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27화 (227/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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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품…… 일 리는 없겠군.’

레오는 브레이브의 조각을 바라보며 손을 꽉- 쥐었다.

브레이브.

용자 아르온의 애검이자 그가 사용했던 병장기 중 가장 유명한 물건이기도 했다.

“이게 브레이브란 말입니까?”

도르베만이 눈을 가늘게 떴다.

“브레이브는 절대 부러지지 않았다고 알려진 용자의 검인데 이 검은 부러졌군요.”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이라…….’

도르베만의 말을 듣고 레오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맞아요! 용기를 잃지 않는 한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이라고 들었어요!”

“음! 아르! 역시 용자의 후예다운 멋진 마음가짐이다!”

도르베만이 팔짱을 끼며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하더니 이내 말했다.

“그 빈약한 팔다리만 좀 더 강화하면 더없이 멋진 관록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전 그렇게 쓸데없이 우락부락한 근육은 필요 없는데요.”

“강인한 육체는 강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이다.”

“제 육체는 충분히 강하고 아름다운데요!!”

아르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근육 뇌들의 대화로군.’

권유하는 늑대와 단호하게 대답하는 고양이를 보며 레오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절대 부러지지 않는 검은 없어. 한계에 다다르면 어떤 검이든 부러지게 되어 있지.”

레오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물며 브레이브가 정말로 부러지지 않았다면 진품이 남아 있었을 테지.”

“흠. 그 말도 일리가 있지만 용자 아르온님을 상징하는 검이 부러졌다는 것을 생각하기 힘들군.”

도르베만이 턱을 쓰다듬었다.

“애초에 대영웅들의 마지막 원정에 관한 행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 말이야.”

대영웅들에 관한 행적은 비교적 자세하게 남아 있다.

카일의 이야기는 역사의 저편에서 타르타로스에 의해 대부분 사장 되었다.

하지만 카일의 이름만 제외되었을 뿐.

카일이 활약했던 굵직한 전투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하지만 마지막 원정에 관한 건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때가 기록된 히어로 레코드에도 거의 남아 있지 않지.’

그렇기에 대영웅들이 에레보스를 어떻게 쓰러트렸는지는 종족마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달랐다.

“아르. 그리고 레오여. 너희는 아르온님과 실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눠보지 않았나?”

‘오래 이야기를 나누다 못해 오랫동안 함께 싸웠지.’

레오는 속으로 쓰게 웃었고 아르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제가 만났던 아르온님은 브레이브를 가지기 전이었지만요.”

“그래. 아직 토벌대에 합류하기 전의 아르온님이라고 했지. 그 모습은 어땠지?”

아르가 본 아르온은 피 칠갑을 한 자신을 보고 무서워서 질겁하며 다가오지 말라고 외치던 소심한 소년이었다.

도르베만의 물음에 아르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주먹을 꾹-! 쥐며 소리쳤다.

“아르온님은 패기넘치고 늠름하며 악에 굴복하지 않는 당당하고 멋진 사나이였습니다!”

“음! 역시!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습 그대로시군! 젊었을 때부터 남다르셨어!”

레오는 머리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아무래도 이 바보는 아르온에 관한 기억을 굉장히 왜곡시켜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수인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단순하기 짝이 없군.’

아조니아의 학생들을 보며 관자놀이를 눌린 레오가 말했다.

“어쨌든 이 브레이브의 조각은 어디서 난 거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용자의 새로운 히어로 레코드가 발견된 건가요?”

레오의 물음에 아르가 귀를 쫑긋거렸다.

도르베만 역시 눈을 부릅떴다.

아직 이 검의 조각이 브레이브라는 건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이 조각이 브레이브의 조각이고 히어로 레코드와 관련이 깊다면 로드렌 제국에서 아조니아를 대표하는 학생 두 사람을 이곳까지 초청한 건 이해가 되었다.

“새로운 히어로 레코드가 발견된 건 아니야. 하지만 브레이브와 관련된 의문점이 생겨 자문을 구하기 위해 아조니아에서 두 사람을 초청한 거야.”

체르나의 말에 도르베만이 팔짱을 꼈다.

“아조니아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왜 레오 플로브가 이곳에 있는 거죠?”

“검은 토끼! 혹시 우리 학교로 전학 와?”

“아니.”

“너를 부른 건 이번 일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체르나가 레오와 아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레오 플로브, 아르 튠. 너희는 지난여름 용자의 세계를 공략했어. 그 보상으로 아르 튠. 너는 상시로 수화를 할 수 있는 힘을 손에 넣었다. 맞지?”

체르나의 말에 아르가 꼬리를 바짝 세웠다.

도르베만은 놀란 눈으로 체르나를 바라보았다.

그 사실은 아조니아 내에서도 극비로 취급받는 정보다.

학생 중에서 이 정보를 알고 있는 이는 이미 졸업한 전임 학생회장과 이번에 취임한 도르베만 뿐.

이 정보는 교관들에게도 아는 이가 극소수일 정도로 매우 엄중히 숨겨진 정보다

상시 수화는 용자 아르온만의 전유물로 알려진 만큼 외부에 그 사실이 알려지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에 아조니아 측에서는 일단 그 사실을 숨겼다.

그걸 외부인인 체르나가 알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랄 것 없어. 아조니아 측에서 알려준 사실이니까.”

체르나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 브레이브는 ‘히어로 헌터’를 쓰러트리고 얻은 전리품이다.”

히어로 헌터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도르베만의 얼굴에 살기가 깃들었다.

히어로 헌터.

타르타로스의 세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세력이다.

영웅을 사냥하는 자들.

이들은 마족이 아니다.

어둠에 물든 배신자 집단.

한때 영웅을 목표로 했으나 타락하여 검 끝을 영웅들에게 돌린 이들이었다.

‘뭐, 과거에도 그런 놈들은 있었으니까.’

팔짱을 낀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브레이브지만 진품이 아니야. 영웅의 세계 공략 보상에서 얻은 가품이지.”

체르나의 말에 도르베만의 얼굴이 굳었다.

아르는 흠칫- 어깨를 떨며 물었다.

“그 말은…… 히어로 헌터들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아르온님의 세계를 공략했다는 말인가요?”

브레이브의 외관은 이미 유명하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명검인 데다가 히어로 레코드를 통해 그 위력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아르온의 손에서 황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브레이브는 용자의 상징이자 영웅들의 용기를 상징하는 검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략 보상이 브레이브였던 적은 없었다.

“그래, 중요한 건 지금부터야.”

체르나가 깊게 심호흡했다.

“검을 사용한 히어로 헌터는 수인이었어. 그리고 보름달이 뜨지 않은 날 수화를 했지.”

“……!”

그 말에 모든 이들이 눈을 부릅떴다.

“아르 튠. 이 세상에 너 말고 자기가 원하는 때에 수화를 할 수 있는 수인이 있다는 거야.”

체르나의 말에 레오는 눈을 가늘게 떴다.

‘상시 수화.’

아르온의 호흡을 익힌 수인이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

하지만 5000년 전에는 그런 수인은 없었다.

아르온이 죽고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도 마찬가지다.

아르도 수화 능력을 손에 넣은 건 히어로 레코드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레오는 브레이브의 조각을 자세히 살폈다.

희미하지만 아르온의 오러가 느껴졌다.

“그 히어로 헌터가 수화를 할 수 있었던 건…… 브레이브의 힘입니까?”

“바로 그거야.”

레오의 물음에 체르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놈은 수화를 이용해 폭주했어. 하지만 브레이브가 망가지자마자 수화가 풀렸지.”

체르나가 브레이브 조각을 톡톡 건드렸다.

“아르 튠. 네 수화는 오러의 특수한 흐름을 통해 수인의 피를 각성시킨다고 하더구나. 이 브레이브 조각에 그런 힘이 있는지 조사를 해줬으면 해. 그리고 레오.”

체르나가 레오를 보았다.

“너 역시 아르 튠과 같은 공략 보상을 얻었다고 들었다. 비록 넌 수인이 아니라 수화는 할 수 없지만, 이 검에 효능에 관한 비밀을 알아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자리를 마련했다.”

“만져 봐도 되나요?

“물론.”

체르나의 허락이 떨어지자 레오는 손을 뻗어 브레이브의 조각을 쥐었다.

검에 희미하게 잠들어 있던 아르온의 오러가 반응했다.

‘파편 조각이 이만한 힘을 품고 있다면…… 완전한 상태였으면 아르온의 오러 그 자체를 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

레오는 브레이브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드웨노가 만들어낸 최강의 검 중 하나.

비록 아르온의 최후 전투에서 부러졌지만, 그 위력과 튼튼함.

그리고 그 효과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브레이브에 수인을 수화시키는 능력은 없었어. 히어로 레코드의 공략 보상이 되면서 없던 능력이 추가된 건가?’

가끔 그런 경우가 있었다.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해서 얻을 수 있는 세 개의 보상.

히어로 스킬, 히어로 어빌리티, 히어로 웨폰.

그 중 히어로 웨폰을 공략 보상으로 얻을 때 기존에 무구에 깃들어있지 않던 능력이 깃들 때가 있다.

“검은 토끼, 나도 만지게 해 줘.”

레오 옆으로 온 아르가 손을 뻗어 브레이브 조각에 손을 댔다.

그 순간.

화악-!

“우냑?”

황금빛이 번쩍임과 동시에 아르가 비명을 내질렀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아르를 보았다.

아르의 손에 날카로운 손톱이 나 있었다.

눈은 고양이 눈으로 변해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나워진 인상.

‘수화?’

아르가 다급히 브레이브 조각에서 손을 뗐다.

수화가 풀린 아르는 놀란 듯 자기 손과 브레이브 조각을 번갈아 보았다.

도르베만이 바닥에 떨어진 브레이브 조각을 조심스럽게 주웠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왜 아르에게만 반응한 거지?”

의아한 표정을 짓는 도르베만을 보며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후에 몇 시간 동안 브레이브 조각에 관해 조사가 계속되었다.

결국 얻게 된 결론은 하나.

브레이브 조각이 아르에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얻을 수 있는 자료가 제한적이군.”

체르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며칠만 더 제국에 머물러 주면 안 될까?”

“아르온님과 관련된 이야기라면 아조니아의 학생으로 얼마든지 협력하겠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도르베만을 보며 체르나가 고맙다는 미소를 지었다.

“아르, 숙소로 돌아가자.”

“넵.”

아르가 척-! 하니 경례를 하며 도르베만을 따르려 했다.

“우니아아아악?”

비명을 내지르며 벌쩍 뛰었다.

“넌 나 좀 보자.”

레오가 아르의 꼬리를 잡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숙녀의 꼬리를 잡아당기다니!”

아르가 하악질을 하며 레오에게 달려들었다.

레오는 그런 아르의 얼굴을 붙잡고 저지하며 도르베만에게 말했다.

“아르와 잠깐 이야기해도 될까요?”

“전학에 관한 상담은 나와 해도 괜찮다만?”

“그런 이야기 아닌데요.”

“흐음.”

거대한 근육을 꿈틀거리던 도르베만이 레오와 아르를 번갈아 보더니 덩치에 걸맞지 않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덧 날은 해가 저물어 있었다.

“좋을 때군.”

손을 흔들어주고 떠난 도르베만.

아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꼬리를 살랑거렸다.

복도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아르가 물었다.

“뭐야? 검은 토끼. 이 시간에 단둘이서 뭘 하려고?”

“너.”

레오가 혀를 찼다.

“아직도 수화 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지?”

“응?”

“확인 좀 하자. 수화를 얼마나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는지.”

***

“여기인 모양이군.”

야심한 밤.

세드젠은 낮게 혀를 차며 눈앞의 오두막을 보았다.

그런 세드젠을 향해 루메른 교수 한 사람이 말했다.

“세드젠 교수님. 외부에서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걱정스럽게 묻는 후배 교수를 보며 세드젠이 말했다.

“외부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네. 이사장의 허락이 중요할 뿐.”

덤덤히 말한 세드젠은 오두막으로 다가갔다.

똑- 똑-

“리이나. 세드젠일세. 문을 열게.”

세드젠의 말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오두막 창문에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부재중은 아니었다.

루메른 교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세드젠은 혀를 차며 문을 열었다.

벌컥-! 텅그렁- 대구르르르-

문이 열자마자 빈 술병이 굴러갔다.

지독한 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세드젠은 깊은 한숨을 쉬며 거실 통나무 책상 한가운데 술병을 쥐고 엎드려 있는 여인이 있었다.

“리이나. 일어나게.”

“세드젠?”

리이나라 불린 여인은 아름다운 외모의 젊은 여성이었다.

은색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동자.

하지만 그녀는 세드젠과 동 세대의 인물이었다.

“나에게는 무슨 볼일이야?”

늘어지라고 하품을 하며 술 냄새를 풀풀 풍기는 리이나를 보며 세드젠이 품에서 임명장을 꺼냈다.

“읽어 보게.”

리이나는 술이 덜 깬 얼굴로 임명장을 읽었다.

“교장? 나를?”

픽- 웃은 그녀는 임명장을 고이 접어 봉투에 넣었다.

“이봐, 세드젠. 난 말이야 너나 할린드처럼 유명한 교수도 아니야. 그렇다고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지도 않았으며 더더욱 세간에 유명한 사람도 아니지.”

심드렁한 미소를 지은 리이나가 퐁- 술병을 따더니 벌컥- 벌컥 마셨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배신자들 목을 따는 것 외에는 없어.”

리이나 플릭스.

세드젠과 할린드와 같은 해에 루메른을 졸업한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영웅 후보생에게 주어진 환한 빛이 아닌 어둠을 선택했다.

그림자 속에서 세계를 위협하는 배신자들, 히어로 헌터들을 사냥해온 사냥꾼이었다.

“그런 자네니까 더 필요해.”

세드젠이 빙긋 웃었다.

“지금 루메른에는 학생을 지켜줄 강한 교장이 필요하거든.”

그 말에 리이나가 한숨을 쉬고 머리를 벅벅 긁었다.

“좋아. 대신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날 교장으로 추천할 마음이 있었다는 건 그래도 된다는 뜻이겠지?”

“좋을 대로.”

빙긋 웃는 세드젠을 보며 리이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옛날부터 느낀 거지만. 가끔 이 녀석은 할린드 보다 더 문제가 있는 것 같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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