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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봐주면서 해?’
오스틴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스틴뿐만 아니라 다른 수련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오스틴이 상대하는 수련생 게리스는 뛰어난 실력자였다.
수련생끼리의 대련에서 오스틴이 단 한 번도 이겨 본 적 없는 상대.
그런 상대와 대련하는데 적당히 봐주라니.
‘레오 도련님은 대체 무슨 자신감이실까?’
속으로 헛웃음을 터트리던 오스틴은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래, 나는 지난 한 달 동안 레오 도련님의 혹독한 수련을 헤쳐나왔어.’
레오의 수련을 경험한 후 어떤 시련이든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심호흡한 오스틴이 목검을 다잡았다.
그의 덩치에 걸맞은 바스타드 소드 형태의 목검.
그런 오스틴을 보며 게리스가 킥- 웃으며 검을 겨누었다.
‘건방진 놈.’
오스틴이 바스타드 소드를 이용한 파괴력 넘치는 검술을 구사한다면 게리스는 덩치와 달리 세검을 이용한 정교하고 빠른 검술을 구사했다.
오스틴은 매번 게리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압도적인 차이로 패했다.
연무장 가운데 선 두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는 가운데 게리스가 자리에서 가볍게 뛰며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격을 알려주마, 오스틴.”
그 말과 동시에 게리스가 엄청난 속도로 오스틴을 향해 쇄도했다.
화악-
쾌속으로 달려드는 게리스를 향해 오스틴이 검을 휘둘렀다.
후웅-!
“흥! 여전히 무식한 공격이군!”
화악-!
게리스가 스텝을 밟으면서 오스틴의 검을 피하며 왼쪽으로 파고들었다.
눈이 어지러울 정도의 빠른 속도.
하지만 오스틴의 검은 정확하게 게리스를 추격했다.
회피하고 반격하려던 게리스는 다급히 방어를 위해 검을 휘둘렀다.
뻐억-!
목검과 목검이 교차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게리스는 팔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오스틴은 힘 하나만큼은 무지막지했다.
“조금 발전이란 걸 한 모양이군. 그렇다면…….”
게리스가 오러를 활성화했다.
파앗-!
더욱 속력을 올리는 게리스를 보며 오스틴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속도 때문에 당황한 게 아니라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대응하기 힘들었던 게리스의 속도에 반응하는 자신 때문에 놀란 것이다.
휘익-!
오스틴이 자신의 찌르기를 피하자 게리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뭣?
그리고 다급히 맹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화악! 파바바밧!
화려한 찌르기와 베기가 난무했다.
게리스가 오스틴을 압도한다고 생각한 다른 수련생들이 휘파람을 불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상위권 성적을 지닌 수련생들의 안색은 돌변했다.
‘게리스의 공격이 안 통해?’
게리스의 검술은 속도로 상대를 제압하는 스타일.
그 속도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은 상대를 쓰러트릴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오스틴 역시 반격할 틈이 없었기에 대련은 고착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중위권이던 오스틴이 상위권이었던 게리스와 동수를 이른 것 자체가 충격적인 일이었다.
‘애초부터 육체와 오러를 다루는 능력은 충분했어. 부족한 건 기술이었지.’
대련을 지켜보던 레오가 피식 웃었다.
레오의 기사단 전원은 모두 하급 귀족이나 평민 출신이다.
그렇다 보니 어려서부터 기사가 되기 위해 체계적으로 검술을 수련해온 다른 수련생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수련생 중 중위권을 할 정도로 재능이 출중했다.
레오는 그러한 기사들의 검술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을 파악하고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수련시켰다.
그 성과가 지금 나온 것이다.
‘애들은 빨리 크니까.’
남들이 들었으면 헛웃음을 터트렸을 말을 속으로 하는 사이.
“크윽! 이 자식이!”
게리스의 눈이 번뜩였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야!’
그는 레오의 기사단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보다 명백하게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오스틴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니?
레오에게 실력을 보여줄 기회라고 생각했던 게리스로서는 화가 나는 상황이었다.
‘빈틈!’
평정심이 무너지자 오스틴이 파고들 틈이 생겨났다.
부앙-!
“헉?”
게리스가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대련의 흐름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속도에 익숙해진 오스틴이 반대로 게리스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리스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 자식이!”
고오오오오-!
강력한 오러가 게리스의 검에 맺혔다.
그걸 본 오스틴이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우웅-!
오스틴의 바스타드 소드도 빛이 났다.
그런 오스틴을 보며 게리스가 빠르게 찌르기를 감행했다.
오러의 위력은 오스틴보다 제리스가 확실하게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흡!”
오스틴도 기합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오스틴의 검 위로 마법 술식이 떠올랐다.
“뭐?!”
게리스가 경악성을 내질렀다.
콰각-!
“크억?!”
오러와 강화 마법에 의해 위력이 올라간 오스틴의 검이 게리스의 검을 분질렀다.
후웅-!
오스틴의 검이 게리스의 목 앞에서 딱 멈추었다.
눈을 크게 뜨던 게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반칙이야! 너! 마법 아티팩트를 쓰는 게 어디 있어!”
게리스의 외침에 오스틴이 목검을 거두며 말했다.
“마법은 내가 쓴 거야.”
“거짓말! 한 달 만에 네가 마검사가 됐다고?”
“그래.”
“말도 안 되는 소리!”
게리스가 거칠게 항의했다.
수년 동안 함께 수련생 생활을 한 사이다.
오스틴에게 마법사의 소양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다른 수련생들 역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가운데 레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방금 건 오스틴이 쓴 마법이 맞아.”
“예?”
“마법사로서 재능이 있길래 지난 한 달 동안 마법을 가르쳐 줬거든.”
“마, 말도 안 되는……! 아니! 말이 된다고 해도 반칙입니다! 이건 검술 대련이었다고요! 그리고 우리는 제르딩거의 기사 수련생입니다! 마법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제르딩거 수련생과 마법을 쓰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지?”
“자랑스러운 제르딩거의 기사를 목표로 하는 자로서 마법에 손을 대다니요!”
“그렇다면 나도 용납이 안 된다는 소리야?”
“……!”
레오가 시큰둥하게 묻자 게리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오스틴에게 패배했다는 생각에 흥분하여 아무 말이나 내뱉다가 말실수하고 말았다.
레오 역시 마법을 사용한다.
“저! 그, 그러니까! 제가 말실수를……!”
“됐어. 다음 대련이나 계속 해.”
레오는 게리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로 말했다.
이후에 줄란, 캐린, 발레리 순으로 대련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대련에서 레오의 기사들이 모두 승리를 차지했다.
줄란과 캐린은 정령 기사로서 능력을 어김없이 발휘했다.
발레리는 레오에 의해 발현된 오러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승리를 거두었다.
“좋았어! 압도적인 승리!”
“레오 도련님에게 한 달 동안 시달려서 그런가. 움직임이 훤히 보여!”
줄란과 캐린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자신들의 성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호들갑을 떨었다.
“발레리! 너도 그렇지?”
캐린이 들뜬 목소리로 묻자 발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일단 레오 도련님에게 맞는 것보다 훨씬 덜 아팠어.”
“…….”
“…….”
줄란과 캐린이 안타깝다는 얼굴로 발레리를 보았다.
그러는 와중에 마르티나가 연무장 위로 올라갔다.
맞은편에는 엔디언이 서 있었다.
마르티나는 목검에 힘을 주었다.
‘다들 이겼는데 나만 질 순 없어.’
엔디언은 현재 또래 수련생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다.
엔디언 또한 그런 마르티나를 보며 목검을 고쳐 쥐었다.
‘다른 녀석들을 본다면 마르티나 역시 새로운 능력을 얻었을 거야.’
레오가 무슨 마법을 부렸는 지는 모르겠지만 레오의 기사들은 듀얼 클래스, 혹은 오러 특성의 각성으로 수련생 중 최상위권 실력을 얻게 되었다.
‘방심해서는 안 돼.’
양손으로 검을 잡은 엔디언이 자세를 낮추고 심호흡했다.
마르티나도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화악-!
그리고 누가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향해 돌격했다.
마르티나의 능력을 탐색하기 위해 엔디언은 방어적인 검술을 구사했다.
후웅-! 빠악-!
오러가 실린 묵직한 검에 엔디언이 눈을 가늘게 떴다.
시작부터 오러를 활성화한 두 사람은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엔디언의 눈에는 의아함이 깃들었다.
엔디언이 느끼기에 마르티나는 크게 바뀐 것이 없었다.
기량이 늘어난 것은 알겠다.
하지만 오스틴처럼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고 캐린과 줄란처럼 정령과 계약을 한 것도 아니다.
더더욱 발레리처럼 특별한 오러 특성이 각성 된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소와 똑같이 우직하게 검을 휘둘렀다.
“넌 다른 녀석들처럼 뭔가 능력이 발현되지는 않은 모양이군.”
엔디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이야기는 쉽지.”
탐색을 끝낸 엔디언이 순식간에 공격으로 전환했다.
화르륵!
엔디언의 검에서 푸른색 불꽃이 일어났다.
엔디언의 가문인 테리어스 가문은 대대로 제르딩거의 가신 가문이었다.
그런 만큼 오래전 제르딩거로부터 오러 심법을 하사받았다.
마르티나가 검을 꾹 쥐었다.
수련생들이 익히고 있는 오러 심법도 결국에는 불꽃과 관련된 오러 심법이다.
하지만 오러 심법을 마스터 해야만 불꽃을 낼 수 있었다.
그건 수련생 생활을 끝내고 견습 기사로 인정받는 과정이기도 했다.
붉은 불꽃이야말로 제르딩거 기사의 상징.
견습기사가 되면 새로운 오러심법을 하사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가문에서 오러 심법을 익힌 엔디언은 다른 수련생들과 출발선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푸른 불꽃이지만 불꽃은 불꽃이니 말이다.
평소라면 불꽃의 오러에 주눅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르티나는 엔디언의 불꽃에 맞서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러 조차 사용하지 못하던 소년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처럼 괴물을 쓰러트리는 걸 봤다.
그리고 그 소년은 정말로 영웅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레오 도련님이 말했잖아. 우리도 루메른에 입학할 수 있다고.’
기사란 무엇인가?
주군의 말을 따르는 자가 아니던가?
‘레오 도련님의 기사로 남겠어.’
고오오오-!
‘레오 도련님에게 어울리는 기사가 되기 위해 루메른에 입학할 거야!’
그 열망 하나만으로 한 달 동안 제일 열심히 레오의 수련에 임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화르륵-!
수련생의 졸업을 의미하는 붉은 불꽃이 마르티나의 검에 맺혔다.
“아니……!”
엔디언이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마르티나도 자신의 불꽃을 보고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검을 휘둘렀다.
콰악-!
엔디언의 검이 부러지며 하늘로 치솟았다.
척-!
불꽃에 휘감긴 마르티나의 목검이 엔디언의 턱 밑에서 멈추었다.
“내가 이겼어. 엔디언.”
“큭!”
엔디언이 이를 악물었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졌다.”
그 말에 마르티나가 검을 거두었다.
“마르티나 언니!”
캐린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르티나에게 달려가 안겼다.
모든 수련생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해야 중위권이던 다섯이 단 한 달 만에 상위권 학생을 꺾다니!
“이걸로 결정됐네.”
레오는 피식 웃었다.
“실력으로 증명했다. 앞으로 내 기사단과 관련되어 군말이 나온다면 나도 가만 있지 않겠어.”
사실 기사단과 관련되어 이야기가 나오는 문제는 레오의 권한으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도 이 상황을 지켜본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이 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기 좋게 스스로가 레오의 기사로서 자격이 있음을 증명했다.
“이제 각자 할 일을 하러 가.”
레오의 말에 수련생들이 흩어졌다.
수련생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기류가 흘렀다.
이를 악물고 수련하러 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노골적으로 말을 꺼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견습 기사로서 자격을 얻은 마르티나를 포함해 레오의 기사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모두 레오 도련님 덕분입니다!”
오스틴이 고개를 숙였다.
“맞아요! 레오 도련님 덕분에 강해질 수 있었어요!”
캐린도 활짝 웃으며 말했다.
한 달간의 생활은 지옥 같았지만, 그 힘든 나날에 대한 보상은 확실했다.
기뻐하는 기사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난 떠밀어준 것뿐이야.”
포기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혹독한 수련을 견뎌낸 건 기사단이었다.
“강해진 건 너희 스스로야. 그러니 나에게 감사하지 말고 스스로 자랑스러워해도 돼.”
레오의 말에 기사단들이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자, 그럼 너희가 내 기사라는 사실에 더 이상 토를 달 사람도 없을 테니 기사단 이름을 지어 볼까?”
기사단의 이름을 정한 순간 이제 진짜 레오의 기사가 되는 것이다.
모두가 긴장된 표정을 짓는 가운데 레오가 말했다.
“슬레이어.”
레오의 말에 기사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슬레이어요?”
마르티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학살자라는 의미였다.
기사단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런 마르티나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나는 앞으로 타르타로스와의 싸워나갈 거야.”
레오의 시선이 기사단에게 닿았다.
“나를 따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놈들과 계속 싸우게 되겠지.”
“그렇군요. 저희는 이제부터 레오 도련님의 검. 레오 도련님이 가시는 길이 그런 길이라면 슬레이어라는 이름이 어울리겠네요.”
마르티나가 빙긋 웃었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었다.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라 무릎을 굽혔다.
“저 마르티나를 포함한 다섯 명은 앞으로 당신의 검, 당신의 방패가 되어 당신이 가는 길을 여는 기사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대표로 기사 서약을 읊은 마르티나가 고개를 들었다.
“일평생 당신을 주군으로 모시는 걸 허락해주세요.”
“허락하지.”
일평생 자신의 오른팔이 될 기사단을 보며 레오는 웃었다.
기사 서약이 끝이 나고 슬레이어 기사단이 몸을 일으켰다.
어딘지 모르게 늠름해진 그들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아, 그리고 훈련 1단계는 통과했으니 2단계로 돌입하도록 할까?”
우지직-
그 말에 기사단 전체가 굳고 말았다.
“2, 2단계라뇨? 그런 게 있나요?”
캐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레오가 팔짱을 꼈다.
“당연하지. 너희의 목표는 루메른 입학이잖아. 아직 멀었어.”
하얗게 질려가는 기사단을 보며 레오가 중얼거렸다.
“산에 가봤으니 다음에는…….”
산 다음은 보통 바다였다.
“불바다?”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련 장소에 기사단 전원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