀란을 보며 엘리자가 인상을 썼다.
“지금은 루세전이지. 그러니 이 정도 협력은 당연한 거 아닌가?”
“큭!”
“아니무스의 갑옷이라면. 대대로 내려온 에이사르 가문의 강력한 기술이지.”
듀란의 말을 듣고 엘리자가 눈을 가늘게 떴다.
“빠른 기동력에 강력한 방어력이라. 확실히 이 장애물 경기에 특화된 능력자군요.”
“그래. 그래서 아니꼽긴 하지만 엘리자 헤르긴. 협력을 제안한다.”
“알겠어요.”
엘리자는 순순히 협력했다.
사실 혼자서 에이란을 쓰러트리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개인감정을 접어야 하는 루세전.
앙숙으로 유명한 두 사람이지만 지금만큼은 학년을 대표하는 기수로서 바로 협력을 선택했다.
휘오오오!
엘리자가 영력을 일으키자 윈드 와이번의 속력이 더욱 빨라졌다.
파지지직-!
듀란은 번개의 오러를 일으켰다.
사실 두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에이란을 앞지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선두 그룹은 에이란, 듀란, 엘리자 3명 2:1의 상황이었다.
여기서 세이룬의 차석인 에이란을 탈락시킨다면 이번 경기는 루메른 쪽이 확실히 유리해진다.
휘익-!
멀찍이 에이란을 앞질렀던 엘리자가 와이번에게 명령해 에이란을 향해 돌격하게 했다.
그 사이 오러를 극한까지 끌어 올린 듀란은 에이란을 향해 번개의 검격을 날려 보냈다.
푹-!
그걸 본 에이란이 고개를 숙였다.
‘설마 벌써 포기한 건가?’
듀란과 엘리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번쩍-!
초목을 연상시키는 기운이 에이란의 온몸에 서렸다.
에이란은 양팔로 얼굴을 가리고 속도를 높여 돌격했다.
파지지지직-!
콰가가각-!
번개와 폭풍이 에이란의 몸을 덮쳤다.
하지만 에이란은 그 공격을 뚫고 그대로 두 사람을 지나쳐 달려나갔다.
호쾌하기 그지 없는 정면돌파.
그에 듀란과 엘리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리 공격에 반격하지 않고…….”
“그대로 무시하고 가버렸다고?”
두 사람은 빠르게 달려가는 에이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막강한 공격 때문에 상당한 타격을 입었는지 온몸이 너덜너덜했다.
하지만 에이란은 두 사람을 절대 뒤돌아보지 않고 전진했다.
성격 나쁜 걸로 유명한 두 사람은 공격받으면 무조건 응징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들이다.
그렇다 보니 위협적인 공격을 받았음에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격하는 에이란의 모습은 자신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후후, 과연 세이룬의 차석. 소문에는 꽤 온화한 성격이라 들었는데 오만방자하군.”
듀란이 윈드 와이번에서 내리며 목을 풀었다.
엘리자는 습관적으로 손가락 끝을 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쪽을 쳐다보지 않겠다면 강제로라도 뒤돌아보게 만들어 줘야겠네요.”
“엘리자 헤르긴. 이제 네 도움 따윈 필요 없다. 저 녀석은 내가 쓰러트린다.”
“그건 내가 할 말이에요, 듀란 모이라.”
꼭지가 돈 두 사람이 찌릿-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엄청난 속도로 튀어 나갔다.
“거기서라! 에이란 에이사르!”
“학교의 명예를 걸고 나와 싸워요! 세이룬의 차석!”
두 사람이 살기에 가까운 서슬푸른 기세를 흩뿌리며 쫓아오자 에이란은 ‘히익!’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가 조금의 반격도 하지 않은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루메른 분들 너무 무서워!’
아니무스의 갑옷에 온 힘을 쏟아부어 가문의 비전 능력인 에버그린까지 모두 방어에 몰두한 이유도 공격을 다 맞으면서 반격을 안 한 이유도 겁에 질렸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는 기수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았다.
주목을 받는 것도 싫었고 루메른 학생들에게 집중 견제당하는 것도 무서웠다.
소심한 그녀가 맡기에는 너무도 책임이 막중한 직책이었다.
하지만…….
‘에이란! 너만큼 기수에 어울리는 녀석은 없어!’
‘아, 안 돼요! 학생회장님! 전 무서워서 도망치고 말 거라고요!’
‘바로 그거야! 너만큼 잘 도망 다니는 녀석은 내가 본 적이 없거든!’
학생회장 리에니아는 울상을 짓는 에이란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며 강제로 등록시켜 버렸다.
그래서 에이란은 경기가 되면 최대한 다른 학생들과 싸우지 않고 달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에이란의 소심한 작전은 보기 좋게 오해를 낳았고 루메른 1학년 중 가장 호전적이기로 유명한 두 학생을 훌륭하게 도발하는 데 성공했다.
“거기서라!”
“거기서요!”
“히이이이이이익!”
에이란은 울 것 같은 얼굴로 미친 듯이 도망쳤다.
무한한 생명력을 선사하는 에버그린의 힘을 이용해 지치지 않는 몸이 된 에이란은 체력의 분배를 신경 쓰지 않고 육식동물에 쫓기는 초식 동물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데다가 모든 공격을 미칠듯한 회피력으로 피하는 에이란의 모습을 보며 듀란과 엘리자는 더더욱 눈이 돌아갔다.
“없애 버리겠다!”
“잡히면 가만두지 않겠어!”
“히이익! 죄송해요오오오오오!”
에이란이 비명에 가깝게 용서를 빌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쿠구구구구궁-!
그때 눈앞에 땅이 치솟았다.
선두 그룹의 세 사람이 멈칫했다.
그워어어어어어어어!
땅을 뚫고 나온 마물을 본 세 사람이 얼굴을 굳혔다.
“사이클롭스?”
***
그워어어!
사이클롭스가 덮친 건 최선두 그룹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학생들이 포진된 2등 그룹 역시 사이클롭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그걸 본 레오가 중얼거렸다.
“세이룬에서 붙잡은 사이클롭스인가?”
레오의 눈에 사이클롭스들의 목에 달린 제어 장치가 보였다.
아무래도 세이룬에서 연구를 위해 생포한 마물인 듯했다.
그리고 장애물 경주라는 경기에 걸맞게 그 마물들을 장애물로 사용한 것이다.
최상급 마물의 등장에 학생들은 일순간 패닉에 빠졌다.
그때 레오가 몸을 날렸다.
쿠구구구궁! 쾅-!
레오가 있던 자리에 맹렬한 불꽃이 덮쳤다.
“야! 이 자식아! 나랑 붙자니까!”
붉은 눈을 번뜩이는 루니아를 본 레오가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거절할게.”
“네가 거절하든 말든 상관없어!”
활활 타오르는 루니아의 눈동자를 본 레오가 뒤를 가리켰다.
“조심해.”
“아앙?”
거대한 사이클롭스의 손바닥이 루니아를 덮쳤다.
그걸 본 루니아의 눈이 번뜩였다.
화륵-! 콰가강-!
그오오오오오오!
단 한 번의 마법으로 사이클롭스의 팔이 잿더미가 되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이클롭스를 쳐다보지도 않고 루니아가 말했다.
“이것들이 나한테 방해가 될 것 같아?”
최상급 마물이지만, 구속 장치로 힘이 제약당한 상태인 데다가 마물술사도 없는 사이클롭스는 루니아에게 큰 위협이 아니었다.
코웃음을 치는 루니아를 보며 레오가 덤덤히 말했다.
“아니, 내가 말한 건 그게 아니거든.”
“응?”
화르르륵-! 콰가가강-!
오러 불꽃이 루니아에게 내리꽂혔다.
오러 불꽃과 마력 불꽃의 격돌에 사방으로 격렬한 화염이 휘몰아쳤다.
레오 앞에 선 셀리아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네 상대는 나야, 루니아 엘 룬드아.”
자신과 똑 닮은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루니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셀리아 제르딩거. 루메른 기사학과 1등.’
어떤 의미에서는 같은 피닉스의 힘을 다루는 룬드아 가문에게 있어 라이벌과도 같은 가문의 직계이다.
‘기수인 레오를 먼저 노리고 싶었지만.’
루니아가 힐끗 레오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되면 쉽지 않다.
게다가 본격적인 장애물들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물불 안 가리고 레오만 노렸던 루니아지만 빠르게 냉정을 되찾았다.
‘셀리아 제르딩거를 날뛰게 내버려 두면 우리 쪽 피해가 커. 여기서 확실하게 붙잡아 두는 게 맞겠지.’
화르륵-!
루니아가 불꽃을 일으켰다.
“룬드아, 제르딩거. 둘 중 누가 우위인지 확실하게 정하는 게 좋겠네.”
루니아의 도발에 셀리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러는 게 좋겠지. 물론 내가 이길 테지만.”
두 사람의 격돌에 레오는 발을 뺐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발동된 장애물과 서로를 견제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세이룬 학생들도 만만치 않군.’
2등 그룹인 이곳에는 수학여행 때 봤던 세이룬의 상급 1반 학생들이 단연 눈에 보였다.
그들도 1학기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실력자로 성장해 있었다.
고오오오오오-!
그때 땅을 뚫고 사이클롭스 한 마리가 또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사이클롭스와는 달랐다.
구속구를 차고 있었지만 다른 사이클롭스 보다 월등히 덩치가 컸다.
위협적인 그 모습에 주변 학생들이 흠칫하며 물러섰다.
쿵-! 쿵-! 쿵-!
사이클롭스가 레오를 발견하고 덮쳤다.
그걸 본 레오가 피식 웃었다.
“마침 잘됐군. 이걸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레오가 손을 뻗었다.
아공간이 열리며 롱소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롱소드.
하지만 이건 드래곤 본으로 만들어진 마법검이었다.
우웅-!
레오의 검에 마법 술식이 생성되었다.
검에 그려진 마법회로가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주변 엘프 학생들이 흠칫했다.
마법 술식을 발동시킨 레오가 검을 내질렀다.
콰가가각-!
혜성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빛줄기가 검에서 뻗어 나와 꼬리를 그리며 하늘로 치솟았다.
그걸 본 세이룬 학생들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람파스……?”
“3학년 때 배우는 별의 마법이잖아?”
굳어 있느 세이룬 학생들을 뒤로하고 레오가 걸음을 옮겼다.
쿵-!
사이클롭스의 육중한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터벅- 터벅-!
레오는 그런 사이클롭스를 뒤로 하고 검을 내려다보았다.
키이이이이이이잉-!
검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복잡한 마법 술식을 버텨내느라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걸 내려다본 레오가 피식 웃었다.
“흠. 나쁘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