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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12화 (212/483)

212

학기의 끝을 알리는 기말고사의 끝.

원래 시험이 끝이 나면 루메른 학생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시원섭섭함과 함께 해방감을 느끼는 학생.

두 번째. 자퇴 권고를 받을 걱정에 두려움에 떠는 학생.

하지만 지금 루메른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모두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 방학식을 맞이했다.

5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떠들썩한 평소의 분위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할린드가 교실로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드륵-

문이 열리고 할린드가 교실로 들어왔다.

학생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부교수 세나가 성적표를 가져왔다.

“모두 1년 동안 고생했다.”

할린드는 특유의 무미건조한 얼굴로 학생들을 쭉 훑어보았다.

5반 학생들이 그 시선에 긴장하는 가운데.

할린드가 말했다.

“이 중 몇몇은 이미 각오가 되었겠지?”

그 말에 반에서 성적이 안 좋은 학생들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1학기에는 기적적으로 5반 전원이 살아남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루메른은 원래 살아남는 게 쉽지 않은 학교다.

심한 경우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갈 때 학생이 절반도 남지 않을 때가 있을 정도다.

칼은 끙~ 신음성을 내뱉으며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여기까지인가.”

씁쓸하게 웃으며 나직이 중얼거릴 때 할린드가 입을 열었다.

“칼 토마스.”

“예, 옙!”

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차렷 자세를 취했다.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칼을 보며 5반 학생들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칼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친하지 않은 학생이 없었다.

그런 칼이 학교를 떠난다고 하니 5반 학생들로서는 마음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 녀석이 자퇴 권고를 받지 않았다. 모두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지?”

칼이 눈을 깜빡거렸다.

순간 이해를 못 한 5반 학생들도 멍한 표정을 지을 때 세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반 전원이 2학년으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지, 진짜요?”

“그게 정말인가요?!”

“으어어어어어!”

5반 여기저기서 놀란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러한 반응은 5반뿐만 아니라 1학년 교실동 전체에서 들려왔다.

톡- 톡-

할린드가 가볍게 교탁을 두드리자 5반 학생들이 순식간에 정자세로 앉았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루메른 교수 회의에서 이번에 전 학년을 진급시키기로 결정을 내렸으니 말이다.”

그 말에 일리아나가 손을 들었다.

“그렇게 결정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교수들은 이번 루세전 사건에서 너희들이 얻었을 경험을 높이 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5반 학생들의 얼굴이 굳었다.

마물 여왕의 침공과 제르디악의 재림.

제르디악과 동시에 대영웅들도 함께 모습을 드러냈기에 가까스로 승리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사건이다.

하지만 만약 대영웅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번 학기는 학과 일정을 한 달 일찍 마무리하는 것도 크지.”

할린드의 말대로였다.

루메른은 학과 일정을 한 달 일찍 마무리하고 방학을 맞이하게 되었다.

“방학을 단순히 쉬는 시간으로 생각하지 말고 더욱 성장하는 기간으로 삼도록.”

그 말을 끝으로 할린드는 담당 학생들에게 성적표와 가정 통신문을 나눠주었다.

“그럼 이것으로 1학년 2학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할린드가 5반 학생들에게 무신경하게 말했다.

“모두 2학년 진급을 축하한다.”

“할린드 교수님…….”

“교수님의 지도가 없었으면 2학년으로 진급할 수 없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5반 전체가 진심을 다해 할린드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처음 할린드가 담임 교수가 되었을 때만 해도 절망하는 학생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루메른 통곡의 벽이라 불리며 가장 많은 학생에게 자퇴 권고를 때리는 할린드는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뒤돌아서 생각해본다면 할린드의 지도가 있었기에 보다 좋은 성적을 내고 살아남은 것이다.

제자들의 반응에 할린드는 피식 웃으며 반을 나섰다.

반에 남은 세나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학생 여러분과 다 같이 뒤풀이라도 하고 싶은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네요. 모두 한 학년 동안 고생했어요.”

“세나 부교수님!”

“2학년 담당은 안 하시나요?”

여학생들이 우르르 세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무서운 할린드와 달리 세나는 5반 학생들에게 언니나 누나 같은 존재였다.

그녀가 중간에서 분위기를 잘 풀어주지 않았다면 버티기 힘들었을 학생들도 상당히 많았다.

눈시울을 붉히는 학생들을 보며 세나가 쓰게 웃었다.

“아직 정해진 게 없어서요.”

학생들을 다독이며 세나가 밝게 말했다.

“어쨌든 다들 2학년 진급 축하해요! 내년부터는 후배들이 들어오니까 더 어엿한 학생이 되어야 해요?”

***

학기가 끝이 났다.

평소라면 시끌벅적했을 루메리아 시티였지만 모두가 조용했다.

루메른과 루메리아 시티는 아직까지 칼리안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레오는 친구들과 같이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1년 동안 재미있었는데 2학년 때는 다 흩어지겠네.”

일리아나가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런 일리아나를 보며 칼이 뒤통수에 팔을 대며 말했다.

“그래도 학과 수업에서는 계속 보잖아? 2학년 때부터는 학과 수업이 더욱 중요시되기도 하고 말이야.”

칼의 말대로였다.

1학년 때는 반별 수업이 중시되지만 2학년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학과 수업이 중시된다.

“그래도 지금처럼 반별로 놀지는 못할 거 아니야.”

“반이 달라져도 자주 어울리면 되지.”

넬라의 말에 테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학교를 떠난 사람이 한 명도 없잖아.”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워프 게이트에 도착했다.

“그럼 방학 잘 보내라.”

“모두 학기 끝나고 봐~”

“아니면 이번 방학 때는 한 번 모이던가?”

“그럴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집으로 향하는 워프 게이트에 몸을 실었다.

서부 지방으로 가는 레오와 첼시는 서부로 가는 워프 게이트로 향했다.

“레오 오빠는 바로 집으로 돌아가?”

그 물음에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번에는 로드렌 제국에 가기로 했어.”

레오의 말에 첼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환하게 웃었다.

“와! 그럼 나랑 숙제하면 되겠다!”

“글쎄. 외가에 들리는 거라서 말이야.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

“아.”

레오의 말에 첼시가 탄성을 내지르더니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오의 외가는 제르딩거.

학교에서야 허물없이 지내지만 로드렌 제국 내에서 제르딩거와 르왈린은 경쟁 상대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르왈린 가문에도 들를게.”

“응!”

레오의 말에 첼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즐거워했다.

“왔니?”

워프 게이트에서는 셀리아와 아바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레오는 셀리아의 곁에 섰고 첼시는 아바드에게로 향했다.

이미 셀리아에게 레오가 로드렌 제국으로 온다는 사실을 들은 아바드는 레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방학 때 볼 수 있으면 보자.”

“안 그래도 첼시랑 벌써 그 이야기를 했어.”

레오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아바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린 먼저 가도록 하지.”

“레오 오빠~ 잘 있어! 셀리아는…… 베!”

레오에게는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 첼시가 셀리아에게는 혓바닥을 쏙 내밀었다.

환한 빛과 함께 워프를 타고 사라진 그 모습을 보며 셀리아가 말했다.

“언제 날 잡아서 꿀밤 한 대 먹이든지 해야지.”

“그러다가 내년에 같은 반 되는 거 아니야?”

“끔찍한 소리 하지 좀 말아 줄래?”

레오의 말에 셀리아가 눈을 흘겼다.

그 모습에 웃음을 터트린 레오가 워프 게이트에 올라탔다.

“출발하자.”

“그래.”

두 사람이 워프 게이트에 올라섰다.

워프 게이트 좌표를 설정하고 마법사들이 마력을 발동시키자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잠시 후.

밝은 빛이 시야를 가렸다.

빛이 가시고 제르딩거 가문의 워프 게이트에 도착했다.

한 가문의 워프 게이트.

서부의 패권국 로드렌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제르딩거가의 워프 게이트답게 워프 게이트 내부는 웅장하기 그지없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기사 동상들을 보며 레오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한참을 둘러보던 레오는 천장에 조각되어있는 피닉스를 보고 말했다.

“우리나라 수도 워프 게이트 보다 훨씬 화려하군.”

“이곳은 제르딩거의 또 다른 정문이니까.”

놀라는 사촌을 보며 셀리아가 우쭐하며 웃었다.

워프 게이트를 내려와 바깥으로 나가자 기사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셀리아 아가씨! 2학년 진급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셀리아를 마중 나온 기사들이 일제히 축하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셀리아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게 축하할 일인가요?”

다른 학생들은 진심으로 기뻐할 일이지만 셀리아에게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로드렌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 주의 깊게 지켜볼 정도의 천재로 이름 높은 셀리아다.

그녀에게 있어 2학년 진학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호들갑 떨지 마세요.”

셀리아의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 가운데 모두의 시선이 이번에는 레오에게 향했다.

“그런데 아가씨, 옆에 계신 분은……?”

그 물음에 셀리아는 힐끗- 레오를 보더니 덤덤히 말했다.

“레오 플로브. 내 사촌이에요. 모두 아시죠?”

“헛?”

“레오 도련님?”

기사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방학 첫 달은 제르딩거에서 보내자고 그렇게 노래를 부르더니 내가 온다고 말을 안 한 거야?”

레오의 물음에 셀리아가 쿡쿡- 웃었다.

“응. 다들 놀래켜주려고 말 안 했지.”

장난스럽게 말하는 사촌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셀리아는 익숙하다는 듯 대기하고 있던 마차에 몸을 실었다.

레오 역시 그런 셀리아를 따라 마차에 올라탔다.

두 사람을 태운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폰이 이끄는 마차는 빠르게 제르딩거 본가를 가로질렀다.

레오는 빠르게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며 감탄했다.

“끝이 안 보이네.”

레오와 셀리아가 온 곳은 제르딩거의 본가.

즉, 제르딩거의 영역이다.

로드렌의 공작가이기도 한 만큼 영토가 드넓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가 부지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레오의 말에 셀리아가 훗- 하고 웃었다.

“우리 가문 저택 부지가 너희 나라 왕궁보다 몇 배는 더 클걸?”

그 말에 레오가 턱을 괴었다.

“부자는 부자구만.”

“제르딩거를 단순히 부잣집으로 취급하는 건 너밖에 없을 거야.”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셀리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폰이 이끄는 마차는 빠르게 달려 제르딩거의 본성에 도착했다.

거대한 제르딩거의 성을 올려다보며 레오가 또다시 감탄했다.

오래된 고성은 척 보기에도 하나의 요새였다.

‘대단한데?’

레오가 놀라고 있을 때였다.

본가에서 연락을 받았는지 워프 게이트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인원이 본성 앞에 서 있었다.

그 가운데는 제르딩거의 부가주, 지스가 서 있었고 그 옆으로는 장로로 보이는 이들이 정렬해 있었다.

레오와 셀리아가 마차에서 내려 지스 앞으로 다가갔다.

지스는 자신의 앞에 온 셀리아에게 나무라듯 말했다.

“레오와 함께 온다고 언질을 주지 그랬냐?”

“놀라게 해주고 싶어서요.”

셀리아가 히히-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터트린 지스가 고개를 저으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제르딩거에 온 걸 환영한다, 레오.”

“환영에 감사해요. 그런데 너무 성대하게 맞아 주시는 거 아니에요?”

레오의 말에 지스가 씩- 웃었다.

“제르딩거의 직계로 인정받은 너의 첫 방문이다. 원래는 더 성대한 준비를 해야 옳지.”

“네가 그런 거 안 좋아할 거 아니까 내가 말 안 한 거야.”

셀리아가 레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아빠는요?”

“형님은 수도에 가 계시다. 오늘 저녁에 돌아오실 거다.”

그 말에 셀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형님이 오시기 전에 일단 해야 할 일이 있지.”

지스가 힐끗- 레오를 보았다.

“레오.”

“예, 지스 삼촌.”

“저택에 막 도착했는데 미안하지만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구나.”

“어떤 이야기인가요?”

의아한 표정을 짓는 레오를 보며 지스가 말했다.

“상속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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