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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17화 (217/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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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메른 통합 입학시험에 관한 이야기가 대륙으로 퍼지자 많은 지역에 혼란이 찾아왔다.

전통적으로 루메른은 서부, 북부, 동부, 남부, 중부.

다섯 지방에서 따로 시험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통합 시험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시험이었다.

응시생들로서는 지방 시험이 사라지고 갑작스럽게 통합 시험을 치른다고 하니 혼란이 올 수밖에 없었다.

루메른 입학시험은 응시에는 제약이 없었다.

시험 장소가 정해지면 그 지역으로 이동하여 시험에 참여하는 방식.

하지만 입학식에 참여하기 위해 필요한 경비는 응시생이 부담해야 한다.

즉, 워프 게이트 비용이라던가 숙식비등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통합 시험으로 인해 시험 장소가 변경되면 예상보다 더 큰 지출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명문가들은 큰 문제가 없지만, 루메른 입학시험에 응시하는 학생 중에는 평민들도 많다.

자연스럽게 응시생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공지가 전달되자 이런 불만은 자취를 감췄다.

루메른 입학시험 응시생 전원에게 워프 게이트 비용과 숙식 비용을 루메른 측에서 부담하기로 한 것이다.

응시생은 각 지방에서 발급받은 수험표만 지참하면 그만이었다.

천문학적이 비용이 발생하는 일이었지만 루메른은 개의치 않았다.

비용의 부담이 사라지자 자연스럽게 응시생의 숫자가 늘었다.

물론 응시생 숫자가 폭증하는 사태는 없었다.

루메른 입학시험의 난이도는 매우 어렵다.

매년 실력이 부족한 응시생들이 목숨을 잃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게다가 시험 상황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기까지 한다.

어설픈 실력으로 목숨을 걸거나 전 세계적으로 개망신을 당하려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전 대륙 사람들이 루메른 입학시험에 관심을 집중하는 가운데 로드렌 제국의 수도, 로렌드가 입학시험 장소로 정해짐에 따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루메른 입학시험과 관련되어 큰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가운데.

제르딩거 가문의 수련장으로 여섯 명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름 아닌 레오와 기사들이었다.

“수, 수련장이다!”

“우리가 돌아왔다!”

캐린과 줄란, 발레리가 환호성을 내지르며 수련장 정문에 찰싹 달라붙었다.

심지어 캐린과 줄란은 정문에 입맞춤까지 하는 등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오스틴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레오 도련님 앞에서 무슨 추태야?”

“레오 도련님은 딱히 이런 거 신경 안 쓰시잖아요.”

“맞아요, 오스틴 형.”

캐린과 줄란은 14살답게 다섯 명 중에서 가장 생기발랄했다.

같은 나이인 발레리의 경우에는 오스틴 못지않게 덩치도 크고 의젓한 경향이 있었기에 이 두 사람이 기사단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리광을 부리는 둘을 보며 오스틴이 더욱 눈에 힘을 주었다.

실질적인 리더는 마르티나지만 기사단 군기를 잡는 건 가장 연장자인 오스틴이었다.

그에 움찔한 두 사람이 똑바로 차렷 자세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보며 발레리가 고개를 저었다.

“도련님, 저희는 어떻게 할까요?”

“각자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 나는 지스 삼촌을 만나 뵈러 갈 테니까.”

“예.”

그 말에 마르티나가 눈짓으로 기사단을 해산시켰다.

캐린은 마르티나와 함께 방으로 돌아가며 말했다.

“침대가 너무 그리웠어!”

“후훗. 나도.”

“레오 도련님의 수련은 분명 도움이 크게 된 것 같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었어! 특히 잠자리와 식사!”

캐린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산에서 자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잠을 잘 때였다.

레오는 잘 때도 기사단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깊은 잠이 들려고 하면 귀신같이 돌멩이가 날아왔다.

물론 오러가 담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렇기에 방심하다가 얻어맞기 일상이었다.

맞는 건 괜찮다.

문제는 그렇게 맞으면 30분 동안 레오에게 체력 단련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말이 체력 단련이지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그 덕에 밤낮 가리지 않고 3주 내내 토악질을 입에 달고 살아야 했다.

식사 역시 자급자족이었다.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레오는 기습적으로 기사단이 구한 식재료를 약탈하러 왔다.

방심하면 잠도 못 자는 건 물론이요. 밥도 굶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기사단 전원이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잠을 거의 못 잤다고. 으으! 아무리 기사라지만 피부가 엉망이 되었어!”

사춘기 소녀답게 외모에 신경 쓰는 캐린은 울상을 지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는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다.

그런 캐린을 보며 마르티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엉망이 된 건 마르티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역시나 가장 고생한 건 레오 도련님이겠지.’

지난 한 달 동안 레오는 다섯 명의 수련생을 쉴 틈 없이 몰아붙였다.

바꿔말하면 가장 쉬지 못한 사람이 레오라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멀쩡하신 걸 보면…… 정말 대단하셔.’

레오를 떠올리며 마르티나가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방에서 대충 짐을 푼 두 사람은 곧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꺄~ 뜨거운 물!”

뜨거운 물을 즐기며 방방 뛰는 캐린의 모습에 마르티나가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이 몸을 닦은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샤워장을 나갈 때였다.

“어머. 얘들아, 이것 좀 봐.”

“영웅 후보생들께서 오셨네?”

다른 제르딩거의 수련생들이 마르티나와 캐린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녀들의 눈에는 명백한 비웃음이 담겨 있었다.

그걸 본 캐린이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

마르티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무시하라는 듯 캐린의 어깨를 툭툭 쳤다.

입술을 앙다문 캐린이 무시하고 가려 할 때였다.

“거짓말을 해서라도 레오 도련님의 기사단으로 남고 싶었어?”

“적당히 해. 괜히 레오 도련님 시간만 낭비하게 하지 말고.”

깔깔- 웃으며 말하는 그녀들을 보며 마르티나가 멈칫했다.

그러더니 고개를 돌렸다.

“우리가 너희랑 같은 줄 아니?”

“뭐?”

“우린 최소한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레오 도련님의 기사단이 되는 걸 선택했어. 너희처럼 레오 도련님의 진가가 알려진 후에 약삭빠르게 출세를 위해 레오 도련님을 선택한 게 아니라고.”

“마, 마르티나 언니!”

캐린이 당황하며 마르티나를 잡아끌었다.

마르티나는 그런 캐린을 뿌리쳤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말 다 했어?”

“아니, 다 못 했는데? 루메른 입학시험? 레오 도련님이 먼저 이야기해 주셨어. 우리가 루메른에 입학할 수 있다고! 우리의 가능성을 긍정해주셨어!”

마르티나의 갈색 눈동자가 이글이글 타올랐다.

“우리가 레오 도련님을 선택했듯이 레오 도련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어. 백날 떠들어봐. 너희가 레오 도련님의 기사가 될 날 따윈 없을걸? 레오 도련님이 우리를 믿어주는 한 우리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하? 특별 수련인가 뭔가를 했다고 눈에 보이는 게 없나 보네?”

“너희가 아무리 발악해도 수련생 중위권이거든?”

비웃음을 날리는 수련생들을 보며 마르티나가 코웃음을 쳤다.

“언제까지 너희가 우리보다 강할 거라고 생각해?”

“킥? 그러면 한번 대련해볼래, 마르티나.”

후웅-!

루메른 수련생들은 언제나 소지하고 있는 목검이 빠른 속도로 휘둘러졌다.

코앞에서 딱 멈춘 목검을 보며 마르티나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한 번 붙어.”

“자신 있나 봐? 그럼 내기는 어때? 너희가 지면 레오 도련님의 기사단 자리를 사퇴해.”

“좋아. 대신 너희가 지면 어떻게 할래?”

“우린 제르딩거 수련생을 사퇴할게.”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보며 마르티나가 말했다.

“좋아.”

“후훗. 그럼 삼십 분 뒤에 연무장에서 보자.”

까르르- 웃으며 샤워실을 나가는 그녀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르티나가 울상을 지었다.

“캐린! 어쩌지?!”

캐린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르티나 언니는 가끔 욱하는 경향이 있다니까.”

머리를 긁적이던 캐린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렇게 된 거 어쩌겠어? 한번 부딪혀 보는 수밖에.”

***

연무장에 제르딩거의 수련생 전원이 모였다.

그걸 보며 줄란이 울상을 지었다.

“오스틴 형…… 우리 이제 어쩌죠?”

“미안해, 얘들아.”

마르티나의 사과에 오스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언젠가는 이렇게 될 거였어.”

오스틴과 줄란, 발레리 역시 수련장에 돌아오자마자 상위권 수련생들의 조롱에 시달렸다.

“이렇게 된 이상, 수련의 성과를 보여주자.”

오스틴의 말에 줄란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수련을 통해서 우리가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고작 한 달이라고요. 한 달.”

한 달 만에 극적으로 실력이 향상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특히나 레오와의 대련에서 돌아오는 날까지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아주 눈에 보이는 게 없구만?”

“어떻게 쓰러트려 줄까?”

상위권 수련생들은 그런 다섯을 보며 킥킥거리며 웃었다.

“내가 먼저 나서지.”

오스틴이 긴장된 얼굴로 자신의 목검을 들고 연무장 위로 올라섰다.

그런 그를 보며 오스틴만큼이나 근육질의 수련생이 올라섰다.

모든 수련생이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는 와중에.

“레오 도련님이다.”

“레오 도련님이 보러 오셨는데?”

수련생들이 연무장 뒤편에 팔짱을 끼고 선 레오를 발견하고는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레오 도련님도 이해가 안 된다니까.”

“그러게. 상위권 수련생들이 기사단이 되고 싶어 하는데 왜 저 녀석들을 데리고 한 달 동안 수련을 가신 거야?”

제르딩거의 수련생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들으며 피식 웃을 때였다.

“레오 도련님. 뒤편에 있지 마시고 앞에서 구경하시죠.”

건장한 체구의 소년이 레오 앞으로 와 말했다.

“누구?”

“제 이름은 엔디언 테리어스입니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소개하는 엔디언을 보며 레오는 한 달 전 파티장에서 만났던 피어스라는 기사를 떠올렸다.

‘그 사람 아들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레오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갔다.

수련생들이 길을 터주는 와중에 모두가 선망 어린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수련생 전원은 셀리아와 함께 수련했으며 리스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압도적인 셀리아와 리스의 실력을 알고 있다.

그런 셀리아를 뛰어넘는 학년 대표에 리스의 뒤를 이어 학생회장이 된 제르딩거의 혈통.

루메른에서는 레오를 아니꼽게 보는 이들이 있겠지만 이곳은 아니다.

그의 기사가 된다면 가문 내에서 입지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선망이자 모시고 싶은 대상이다.

‘기사단 추가 모집 안 하시나?’

‘셀리아 아가씨의 기사단은 정원이 30명인데.’

‘다음에는 꼭…….’

모두가 열망 어린 눈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연무장 맨 앞까지 나온 레오는 팔짱을 끼고 오스틴을 바라보았다.

“레오 도련님…….”

오스틴이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오스틴도 레오가 한 달 동안 자신들을 수련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홀라당 기사단 자리를 놓고 내기를 하게 되었다.

그로서는 레오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오스틴을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오스틴.”

“예, 레오 도련님.”

“적당히 봐주면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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