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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칼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는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죄송합니다, 선배님.”
칼의 푸념에 제일 선두에 선 수험생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하지만 선배님이 직접 말했잖아요? 선배님은 2학년 최약체라고 말이에요.”
칼은 열 한 명의 수험생들에게 포위 당해있었다.
이번 입학시험의 주제는 서바이벌로 2학년들을 상대로 살아남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도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다.
수험생들이 2학년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2학년들을 쓰러트리고 살아남는 것 역시 생존의 방식이다.
그리고 수험생들은 2학년 중에서 제일 최하위라고 떠들고 다녔던 칼을 노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끄악! 합격 부적을 판매한다고 홍보를 하고 다녔던 게 이런 식으로 되돌아올 줄이야!”
칼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칼을 보며 수험생들이 각자의 무기를 붙잡았다.
기사들이 앞으로 나서고 마법사와 소환사들이 후방에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칼이 팔짱을 꼈다.
“우리 평화적으로 나가면 안 될까?”
칼의 말에 파티 리더로 보이는 수험생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거절합니다. 우리는 선배님을 쓰러트리고 루메른에 입학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이 사람은 별거 없어!’
이미 자신이 2학년 중 제일 성적이 낮고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걸 홍보하고 다녔던 칼이다.
그 덕분에 1학년들 전체의 뇌리에 칼이 약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2학년을 쓰러트린다면 입학 확률이 높아질 게 분명했다.
그들로서는 칼을 절대로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칼이 ‘에효!’ 한숨을 내쉴 때였다.
“자업자득이야.”
공중에서 들린 목소리에 모두가 흠칫하며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팡이를 타고 앉아 있는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여학생을 보며 굳어 버렸다.
“클로에!”
칼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말에 다른 수험생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클로에 뮐러!
2학년 마법학과생 중 아바드와 톱을 다투는 절대 강자이자 이번 수험생들이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상대였다.
그녀의 느닷없는 등장에 수험생 전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희는 이제 끝났어! 각오해!”
칼의 외침에 클로에가 다리를 꼬고 앉으며 말했다.
“칼. 네가 알아서 해결해.”
“엉?”
“따지고 보면 다 네가 뿌린 씨앗이잖아.”
클로에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데 도와주면 안 되냐?”
“응, 안 돼.”
클로에는 단호하게 말하며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 품에 끼고 다니는 마도서를 펼쳤다.
느긋하게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친구를 보며 칼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리고.”
클로에가 힐끗- 수험생들을 바라보더니 빙긋 웃었다.
“후배들에게 얕보이면 선배 체면이 뭐가 되겠어?”
“에효. 그래. 그래. 어쩔 수 없지.”
칼이 어깨를 풀며 앞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본 수험생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어쨌든 클로에 뮐러는 나서지 않는다는 거잖아!’
‘좋은 기회야!’
속으로 쾌재를 지르며 수험생들이 포위망을 좁혀갔다.
그 모습을 본 칼이 아공간을 열었다.
우웅-! 좌르르륵-!
온갖 종류의 무기가 쏟아져 나왔다.
거리를 좁히던 기사학과 지망생들이 움찔 몸을 떨었다.
“인챈트.”
칼이 마법을 발동시키자 검들이 생명력을 얻은 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전방의 기사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최하위 성적자라고 해도 루메른의 학생.
경계를 해야 했다.
그러는 사이 후방의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했다.
그걸 본 칼이 빠르게 디스펠 마법을 외웠다.
“엇!”
“마법 발동이 해제됐어!”
견제용으로 사용할 간단한 마법이라도 세 명의 마법사들의 마법이 동시에 디스펠 되는 건 놀랄 일이다.
마법이 해제되자 파티의 리더가 다급히 소리쳤다.
“야! 전위들! 빨리 압박해서 마법을 못 쓰게 막아!”
“하지만 저 마법들은?”
“저건 단순한 인챈트 마법이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 말에 용기를 얻은 기사 한 명이 칼을 향해 돌격했다.
“엇차! 아쉽지만 오답을 선택했네.”
칼이 씩 웃으며 마력을 일으켰다.
연금술이 발동되며 돌격하던 수험생이 쳐낸 검이 새빨갛게 빛나더니 쾅-! 하고 폭발을 일으켰다.
“크악?”
“포, 폭발했어?”
“뭐야? 마법검이야?”
수험생들 사이에서 당혹스러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그냥 단순한 인챈트 마법이라면서!”
전위 중 한 사람이 따지듯 파티 리더에게 소리쳤다.
오러 아머를 이용해 기절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당황하던 파티 리더가 발끈했다.
“탈락할 정도의 타격을 입은 건 아니잖아! 그냥 맞서 싸워! 그게 전위의 역할이잖아!”
“우리를 방패로 쓰겠다고? 그래 놓고 전공은 네가 가로채게?”
칼에게 덤벼들었던 수험생이 휘청거리며 따지듯 소리쳤다.
그 모습을 본 칼이 턱을 쓰다듬었다.
‘호오? 이거 생각보다 더 쉽게 처리도 가능하겠는데?’
1년 전의 칼이었다면 아마 순식간에 당했을 것이다.
칼은 턱걸이로 입학해 턱걸이로 2학년에 진급한 학생이다.
언제나 2학년 최하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 여기 급조된 파티원들에게 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루메른에서의 1년.
그 1년의 시간은 서포터를 꿈꾸던 소년을 변모시키기 충분했다.
‘서포트는 영웅을 보조하는 사람.’
철컥-
칼이 아공간에서 한손용 석궁을 꺼냈다.
‘보조한다는 건 영웅의 등을 지킨다는 걸 의미하기도 해.’
그리고 칼은 1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동기들의 등을 지켜보았다.
‘난 녀석들을 옆에 설 능력도 따라갈 힘도 없어. 하지만 서포터를 하려면 어떻게든 등 뒤에는 서야 해.’
격차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그 차이가 벌어질 거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쫓아가 봐야지. 할 수 있는 모든 걸 이용해서.’
영웅이 지쳐 주저앉았을 때.
그 등을 받쳐주고 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말할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들의 발끝을 좇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칼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연구하고 노력했다.
칼이 등 뒤의 파티 리더를 향해 석궁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마법사면서 이런 조잡한 공격을…….”
쾅-!
인챈트가 걸린 화살이 폭발을 일으켰다.
칼이 연금술로 만들어낸 특제 폭발 화살이었다.
‘물론 한 발에 단가가 장난 아니지만.’
칼이 씩- 웃으며 다음 화살을 장전했다.
“큭!”
예상 밖의 위력에 파티 리더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실드 마법에 더욱 힘을 집중시켰다.
핑-! 틱-!
그리고 이번에 날아간 화살은 실드 마법에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이번은 그냥 일반 화살.
마력을 소모시키기 위해 속임수를 쓴 것이다.
“자, 여기서 문제. 다음은 폭발 화살일까요? 일반 화살일까요?”
칼이 능글맞게 웃으며 화살을 장전시켰다.
그리고 당황하는 후방 라인 중 한 사람에게 화살을 날렸다.
콰앙-!
“정답은 폭발 화살!”
“야! 전위! 제대로 막아!”
“우리가 네 방패냐!”
급조된 파티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의 가장 큰 약점은 결속력이야.’
루메른 수험생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자존심이었다.
다들 루메른 입학 시험에 도전할 만큼 재능이 넘치는 이들이다.
그런 만큼 실력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다.
어린 나이에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을 가졌으니 손발이 잘 맞을 리 없었다.
‘이런 문제는 루메른 1학기 초기까지 유지되니까.’
직접 겪은 일이기에 칼은 그 틈을 파고든 것이다.
‘파티가 이렇게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지.’
칼이 품에서 포션병을 꺼냈다.
인챈트 마법을 쓴다고 마력이 순식간에 소모되었다.
포션을 들이킨 후에도 계속해서 연금마법으로 상대 파티를 요리했다.
마도서에서 시선을 뗀 클로에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빙긋 웃었다.
‘그래, 칼. 네 장점이라면 충분히 2학년에 진급했을 거야.’
대다수의 2학년도 칼이 운이 좋아서 진급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필기시험 성적으로만 본다면 칼이 턱걸이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실전으로 놓고 본다면 칼은 2학년이 되고도 충분히 남을 실력자다.
물론 중위권 성적은 아니겠지만 수험생들에게 호락호락 당할 실력은 절대 아니었다.
‘저 중에는 진짜 뛰어난 수험생도 없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던 클로에가 힐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콰가각! 쩌엉-!
허공에 얼음 결정이 뭉치며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와 함께 클로에를 노리던 마력의 탄환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클로에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저격 마법.’
그것도 상당한 위력의 마법이었다.
클로에가 주변 일대를 슥- 둘러보았다.
‘기척을 완벽하게 차단했네.’
텁-
책을 덮은 클로에가 지팡이에서 내려왔다.
허공에 선 클로에가 휘익- 저격 마법이 날아 온 쪽으로 날아갔다.
콰아악-!
쩌엉-! 쩌저저적!그러자 이번에는 뒤편에서 저격 마법이 날아왔다.
조금 전보다 더 강해진 위력에 결계 마법에 금이 갔다.
그걸 본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도 마력의 흐름을 파악할 수 없었어.’
아무래도 이쪽으로 특화된 마법사 같았다.
클로에도 이런 형태의 마법사에 대해 알고 있다.
‘매지션 킬러인가 보네.’
클로에 같은 전통형 마법사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존재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위치도 파악하지 못한 채 저격당하면 클로에로서도 곤란하다.
‘계속 저격을 당한다면 말이지.’
텁-!
클로에가 지팡이를 쥐었다.
고오오오-!
클로에의 차가운 마력이 휘몰아쳤다.
“위치를 파악할 수 없다면.”
클로에가 빙긋 웃었다.
“다 얼려버리면 그만이지.”
클로에의 고유 마법.
얼음의 세계가 발동되었다.
주변 일대의 광활한 영역에 순식간에 혹한의 기운이 휘몰아쳤다.
쩌저저저저적-!
순식간에 광활한 지역을 얼려버린 클로에가 힐끗- 한곳을 바라보았다.
‘저기구나.’
마력의 파동을 감지한 클로에가 빠르게 그곳으로 향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칼이 혀를 내둘렀다.
“클로에도 이제는 완전 괴물이구나.”
그렇게 말한 칼이 자신에게 덤빈 수험생들을 바라보았다.
“자, 그럼 이제 마무리를 해볼까?”
좌륵-!
길다란 포션병을 손가락에 끼운 칼이 씩- 웃었다.
“너희에게 루메른 학생의 무서움을 알려 줄게.”
“히익!”
섣부르게 덤볐던 수험생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칼을 수험생들을 상대로 가볍게 승리를 차지했다.
***
“루메른 녀석들도 제법이군.”
아르는 눈을 반짝이며 시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화면에 레오가 나온 걸 보고는 주먹을 꾹 쥐었다.
“나왔구나! 검은 토끼!”
레오에 대한 감정이 풀린 아르는 다시 레오를 ‘검은 토끼’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르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어떤거?”
“왜 레오님을 검은 토끼라고 부르시나요? 물론 레오님은 토끼처럼 귀여운 구석도 있으시지만, 외모만 보면 흰 토끼 쪽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내가 처음 봤을 때는 토끼 수인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머리가 검정색이었어. 그래서 입에 붙어버렸어.”
“토, 토끼 귀를 단 레오님……?”
에이란은 양 뺨에 손을 대며 상기된 표정을 짓더니 몸을 배배 꼬았다.
“보, 보고 싶어……! 사진을 찍어 두신 건 없나요?”
“없어.”
단호한 말에 에이란이 좌절했다.
그때였다.
“흐응. 저 수험생 용감하네.”
루니아가 턱을 괴며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에 아르와 에이란도 화면을 바라보았다.
레오만 보면 수험생들이 미친 듯이 도망치던 게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수험생은 달랐다.
레오의 앞에 선 소녀는 단호한 얼굴로 검을 다잡고 있었다.
“대단한 용기네요, 누구죠?”
에이란이 감탄할 때였다.
아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나 베이드나.”
그 수험생은 아르가 알고 있는 소녀였다.
“검성의 증손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