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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38화 (238/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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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임무는 누군가로서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 배신자들을 색출하고 영웅을 수호하는 자들.

대영웅들이 이룩했던 평화의 시대를 떠받드는 기둥 중 하나.

그러나 히어로 레코드가 생긴 이래 그림자들이 신들에게 인정받는 일은 없었다.

“신들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리이나가 덤덤히 말했다.

“그림자 중 말년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야.”

“교장님도 그런가요?”

“나?”

술잔을 입에 대고 리이나가 피식 웃었다.

“난 내 개인의 원한으로 그림자가 됐다.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는데 관심 없어.”

리이나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다만 뒤를 이을 세대들은 신들의 인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있지.”

리이나가 손을 펼쳤다.

“그림자들도 어둠이 아닌 밝은 세상에서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것이 리이나가 그림자 후보생들을 영웅 후보생으로 편입시킨 이유였다.

그런 리이나를 보며 레오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림자들이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는군.’

리이나의 말대로 신들이 그림자들의 위업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신이라는 작자들은 원래 자기들 멋대로니까.’

재앙의 시대 동안 신은 지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에레보스에 의해 지상에서 추방된 신들은 영웅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도 더 이상 지상에 내려올 수 없었다.

하지만 지상의 주민들을 위해 히어로 레코드를 남겼고 위대한 신들의 유산에 지상의 주민들은 신들을 찬양하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신격화가 된 경향이 있어.’

신들을 보고 신격화가 되었다는 것도 웃기는 이야기지만.

신의 시대를 겪어 본 레오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신이 초월적인 존재이며 절대적인 권능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현명하고 고결한 존재는 아니었다.

레오는 일전에 드웨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신이라는 것들의 주변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야 하네. 만약 말을 걸어온다면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게 최선이지.’

그 말에 아르온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신이 무슨 역병도 아니고 왜 그런 취급을 해?’

‘역병이 맞네.’

드웨노가 혀를 찼다.

‘신과 연관되어 인생을 말아먹은 자들이 한 둘인 줄 아나?’

그 말에 루나가 말했다.

‘그래도 신은 아름답잖아. 네 입장에서는 찬양해야 할 존재 아니야?’

루나의 말에 드웨노는 정색했다.

‘신에게 아름답다는 수식어를 붙이지 말게. 그건 아름다움에 대한 모독일세.’

스스로를 미학자라고 칭하며 아름다움을 찬양하던 드웨노 조차 아름다움을 부정하게 만드는 존재들.

그것이 바로 신이라는 족속들이었다.

‘가끔 피브아 같은 신도 있긴 하지만.’

히어로 레코드에서 만났던 엘프들의 수호신.

피브아를 떠올리며 레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매우 특별한 경우고.’

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레오의 생각으로는 그림자들이 신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취향 문제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하는 현세 사람들은 신에게 특별한 뜻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모양이다.

‘그것 때문에 감정의 골이 생긴 건가?’

그림자 입장에서는 허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레오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쉴 때였다.

“교장님의 뜻이 그림자 후보생들도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리는 거라면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데요? 왜 첸 시아가 자퇴를 하는 거죠?”

“첸 시아는 샨 제국의 황녀니까.”

“샨 제국의 황녀?”

설마하니 황녀였을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던 레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리이나가 말했다.

“그들은 가장 오래되고 전통 있는 그림자들이야. 그런 만큼 철저하게 그림자로서의 삶을 살지.”

“그게 자퇴랑 무슨 상관이죠?”

“샨 제국은 순수하게 그림자로서 ‘히어로 레코드’ 에 이름을 올리고 싶어 해.”

리이나가 얼굴을 구겼다.

“영웅이 아닌 그림자로서 신들의 인정을 받는 게 그들의 목적이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첸 시아를 계속 영웅 사관 학교에 남겨 두고 싶지 않은 거야.”

영웅 후보생으로서 교육 받은 첸 시아가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린다고 해도 샨 제국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레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카일 역시 수많은 배신자를 어둠 속에 매장시켰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그것에 후회는 없다.

레오가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다면 친구들이 손에 피를 묻혔을 테니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자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자신이 선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첸 시아는 그걸 원할까?’

스스로 그림자의 길을 걷고 싶다면 상관없다.

스스로 어둠 속에 있기를 택한다면 레오가 어찌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지난 1년 동안의 첸 시아는 그 누구보다 훌륭했던 영웅 후보생이었다.

영웅을 꿈꾸는 소녀.

그런 소녀가 느닷없이 루메른을 자퇴한다고 한다.

‘과연 그게 첸 시아의 의지일까?’

“친구를 걱정하는 네 마음은 알겠어. 그래도 집안 사정이야. 샨 제국과는 깊게 연관이 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리이나는 순수하게 레오를 걱정하며 말했다.

그녀가 보기에 레오는 세계의 희망이다.

‘검성의 뒤를 이을 영웅 후보생.’

더욱 다듬고 밝게 빛나야 하는 원석.

그러한 원석이 빛을 발하기 전에 그림자라는 어둠에 묻히는 걸 리이나는 원치 않았다.

‘이런 일은 좀 더 성장한 후에 짊어지는 게 맞아.’

그림자이기 이전에 지금은 영웅 사관 학교의 교장이며 또한 어른이다.

영웅 후보생이 그림자와 관련된 일에 엮여 감당 안 될 짐을 짊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다.

그림자의 세계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깊고 어둡다.

알아서 좋을 건 없었다.

리이나의 말을 듣고 레오가 웃었다.

그 미소를 본 리이나는 순간 서늘함을 느꼈다.

레오의 붉은 눈에서 일순간 자신과 같은 어둠을 엿보았다.

그림자 세계에서 최고라 칭송받는 리이나는 레오가 자신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 정체가 뭐야?”

낯빛을 굳히는 리이나를 보며 레오는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로 말했다.

“루메른의 학생회장이죠.”

“…….”

“첸 시아가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원치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거라면 그만두게 하고 싶어요.”

“왜?”

“첸 시아는 미래를 짊어질 훌륭한 영웅 후보생이거든요.”

레오는 덤덤히 말했다.

“영웅이든 그림자든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히어로 레코드도 딱히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레오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세계를 위해 싸우는 자는 모두가 영웅이라고 생각해요.”

“신이 인정해주지 않는데도?”

“신의 생각 같은 건 엿이나 먹으라죠. 어차피 지상에 내려오지도 못하는 작자들인데.”

신성모독에 가까운 말에 리이나가 입을 떡 벌렸다.

하지만 레오와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근본적인 가치관이 달랐다.

“신들의 인정이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그렇다는데.”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세계를 구원한 대영웅의 말.

하지만 레오의 정체를 모르는 리이나는 그 말뜻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알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

‘이 녀석은 정말로 영웅과 그림자를 차별하지 않는구나.’

스스로를 신들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그림자들을 긍정해주는 소년을 보며 리이나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신의 뜻이 무슨 상관이야.’

타르타로스에 맞서기 위해 선택한 길이 아니던가?

‘신의 인정 같은 걸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해 놓고 정작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건 나였군.’

“어떻게 하고 싶지?”

“첸 시아를 데려올 겁니다.”

그 말에 리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교장의 권한으로 임무 하나를 맡기겠어.”

리이나가 집무 책상에 있는 종이에 임무서를 슥슥- 썼다.

“샨 제국으로 가서 황제와 접촉해. 그리고 첸 시아를 데리고 루메른으로 돌아와. 네 이야기라면 첸 시아도 마음을 돌릴 거야.”

리이나는 팔랑- 종이를 레오에게 날렸다.

“이 서신도 가져가. 혼자 찾아가면 샨의 황제를 쉽게 만날 수 없을 거야. 앞뒤 막힌 샨의 황제라도 루메른 교장의 말은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하겠지.”

“예.”

“그리고 임무를 보조해줄 두 녀석을 붙여 줄게.”

리이나가 펜을 움직였다.

학생 명단에 이름을 쓴 리이나가 그걸 레오에게 건넸다.

그리고 명단의 이름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프리츠 에드곤]

[엘 제인]

익숙한 이름이다.

아까 마법동에서 만났던 1학년들이었다.

“에드곤과 엘 제인. 그림자 후보생이야. 실력은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지금 1학년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들이야. 그리고 전투력은 어떨지 몰라도 실전 경험 자체는 2학년들 못지않은 우수한 아이들이지.”

“그림자 후보생들이군요.”

“맞아.”

리이나가 빙긋 웃었다.

“너에게 도움이 많이 될 거야. 그리고 이 녀석들이 네 영향을 조금 받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영향?”

“이 녀석들은 기껏 영웅 후보생으로 진로를 생각해보라고 불렀더니 그림자의 길을 확고하게 가고 싶어 하는 녀석들이거든.”

리이나가 툴툴거렸다.

“널 보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딱히 특별하게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 돼.”

그 말에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부탁한다, 레오 플로브.”

***

그날 저녁.

레오는 임무를 위해 기숙사를 나섰다.

‘임무 기간은 일주일이라. 넉넉하지는 않군.’

갑작스러운 임무인 만큼 길게 임무 기간을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뭐, 설득만이라면 일주일이 충분하려나?’

속으로 중얼거린 레오는 두 후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워프 게이트 앞에 두 학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표정한 얼굴의 프리츠와 약간 뚱한 얼굴의 제인은 레오 앞에 섰다.

“이번 임무에서 레오님을 보좌하게 된 프리츠 에드곤입니다.”

“우리 아까 통성명 했는데.”

“알고 있습니다.”

프리츠는 의지가 깃든 얼굴로 말했다.

“레오님을 위해 언제든 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아~ 아~ 그저 영웅님이라면 앞뒤 안 재고 딸랑거리고 보는 머리 굳은 그림자랑 일을 함께해야 하다니.”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인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런 제인을 보며 프리츠가 말했다.

“그림자로서 영웅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만?”

“흥. 난 샨의 그림자 후보생이거든? 그림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논하지 말아 줄래?”

제인이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찌릿- 레오를 바라보았다.

“당신, 첸 시아님을 설득하러 간다고 했죠? 왜 그런 짓을 하는 거죠?”

제인의 말에 레오가 말했다.

“너도 첸 시아가 그림자로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냐?”

그 말에 제인이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웃기지 마요! 첸 시아님은 누구보다 영웅에 어울리는 분이에요! 누구보다 고결한 분이라고요! 나도 그분이 영웅으로서 살았으면 좋겠고 첸 시아님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데…….”

제인이 입술을 앙다물었다.

“첸 시아님이 영웅의 길을 포기한 건 당신 때문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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