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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15화 (215/483)

215

그날 저녁.

워프 게이트 앞에 수많은 기사가 도열해 있었다.

낮에 레오와 셀리아를 맞을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잠시 후 워프 게이트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와 함께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눈동자는 당장에라도 타오를 듯한 선홍색이었다.

얼굴은 예술가가 잘 다듬은 조각 같았다.

미중년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남자는 좌중을 압도하는 기백을 품고 있었다.

터벅- 터벅-

남자가 워프 게이트를 내려와 마차로 향하자 기사들이 척-! 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기사의 예를 취했다.

남자는 그런 기사들에게 손을 들었다.

그러자 기사들이 절도 있게 원래 모습을 취했다.

“오셨습니까, 형님.”

“그래. 가문에는 별다른 일은 없었나?”

지스가 정중하게 인사하자 제르딩거의 가주, 셀드 제르딩거가 진중한 목소리로 물었다.

“셀리아가 오늘 돌아왔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방학식이라고 했었지.”

귀여운 딸아이가 방학으로 돌아오는 날이었지만 셀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최근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응하기 위해 수도에서 밤낮으로 황제가 주체하는 회의에 참여하는 등.

셀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렇다고 해도 못난 아비라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으며 마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레오도 셀리아와 함께 방문했습니다.”

셀드의 움직임이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마차에 올랐다.

지스가 뒤를 따라 마차에 올랐다.

“레오라…….”

이야기로만 들었던 조카의 방문에 셀드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스는?”

“리스는 졸업식 이후 루메른의 요청에 의해 영웅 던전 공략에 갔습니다. 당분간 가문에 돌아오지는 못할 겁니다.”

지스의 말에 셀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환영 파티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그래.”

셀드는 마차 깊숙이 등을 기대며 말했다.

“기대되는군.”

***

제르딩거 본성의 파티장.

본성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은 이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레오 역시 셀리아 옆에 서 있었다.

레오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폈다.

굉장한 실력을 가진 기사들이 많았다.

“뭘 그리 열심히 구경해?”

“굉장한 실력자들이 많아서.”

레오의 말에 셀리아가 가슴을 활짝 폈다.

“당연하지, 제르딩거니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을 때였다.

“셀리아 아가씨. 2학년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여기 계신 분이 레오 도련님이신가요? 반갑습니다, 방계 가문의…….”

레오와 셀리아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오늘 파티의 명목은 셀리아와 레오의 2학년 진급 축하 파티였다.

그런 만큼 주인공은 두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건 레오였다.

셀리아는 입을 가리고 놀리듯 레오에게 말했다.

“인기 좋네?”

놀리듯 말하는 셀리아를 보며 레오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인기는. 다들 원하는 게 있어서 저렇게 기웃거리는 거지.”

“원하는 거?”

레오의 말에 셀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파티장 입구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셀드와 지스가 파티장으로 입장하고 있었다.

제르딩거의 가신들이 예를 취하는 와중에 셀드는 레오와 셀리아를 발견하고는 두 사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

셀리아는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언제나 영웅 명가의 직계로서 품행이 완벽한 셀리아였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열다섯 살 또래 소녀였다.

밝게 웃으며 달려와 폭 안기는 딸을 보며 피식 웃은 셀드가 딸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녀석. 네 활약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단다. 네가 자랑스럽구나.”

“제르딩거의 직계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걸요?”

딸의 머리를 토닥여 준 셀드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네가 레오구나.”

“제르딩거의 주인을 뵙습니다.”

셀드가 자신을 바라보자 레오는 정중하게 예를 차렸다.

비록 레오가 제르딩거 가문의 직계로 인정을 받았다고 해도 오늘 레오와 셀드는 처음 만났다.

게다가 수많은 이가 바라보고 있는 공식 석상.

완벽한 예법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셀리아는 조금의 빈틈도 없는 레오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얘는 아닌 것 같으면서도 예법이 완벽하다니까.’

평소에는 크게 격식을 차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레오다.

그래서 귀족으로서 최소한의 예법만을 익히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레오의 예법은 어릴 때부터 영웅 명가에서 까다롭게 살아온 셀리아가 보기에도 완벽했다.

‘이런 거 보면 리시나스에게 시달린 보람이 있다니까.’

레오는 속으로 옛 친우를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리시나스의 닦달 덕분에 용족의 까다로운 예법을 완벽하게 마스터한 레오다.

그 경험 덕분에 어지간한 예법은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예법은 일단 몸가짐에서 나오는 거니까.’

레오의 예법을 본 셀드는 웃음을 터트렸다.

“레이나와는 딴판이구나.”

자유분방하다 못해 괄괄했던 여동생을 떠올리며 셀드가 덧붙이듯 말했다.

“편하게 큰삼촌이라고 부르거라.”

“예. 큰삼촌.”

친근한 호칭을 허락하는 셀드를 보며 제르딩거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역시 가주님께서는 레오 도련님께 미래에 가문의 큰 직책을 맡길 생각이신 거야.’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직계로 받아들일 때 반대표를 던지는 게 아니었는데!’

파티에 참석한 많은 이들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제르딩거는 단순 영웅 명가가 아니다.

로드렌 제국을 떠받드는 양대 기둥 중 하나.

제국 전체에 5할에 가까운 기사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문이다.

그건 곧 제르딩거에 막대한 권력이 있음을 의미했다.

실제 제르딩거 직계 혈족들의 대외적인 지위는 어지간한 왕국의 왕족보다 위상이 높으면 높았지 절대 낮지 않다.

로드렌 제국 내에서는 제르딩거의 직계라는 것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하는 대우를 받는다.

그렇기에 방계 혈족들은 언제나 인정받아 직계의 지위를 얻는 것을 열망한다.

새로운 직계가 생기면 그만큼 직계가 될 수 있는 확률도 줄어든다.

그렇기에 레오가 직계에 자리에 오를 때 견제를 한 이들도 아주 많았다.

하지만 레오는 이제 제르딩거 내에서 핵심 인물 중 한 명이었다.

게다가 가주와 부가주에게 조카로서 확실하게 비호를 받고 있다.

이제는 레오의 눈 밖에 나는 것만으로 가문 권력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레오와 이야기를 나눈 셀드가 떠나자 셀리아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리 아버지 어때?”

“대단하신데.”

제르딩거 가문의 주인으로서 셀드는 손색이 없는 사람이었다.

태어나서 본 기사 중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실력자.

말 그대로 영웅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남자였다.

레오의 말을 듣고 셀리아가 자신만만하게 웃을 때였다.

댕-댕-댕-댕-

지스가 와인잔을 두드리며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았다.

“가주님께서 한 말씀 하신다고 합니다.”

그 말에 모든 이들이 셀드를 보았다.

“오늘 내 딸과 조카의 2학년 진급 축하 파티에 참석해줘서 모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소.”

셀드의 진중한 목소리가 파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은 우리 제르딩거 가문의 미래인 만큼 앞으로 계속해서 우수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응원해줬으면 하오.”

담백한 말이 끝나자 파티에 참석한 이들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후에는 레오는 수많은 이들과 인사를 해야 했다.

제르딩거의 방계 혈족들을 시작으로 많은 가신 가문들까지.

제르딩거와 연관된 인물들만 초대받은 파티였지만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다른 귀족들까지 초대하면 진짜 정신없겠군.’

제르딩거의 규모에 고개를 저으면서도 레오는 완벽하게 사람들을 대했다.

‘누님이 자기는 예법에 소홀했으면서 레오에게는 철저하게 가르쳤나?’

그 모습을 지켜보며 지스가 감탄했다.

어디 한 곳 흠잡을 때 없었다.

‘대외적인 행사가 있으면 가문의 얼굴마담으로 셀리아와 함께 보내고 싶을 정도군.’

지스로서는 레오가 완벽한 제르딩거 사람이라고 대외적으로 못을 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다른 가문에서 아주 쳐다도 못 보게 말이야. 특히 르왈린.’

지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원래라면 제르딩거 가문의 혈통을 르왈린에서 탐낼 리가 없다.

하지만 레오는 일반적인 제르딩거와 달랐다.

올 클래스.

게다가 마법사로서 능력과 재능은 기사에 비견되는 수준.

기나긴 제르딩거 역사를 통틀어도 레오의 재능은 손에 꼽힐 정도다.

그런 마법사의 재능이라면 체면이고 나발이고 르왈린이 탐을 내도 이상할 리 없다.

‘특히 그 마녀가 레오에 관해 자주 묻는 것도 거슬려.’

작년까지만 해도 만나면 일단 눈싸움부터 하던 르왈린의 부가주가 최근에는 태도가 부드러워지더니 레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언급한다.

‘황가에서도 레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고.’

피닉스의 계약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부터 황가에서 노골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레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능력이 너무 좋아도 문제로군.’

지스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을 때였다.

“부가주님.”

“무슨 일인가? 테리어스 경.”

지스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이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피어스 테리어스, 가주의 기시단 피닉스 나이츠의 일원이었다.

“레오 도련님과 관련되어 긴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

“레오 도련님의 기사단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그 말에 지스가 피식 웃었다.

‘역시 그 이야기인가.’

지스는 제르딩거 가문의 수련생들을 총괄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올해 늦봄, 레오의 기사단을 선별할 때 수련생 중 상위 성적자들이 기사단이 되는 걸 기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레오의 기사단에 들어가지 않은 걸 후회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최근 수련생들 사이에서 레오의 기사단 자리를 노리는 아이들이 제법 된다고 들었는데.’

피어스의 아들 역시 수련생으로서 그중 상위권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

“레오의 기사단 이야기는 이미 봄에 끝났다는 걸 알지 않소?”

“예, 물론 끝이 났죠. 하지만 부가주님. 지금 레오 도련님의 기사단의 실력은 레오 도련님에 명성에 비해 많은 손색이 있습니다.”

“흐음.”

지스는 팔짱을 끼고 레오 쪽을 보았다.

수련생으로 보이는 이들이 레오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어떻게든 눈도장을 찍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레오의 얼굴은 심드렁했다.

‘레오는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군.’

지스는 피식 웃었다.

‘레오로서는 실력 있는 아이들보다 자신을 선택한 아이들이 더 소중하겠지.’

“그건 내가 정할 문제가 아니라 레오가 정할 문제 같군.”

그 말에 피어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럼 제가 직접 레오 도련님께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테리어스 경이 편한 대로 하시오.”

“예.”

피어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레오에게 향했다.

“레오 도련님. 저는 피닉스 기사단의 일원 피어스 테리어스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테리어스 경.”

레오는 불쑥 자신을 찾아온 덩치가 큰 기사를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 도련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요?”

“레오 도련님은 제르딩거 가문의 직계로서 리스 도련님, 셀리아 아가씨, 에미라 아가씨에 이은 계승 서열 4위이시기도 합니다. 제르딩거의 얼굴과도 같은 분이십니다.”

제르딩거의 후계자 서열은 현재 다음과 같았다.

가주인 셀드의 자식인 리스와 셀리아.

지스의 딸 에미라.

그리고 레오.

비록 성은 제르딩거가 아니지만 가주의 조카이니만큼 계승 서열은 4위다.

거기에 더해 에미라는 몸이 약해 기사의 길을 걷지 않는다.

실질적인 계승 서열은 레오가 3위다.

물론 레오가 가주가 될 리는 없지만 그렇다 해도 계승 서열이라는 건 의미가 깊다.

“그런데요.”

“레오 도련님은 제르딩거의 후계자로서 손색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레오 도련님을 따르는 기사들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노골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피어스를 보며 레오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요?”

“레오 도련님에 맞는 아이들을 기사로 삼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이건 레오 도련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르딩거 가문의 위신이 걸린 이야기라 노파심에 드리는 말입니다.”

피어스의 말에 셀리아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주변 이들은 모두 피어스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확실히 지금 레오의 기사단은 실력이 부족해. 하지만 그래도 그건 레오가 정할 이야기지 이렇게 대외적으로 할 이야기는 아닌데.’

지금 이야기는 가문의 위신을 걸고 레오를 압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셀리아가 힐끗, 지스를 바라보았다.

지스는 레오가 하는 데로 내버려 두겠다는 듯 빤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런데 나서지 않을 거고.’

셀리아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거야, 레오?’

모두가 자신을 주목하는 가운데 레오가 웃었다.

“전 제 기사들이 마음에 드는데요.”

“예. 그 아이들은 레오 도련님을 선택했으니 마음이 가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역시 실력이 있는 아이들을 선별하셔야죠.”

“제 기사들은 실력도 충분해요.”

레오가 피식 웃었다.

그 말에 피어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레오 도련님께서 아직 다른 수련생들을 보지 않아서 그런 말씀을 하실 수…….”

“당장에 다섯 명 모두 루메른에 입학할 예정이기도 하거든요.”

“…….”

순간 파티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제르딩거의 기사 수련생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루메른에 입학할 수 있다.

그런데 다섯 명 전원이 루메른에 입학할 거라니?

게다가 레오의 기사단이 수련생 중에서 중위권 성적이라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아무리 봐도 레오의 말은 터무니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셀리아는 달랐다.

‘……얘라면 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사촌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셀리아는 레오라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물론 걔들은 지옥을 맛보겠지만.’

셀리아는 안 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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