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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14화 (214/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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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소에 앉은 다섯 명의 제르딩거 기사 수련생들은 힐끗- 힐끗- 레오와 셀리아를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피로회복에 필요한 음료나 간단한 간식, 그리고 식사도 할 수 있어.”

“우리 학교 매점이랑 비슷한 건가?”

“그렇지는 않아. 뭘 주고 사는 게 아닌 데다가 메뉴가 늘 정해져 있거든.”

어깨를 으쓱거리며 휴게소에 대해 셀리아가 설명해주었다.

방학 초창기 동안 레오가 제르딩거의 본성에 머무르는 만큼 수련장을 이용할 일이 많기 때문이었다.

셀리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레오는 음료를 챙겨 수련생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런 레오를 보며 수련생들이 기겁하더니 허둥지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레, 레오 도련님! 저희가 하겠습니다!”

“응? 괜찮은데?”

“저, 저희가 하게 해주세요!”

“네! 부탁드립니다!”

레오가 자신들을 챙기는 사실이 부담스러운지 애원까지 하는 그들을 보며 레오는 고개를 끄덕이고 쟁반을 넘겼다.

수련생 중 리더로 보이는 소녀는 레오와 셀리아의 음료를 먼저 세팅하고 기사단원들끼리 음료를 나누었다.

“뭐, 간담회라고는 해도 처음 만나는 자리이기도 하니까 간단한 자기소개부터 할까? 그 전에.”

레오는 자신의 옆에 앉아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셀리아에게 말했다.

“뭐해?”

“응?”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야.”

“나보고 가라고?”

셀리아가 인상을 팍 썼다.

제르딩거의 고귀한 직계이자 가문의 미래라고 평가받는 셀리아가 인상을 쓰자 수련생들은 안절부절못했다.

특히나 이들은 어릴 때부터 셀리아와 함께 수련장에서 검술 수련했다.

셀리아가 이렇게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셀리아의 반응에 레오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네가 왜 있어? 내 기사단원들인 애들이랑 간담회 하는 건데.”

“야, 너 치사하게! 구경할 수도 있지! 어떻게 그렇게 야박하게 선을 긋고 그러니?”

발끈하는 셀리아를 빤히 바라보던 레오가 손을 휘휘 저었다.

“가.”

“그래! 간다! 가! 치사해서 진짜!”

획-! 가버리는 셀리아의 뒷모습을 보고 레오가 피식 웃었다.

“삐지기는.”

“저……. 레오 도련님……. 그……. 셀리아 아가씨를 저렇게 보내도 될까요?”

그때 리더로 보이는 소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몹시 화가 나신 것 같은데요?”

“괜찮아. 내버려 두면 알아서 풀려.”

피식 웃은 레오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의미에서 너부터 자기소개를 해볼래?”

레오는 자신의 기사 중 이 소녀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을 단번에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래서 리더를 맡고 있는 거겠지.’

레오의 말에 소녀가 자신을 소개했다.

“제 이름은 마르티나 에르안이라고 합니다. 5년 동안 제르딩거의 수련생으로 수련하고 있어요. 나이는 열다섯입니다.”

레오와 동갑인 마르티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인사했다.

“저는 오스틴 마레라고 합니다. 나이는 열 여섯입니다.”

“전 캐린 로테라고 해요. 나이는 열 네 살이에요.”

“줄란 카리븐입니다. 캐린과 같은 열 네 살입니다.”

“발레리 톰입니다. 저도 열 네 살이에요.”

이후 오스틴, 캐린, 줄란, 발레리 순으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며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 플로브라고 해. 나이는 열 다섯이지.”

레오의 소개에 다섯 명은 선망 어린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레오는 올해 가장 유명한 영웅 후보생 중 한 사람이다.

단순히 루메른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영웅 사관 학교를 통틀어 최고의 학생이라 불렸다.

세이룬의 루니아.

아조니아의 아르.

데미안의 디르단.

올해 입학한 각 종족을 대표하는 내로라하는 1학년들.

그중 레오만큼의 성과를 이룬 학생은 누구도 없다.

거기에 최연소 학생회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또래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기사단의 눈빛은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본 레오가 말했다.

“가문에서 정해준 기사들이지만 내 사람이 되었으니 책무는 다할 거야.”

“아뇨. 저희는 모두 레오 도련님의 기사단이 되기 위해 자원했어요.”

“그래?”

“네. 여름이 되기 전 가문에서 레오 도련님의 기사가 되고 싶은 이들을 모집했어요.”

직계 혈족의 기사가 되는 건 대단한 영광이다.

게다가 제르딩거 내에서 높은 직책을 맡을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제르딩거의 직계 혈족의 기사라는 건 그만큼 이름을 드높일 기회도 많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제르딩거 수련생에게 직계 혈족의 기사가 된다는 건 엄청난 기회였다.

“전 레오 도련님의 입학시험을 직접 관람했었거든요.”

마르티나가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지난번 입학시험 당시.

셀리아가 플로브 가문을 방문했을 때 마르티나는 견습 기사 신분으로 함께 왔었다고 했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그 괴물에 맞서는 레오 도련님의 모습은 대단했었어요.”

마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이야기 속의 영웅 같았다고 마르티나는 말했다.

그렇기에 이후 레오가 직계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레오의 기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모양이다.

다른 수련생들 역시 각자의 이유로 레오의 기사가 되는 걸 자처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너희들이 날 선택한 거네?”

레오가 씩- 웃었다.

하지만 마르티나의 얼굴을 밝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지?”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는 모두 레오 도련님의 기사 자리에서 사퇴하려고 해요.”

그 말에 레오가 미간을 좁혔다.

“왜지?”

레오의 말에 마르티나가 머뭇거렸다.

그런 마르티나를 대신해 오스틴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희 모두가 레오 님의 기사가 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오스틴의 설명은 이러했다.

마르티나, 오스틴, 캐린, 줄란, 발레리.

다섯 사람 모두 현재 제르딩거 가문의 수련 기사 중 중위권 수준의 실력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이었다.

마르티나의 경우에는 중상위권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직계의 기사로 발탁되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 말에 레오가 턱을 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기사가 된 건데?”

“그게 있잖아요…….”

캐린이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레오 도련님의 기사단을 모집할 때만 하더라도 경쟁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거든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캐린의 말에 레오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처음 레오의 기사단을 모집 할 때만 해도 레오는 올 클래스와 학년 대표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유명하지 않았다.

게다가 가문 내에서 느닷없이 나타나 직계 후보로 이름을 올린 레오를 탐탁잖게 여기는 이들도 굉장히 많았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레오의 기사가 되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 상위권 수련생들이 모두 레오의 기사에 지원하는 걸 꺼렸다.

그 덕분에 지금의 다섯 사람이 레오의 기사단이 된 것이다.

하지만 1학기에 일어난 학과대항전을 시작으로 2학기에 루나의 세계 공략.

거기에 최연소 학생회장의 자리까지 오르면서 레오의 평가는 여름 전과 달리 180도 반전되었다.

이미 가문 내에서도 레오를 탐탁잖게 여기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제르딩거의 수련생들도 내 기사 자리를 탐내게 되었다는 건가?’

레오가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이 중 좋은 가문의 애들은 한 명도 없겠지.’

하급 귀족 가문 출신.

혹은 평민 출신의 수련생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제르딩거 수련생들은 동등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실력과 가문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실력도 중위권인 데다가 가문의 지원까지 받지 않는 이들에게 다른 수련생들의 괴롭힘은 상당히 고역일 것이다.

“저희 보다 뛰어난 수련생들은 많아요. 그러니까……. 사퇴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돼요.”

마르티나를 포함한 다른 수련생들이 고개를 푹 숙였디.

입을 앙- 다물고 주먹을 꽉 쥐는 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왜 번거롭게 그런 짓을 해?”

“네?”

레오는 턱을 괴며 말했다.

“그냥 내 기사를 하면 되잖아?”

그 말에 마르티나가 당황했다.

“하, 하지만 레오 도련님. 저희는 실력이 부족한데요? 분명 레오 도련님의 명성에 누가 될 거예요.”

“실력은 키우면 그만이야. 그리고 딱히 내 명성을 너희가 신경 쓸 필요는 없어.”

레오는 다섯 명의 수련생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너희는 각자의 이유로 처음부터 날 선택했어. 그거면 된 거야.”

놀라는 기사들을 보며 레오가 몸을 일으켰다.

“스스로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내일부터 나와 수련을 해보는 건 어때?”

“레오 도련님과 수련이요?”

“그래.”

‘루메른 학생회장과 함께 검술 수련이라니…….’

‘이, 이건 기회일지도……!’

다섯 명의 수련생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마르티나의 말에 레오가 웃었다.

“그래? 그럼 제르코 사범님에게는 내가 따로 말해둘게.”

아마 셀리아가 봤다면 그만두라고 수련생들을 만류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너희는 내일부터 나와 수련을 한다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셀리아는 이곳에 없었다.

***

학생들이 떠난 루메른의 교정은 매우 조용했다.

그런 가운데 영웅의 탑에서는 교수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럼 이번 안건은 입학시험과 관련된 안건이다.”

이번 입학시험 총괄을 맡은 할린드의 말에 교수들이 집중했다.

“곧 있으면 입학시험이지. 하지만 지금까지의 입학시험과는 다르게 진행할 예정이다.”

루메른은 변화를 맞이할 시기였다.

오랫동안 루메른의 중심이 되어주던 검성은 떠났다.

거기다가 작년에는 루메른 내에 첩자들까지 숨어들었던 상황.

신입생 선정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시기였다.

할린드의 말에 아인이 물었다.

“다르게 진행하신다고 하면……. 지난번에 말씀하신 ‘합동 시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할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루메른 입학시험은 각 지역별로 각 시험관의 재량에 맡게 치러졌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내일 공문을 보낼 예정이다.”

“그럼 시험을 개최할 곳은 어디 인가요?”

유라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할린드가 덤덤히 말했다.

“로드렌 제국이 좋겠지.”

그 말에 교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 세계에서 모이는 인파를 한 번에 감당할 만한 국가는 많이 없다.

그중 가장 무난한 것이 역시나 서부의 패권국 로드렌이다.

“당연히 시험 내용도 통합되겠죠?”

“그래.”

할린드는 다른 교수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서류를 획- 획- 넘기고 있었다.

“시험 내용이 뭡니까?”

아인의 물음에 할린드가 덤덤히 대답했다.

“재학생들과 싸우는 거다.”

“예?”

교수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순간 자신들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재학생들과 싸우는 거라고요?”

“그래. 재학생들이 신입생 후보들을 ‘사냥’ 하는 거지.”

“…….”

교수들의 얼굴이 기이하게 변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유라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에 할린드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설마 내가 말도 안 되는 시험을 낼 거라고 보나?”

‘할린드 교수님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않나요?’

이번에 그가 담당한 1학년 5반에서 단 한 명의 자퇴권고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재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수들까지 기적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본 모습은 사실 학생들 사이에서 공포로 군림하는 루메른 통곡의 벽이다.

자격이 없는 학생은 가차 없이 자퇴 권고를 시켜 버리는 공포의 교수였다.

“시험에 투입될 학생들은 2학년이다.”

“아, 2학년들이면 그나마 다행이네요.”

“유라 교수. 여기 명단에 있는 학생들을 로드렌 제국으로 부르도록.”

할린드는 명단을 유라에게 건넸다.

명단을 받던 유라의 얼굴이 우지직 굳었다.

“클로에 뮐러, 듀란 모이라, 셀리아 제르딩거, 레오 플로브, 첼시 르왈린, 아바드 르왈린, 엘리자 헤르긴, 워레든 타이른, 첸 시아?”

9명의 이름이 언급되자 교수들의 얼굴도 굳었다.

“자, 잠깐만요. 진짜 이 애들을 부를 생각이세요?”

“그래.”

할린드는 다시 서류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고작 2학년을 상대로도 살아남을 수 없는 실력이라면 거르는 게 답이겠지.”

‘아니, 걔들은 고작 2학년이 아니잖아요!’

할린드의 말에 유라가 속으로 비명을 내질렀다.

다른 교수들의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뱉는 교수는 없다.

교수들에게 있어서도 할린드는 공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수들은 올해 신입생 후보들에게 측은지심을 보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시험은 역대급 난이도일 게 분명하다고 교수들은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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