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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06화 (206/483)

206

폐허 속을 헤매던 레오는 비를 피할 만한 곳을 발견하고 그곳에 루나를 눕혔다.

그리고 장작으로 쓸 만한 것을 몇 개 모아 ‘파이어’ 주문으로 모닥불을 태웠다.

타닥- 타닥-

폐건물 내에 온기가 도는 것을 확인한 레오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바깥에는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던 레오는 문득 의아함을 느끼며 얼굴을 쓸어보았다.

‘빙의형 세계라면 분명 카일의 모습이 되어야 하는데?’

백발에 붉은색 눈동자.

그리고 아직 앳된 소년의 얼굴은 레오 플로브의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빙의형 세계가 아닌 건가? 하지만 루나는 분명 나를 카일이라고 인식했는데?’

고민하던 레오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루나의 페이지가 망가져서 오류를 일으킨 건가?’

히어로 레코드에는 에레보스의 조각이 봉인되어 있다.

에레보스는 신과 대적하는 존재.

히어로 레코드가 신이 만든 물건이라도 에레보스의 힘에 장시간 노출된다면 오류를 일으킬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도 에레보스의 조각이 있는 건가?’

레오는 얼굴을 굳히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문득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멈칫했다.

‘균열? 저건 대체 뭐지?’

레오가 당혹감을 느끼는 순간.

키오오오오오오오!

귀를 찢는 듯한 포효 소리가 레오의 귓가를 강타했다.

“큭?”

머리 전체가 지끈거릴 정도의 고통이 덮쳐왔다.

‘피어!’

강렬한 피어와 동시에 거대한 돌풍이 불어왔다.

하늘 높이 치솟은 거대한 용인의 모습을 한 괴물을 본 레오가 얼굴을 굳혔다.

‘제르디악!’

오래전 쓰러트렸던 난적의 등장에 레오가 이를 악물고 뒤를 바라보았다.

루나는 여전히 제르디악의 독에 의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서 제르디악과 맞서 싸웠으니 그럴 수밖에.’

-나오거라! 루나 루비넌스! 카일의 뒤를 이어 네놈 역시 끝장내주마!

제르디악의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 이 세계는 실제 역사와 달랐다.

원래 이곳에서 카일과 루나에게 토벌되었어야 제르디악.

하지만 그는 토벌되지 않고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어쩌면 배신자들의 방해로 내가 먼저 쓰러졌을지도 모르지.’

레오가 기절해 있는 루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기절해 있는 루나의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주며 쓰게 웃었다.

“뒤는 나에게 맡겨.”

그 말을 남기고 레오가 몸을 일으켰다.

고오오오오-!

제르디악의 입에서 보라색 빛의 입자가 모여드는 게 보였다.

‘포이즌 브레스군.’

콰가가가각!

무시무시한 죽음이 브레스가 무너져 가는 내부를 더욱 초토화시켰다.

무차별적인 폭격.

다행스럽게도 레오와 루나가 있는 곳을 덮치진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이었다.

심호흡을 한 레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지금 내게는 군단장을 쓰러트릴 힘이 없어.’

카일에게 빙의했다고 해도 카일의 모습을 취할 뿐.

카일이 되는 건 아니다.

지금 레오에게는 레오 플로브의 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한 번, 놈과 맞서 싸울 수 있지.’

벌컥-

문을 열고 나온 레오가 플라이 마법을 이용해 허공에 몸을 띄웠다.

그 마력에 반응한 제르디악이 레오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을 꿈틀거렸다.

-인간?

“오랜만이군, 제르디악.”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제르디악이 흉측한 미소를 지으며 레오를 비웃었다.

-난 너같이 하찮은 인간 따위는 알지 못한다만?

그런 제르디악을 보며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자식은 날 레오 플로브로 인식하는군.

“난 너를 잘 알지.”

-크흐흐! 그럴 수밖에! 너희 인간을 멸종시킬 군단장이니 말이야. 나 제르디악이 죽음을 선고하는 걸 영광으로 알도록.

레오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영광? 웃기지 마. 네놈의 그 흉측한 면상 같은 건 다시 보고 싶지 않았거든?”

제르디악의 눈이 번뜩였다.

화악-! 콰앙-!

일순간 휘둘러진 꼬리가 레오의 몸을 후려갈겼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레오가 바닥에 처박혔다.

-목숨 아까운 걸 모르는 애송이로군. 감히 나 제르디악에게 그딴 무례한 말을 지껄이다니.

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던 레오가 끙- 차 하며 몸을 일으켰다.

-호오, 살아 있나?

원래의 레오였다면 아마 이 공격만으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제르디악 역시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루나 루비넌스를 죽이기 전 여흥은 되겠군.

그 말에 레오의 눈에 살기가 깃들었다.

“넌 루나를 죽일 수 없어.”

-흐흐, 건방진 인간이구나. 네놈이 뭘 할 수 있다는 거지?

“많은 걸 할 수 있지. 가령.”

고오오오오오-!

레오의 팔에 자리 잡은 폴리움에서 싱그러운 연녹빛이 일렁였다.

그걸 본 제르디악의 안색이 돌변했다.

-이건…… 신력?

“네놈을 죽인다거나.”

-신의 가호를 받은 인간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 하지만 그걸로 뭘 하겠다는 거냐? 이미 이 땅에 발조차 붙이지 못하는 신의 힘으로 뭘 하겠다는 거냐?

제르디악이 입을 쩍 벌렸다.

고오오오오-!

하늘에서 브레스를 모으는 제르디악을 보며 레오가 검을 뽑았다.

-사라 없어져라, 인간!

번쩍-!

보라색 섬광이 레오의 시야를 가렸다.

그걸 본 레오가 눈을 번뜩이며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 올렸다.

거대한 회색의 검격이 벽처럼 하늘 높이 치솟았다.

콰가가가강-!

레오 앞에서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진 브레스가 그대로 양 갈래로 폭발을 일으켰다.

제르디악은 검을 휘두른 상태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레오를 보며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건…… 카일의 힘?

피브아가 폴리움에 담아 선물한 신력.

그건 일순간 과거의 힘, 카일의 힘을 되찾게 만들어주는 신의 힘이었다.

-말도 안 되는! 놈은 조금 전 확실하게 죽었다! 그런데 어떻게……!

눈을 부릅뜬 제르디악을 보며 레오는 검을 어깨에 걸쳤다.

-네놈…… 정체가 뭐냐!

“보면 모르냐?”

레오가 붉은 눈을 번뜩였다.

“카일이잖아?”

-헛소리를!

“뭐, 네가 아는 카일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지.”

레오가 자세를 낮추었다.

우웅-!

레오의 몸에 회색의 오러가 일렁였다.

“네가 아는 것보다 훨씬 미래에서 왔거든.”

콰앙-!

땅을 박참과 동시에 레오가 딛고 있는 땅이 움푹 파이며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성되었다.

아르온의 숨결을 극한으로 사용하여 오러의 위력을 폭발적으로 상승시켰다.

지금 레오는 전성기 시절 카일의 힘을 되찾은 상태였다.

물론 에레보스를 토벌했을 당시 모든 동료의 힘을 가지고 있을 때는 아니다.

‘그때의 힘을 불러오면 신의 가호가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어.’

피브아가 레오에게 내린 축복은 짧은 시간 과거의 힘을 구현하는 것.

레오가 에레보스를 토벌했을 때의 힘을 구현한다면 신의 축복이 오래갈 리 없었다.

지금 레오에게 필요한 건 재앙의 불꽃을 쓰러트릴 힘이 아니라 군단장을 쓰러트릴 힘.

‘그렇다면 이 당시 카일의 힘만으로 충분해!’

붉은 눈을 번뜩인 레오가 제르디악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제르디악이 레오를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쩍 벌렸다.

화악-! 콰앙-!

-꺼억?

순식간에 제르디악의 턱밑으로 파고든 레오가 그대로 발을 걷어찼다.

폭발적인 오러의 힘에 의해 제르디악의 몸이 허공으로 높이 치솟았다.

카일을 죽이고 루나에게 치명상을 입혔음에도 불구하고 도주했다.

그건 제르디악 역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걸 의미했다.

아마 루나가 자신의 독에 당한 걸 알고 모습을 감추었으리라.

포이즌 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제르디악이 유리할 테니까.

‘놈은 만전의 상태가 아니야!’

그렇다면 이 전투는 일순간이지만 전성기 시절의 힘을 다시 손에 넣은 레오가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휘청거리는 제르디악을 보며 레오가 불꽃의 오러를 일으켰다.

화르르륵-!

제르딩거의 불꽃이 일렁였다.

제르디악의 속성은 독.

그리고 불꽃은 독을 불태우는 힘을 지닌 상극의 힘이다.

용자의 숨결에 의해 레오의 힘이 극대화되었다.

-놈!

그걸 본 제르디악이 손을 뻗었다.

고오오오오-!

거대한 보랏빛 대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칼날에 닿는 모든 것을 녹이는 제르디악의 무기, 베놈이었다.

저 검에 닿는 것만으로 수많은 영웅이 죽음을 맞이했다.

재앙의 시대 당시 가장 전율스러운 공포 중 하나.

하지만…….

“소용없어.”

화르르륵-!

레오의 손바닥 위로 별의 마법 술식이 떠올랐다.

지금 이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는 마법이다.

머나먼 미래.

루나를 존경하는 엘프들이 그녀의 뒤를 잇기 위해 만든 마법.

‘좀 쓰자, 루니아.’

레오는 엘프 소녀를 떠올리며 웃었다.

“작열.”

화르르륵-!

룬드아 가문의 불꽃이 레오의 손에서 타올랐다.

“홍염.”

그리고 제르딩거의 불꽃이 검에 피어오른다.

피닉스의 힘을 이어받은 두 가문의 궁극의 불꽃이 맹렬하게 타오른다.

이윽고 융합한 두 가문의 불꽃은 피닉스의 날개를 만들어냈다.

-피닉스의…… 불꽃!

“아마 이때 이만한 불꽃을 다룰 수 있었다면…… 네놈을 토벌하는데 좀 덜 고생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네놈……! 네놈! 정체가 뭐냐!

“말했잖아?”

레오가 싸늘하게 웃었다.

“카일이라고.”

콰가가가가각-!

-크아아아아악-!

피닉스의 날개가 칼날처럼 제르디악의 거대한 날개를 잘라냈다.

육중하고 거대한 몸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레오는 그런 제르디악을 끝내기 위해 같이 바닥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 레오를 향해 제르디악이 베놈을 휘둘렀다.

화르륵-!

레오는 피닉스의 불꽃이 깃든 검을 휘둘렀다.

콰득-!

-말도…… 안 되는……!

눈을 부릅뜬 채로 베놈과 함께 양단된 제르디악이 독의 피를 내뿜으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쿵! 철퍽! 처버버벅! 치이이이이익-!

육중한 몸과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폐허의 잔해를 녹였다.

탁-!

바닥에 착지한 레오가 숨을 참았다.

제르디악의 피는 말 그대로 치명적인 극독이었다.

‘이걸로 공략한 건가?’

레오는 빠르게 제르디악의 사체에서 벗어난 후 심호흡했다.

원래라면 혼자서 제르디악을 쓰러트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을지도 몰랐다.

‘가호도 점점 끝이 나는군.’

레오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불꽃처럼 타오르는 카일의 힘이 점점 꺼져 가는 게 느껴졌다.

“그나저나 하늘에 저 균열은 대체…….”

레오는 아까 전 발견한 하늘의 금을 바라보았다.

쩌저적-

하늘에 생긴 균열이 점점 커지는 게 느껴졌다.

순간…….

쩌적-! 빠직-!

균열이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사이로 보인 환한 빛이 쏟아지자 레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건…… 뭐야?”

그 순간…….

고오오오오오오-!

소름 끼치는 열기가 느껴졌다.

눈을 부릅뜬 레오가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녹아내리던 제르디악의 시체가 검은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제르디악이 육중한 몸을 일으켰다.

키오오오오오-!

제르디악 포효를 내지르자 강력한 독기가 불어닥쳤다.

“큭?”

레오가 눈을 부릅떴다.

어느새 회복된 날개를 미친 듯이 퍼덕이더니 제르디악이 그대로 하늘의 균열을 향해 돌격했다.

콰앙-! 콰칭-!

제르디악의 거대한 몸이 하늘의 균열을 박살 냈다.

챙그랑!

균열을 향해 손을 집어넣은 제르디악이 미친 듯이 균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에레보스의 힘? 아니, 그 전에 저 자식! 대체 뭘 하려는 거야!”

레오가 경악하며 제르디악을 향해 날아가려 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르디악을 막아야겠다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제르디악이 넓힌 균열 사이로 보인 풍경에 레오가 얼굴을 굳혔다.

“세이…… 룬?”

레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머릿속으로 엘시의 존재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제르디악이 무엇을 노리는지 깨달았다.

“바깥으로 나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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