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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식과 입학식이 끝난 다음 날.
2학년 마법 대강의실.
2학년 마법학과 학생들이 모여서 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마법 수업은 1학년 때와 같이 변함없이 이 멤버로 들을 수 있어서 좋네!”
칼이 쾌활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록 기숙사는 달라졌지만, 학과가 달라진 건 아니다.
학과 통합 수업 때는 이렇게 모여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칼의 말에 레오가 턱을 괴고 피식 웃었다.
“왜? 기숙사 생활 많이 힘들어?”
“들어봐! 레오! 살벌해 죽겠다니까!”
칼이 레오에게 하소연했다.
“기숙사 전체가 하나같이 프라이드가 강한 녀석들뿐이야! 아주 그냥 기숙사장들이랑 비슷한 성향의 애들만 모여 있다니까?”
제3 기숙사.
고귀하다는 뜻을 품은 노블은 전체적으로 명문가 출신의 학생들 위주로 모여 있었다.
당장에 기숙사 장들만 해도 영웅 명가의 후계자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프라이드가 강한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결국 에미오 자식도 우리 기숙사에 들어왔고.”
칼이 어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쨌든 권위 의식으로 똘똘 뭉친 자식들이 엄청 많아. 걸핏하면 평민이라고 무시하지를 않나. 쯧!”
“그런 곳이라면 힘들겠네.”
칼은 명문도 아니고 심지어 귀족도 아닌 평민이다.
게다가 성적 역시 최하위권.
노블 학생들 틈바구니에서 힘들 수밖에 없었다.
“뭐, 좋은 점도 있어.”
“뭔데?”
“다들 집안이 빵빵해서 주머니도 빵빵하다니까?”
칼이 흐흐흐- 웃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상업에 관심이 많은 칼 입장에서는 주머니 사정이 좋아 구매력이 좋은 노블 학생들이 참으로 고마웠다.
“글로리는 어때?”
제1 기숙사의 이름은 영광이라는 뜻의 글로리였다.
“벌써부터 동향 파악이야?”
클로에는 평소보다 얇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야. 그나저나 뭘 읽고 있냐?”
척 보기에도 교과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언제나처럼 달고 사는 마도서도 아니었다.
그녀는 드물게도 교양 서적을 읽고 있었다.
클로에가 제목을 보여주었다.
“그림자의 역사?”
“응. 갑자기 관심이 가서 말이야.”
“그림자라. 하긴 새 교장 선생님이 그림자라고 당당하게 선언했지?”
칼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림자.
정확한 명칭은 아니다.
영웅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 타르타로스와 맞서 싸우며 세계의 평화를 지켜온 자를 영웅이라 칭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밝은 세상에서 활약한 자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그리고 평화를 위한 길이 항상 대중들의 환호만을 받을 수 없다.
어두운 곳에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그림자 출신이 교장이라니. 이사회에서 용케 허락했군.”
“루메른 졸업생 중에도 그림자가 있잖아.”
“그래도. 다들 그림자 같은 건 별로 되고 싶지 않아 하니까.”
칼이 입맛을 다셨고 클로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림자 역시 영웅처럼 세계의 평화를 유지하는 필수적인 존재다.
특히나 세계를 배신하고 타르타로스에 붙은 배신자들 추격하고 처단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중요성은 영웅들 못지않다고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영웅의 목숨을 노리는 히어로 킬러들을 사냥하는 것 역시 그림자다.
그런데도 그림자에 대한 인식은 좋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만큼 더러운 일도 많이 하기 마련.
영웅의 목숨을 노리는 히어로 킬러를 사냥하는 자들이라 한들 순수하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목적인 자들.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림자를 두려워하며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
‘그림자라.’
레오는 턱을 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카일 시절.
레오 역시 그와 비슷한 일을 했다.
배신자들을 색출하고 처단했다.
동료들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카일이 그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이도 리시나스와 드웨노뿐.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도 했으니까.’
리시나스와 드웨노는 카일 혼자서 떠안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레오는 철저하게 자기 손에만 피를 묻혀왔다.
‘모두가 피로 더럽혀질 필요는 없었으니까.’
레오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지금 시대에는 그런 녀석들이 없었으면 했는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녀석은 이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레오의 머릿속으로 한 소녀를 떠올렸다.
비하르.
성운의 시조 루나의 제자라고 알려진 엘프 베르키아처럼 카일에게 검술을 배웠던 소녀였다.
대영웅들에게 목숨을 구원받았으며 카일이 배신자를 사냥하러 갈 때면 따라나서곤 했었다.
‘결국 비하르는 베르키아와는 다른 길을 걸었나?’
엘프 지도자로서 세계의 재건에 힘썼던 베르키아와 달리 비하르는 세계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히어로 레코드에도 이름이 남아 있지 않는 제자를 떠올리며 레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림자에 대해서 뭐 알아낸 거 있어?”
보통 영웅 후보생들은 그림자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학생들은 모두 영웅을 꿈꾸는 자들이다.
영웅과 대척점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림자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응. 가장 강력한 그림자들을 보유한 게 바로 동부 대륙의 패권국. 샨 제국이래.”
“샨 제국이라…….”
칼이 턱을 쓰다듬었다.
로드렌 제국과 더불어 인간 종족에 두 개밖에 없는 제국이다.
“샨 제국도 문제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맞아. 100년 전 샨 제국에서 파견한 그림자들에 의해 신생 영웅 왕국이던 트리한이 멸망했었던 사건 있잖아.”
“트리한 왕국. 결과적으로는 배신자가 맞긴 했잖아.”
“응. 그런데 아무런 증거도 없이 심증만으로 나라를 멸망시킨 게 문제였지.”
클로에의 말을 듣고 칼이 혀를 내둘렀다.
“제국쯤 되는 패권국이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건가?”
“샨 제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샨은 단순히 동부의 패권국이 아니다.
4000년이라는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이기도 했다.
“레오 네 생각은 어때?”
“심증만으로 나라를 멸망시킨 건 너무하긴 하네.”세 사람이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벌컥-
대강의실 문이 열리며 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옆에는 출석부를 든 안나가 뒤따르고 있었다.
뚜벅- 뚜벅- 뚜벅-
학생들의 시선이 모이는 가운데 강의실 책상에 선 렌이 학생들을 쭉 훑어보았다.
“반갑다, 여러분.”
렌이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미소를 지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자네들의 마법 이론 수업을 가르치게 된 렌이다.”
“렌 교수님~”
“반가워요!”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학생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젊은 데다가 능력 있는 교수인 렌은 마법학과 학생들에게 매우 인기가 많은 명교수였다.
학생들의 반응에 고개를 끄덕이던 렌이 안나에게 출석부를 건네받았다.
“지금부터 출석을 부르겠다. 클로에 뮐러.”
“네.”
“칼 토마스.”
“옙! 교수님!”
“레오 플로브.”
“예.”
‘레오 학생!’
렌이 입가를 가리고 감격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물론 다른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너와 함께 공부를 하기 위해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렌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안나는 천장을 바라보며 개탄했다.
사실 이번 2학년 학과 담당 교수 선정은 매우 치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루메른의 모든 전공 교수들이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황금 세대라 평가받는 2학년들을 가르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나는 렌이 어떤 짓을 해왔는지를 모두 보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2학년 전공 담당 교수의 자리를 손에 넣었다.
그 모든 것이 레오를 지도하기 위해서였다.
렌 입장에서는 감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렌 때문에 고생해야 했던 안나 입장에서는 울고 싶을 뿐이었다.
‘때려치울까?’
진지하게 사직서를 제출할 생각을 하는 가운데 출석을 모두 부른 렌이 말했다.
“수업에 앞서 제군들.”
렌이 슥-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현존하는 마법 중 최강의 주문이 무엇인지 이야기해 볼 사람 있나?”
그 말에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강력한 마법은 셀 수 없이 많다.
마법사의 성향, 주력 속성, 소속에 따라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다.
“넌 뭐라고 생각해?”
“글쎄.”
“어렵네.”
학생들이 서로 토론을 나누었다.
그때 클로에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 클로에 학생.”
“현존하는 최강의 마법은 별의 마법, 종언입니다.”
그 말에 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답이다.”
렌이 강의실을 훑어보며 말했다.
“언뜻 보기에는 주관적이 답이 나올 수 있는 대답이지만 이 세상에 종언보다 강력한 마법은 없다. 위력이면 위력, 마력 효율이면 마력 효율. 결정적으로 마법의 발동 시간까지 짧지.”
렌이 웃었다.
“종언은 성운의 시조께서 만든 완벽한 예술 작품이다.”
양팔을 활짝 벌린 렌이 말했다.
“지난 루세전 당시 마물 여왕을 물리치실 때의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생각에 더더욱 확신을 가졌다.”
렌의 말을 듣고 마법학과생들이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어떻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전설 속 영웅이 등장했는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기 있는 모든 이들이 당시의 기적을 직접 목적했다.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야기 속으로만 접하던 위대한 마법사.
마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성운의 시조 루나 루비넌스가 강림했던 그 현장에 여기 있는 모두가 함께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사용한 ‘종언’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했다.
“하지만 종언은 쓰기 까다로운 마법이다.”
렌이 뚜벅- 뚜벅- 칠판 앞으로 갔다.
그리고 분필을 들고 종언의 마법 술식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
복잡하고 난해한 술식이 칠판 위에 가득 채웠다.
“강력한 위력, 우수한 마력 효율, 그리고 짧은 캐스팅 시간까지. 사용할 수만 있다면 완벽한 주문이지만 이걸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조께서 만든 복잡한 마법 술식을 모두 이해할 필요가 있지.”
마법 술식을 본 학생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최근 발동 수식이 발달하고 있습니다. 먼 훗날에 발동 수식을 이용해 술식을 간력화시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종언의 술식 간단화는 매우 쉽다.”
“예?”
“이게 바로 그 결과물이지.”
렌이 빙긋 웃었다.
‘저게 간단화 시킨 거라고?’
‘말도 안 돼!’
‘술식을 풀어 썼는데도 전혀 이해가 안 된다고!’
학생들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건 후대에 별의 마법을 익히게 된 엘프들이 자체적으로 술식을 단순화시킨 결과물이다. 이것보다 단순화시킬 경우 마법 자체가 발동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발동 수식 만큼 간단화 시키는 건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지. 결정적으로 술식만 단순화 시켜서 마법이 발동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바로 별의 마법을 익혀야 한다는 점이지.”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별의 마법.
엘프들의 고유 마법을 익혀야 비로소 종언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평생 종언을 배울 일이 없겠다.”
“어휴. 별의 마법은 나도 시도해봤는데…… 안 되겠더라고.”
몇몇 학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별의 마법은 엘프들의 고유 마법.
물론 다른 종족이 익히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별의 마법과 마력의 파장이 맞아야 하며 뛰어난 마법 재능과 센스가 필요했다.
학생들이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본 렌이 씩 웃었다.
“확실히 지금까지 인간에게 별의 마법은 재능과 센스의 영역이었지. 하지만 너희들도 알 것이다. 작년에 아인 선배가 아조니아에서 용자의 숨결을 기사학과 학생들에게 보급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말에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말의 속뜻을 이해하고 설마 하는 얼굴로 렌을 보았다.
“서, 설마…….”
“별의 마법의 범용성을 높이는 데 성공하신 건가요?”
별의 마법을 범용적으로 바꾸어 보급하는 건 오랫동안 미완성의 단계로 남아 있었다.
시조가 남긴 마법 술식을 개조하여 엘프들이 익힐 수 있도록 만들어지긴 했지만 다른 종족은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엘프의 고유 마법으로 취급받으며 다른 종족이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학계에서는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올 겨울 방학 동안 루메른에서 획기적이고도 기적과도 같은 마법 논문이 나왔지.”
“마, 말도 안 돼!”
“대체 누가 그런 걸 한 건가요?”
“혹시 졸업한 토루아 선배님이……?”
“아니야! 엘레나 선배님 일수도 있어!”
“아니면 다른 교수님들이 해내신 건가?”
학생 전체가 흥분에 빠져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별의 마법이라니?
오랫동안 종족이라는 벽에 막혀 있던 시조의 마법을 직접 쓸 수 있다니!
마법사로서 이보다 설레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후후후. 그 위대한 논문의 저자가 누구인지 궁금할 것이다!”
학생들이 숨을 죽였다.
“논문의 공동 저자가 바로 이 자리에 있다!”
렌이 손을 들어 올렸다.
학생들의 시선이 그의 손끝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손끝에 있는 건…….
“예? 제가요?”
처음 듣는 이야기에 레오는 렌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후후후. 레오 학생. 나는 작년에 처음 너를 봤을 때부터 확신했지. 그대가 빠른 시일 내에 마법사에 큰 족적을 남길 것이라는 걸.”
“그러니까…… 제가요?”
“후후후. 역시 자네는 루메른 마법학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재야.”
“…….”
아무리 물어도 자기 할 말만 하는 렌을 보며 레오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 언제 그런 논문을 쓴 거야?”
칼의 물음에 레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논문 쓴 적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