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41화 (241/483)

241

황제와의 알현을 끝낸 레오는 곧바로 알현실을 나왔다.

황제의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프리츠와 제인은 방문을 열고 나오는 레오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만나게 해줄 수는 없다고 하던데.”

“그거 봐요.”

제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프리츠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군요. 만나는 것조차 해줄 수 없다니.”

“샨의 그림자를 만나는 게 그렇게 쉬운 줄 알아?”

“어이, 꼬마.”

“꼬, 꼬마?”

레오의 말에 제인이 당황했다.

“지금 저더러 꼬마라고 하신 건가요?”

“그럼 얘보고 꼬마라고 할까?”

레오는 자신 보다 키가 큰 프리츠를 가리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레오를 보며 제인이 발끈했다.

“전 당신보다 연상이거든요?!”

올해 17살이 된 제인은 비록 레오보다 후배일지 몰라도 나이는 엄연한 연상이었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있는 레오는 그런 걸 개의치 않았다.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런데 어디서 쉬면 되는 거야?”

“듣지도 않아요?!”

“안내해.”

“…….”

자신의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레오를 보며 제인이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왠지 이 사람이랑 말싸움하면 나만 바보가 되는 것 같아.’

“안내해드릴게요.”

제인이 레오를 안내했다.

샨에 온 시점부터 제인은 레오의 안내역을 맡고 있었다.

그런 제인의 뒤를 따르며 프리츠가 중얼거렸다.

“꼬마라…….”

나직이 중얼거린 프리츠가 ‘훗!’ 하고 웃었다.

“엉? 그 웃음의 의미는 뭐야? 시비 거는 거야?”

울컥한 제인은 프리츠에게는 참지 않았다.

***

한바탕 소란이 있고 난 뒤 제인은 레오를 황궁 옆에 있는 별채로 안내했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별채에는 백 명의 이들이 좌우에 늘어서 있었다.

“샨 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레오님께서 지내시는 동안 불편함이 없으시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종장으로 보이는 중년 사내는 레오를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림자로군.’

시종장뿐만 아니었다.

좌우로 늘어선 백 명의 하인과 하녀 중 몇몇 이들 역시 그림자처럼 보였다.

프리츠 역시 그걸 알았는지 눈을 가늘게 떴지만,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 가운데 레오는 별채 내부의 가장 큰 방으로 안내받았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주시길 바랍니다.”

정중한 말을 남기고 시종장은 방을 나섰다.

레오는 방에 있는 크고 호화스러운 의자에 앉았다.

“제게 궁금하신 점이 무엇인가요?”

제인이 레오 앞에 서며 물었다.

그런 제인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네가 아는 첸 시아에 대해 이야기해 줄래?”

“예?”

“내가 모르는 첸 시아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 그리고 어떻게 루메른에 오게 되었는지. 또 어째서 영웅 후보생을 그만두려 마음먹었는지.”

샤우는 첸 시아가 어릴 때부터 영웅을 동경해 왔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레오를 만난다면 마음이 흔들려 그림자의 길을 접고 영웅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제인은 첸 시아가 영웅 후보생을 그만둔 이유가 레오 때문이라고 했다.

“전 10년 전부터 시아님을 곁에서 모셔 왔어요.”

그림자 후보생들은 어려서부터 그림자가 되기 위해 수련한다.

고아였던 제인은 샨의 그림자들에게 거두어져 그림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고 그림자 후보생이 되었다고 했다.

“뛰어난 그림자 후보생은 황족분들의 밑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저 또한 그랬죠.”

샨의 미래를 이끌 그림자 후보생들이 첸 시아의 밑으로 모였다고 했다.

“시아님은 자신을 따르는 그림자 후보생들을 소중히 여겨 주셨어요.”

그림자 후보생의 수련은 혹독하다 못해 잔혹하다.

어둠 속에서 살며 아무리 배신자라고는 하나 사람을 처단해야 하는 존재들.

때론 그 가혹함이 인간성을 말살시킬 때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명령만을 따르는 살육 기계로 전락하는 자들도 있었다.

‘아니, 일부러 그런 식으로 키우기도 하겠지.’

레오의 눈이 가늘어졌다.

“모두가 시아님을 따랐죠. 그래서 우리는 시아님이 영웅이 되시길 바랐어요.”

제인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분은 그림자보다 영웅이 어울리시는 분이셨으니까요. 그리고 시아님은 작년에 루메른으로 가셨죠.”

“황제의 성격상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네. 황제 폐하께서는 시아님께 한 가지 조건을 거셨어요.”

“조건?”

“학년 대표가 될 수 없다면 영웅의 길을 깔끔하게 포기할 것.”

영웅 후보생 중 최고가 될 수 없다면 영웅의 길을 포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레오 선배님 때문에 첸 시아 선배가 영웅 후보생을 그만뒀다고 말한 건가?”

이야기를 듣던 프리츠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건 남의 탓을 하는 것밖에 안 되는군.”

“알아! 나도 안다고!”

발끈한 제인이 프리츠를 마구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늘어트렸다.

“영웅이 되기를 포기한 이유는 그것뿐이야?”

“시아님께서 돌아오신 날 말씀하셨어요. 진짜 영웅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봤다고……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제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어둠에 발을 담근 자신은 이제 영웅이 될 수 없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들은 레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혹시 비하르라는 이름에 대해 알고 있어?”

“아뇨, 그게 누구인가요?”

“모르면 됐어.”

고개를 저은 레오는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었다.

“어째 빌어먹을 헛소리를 하는 게 그렇게 똑같은지.”

“예?”

“혼잣말이야.”

레오는 눈을 감았다.

***

휘오오오오-

가드스론의 높은 성벽에서 한 여인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전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

사람들이 타르메티아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하고 돌아온 영웅들을 축복해주고 있었다.

리시나스를 필두로 한 위대한 대영웅들과 그런 그들을 따르는 수많은 용사.

타르메티아전투에서 승리한 후 잃었던 많은 영역을 수복할 수 있었다.

“위대한 대영웅들의 업적에! 건배!”

“건배!”

“세계를 구원한 영웅들의 활약에! 건배!”

“건배!”

“와아아아아!”

가드스론의 주민들이 기쁨에 환성을 내질렀다.

수십 년 동안 절망과 탄식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눈동자에는 어느새 희망이 가득했다.

우울하기 짝이 없는 잿빛 하늘은 여전하다.

하지만 대영웅들의 눈부신 활약상에 사람들은 생각했다.

언젠가 저 잿빛 하늘이 사라지고 잃어버렸던 푸른 하늘을 찾을 것이라고.

길고 길었던 절망의 시간은 끝나고 분명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희망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신나게 떠드는 소리와 박장대소를 터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 엘프, 수인, 드워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축제를 만들었다.

수인은 악기를 연주했으며 인간들은 그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엘프들은 그에 맞춰 춤을 췄으며 드워프들은 무대를 만들었다.

드래곤들은 영웅들의 위대한 업적을 아이들에게 이야기 해주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위대한 승전을 축복했다.

모두가 밝은 빛 속에서 환하게 웃었다.

오직 여인만이 빛과 동떨어진 어둠이 드리워진 성벽 위에 있었다.

먼 곳에서 축제를 바라보며 여인은 웃었다.

“또 궁상떨고 있군.”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비하르가 힉-! 하더니 휘청거렸다.

그리고 중심을 잃고 손을 휘젓더니 성벽에서 떨어졌다.

“카, 카일님.”

가까스로 성벽의 난간을 잡은 비하르가 올라왔다.

“떨어질 뻔했잖아요!”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진다고 죽겠냐?”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은 카일이 성벽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카일 앞에 비하르는 양 무릎을 꿇고 앉았다.

팔짱을 낀 카일은 저 멀리서 내려다보이는 축제의 풍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제까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을 거냐?”

“평생 나설 일이 없지 않을까요?”

“너도 많은 사람을 구한 영웅이야.”

“다른 분들이 타르타로스와 싸울 때 전 사람들의 피를 손에 묻혔죠. 비록 배신자라 할지라도 사람을 베어낸 공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고 싶진 않아요.”

비하르가 손을 내려다보았다.

“게다가 제 손으로 처단한 이들 중에는 사람들이 아직 영웅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어요. 제 존재를 납득 하지 못할 사람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배신자는 분명 처단해야 할 존재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영웅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제 희망을 품기 시작한 이들은 절망에 빠질 게 분명했다.

지금은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존재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렇기에 카일과 비하르의 손에 처단된 배신자 중 고결한 영웅으로 기억된 이들도 적지 않다.

“어둠에 발을 담근 전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럼 난 뭐지?”

“카일님은 다르죠. 카일님은 어둠 속에서도 빛날 수 있는 분이시니까요.”

“그건 또 무슨 헛소리야?”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 카일을 보며 비하르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에레보스가 토벌되고 타르타로스가 사라진 세상에서…… 언젠가 알릴 겁니다. 저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요.”

“아, 찾았다! 여기 있었네!”

술에 취한 소리가 들렸다.

달려온 루나가 카일의 목에 해드락을 걸었다.

“너! 술 마시다 말고 도망쳤겠다아? 그건 나와의 대작에서 패배를 인정했다는 뜻이겠지?”

“엉겨 붙어서 말하지 마. 입 냄새나니까.”

“내 어디에서 입 냄새가 난다는 거야!”

“토했으니까 당연히 입 냄새가 나지.”

루나가 카일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주고 마구 흔들었다.

그에 카일은 루나의 볼을 꼬집고 마구 흔들었다.

루나는 그런 카일의 손을 깨물고 레오는 반대쪽 볼도 잡아당겼다.

“드웨노. 카일과 루나가 또 싸워!”

“내버려 두게. 그 바보들이 싸우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비하르. 또 혼자 여기 있었니?”

아르온과 드웨노가 모습을 드러내고 리시나스가 쓴 미소를 지으며 비하르를 걱정했다.

함께 따라온 엘프 소녀, 베르키아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었다.

“베르키아는 왜 또 저렇게 풀이 죽었나요?”

“전투에서 루나에게 선물받은 검을 잊어버렸데.”

“아…… 에르퀸트.”

잠시 탄성을 내지른 비하르는 베르키아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걱정마, 내가 찾아줄게.”

“……정말요?”

눈을 휘둥그레 뜬 그녀를 보며 비하르가 빙긋 웃었다.

“물론.”

“야. 받아주지 마. 버릇 나빠져.”

“베!”

베르키아가 카일을 향해 혓바닥을 쏙 내밀었다.

“이 건방진 꼬맹이가…….”

어느새 고요하던 성벽 위는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이곳은 대영웅들의 또 다른 아지트였다.

드웨노는 가져온 술통을 따고 카일과 루나와 즐겁게 마셨다.

아르온은 피리를 연주했고 리시나스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비하르와 베르키아 및 다른 대영웅들의 제자들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

레오가 눈을 떴다.

‘결국 비하르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지 않았어.’

그녀는 영웅이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평생을 어둠 속에 남는 선택을 한 것을 탓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그녀의 신념에 따라 선택한 길이니까.

하지만 첸 시아는?

영웅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둠에 발을 담갔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 없다고? 건방지긴.”

레오의 말에 프리츠와 제인이 움찔 몸을 떨었다.

어느새 레오는 무서운 눈으로 창문 바깥으로 어둠이 드리워진 샨의 황궁을 노려보고 있었다.

레오가 몸을 일으키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어딜 가시나요?”

제인이 다급히 물었다.

그런 제인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첸 시아 한테 간다.”

“네? 어디 계신 줄 알고요?”

“뒤져보면 나오겠지.”

샨의 황궁의 어둠 속에 똬리를 튼 첸 시아는 그림자 후보생인 제인 조차 찾을 수 없다.

아니, 뛰어난 그림자들조차 찾기 힘들다.

그런데 찾겠다니?

“찾아서 어쩌시려고요?”

당황하는 제인을 보며 레오가 빙긋 웃었다.

“어떻게 하긴. 강제로 어둠 속에서 끄집어내야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