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
‘지금까지 잡지 못한 녀석은 네 명.’
레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샤샤, 하비든, 아이나, 루크.
지금까지 레오와 조우하고도 살아남은 학생이다.
그 외의 학생은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 모두 레오의 손에 탈락했다.
물론 그들도 레오의 추격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었다.
터벅- 터벅-
레오는 다소 여유로워 보이는 걸음걸이로 숲의 중심부, 에드디엔 산으로 다가갔다.
레오의 붉은 눈이 숲에 남은 흔적을 훑었다.
‘넷 다 숲의 중심부로 도망치고 있군. 나쁘지 않은 선택이야.’
크아아아앙-!
레오는 자신을 덮치는 몬스터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부악-!
레오의 검에 의해 갈라진 트롤이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뛰어난 재생 능력을 지닌 몬스터였지만, 이렇게 당하면 답이 없다.
에드디엔 산은 몬스터 출몰 지역.
그리고 몬스터는 산 중심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더욱 많아진다.
게다가 숲 역시 더욱 복잡하고 울창해지어서 숨을 곳도 많다.
그렇기에 레오의 추격을 피해 숲의 중심으로 몸을 피하는 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뭐, 이것도 몬스터들을 상대로 살아남을 수 있을 때 이야기지만…… 실력을 본다면 가능할 것 같군. ‘자,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애들이 어떻게 하나냐는 건데.’
레오가 보기에도 네 사람은 충분히 뛰어났다.
당장에 레오를 상대로 도주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루메른에 입학할 자격이 있었다.
‘셀리아나 아바드, 듀란, 워레든, 엘리자였다면 가차 없이 탈락이었겠지.’
철저한 그들은 아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을 탈락시켰을 것이다.
레오의 경우에는 어떤 대응을 할지 궁금해서 도주를 용인해준 것이다.
그 네 사람 이외에는 진즉에 레오의 손에 탈락되었다.
‘하지만 두 번은 없어.’
다음에 만난다면 누가 됐든 가차 없이 탈락시킬 생각이었다.
“응?”
흔적을 추격하던 레오는 자신 앞에 나타난 이들을 보며 멈칫했다.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던 다섯 사람이 레오의 앞에 나타났다.
***
아이나를 데리고 도주한 루크가 소리쳤다.
“어서 달려요!”
“일단 이거 놔.”
“아!”
아이나의 말에 루크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손목을 놓았다.
“미안해요.”
그런 루크를 보며 손목을 만지작거리며 아이나가 말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혼자 도망가.”
“왜요? 어서 도망쳐서 그 사람에게서 멀어져야…….”
“어차피 너나 나나 그 사람에게서 도망칠 수 없어.”
“네? 그 사람이 누군데요?”
“레오 플로브.”
“헉!”
아이나의 말에 루크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레오 플로브.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 후보생이다.
올 클래스인 것도 모자라 루메른 최초로 1학년에 학생회장이 된 전설적인 인물!
당황하던 루크가 이내 진정하며 말했다.
“그래도 도망쳐요.”
“내 말을 이해 못 했어? 그 사람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체념한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헛수고야.”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죠!”
“넌 최선을 다해. 난 그럴 생각 없으니까.”
‘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내일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 해.’
아이나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레오 플로브에게 인정받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세계를 공략해서 실력을 쌓을 수밖에 없겠어.’
검성의 히어로 레코드.
그 정당한 주인은 아이나다.
아이나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검성의 히어로 레코드에 들어갈 수 있다.
‘어서 강해져야 해.’
아이나의 눈이 가라앉을 때였다.
“루메른에 입학할 마음이 없어요?”
“그래.”
아이나에게는 루메른에서 공부하는 것 보다 하나의 마족을 더 베는 게 중요했다.
이번 시험 역시 입학해도 그만 못해도 그만이라는 마음으로 응시했다.
“어째서요? 아깝잖아요! 그런 대단한 실력이면 분명 입학 확정일 텐데!”
순수하게 안타까워하는 루크를 보며 아이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넌 왜 루메른에 들어가고 싶은데?”
“그야…… 영웅이 되고 싶으니까요.”
“왜?”
아이나의 물음에 루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었다.
“그게 말이죠. 조금 낯 뜨거운 이유이긴 한…….”
화악-!
순간 아이나가 루크의 멱살을 잡더니 그대로 잡아끌었다.
콰악-!
루크가 서 있던 자리에 섬광이 지나갔다.
“어?”
루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실력으로 잘도 그 사람에게 덤빌 생각을 했구나?”
아이나가 고개를 저으며 저격 마법이 날아온 곳을 바라보았다.
“휘유~ 반응이 엄청 좋은 아가씨네?”
풀숲을 헤치고 저격 마법 전용 마도 병장을 어깨에 걸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머리카락에 갈색 눈동자, 거기에 건강미 넘치는 갈색 피부까지.
“남부 마탑 소속이군.”
아이나는 그녀의 어깨에 있는 문양을 보고는 중얼거렸다.
“정답.”
빙긋- 웃은 소녀가 마도 병장을 아이나에게 겨누었다.
“저격 마법이 능한 걸 보면 쥬엔 토르비나?”
“역시 알아보는구나?”
소녀는 호전적인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럼 그쪽 이름은?”
“아이나 베이드나.”
“검성의 증손녀? 와우~ 대단한걸~”
“억?”
쥬엔이 감탄사를 터트렸고 루크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이 소녀가 그 유명인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짐 덩어리랑 같이 다니네.”
쥬엔이 빙긋 웃었고 그에 루크는 머리를 긁적였다.
딱히 틀린 말이라 반박하지 않았다.
아이나와 쥬엔.
두 사람 모두 이번 입학시험 최고 유망주로 세계적으로 명성이 있는 수험생들이었다.
“어쨌든 한 번쯤 실력을 겨뤄보고 싶은 상대와 만나다니. 운이 좋네.”
“난 딱히 너랑 싸울 생각이 없어.”
“내 알 바는 아니지.”
쥬엔은 루크를 보며 말했다.
“빨리 도망쳐. 괜히 휘말리기 싫으면.”
“……그것보다 같이 도망쳐야 할 것 같은데요.”
“왜?”
“저희, 지금 쫓기고 있거든요.”
“쫓겨? 누구한테?”
“레오 플로브씨요.”
루크의 말에 쥬엔의 얼굴이 우지직 굳었다.
“그걸 왜 이제 말하는 건데!”
쥬엔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얼음 마녀 한 번 잘못 건드렸다가 얼어 죽을 뻔한 거 겨우 도망쳤는데 이제는 그 괴물이라고?”
쥬엔이 진저리를 칠 때였다.
“왜 날 따라오는 거냐?”
“흥. 당신이 날 따라오는 거 거든요?”
티격태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풀숲을 헤치고 샤샤와 하비든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 사람을 본 샤샤와 하비든이 눈을 가늘게 떴다.
“검성의 증손녀, 아이나 베이드나. 남부 마탑주의 딸 쥬엔 토르비나군요.”
샤샤가 품에서 탁-! 섭선을 꺼내 펼치고 입가를 가렸다.
“그리고 듣도 보도 못한 사람 한 사람.”
“하하하.”
루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흥. 상황만 아니면 쓰러트렸을 텐데. 운이 좋군.”
“흥. 웃기지 마셔. 그건 내가 할 말이거든? 어서 빨리 학생회장이오기 전에 자리를 뜨든지 해야지.”
쥬엔의 말에 하비든이 멈칫했다.
“학생회장? 너희도 레오 선배에게 쫓기고 있는 건가?”
하비든의 물음에 아이나가 말했다.
“당신들도?”
샤샤가 탁- 섭선을 접고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신입생 대표 후보들이 전부 레오 선배의 표적이 된 모양이네요. 운도 없어라.”
샤샤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일단 같은 처지니까 레오 선배를 따돌릴 궁리를 같이해볼까요?”
“당신들끼리 해. 난 기척을 없애는 데는 능하니까. 광역 마법만 아니면 잡힐 일 없어.”
“레오 선배에게 당신의 기술같은 건 통하지 않을 거예요.”
“뭐야?”
“그리고 레오 선배라면 광역 마법 정도는 쉽게 써요.”
“네가 봤어? 레오 플로브의 마법 능력이 대단하다는 소문은 있지만 광역 마법을 쓴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는데?”
“그야.”
팔짱을 낀 샤샤가 눈을 반짝였다.
“레오 선배는 못 하는 게 없을 테니까요!”
그런 샤샤의 반응에 쥬엔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였다.
“당신들은 도망쳐.”
아이나가 아공간을 열어 새로운 검을 꺼내 들었다.
“난 싸울 테니까.”
그 말에 샤샤와 하비든, 쥬엔이 인상을 찡그렸다.
“무모하게 왜 그런 짓을 하지?”
“난 도망치지 않아.”
그 말은 샤샤, 하비든, 쥬엔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자신들은 도망칠 생각부터 하는데 시험 전 가장 큰 경쟁자라고 생각했던 아이나가 맞서 싸울 생각을 하다니.
레오라는 공포에 의해 억눌러져 있던 사춘기 소년, 소녀 특유의 치기 어린 자존심이 고개를 치켜들기 시작했다.
“너만 용기 있는 줄 알아? 나도 있거든?”
“쫓기는 건 성미에 안 맞지.”
“아무리 레오 선배라고 하더라도 너무 도망만 치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죠.”
쥬엔, 하비든, 샤샤가 발끈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들은 도망쳐도 돼. 그게 나아.”
“퍽이나!”
순수하게 걱정이 돼서 해준 말이지만 그 말은 보기 좋게 셋을 도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아이나는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오기를 부릴까?”
“그거 아이나씨 때문인 것 같은데요.”
“나 때문에? 내가 뭘 했다고?”
미간을 찌푸리는 아이나를 보며 루크가 ‘하하하’ 어색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어떻게 할 거지?”
하비든의 물음에 루크는 갈등했다.
루크는 이 네 사람과 달랐다.
루메른에 합격할 자신도 없다.
일평생 시골에서 혼자 수련해온 평범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싸워 보고 싶어.’
루메른 역사상 최연소 학생회장.
1학년임에도 가히 영웅에 비견되는 업적을 이룬 사람.
레오는 루크에게 있어 선망의 대상이었다.
레오의 이야기를 듣고 루메른 입학시험에 도전하게 되었다.
‘일평생 그 사람을 볼 일이 오늘 말고 더 있을까?’
아마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한 번쯤 레오에게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돕겠어요.”
***
“따로따로 각개격파 당하느니 힘을 합쳐 나를 저지하겠다라…….”
레오는 전의를 불태우는 수험생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군.”
샤샤, 하비든, 쥬엔은 속으로 뜨끔했다.
세 사람은 그냥 아이나의 행동에 발끈한 것뿐이다.
레오의 말을 듣고 루크가 눈을 빛내며 선망 어린 눈으로 셋을 보았다.
“아, 그런 의도가 있었군요? 전 그냥 아이나씨의 말에 발끈한 줄 알았어요.”
“무, 물론이지.”
“힘을 합쳐서 선배와 맞서 싸우는 거다.”
“그렇고 말고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루크를 보며 셋은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때 아이나가 선두로 나섰다.
“검을 뽑으세요.”
그 말에 네 사람이 긴장된 얼굴로 자세를 낮췄다.
레오가 검을 뽑고 전투 태세에 들어가는 순간.
각자 임무에 맡게 움직여야 했다.
급조된 파티라도 레오를 공략하기 위한 대응법에 대해서는 논의를 했다.
아이나의 말에 레오가 피식 웃었다.
“검을 뽑아?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예?”
레오가 손을 들어 올렸다.
“너희를 상대하는데 검을 뽑아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
1:1이라면 저 말에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1:5다.
아무리 상대가 루메른 역사상 손에 꼽히는 영웅 후보생이라 평가받는 레오 플로브라고 해도.
이쪽 역시 신입생 대표로 평가받고 있다.
“뽑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쥬엔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것도 그러네요.”
척-!
쥬엔이 저격 전용 마도 병기를 레오에게 겨누었다.
“후회하게 만들어 주겠어요!”
고오오오-!
강력한 마력이 휘몰아쳤다.
은밀한 공격이 아닌 전면전.
당연한 말이지만 마법이 들키지 않게 마력을 억제하는 것보다 이쪽의 위력이 더욱 강하다.
콰앙-!
저격이 아닌 포격에 가까운 소리가 울렸다.
강력한 마력을 품은 마탄이 레오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쩌엉-!
“……!”
레오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마력을 담아 마탄을 쳐냈다.
그걸 본 쥬엔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내게 보여 줘봐.”
레오의 눈이 번뜩였다.
다섯 사람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명백하게 아득히 높은 곳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눈빛.
그 눈빛에 압도당했다.
“너희의 가치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