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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아가 레오의 기사단을 데리고 황궁 마도서고에 들어선 건 저녁 무렵이었다.
황궁 마도서고의 사람들은 셀리아의 방문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셀리아야 워낙 유명 인사이다 보니 제국 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그녀가 황궁 마도서고에 거의 입장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 마법사들이었기에 그녀의 등장에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셀리아를 수행하는 슬레이어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제르딩거의 수련생들?”
“이번에 루메른에 입학했다는 수련생들인가?”
“뭐야? 자랑하러 온 거야?”
여기저기서 불만스러운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 반응에 슬레이어 기사단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로드렌 제국은 제르딩거와 르왈린뿐만 아니라 기사와 마법사들 역시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
이번에 제르딩거 수련생 중 루메른 신입생이 다섯 명이나 나온 덕분에 로드렌 제국 소속 기사들 전체가 축제 분위기였다.
반면 마법사들은 그런 기사들을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
“셀리아 아가씨, 여기 있어도 될까요?”
마르티나가 조심스럽게 묻자 셀리아가 피식 웃으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응. 우린 레오를 만나러 왔을 뿐이야. 주눅 들 거 없어. 오히려 이 시선을 즐기면 돼.”
‘셀리아 아가씨도 대단해.’
이렇게 눈총이 따가운데 즐기라니.
마르티나가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였다.
“여기가 어디라고 뻔뻔하게 찾아온 거야?”
첼시가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런 첼시를 보며 슬레이어 기사단이 크게 긴장했다.
‘첼시 르왈린!’
제르딩거 가문 내에서도 소문이 무성한 거물이었다.
“레오를 데리러 왔는데.”
“레오 오빠는 고모님이랑 이야기 중이셔.”
딱 잘라 대답한 첼시가 힐끗- 슬레이어 기사단을 보았다.
“이번에 루메른에 입학했다는 레오 오빠의 기사단이 걔네들이야?”
“맞아.”
“그렇다면 앞으로 자주 보겠군.”
첼시의 뒤에서 아바드가 걸어왔다.
‘아바드 르왈린까지!’
잇따라 거물들이 등장하자 슬레이어 기사단 전체는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바로 루메른 황금 세대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선배들이었다.
여러 시선이 교차할 때였다.
“별일이군요. 황궁 마도서고에 세 사람이 함께 있고 말이에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찬란한 황금색 머리카락을 가진 소녀가 좌우에 황실 기사와 마법사를 대동하고 걸어오고 있었다.
황궁 마도서고를 방문했던 모든 마법사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슬레이어 기사단 역시 무릎을 꿇고 기사의 예를 표했다.
셀리아와 아바드, 첼시는 무릎은 꿇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이며 신하의 예를 표했다.
로드렌의 차기 황제인 샤샤의 등장이었다.
“오셨습니까, 황녀 전하.”
여기 있는 이들 중 대외적인 지위가 가장 높은 아바드가 대표로 황녀를 맞이했다.
셀리아, 아바드, 첼시, 샤샤는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소꿉친구이며 사이가 돈독하다.
사석에서는 말을 편하게 하지만 대외적인 자리에서는 말을 높였다.
손을 뻗어 샤샤의 손에 입을 맞춘 아바드를 보며 샤샤가 웃었다.
“아바드는 언제 봐도 기품이 넘치는군요.”
“과찬이십니다.”
“웩. 느끼해.”
샤샤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바드는 능글맞게 대답했고 셀리아는 작게 혀를 빼물었다.
첼시는 도끼 눈을 뜨고 셀리아를 노려보았다.
차차 제국을 이끌어갈 미래의 권력자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십대 중반의 소년 소녀였다.
그렇게 장난을 칠 때였다.
“그나저나 샤샤 전하야말로 황궁 마도서까지는 어쩐 일이신가요?”
“레오 플로브를 만나러 왔어요. 제 루메른 입학 축하 파티에 초대하려고요.”
“그것 때문에 직접 행차하셨습니까? 사람을 시켜도 될 일인 것을…….”
“앞으로 여러분은 물론이고 피닉스 소환사인 레오 플로브에게 학교생활에 도움을 많이 받을 테니까요.”
수줍게 미소 짓던 샤샤가 물었다.
“그래서 레오 플로브는 어디에 있나요?”
“지금 본가의 부가주와 면담 중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잠시 기다리기로 할까요?”
황녀의 등장에 황궁 마도서고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레오의 기사들은 긴장하며 셀리아 옆에 도열하려 할 때였다.
“여러분도 이번에 루메른에 입학하죠?”
“예, 그렇습니다. 황녀 전하.”
마르티나가 대표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런 마르티나를 보며 샤샤가 환하게 웃었다.
“동급생으로 잘 부탁해요. 여러분도 꼭 파티에 참석해주세요.”
“영광입니다. 전하.”
마르티나가 예를 차렸다.
제르딩거 수련생으로서 예법 교육 역시 제대로 배워두었기에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때였다.
샤샤의 수행원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와 샤샤에게 작게 말했다.
보고를 들은 샤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대련을요? 아조니아의 대표랑?”
***
“훗, 검은 토끼. 드디어 나랑 대련할 마음이 들었구나.”
아르는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넓은 공터 한가운데 섰다.
그런 아르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조금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아르온의 수화 능력을 얼마만큼 잘 다루는지 보려고 대련하는 거라고.”
“당연히!”
아르가 가슴을 활짝 폈다.
“완벽하게 다루고 있지!”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레오가 목검을 들어 올렸다.
그런 레오를 보며 아르는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듯 자세를 낮췄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고양이처럼 양손을 바닥에 짚고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
‘검은 토끼랑 이렇게 대련하는 건 처음인가?’
아르가 눈을 반짝였다.
‘일전에 아조니아 입학시험에서만 봤던 검은 토끼의 실력은 대단했지.’
이후에도 레오는 루메른 최연소 학생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입학시험을 치를 때 역시 굉장했어.’
귀가 쫑긋거리고 꼬리가 살랑거렸다.
수인 특유의 전투광 기질이 어김없이 발휘된 아르가 무릎을 굽혔다.
그런 아르를 보며 레오가 발걸음을 옮겼다.
저벅-! 파앗-!
그게 신호가 되어 아르가 돌격했다.
자리에서 사라지듯 모습을 감춘 아르는 엄청난 속도로 레오와 거리를 좁혔다.
수인 특유의 우월한 신체 능력과 오러의 힘이 합쳐졌다.
화악-!
아르가 손을 휘둘렀다.
그런 아르의 주먹을 향해 레오가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둘렀다.
쩡-!
마치 무쇠가 격돌하는 소리가 울렸다.
카가가가각-!
레오의 검을 붙잡은 아르의 손에서 불똥이 튀었다.
콱-!
“……!”
레오가 자신을 밀어내자 아르의 눈이 크게 뜨였다.
오러의 힘에서 뒤처진 게 아니다.
‘순수한 완력에서 진 거야.’
아르가 콧바람을 불었다.
‘굉장해!’
종족의 특성상 인간은 수인 보다 육체적인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레오는 그러한 종족적 특성을 뒤집은 것이다.
‘흥분!’
아르의 눈이 반짝였다.
힘에서 밀렸지만 상관없다.
아조니아 동급생 중에서도 아르보다 힘이 강한 학생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를 아조니아 학년 대표로 만들어준 건 바로 유연성과 속도였다.
파앗-!
자리에서 점프한 아르의 발뒤꿈치가 레오의 팔을 노렸다.
콰악-!
휘청-!
아르의 공격을 막아낸 레오의 무릎이 꺾였다.
레오가 반격을 하려고 하자 아르의 반대쪽 손의 손톱이 날카롭게 빛났다.
화악-!
아르가 손을 휘두르자 레오가 남은 손으로 공격을 쳐냈다.
휘리릭 타앗-!
레오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아르가 공중제비를 돌며 바닥에 착지했다.
“얍!”
그리고 공격 자세를 취했다.
레오는 뺨에서 느껴지는 따끔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르는 손끝에 묻은 피를 날름거리며 고양이 미소를 지었다.
“흐음.”
레오가 웃었다.
“굉장하군.”
“검은 토끼야말로 대단해. 아직 실력 발휘도 안 했으면서 그 정도라니.”
“그건 서로 마찬가지 아닌가.”
화르륵-
레오의 몸에서 불꽃의 오러가 피어올랐다.
그런 레오를 보며 아르가 주먹을 꾹 쥐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제대로 할 생각이구나. 그렇다면 나도…….’
화악-
아르의 몸에서 황금색 오러가 일렁였다.
그걸 본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너무도 익숙한 오러다.
불가능한 전투에서 최전봉에 섰던 친구.
‘아르온의 오러.’
그에 따라 아르의 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눈은 고양이처럼 날카로워졌고 손톱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기본적으로 수화라고 부르지만 크게 외견의 변화는 없다.
기본에 있던 짐승의 특성이 더욱 강화되고 육체적 능력이 압도적으로 상승한다.
“그르르르-!”
아르의 목에서 고양이가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온다.’
레오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
콱-!
아르가 딛고 있던 땅이 움푹- 파였다.
레오의 초월적인 동체시력이 빠르게 아르의 움직임을 쫓았다.
하지만 육체가 반응하기 전에 아르의 발차기가 레오의 어깨를 걷어찼다.
콰앙-!
레오가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이곳은 황궁 마도서고 옆에 붙은 마법 실험장.
그렇기 때문에 넓었고 시간이 늦었기에 이용하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 소리가 들렸다면 사람이 올 수도 있지.’
투두둑-!
레오는 벽을 빠져나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꽈앙-! 쩌저저적! 콰가가가가강-!
레오가 있던 자리에 아르의 주먹이 박혔다.
벽에 금이 가더니 무너져 내렸다.
‘확실히 괴물이군.’
레오가 혀를 내둘렀다.
압도적인 신체 능력.
‘아르온의 수화 능력이 확실해.’
레오는 손톱을 세우고 이를 드러내며 광전사처럼 달려드는 아르를 보며 눈을 감았다.
‘제대로 사용은 못 하고 있지만.’
스윽-
레오의 눈이 떠졌다.
순간 흠칫한 아르가 다급히 레오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털을 곤두세우고 레오를 경계했다.
아르가 식은땀을 흘렸다.
‘순간 검은 토끼한테서…… 아르온님의 그림자가 엿보였어.’
영웅의 세계에서 직접 본 아르온의 모습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르가 붕붕- 고개를 저었다.
‘착각이야, 착각.’
기세에 압도당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가 더욱 강력한 오러를 내뿜었다.
아르의 오러에 황금색 기운이 어렸다.
‘다음 공격으로 결판을 내겠어!’
싸움은 자신이 압도하고 있다.
‘마법이나 소환술을 쓰기 전에 어서 쓰러트려야 해!’
화악-!
아르가 레오와의 거리를 좁혔다.
순간-
우두둑-!
레오의 손에 힘줄이 솟아났다.
화악-!
아르가 레오의 지척에 다다른 순간.
덥석-!
“냐학?”
레오의 손바닥이 아르의 안면을 덮쳤다.
콰앙-!
일순간 레오가 아르를 바닥에 꽂아버렸다.
“미안.”
달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에 레오는 멍한 표정을 짓는 아르에게 사과했다.
“나도 이번이 처음 써본 능력이라서 말이야. 힘 조절이 안 되네.”
일격에 아르를 제압한 레오는 몸을 일으키고 엉망이 된 자신의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거 잘못 쓰면 자멸하겠는데.”
팔이 폭발적인 오러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퉁퉁 부어 있었다.
한숨을 쉬는 레오를 아르가 멍하니 불렀다.
“검은 토끼.”
“왜?”
“토끼가 아니라 늑대였어?”
아르의 눈에 들어 온 건 레오의 빛나고 있는 황금색 오른쪽 눈동자였다.
마치 수화한 늑대 수인의 눈동자를 연상시켰다.
그리고 아르는 자신이 아는 어떤 수인의 눈과 매우 닮았다고 생각했다.
‘아르온님.’
멍한 표정을 짓는 아르를 보며 레오가 피식 웃었다.
“늑대는 개뿔. 인간이야. 그냥 친구 녀석 흉내를 내봤을 뿐이야. 녀석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레오가 일전에 아르온의 세계에서 얻은 공략 보상은 세 개다.
엘시. 아르온의 호흡, 그리고 아곤의 책.
아곤의 책은 아르온이 쓰는 오러 심법의 원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바탕으로 레오는 오랜 연구 끝에 아르온의 세계에서 얻은 아르온의 각성 능력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전생처럼 녀석의 힘을 쓸 수 있게 되었지. 일부분뿐인 데다가 이 꼴이지만.’
레오는 너덜너덜해진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녀석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지.’
레오의 눈이 원래 눈동자 색으로 돌아갔다.
그러고는 말했다.
“아무래도 전학은 내가 가는 게 아니라 네가 와야 할 것 같은데?”
“응?”
“넌 용자의 수화 능력에 휘둘리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