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207
키오오오오오오오오!
귀를 찢는 포효 소리가 세이룬 내부에 울려 퍼졌다.
세이룬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낸 제르디악을 막기 위해 영웅 연합은 전력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허공에서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마법진 너머로 베네트와 알비, 엘런, 체이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라투나와의 전투에서 이탈한 넷이 빠르게 성벽으로 합류한 것이다.
“루메른 마법학과생들은 나를 따르도록.”
알비가 무표정한 얼굴로 명령하자 실라투나의 군단을 마법으로 저지하고 있던 마법학과 생들이 다급히 알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질리언.”
“예, 가주님.”
“자네들은 계속해서 성벽을 사수하게.”
체이드는 자신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르왈린 마법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가주님은…….”
“난 저놈을 막으러 가겠네.”
체이드의 싸늘한 눈동자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제르디악은 몸의 대부분이 현세로 넘어온 상태였다.
“가주님, 저희도 따르겠…….”
“지금 르왈린의 전력이 빠진다면 가뜩이나 불리한 전선이 더더욱 무너지게 된다.”
질리언의 말에 체이드가 냉정하게 말했다.
“그대들은 영웅 연합의 주축이 되어 전선을 사수해라. 아니면 내가 미덥지 못한 가주라는 건가?”
“아닙니다.”
영웅 명가의 주인은 단순히 혈통에만 의지하지 않는다.
가문 내에서 최강의 실력자인 것은 당연한 이야기.
체이드는 대륙 서부의 맹자라고 할 수 있는 로드렌에서 가장 강대한 마법사다.
내로라하는 실력자가 연합에서 검성 칼리안이 군단장을 토벌하기 위해 직접 뽑은 실력자인 것이다.
그런 그의 명령에 르왈린의 가신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절대적인 가주의 실력을 믿기 때문이다.
엘런 역시 빠르게 세이룬 학생들을 모았다.
이윽고 제르디악을 막으러 갈 인원이 모두 모였다.
한편.
관중들을 학교 깊숙한 곳으로 대피시킨 1, 2학년들은 다급히 학교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 위에 균열을 통해 현세로 넘어오려는 제르디악을 발견하고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몇몇 이들은 전투 의지를 상실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공포의 존재라 할 수 있는 타르타로스의 군단장.
영웅 후보생이라도 이제 십대 중후반의 어린 소년 소녀들.
지상 최악의 재앙과 마주한 상황에서 공포에 질릴 수밖에 없었다.
“도, 도망가야 해……!”
“저런 괴물을 상대로 1, 2학년들인 우리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겁에 질린 루메른 2학년 중 한 사람이 소리쳤다.
그 말에 영웅 후보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공포는 전염된다.
아무리 용기를 내어 버티려고 해도 누군가 입 밖으로 내뱉은 말에 용기는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 그렇다면 일단 영웅 연합이 있는 쪽으로 후퇴를 하면……!”
세이룬 2학년 중 한 사람이 다급히 말하자 루니아가 소리쳤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지금 학교에 있는 민간인들은 어떻게 해요!”
학교에서 가장 안전한 최중심부에 대피시켜 놓긴 했지만, 저 괴물이 지상에 내려오게 되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어떻게든 이곳을 사수해야……!”
“농담하지 마! 루니아 엘 룬드아! 1학년인 네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2학년인 나도 저 괴물을 상대로 뭘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데!”
세이룬 2학년이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민간인들은 일단 가장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 놨어! 지금 우리 일은 빨리 영웅 연합에 합류하는 거야!”
쿠오오오오오오오!
그때였다.
균열을 넘어오던 제르디악이 분노에 찬 포효를 내질렀다.
제르디악의 피어가 1, 2학년들의 귓가를 강타했다.
그중 저항력이 약한 이들은 일순간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놈을 막아야 해요!”
루니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그런 루니아를 보며 세이룬 학생 한 명이 당황하며 말했다.
“우리 힘으로 저놈을 막는 건 무리라고!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해!”
“맞아!”
“어서 빨리 선배들이 있는 곳으로……!”
세이룬 1, 2학년들이 소리쳤다.
그런 세이룬 1, 2학년들에게 휘둘려 루메른의 1, 2학년들도 영웅 연합 쪽으로 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대로 싸우면 개죽음밖에 더 되겠어?”세이룬 2학년이 루니아에게 소리쳤다.
그런 2학년을 보며 루니아가 심호흡했다.
그리고 손을 뻗어 2학년의 멱살을 잡더니 그대로 잡아당기며 이마로 2학년의 이마를 들이박아 버렸다.
뻐억-!
“꺽?”
기습적인 공격에 2학년이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루니아는 기절한 2학년을 밀어버리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1, 2학년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루니아를 보며 1, 2학년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갈 사람들은 가요.”
루니아가 덤덤하게, 하지만 확실히 분노가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난 이곳에 남아 민간인들을 지키겠어요.”
지금 1, 2학년들이 자리를 비우면 세이룬 내에 있는 이들의 목숨은 확실하게 위협받는다.
루니아의 말에 1, 2학년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루니아 곁으로 셀리아와 클로에가 다가왔다.
“난 놈과 싸우겠어.”
“이대로 물러설 순 없어.”
아바드와 첼시도 합류했다.
“아버지도 싸우고 계신 데 물러설 수는 없지.”
“맞아요!”
그 뒤를 이어 듀란과 엘리자가 코웃음을 쳤다.
“나도 남으려고 했다.”
“멋진 말을 세이룬 대표가 모두 해 버려서 모양새가 좋진 않지만, 저도 싸우겠어요.”
워레든은 묵묵히 팔짱을 끼고 다가갔다.
첸 시아는 빙긋 웃으며 합류했고 에이란과 루카도 합류했다.
그걸 시작으로 루메른과 세이룬의 1학년들이 루니아 곁으로 모여들었다.
“야, 릴! 너도?”
루메른 2학년 한 명이 합류하는 릴에게 다급히 물었다.
그런 동기를 돌아보며 릴이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원래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을 1학년들이 솔선수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그래도…… 너무 무모하지 않아?”
“무모하죠.”
릴의 말에 세이룬의 2학년 학년 대표 중 한 사람이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무모한 짓을 왜 하는 거지? 우리는 선택 받았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 목숨을 버리겠다는 건가?”
그 말에 릴이 환하게 웃었다.
“선택을 받았으니까요.”
“……!”
“사람들을 지키는 건 영웅 후보생으로 당연한 일 아닌가요?”
릴의 말에 세이룬 2학년 학년 대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미쳤군. 미쳤어.”
1, 2학년들은 세이룬을 사수하려는 학생들과 영웅 연합으로 가려는 학생들로 반반 나뉘었다.
쿠구구구궁-!
그때 균열을 빠져나온 제르디악이 지상에 떨어졌다.
지축이 흔들렸다.
그걸 보며 1, 2학년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10분? 아니…… 5분도 못 버틸지도.’
루니아가 이를 악물었다.
그때 제르디악의 주변에 시커먼 구멍이 생성되더니 그곳에서 이형의 괴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걸 본 1, 2학년들의 얼굴이 굳었다.
“군단……!”
“저 괴물! 역시 군단장이란 말이야?”
여기저기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제르디악의 군단이 세이룬을 노리고 돌격해 왔다.
그들의 눈에는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파괴의 본능만이 남은 맹렬한 돌격.
1, 2학년들이 이를 악물고 군단의 침공에 맞서 싸웠다,
“막아!”
“놈들이 학교 내부로 한 발자국도 들어 올 수 없게 만들어!”
다급한 2학년들의 지휘에 1학년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우오오오오오!”
그때 독을 내뿜는 거대한 마족이 포효를 내지르며 셀리아에게 돌격했다.
그런 마족을 보며 이를 악문 셀리아가 불꽃의 오러를 일으켰다.
화르르륵-!
부와아아악!
셀리아의 검격이 마족을 베어 버렸다.
마족의 살이 갈라지며 피가 튀었다.
푸확-!
셀리아가 다급히 피를 피했다.
하지만 뿜어져 나온 독기를 피하지 못했다.
“웁?”
셀리아가 입을 틀어막았다.
크르르르-!
“우웩!”
제르디악의 군단은 한 명 한 명,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는 괴물들.
마족을 쓰러트리면 쓰러트릴수록 독의 피해는 누적되어 갔다.
피를 토하며 휘청거리는 셀리아를 보며 셀리아가 베어낸 마족이 팔을 들었다.
“셀리아!”
클로에가 다급히 마력을 일으켰다.
쩌저저적-!
혹한의 냉기가 마족을 덮쳤다.
얼어 붙은 마족의 움직임이 멈추자 첼시가 다급히 날아와 셀리아를 데리고 후방으로 이탈했다.
“더 싸울 수 있어……!”
“피 토하고 있으면서 그런 말이 나와!”
첼시가 다급히 소리쳤다.
후방에는 힐러들이 부상자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군단의 공격이 시작되고 불과 몇 분 만에 벌어진 참상.
미숙한 1, 2학년들이 막아내기에는 군단의 공격은 너무도 막강했다.
그때였다.
화르르륵-!
맹렬한 화염이 전방에서 치솟았다.
“리스 선배!”
릴이 다급히 지원을 리스를 향해 소리쳤다.
리스뿐만이 아니었다.
후방에 지원을 온 영웅 사관 학생들이 군단의 공격을 저지했다.
선배들의 등장.
하지만 1, 2학년들은 상황을 낙관할 수 없었다.
상대는 무려 타르타로스의 군단이다.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던 상황은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황이 극적으로 바뀔 정도로 좋지는 못했다.
“저걸…… 쓰러트릴 수 있을까?”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영웅의 입에서 절망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라투나의 군단을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후방에 날뛰는 미지의 군단은 위업을 이룬 영웅들에게 조차 절망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실라투나 혼자라면 모를까.
두 군단장을 상대하기에는 전력이 너무도 부족했다.
그때였다.
최전방에서 싸움 소리가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세드젠은 전방을 바라보며 얼굴을 굳혔다.
마물 여왕과 검성의 싸움터.
조금 전과 같은 장소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뒤바뀐 지형의 모습은 그들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움터를 뒤로하고…….
마물 여왕이 진격하고 있었다.
흉측한 괴물의 하체에 작은 인간의 상체를 한 실라투나는 이마에 흐르는 피를 혓바닥으로 핥았다.
“교장 선생님이…… 당하신 건가!”
“이제 정말 끝인가……!”
영웅들의 얼굴에 절망이 드리웠다.
그런 그들을 보며 할린드가 말했다.
“절망할 시간이 있다면 싸울 준비를 해라.”
“할린드 교수님……!”
렌이 흔들리는 눈으로 할린드를 보았다.
“너희는 루메른의 교사다.”
할린드는 특유의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들조차 군단에 맞서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네놈들이 먼저 절망하지 마라.”
그 말에 루메른 교수들이 이를 악물었다.
그때였다.
번쩍-!
거대한 참격이 실라투나를 무참하게 베어 버렸다.
실라투나의 몸에서 무시무시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콰가가가강-!
실라투나의 흑마법으로 만들어낸 검붉은색 섬광이 참격이 날아온 곳으로 쏟아졌다.
“교장선생님……!”
루메른 교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
“칼…… 리안…… 쿨럭-! 쿨럭-!”
처참한 전투의 현장 가운데.
리벤이 다급히 칼리안을 불렀다.
드래곤으로서.
영웅을 이끄는 자로서.
그는 자신이 선택한 영웅을 위해 모든 힘을 불태웠다.
실라투나의 말대로였다.
늙은 영웅과 늙은 용.
그들의 전성기에도 실라투나의 토벌을 장담하기는 힘들었다.
그런데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나고 쇠락해 버린 둘이다.
다른 군단장이었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앙의 시대 이전부터 살아온 괴물 같은 군단장을 상대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덜덜덜-
리벤의 눈에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키는 칼리안의 뒷모습이 보였다.
리벤이 이를 악물었다.
이미 한참 전에 한계에 다다른 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검성은 움직였다.
‘내가 죽는 건 상관없다.’
칼리안이 검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살 만큼 산 몸. 후대를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칼리안이 피를 토했다.
‘한 번이라도 더 베어야 한다.’
어떻게든 후대의 이들이 실라투나를 쓰러트릴 가능성을 남겨 둬야 했다.
‘움직여라…….’
스릉-!
생명을 쥐어짜며 검성은 검격을 날리기 위해 오러를 내뿜으려 했다.
휘청-!
하지만 이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텁-!
넘어지지 않고 가까스로 섰다.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그는 한계였다.
저벅-
“그만.”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칼리안과 리벤이 가까스로 몸을 돌렸다.
“그 정도면 충분해.”
회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진 청년이었다.
“당신은 충분히 잘해 줬어. 그러니 이제 안심하고 쉬어도 돼.”
칼리안은 그 회색의 눈동자를 보고 한 소년이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런 칼리안의 물음에 청년은 입을 열었다.
“시작의 영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