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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26화 (226/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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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딩거의 수련생도들의 총책임을 담당하는 지스는 실로 오랜만에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훌륭하다. 다섯 명 모두 루메른에 합격하다니.”

제르딩거는 굴지의 명가인 만큼 루메른 시험에 응시하는 수련생 역시 많았다.

하지만 아무리 제르딩거 수련생이라고 해도 모두가 영웅 사관 학교에 입학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뛰어난 기사로 거듭나기 위해 매일 수련에 매진하지만 루메른의 문턱은 높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제르딩거 수련생 중 다섯 명의 합격자가 나온 건 정말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모두 레오 도련님 덕분인걸요.”

마르티나의 말에 지스가 피식 웃었다.

“그 훈련을 이겨낸 건 너희들이다. 이건 너희들이 이룩한 성과이니 자랑스러워하도록.”

“네.”

“너희는 레오의 기사이며 이제는 루메른 소속이다. 하지만 제르딩거의 기사 수련생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넵!”

“그래. 입학 준비는 제르딩거에서 할 테니 너희는 수련에 매진해라.”

“알겠습니다!”

절도 있게 대답한 슬레이어 기사단을 보며 지스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관 건물을 나온 다섯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환호성을 내질렀다.

“만세!”

“루메른에 입학했다!”

“우리가 영웅 사관 학생이라니!”

마르티나와 캐린은 서로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고 오스틴과 줄란, 발레리는 어깨 동무를 하며 뛰었다.

꿈만 같은 일이었다.

“흐아……! 레오 도련님의 기사가 되길 정말 잘했어! 꿈만 같아!”

캐린이 풀어진 얼굴로 말하자 줄란이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알았겠어? 우리가 루메른 학생이 될 거란 걸!”

다섯 사람이 잔뜩 들떠 있을 때였다.

“루메른에 입학했다고?”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 차렷 자세를 취했다.

“셀리아 아가씨. 안녕하세요!”

마르티나가 대표로 인사했다.

“축하해, 이제부터 내 후배네?”

빙그레 웃는 셀리아를 보며 다섯은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지금은 레오의 기사단이 되었지만 어려서부터 셀리아와 함께 수련생 생활을 한 만큼 셀리아에 대한 선망도 컸다.

셀리아 역시 함께 검술 수련을 했던 다섯 사람이 루메른 학생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잘됐네. 지금부터 나랑 어디 같이 좀 가자.”

“예. 어디로 가시나요?”

마르티나의 물음에 셀리아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짤막하게 대답했다.

“황궁 마도서고.”

***

로드렌의 황궁 마도서고.

로드렌의 마도 공학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황궁 마도서고에서 보유한 마도서와 마법 연구 자료는 마탑 마서고에 비견 될 정도로 마법사에게 있어 최고의 장소였다.

그런 만큼 최중심부는 황궁 소속의 마법사가 아니라면 출입할 수 없었지만, 주요 문서가 보관되지 않은 곳이라면 로드렌 소속의 마법사와 외부 손님에게는 상시 개방되는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이들이 있었다.

“아바드와 첼시로군. 방학 숙제 중인가? 그런데 저 애는 누구지? 학교 친구인가?”

“허, 제국의 주요 인사에 대한 얼굴 정도는 파악해둬야지! 레오 플로브라고! 레오 플로브.”

“뭐? 레오 플로브?”

마법사들이 르왈린 남매와 함께 있는 레오를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로드렌 제국에서 레오 플로브는 이미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황궁 마도서고에 있는 것이 로드렌 마법사들에게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레오의 외가는 제르딩거.

레오는 기사이기 이전에 마법사이기도 하지만 기사 영웅 명가로서 명성 높은 제르딩거의 사람이 황궁 마도서고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건 역시나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슥- 슥-

숙제를 하던 첼시가 펜을 내려놓고 ‘끄응-!’ 기지개를 켰다.

“다 끝났다!”

숙제를 끝마친 첼시가 상쾌한 미소를 지었다.

아바드 역시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책을 덮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이렇게 셋이서 모여서 하면 효율이 좋으니까요.”

활짝 웃은 첼시는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레오 오빠는 마법학과 숙제뿐만 아니라 기사학과와 소환학 숙제까지 있을 텐데.’

새삼 그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아바드님!”

또래로 보이는 소녀 무리가 마도서를 들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녀들을 교복으로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황실 마도서고 견습 마법사들.’

황실 마도서고를 총괄하는 건 로드렌 가문.

그리고 황실 마도서고는 제국의 유망한 마법사들을 육성하는 기관이기도 했다.

아바드와 첼시도 루메른 입학 전에는 이곳에서 공부했다.

황실 마도서고 견습 마법사들은 제르딩거 수련생들과 비슷한 위치의 이들이었다.

아바드 주변으로 모여든 소녀들이 얼굴을 붉히며 마법 술식을 들이밀었다.

“이거 모르겠는데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아바드의 숙제가 끝나기를 기다렸는지 주변으로 많은 견습 마법사들이 몰려들었다.

‘마법 이전에 다른 꿍꿍이들이 있겠지만.’

첼시가 턱을 괴었다.

어려서부터 아바드와 찰싹 붙어 다녔기에 첼시는 아바드 주변에는 여자가 많다는 걸 잘 알았다.

어쩔 수 없다.

동생인 자신이 봐도 잘생긴 외모, 거기에 친절한 성격과 르왈린의 후계자라는 지위까지.

‘우리 오라버니가 1등 신랑감이긴 하지!’

음! 음! 팔짱을 낀 첼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라버니, 레오 오빠. 음료수 마실래?”

이곳에는 개인 공부나 연구하는 마법사들을 위해 집중력을 키워주는 음료와 차가 항상 갖춰져 있었다.

“첼시 아가씨. 제가 가져올게요.”

아바드에게 질문을 하던 견습 마법사 한 명이 당황하며 말하자 첼시가 빙긋 웃었다.

“됐어. 너희는 묻고 싶은 걸 오라버니에게 물어.”

첼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음료수를 가지러 갔다.

‘숙제도 다 끝냈으니까 제도에 놀러 갈까? 여름 방학 때는 내가 플로브 가문에서 신세를 졌으니 이번에는 내가 안내를 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네.’

첼시가 파악하기로 레오는 제르딩거 내에서 해야 할 바쁜 일과 입학시험을 모두 마무리 지은 상태.

이제는 남은 방학을 여유롭게 보내는 일만 남았다.

‘내년부터는 심상치 않을 테니까.’

첼시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영웅 후보생인 만큼 대륙의 정세에 관해서는 꿰뚫고 있다.

내년부터 있을 2학년 학과 생활이 만만치 않을 거란 것도 예상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아조니아 학년 대표는 입학시험도 끝났는데 왜 아직도 로렌드에 있는 거야?’

아르를 떠올리며 첼시가 뚱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레오 플로브님이시죠?”

“응 그런데?”

“저기 마법 이론에 대해 매우 뛰어난 격식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레오님과 마법 이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은데요.”

황궁 마도서고 견습 마법사로 보이는 소녀가 청초한 미소를 지으며 레오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쟨 작년까지 오라버니에게 꼬리치던 애잖아. 노골적으로 들이대다가 소문 안 좋게 났는데 이제는 레오 오빠에게 꼬리치겠다?’

첼시가 쌍심지를 치켜들었다.

빠드득-!

첼시가 든 쟁반에서 심상치 않은 소리가 날 때였다.

“우리 귀여운 조카님께서는 왜 또 화가 나셨을까?”

방긋- 봄바람 같은 목소리에 첼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보았다.

“고모님.”

첼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황궁 마도서고의 총괄 책임자.

체르나 르왈린이 서 있었다.

체르나는 방긋 웃으며 첼시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저 애가 레오 플로브니?”

“네.”

“흐응?”

콧소리를 내며 레오를 빤히 바라보던 체르나가 환하게 웃었다.

“확실히 레이나를 많이 닮았네.”

“고모님도 레이나님을 아시나요?”

“당연히 알지. 레이나는 유명했으니까.”

어깨를 으쓱거린 체르나가 또각- 또각- 레오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등장에 견습 마법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서고는 고개를 숙였다.

“고모님.”

“응. 아바드. 오랜만이구나.”

체르나는 환하게 웃으며 조카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리고 레오 앞에 섰다.

“황궁 마도서고에 온 걸 환영한다, 레오 플로브. 내 이름은 체르나 르왈린. 이곳의 총책임자란다.”

“레오 플로브입니다.”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레오를 보며 볼에 손을 바친 체르나가 봄바람 같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나, 예의 바르기도 해라. 얘. 난 네가 정말 반갑단다. 네 삼촌인 제르딩거의 부가주에게 널 몇 번이나 만나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 얌생이가 얄밉게 몇 번이나 거절했는지 아니? 후후훗.”

과연 르왈린의 혈통답게 대놓고 제르딩거의 부가주인 지스를 까는 체르나였다.

‘레오. 잘 들어라. 황궁에서 그 악랄한 마녀를 본다면 말도 섞지 말거라.’

물론 황궁으로 오기 전 지스도 체르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황궁 마도서고 총괄자이기 이전에 현재 르왈린의 부가주이기도 했다.

생글생글 미소 짓던 체르나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런데 널 보니 좀 더 일찍 보는 게 좋았을 법했구나. 르왈린이나 제르딩거의 관계를 신경 쓰지 말고 정식으로 초대할 걸 그랬어.”

“좋게 봐주시니 영광이네요.”

레오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담소나 나누도록 할까?”

그 말에 첼시가 레오 옆에 섰다.

그런 첼시를 보며 체르나가 웃었다.

“첼시. 이번에는 레오와 따로 이야기하고 싶구나.”

“네?”

눈을 동그랗게 뜬 첼시가 눈을 이리저리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왜 고모님이 따로 레오 오빠를 보자고 하신 거지?’

의문을 느끼면서 체르나와 함께 떠나는 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레오는 체르나의 뒤를 걸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림자 쪽에 있는 사람인가?’

체르나 르왈린.

르왈린 가문의 부가주이자 황궁 마도서고의 총괄 책임자인 여자.

언뜻 보기에는 화려한 앞에서 살아가는 여자였다.

하지만 레오에게는 느낄 수 있었다.

체르나가 풍기고 있는 진한 혈향을 말이다.

빛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대영웅 시절.

배신자들을 처단하고 매장해 온 카일과 비슷했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체르나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첼시에게는 나와 관련되어서 말을 안 했으면 좋겠구나. 언젠가 그 아이도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뭐가요?”

“시치미 떼기는.”

체르나는 방긋거리는 웃음을 거두지 않고 말했다.

“대신 나도 어디 가서 말 안 할게. 네가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 같아 보이는 걸 말이야.”

그림자가 드리워진 복도에서 걸음을 멈춘 체르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바드와 첼시와 같은 연청색 눈동자가 섬뜩한 빛을 뿜고 있었다.

“고작 열다섯 살인데도 말이야.”

뛰어난 사냥꾼인 체르나는 레오에게서 자신과 비슷한 어둠을 보았다.

이쪽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이만이 알 수 있는 것.

‘나보다도 더 깊은 것 같지만.’

레오에게 섬뜩함을 느끼며 체르나는 미소 지었다.

“너를 따로 보자고 한 건 이번에 제국에 온 손님이 너와 관련된 손님이기도 하기 때문이야.”

그 말에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집무실에 도착한 체르나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이들을 보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와, 검은 토끼.”

아르가 콧방귀를 흥-! 하고 불며 레오를 환영했다.

그녀의 옆에는 덩치가 큰 수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역시 아조니아의 학생으로 보였다.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눈을 뜨고 레오를 바라보았다.

늑대 수인인 그는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나서 반갑군, 루메른의 학생회장.”

스윽-

그가 몸을 일으켰다.

레오보다 머리가 두 개는 커서 머리를 젖히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내 이름은 도르베만 칼레스. 이번에 아조니아의 학생회장이 되었지.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다.”

“만나서 반가워요, 레오 플로브라고 합니다.”

“후.”

도르베만은 레오를 내려다보며 불만스럽게 숨을 내뱉었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몸이군. 하르크도 그렇고 왜 루메른의 전사들은 몸들이 하나같이 그렇게 빈약한 거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개탄하는 도르베만이 말했다.

“레오여. 네가 아조니아에 왔다면 더 강인한 몸을 가질 수 있…….”

“네. 네. 남의 학교 학생을 꼬시는 건 다른 곳에서 이야기하는 거로 하고.”

체르나가 빙긋 웃었다.

“본론으로 들어갈까?”

저벅- 저벅-

체르나가 마법으로 봉인된 상자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얼마 전 로드렌은 영웅 사냥꾼과 전투가 있었지. 그리고 그곳에서 전리품 하나를 얻었어.”

끼익-

마법의 봉인이 풀렸다.

그곳에는 부러진 쇳조각이 하나 있었다.

레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고작 이거 때문에 로드렌 제국은 우리를 초청한 겁니까?”

도르베만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르온님과 연관된 일이라고 듣고 왔는데…… 이 쇳조각은 대체 뭡니까?”

“브레이브.”

“……!”

도르베만과 아르가 고개를 돌려 레오를 보았다.

체르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한눈에 알아봤구나? 검의 조각일 뿐인데.”

체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 네 말 대로야. 이건 용자의 검, 브레이브의 조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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