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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가 별채를 나선 후.
제인은 당황한 얼굴로 그런 레오를 만류했다.
“자, 잠깐만요. 레오님. 함부로 돌아다니시면…….”
“선배라고 부르라고 했을 텐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제인이 레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곳은 샨의 황궁이에요. 아무리 레오님…… 아니, 선배가 루메른의 학생회장이라고 해도 함부로 돌아다니게 되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
걸음을 멈춘 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레오를 보며 포기했다고 생각한 제인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는 것도 성미에는 안 맞아서 말이야.”
레오는 제인을 지나쳐 별채의 뜰을 걸었다.
“당신도 뭐라 한마디 해 봐!”
제인이 다급히 프리츠를 보며 말했다.
그에 프리츠는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선배님께서 하신다는 데 내가 말릴 수는 없지.”
프리츠가 레오의 뒤를 따랐다.
“물론 이 어둠 속에서 첸 시아 선배를 찾기란 불가능하겠지만.”
샨의 황궁은 제국의 중심부임에도 불구하고 어두웠다.
불빛이 없는 건 아니지만 필요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암전되어 있었다.
그림자 제국이라 불리는 샨 제국의 특징.
그림자들은 어둠 속의 수호자인 만큼 어둠 속에 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런 만큼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능력 역시 매우 뛰어나다.
프리츠의 말에 제인이 한숨을 쉬었다.
“당연하지. 그러니까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는 걸 더 말려야 할 거 아니야?”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너희 모두 내가 첸 시아를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프리츠가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선 후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기분이 상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영웅과 그림자는 사는 세상 자체가 다릅니다.”
팔짱을 낀 제인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선배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에요. 그림자들은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에요. 어둠 속에서 그림자를 찾기란 쉽지 않아요. 하물며 그게 시아님이라면 불가능하죠. 그분은 같은 그림자들조차 찾기 힘든 분이니까요.”
두 사람의 말에 레오가 흠- 하고 한숨을 내뱉었다.
카일 시절.
레오가 배신자들을 처단했을 때는 대부분 어둠이 드리워진 밤이었다.
재앙의 시대 당시의 밤은 지금보다 훨씬 깊고 위험했다.
밤에 움직이는 것 자체가 몹시 힘들었던 시기.
‘그랬기에 배신자들을 처단하기 안성맞춤이었지.’
밤이 자신들의 편이라 생각하는 어리석은 배신자들은 틈을 보였다.
‘그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건가.’
“너희는 어둠에 익숙하다는 거냐?”
“익숙하다기보다는…… 어둠은 그림자의 편이죠.”
팔짱을 낀 제인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래?”
피식 웃은 레오가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그럼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겠네.”
재앙의 시대 당시 배신자를 처단할 때.
어둠은 레오의 편이 아닌 적이었다.
온갖 배신자와 타르타로스가 남발했던 저주와 함정은 어둠이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어둠을 헤쳐나갔던 레오다.
프리츠와 제인은 서로를 바라본 후 레오의 뒤를 따랐다.
저벅- 저벅-
레오가 황궁의 수많은 출입구 중 한 곳으로 다가갔다.
시커먼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 입구.
본능적으로 다가가는 게 꺼려질 것만 같은 입구였지만 레오는 개의치 않고 그곳으로 다가갔다.
스륵-
그때 레오 앞으로 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보고 레오가 물었다.
“들어가면 안 되나요?”
“출입하시는 걸 저지하라는 폐하의 명령은 없었습니다, 다만.”
“다만?”
“황녀님을 찾으려 하신다면 어둠 속에 가두라는 것이 폐하의 명령이셨습니다.”
그 말에 제인이 어깨를 흠칫 떨었다.
“어둠 속에 가두라고요? 그건 시험이잖아요!”
프리츠 역시 눈을 가늘게 떴다.
“시험?”
“그림자 후보생이 그림자로 인정받기 위한 시련입니다.”
“호오?”
레오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재미있겠는데.”
제인과 프리츠가 흠칫하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레오 선배님. 레오 선배님이 이때까지 루메른에서 배웠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프리츠의 만류를 뒤로하고 레오는 어둠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프리츠과 제인은 당황하여 그런 레오의 뒤를 따랐다.
뚜벅- 뚜벅-
발걸음 소리가 고요한 복도 전체에 울려 퍼졌다.
뚜벅- 뚜벅- 뚜-벅- 뚜—벅-
하지만 이내 어둠 속으로 소리마져저 집어 삼켜졌다.
‘마법인가.’
한 치도 보이지 않은 어둠 속에서 레오는 마력을 일으켰다.
‘라이트.’
하지만 빛은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마법은 확실하게 발동되었다.
빛을 내뿜기 전에 어둠 속으로 집어 삼켜진 것이다.
‘과연.’
레오는 눈앞의 어둠을 직시했다.
‘완벽한 어둠이군.’
하나의 거대한 미궁이었다.
어둠은 시야와 감각, 청각을 빼앗았다.
어둠과 하나가 되어 감각을 되살리지 않는다면 절대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래서 어둠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한 건가. 다른 녀석들이었다면 애 좀 먹었겠는데?’
심연과도 같은 어둠은 공포를 선사한다.
하지만 레오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어둠의 미궁 속.
모든 감각을 빼앗겼음에도 레오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화악-!
레오의 날카로운 감각이 어둠 전체로 퍼져나갔다.
빠르게 어둠 전체를 제압해 나갔다.
확연하게 미궁의 출구가 느껴졌다.
뚜벅- 뚜벅-
“아니……!”
어둠을 뚫고 나오자 황궁의 복도였다.
조금 전 레오 앞에 섰던 그림자는 경악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떻게……!”
레오가 어둠을 돌파하는데 걸린 시간은 10초 남짓.
‘바로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 걸렸군.’
미궁을 인지한 순간 바로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감각이 많이 무뎌졌군.’
손바닥을 쥐락펴락하며 레오가 뒤돌아서서 물었다.
그림자가 놀라고 있을 때였다.
어둠을 뚫고 프리츠와 제인이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레오를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둠의 미궁에 들어가지 않으신 건가요?”
“들어갔다가 빠져나왔는데?”
“마, 말도 안 돼!”
자신들보다 훨씬 빨리 어둠을 돌파한 레오를 보며 두 사람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시험이 이것으로 끝은 아닐 것 같고.”
레오는 빙긋 웃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
‘대체 이분의 한계는 어디지?’
프리츠는 레오의 뒤를 따르며 생각했다.
제인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레오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프리츠는 루메른의 그림자.
정확하게는 제르온 가문의 그림자 후보생이었다.
원래 그는 제르온의 후계자인 엘레나를 모셔야 할 그림자였다.
그림자로 성장하며 그가 원하는 건 단 한 가지.
완벽한 영웅의 그림자가 되는 것.
그리고 엘레나는 프리츠가 생각한 가장 완벽한 영웅에 근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작년.
레오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체드머더스 사건 공략.
기간테스 토벌.
성운의 시조의 영웅의 세계 공략.
최연소 학생회장까지.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완벽한 영웅 후보생의 등장.
곧바로 레오의 신봉자가 된 프리츠는 곧바로 엘레나에게 말했다.
레오 플로브의 그림자가 되고 싶다고.
처음에는 놀라던 고고한 루메른의 여왕은 그런 프리츠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너라면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어.’
제르온에서 키워낸 그림자였지만 엘레나는 순순히 프리츠를 풀어주었다.
처음에는 놀랐지만 이내 기회라 여겼다.
그리고 새로 취임한 그림자 출신의 루메른 교장.
리이나의 제의에 입학시험을 치를 자격을 얻게 되어 통과했다.
그렇게 레오와 가까워졌다고 생각했고 실제 그를 만났다.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완벽한 영웅의 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는 도저히 영웅 후보생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우리와 같은 그림자 후보생…… 아니.’
프리츠가 식은땀을 흘렸다.
‘완벽한 그림자 그 자체다.’
대체 뭐란 말인가?
그 누구보다 완벽한 영웅에 가까운 사람의 움직임이 그 누구보다 완벽한 그림자에 가깝다.
빛에서 사는 영웅과 어둠 속에서 사는 그림자는 양립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가 있지?’
프리츠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레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제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 앞에 펼쳐진 어둠이 계속해서 레오의 앞을 가로막았다.
심지어 레오의 힘을 시험하기 위해 그림자들이 어둠 속에서 레오에게 칼을 겨누었다.
하지만…….
화악-!
“크윽?”
어둠 속에서 제압당한 샨의 그림자는 눈을 부릅뜨고 레오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나는 레오의 눈을 보고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저 눈에서 도망칠 수 없다.’
눈앞의 영웅 후보생이 자신을 사냥한다면?
‘어둠 속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겠지!’
그림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영웅 후보생이 어둠 속에서 그림자보다 더 잘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일곱 명째의 그림자를 제압했을 때 레오는 중얼거렸다.
“이래서는 끝이 없겠군.”
그림자라고 모두 영웅만큼 막강한 존재는 아니다.
히어로 레코드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영웅은 소수인 만큼.
영웅에 근접한 힘을 가진 그림자도 소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레오의 앞을 가로막는 그림자들이 약한 것도 아니다.
“선배가 어떻게 그림자처럼 움직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둠에 갇힌 이상 첸 시아님을 찾을 수 없어요.”
제인의 말에 레오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너희만 없으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뭐라고요? 지금 우리가 방해된다는 소린가요?”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지.”
“뭐야!”
프리츠의 말에 제인이 발끈했다.
“인정해라. 엘 제인. 레오 선배님은 그림자로서도 우리를 아득히 뛰어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제인이 이를 악물었다.
“그런 거…… 이상하잖아.”
제인이 주먹을 꾹 쥐었다.
“영웅은 영웅…… 그림자는 그림자…… 사는 세계가 달라. 그렇기 때문에 시아님께서는 꿈을 포기하신 거라고.”
그런데 그 사실을 부정하는 존재가 눈앞에 있다.
영웅으로서도 그림자로서도.
자신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상식 외의 존재.
그런 존재를 인정하면 이때까지 그림자로서 살아온 자신들은?
영웅의 꿈을 포기한 첸 시아는 뭐가 된단 말인가?
고개를 푹 숙이는 제인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그 소리는 교장과 황제에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었어.”
레오는 어둠 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영웅이나 그림자는 똑같아. 그냥 동전의 양면과도 같지.”
프리츠와 제인이 레오를 바라보았다.
“세계를 지키려는 자는 모두 영웅이야. 그러니까 내가 보기에는 너희도 영웅 후보생이야.”
“……!”
프리츠와 제인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프리츠의 몸이 떨렸다.
“우리보고 레오 선배님을 선배라고 부르라고 한 이유는…… 우리를 영웅 후보생으로 인정하기 때문인 겁니까?”
“너 지금까지 뭘 들은 거야?”
“아아! 어떻게 이런 위대한 존재가 있을 수 있지?! 그림자조차 진심으로 영웅 후보생으로 인정하다니!”
프리츠가 감격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품에서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건 대체 뭐야?”
제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프리츠의 수첩 내용을 확인했다.
“레오 선배님의 행적을 기록해 놨다. 특히 조금 전에는 위대한 어록을 남기셨으니 당연히 기록해야 하지 않겠나?”
“기록?”
“한 번 보겠나?”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온 프리츠는 수첩을 제인에게 건넸다.
그걸 건네받아 읽은 제인의 얼굴이 기묘하게 변했다.
[위대하신 레오 선배님께서 그림자도 영웅이 될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아아, 어찌 이런 위대한 분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분의 그릇은 감히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팔락-
[오늘 처음으로 레오님을 보았다. 레오님은 순백과도 같은 하얀 머리에 당장이라도 타오를듯한 붉은색 눈동자를 가진…….]
[건방진 샨의 그림자와의 다툼을 할 때 레오님께서 내 손목을 잡아주셨다. 이 손목은 한동안 씻지 않아야겠다.]
[레오님께서…….]
[레오님께서…….]
“너 변태야?”
레오를 봤을 때의 상황과 레오의 행동 하나하나를 광적인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기록한 프리츠를 보며 제인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내용이길래?”
레오도 프리츠의 기록 내용을 봤다.
화륵-
그리고 망설임 없이 불꽃의 오러로 태워버렸다.
“아아!”
프리츠가 잿더미가 된 수첩 앞에 절망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상한 녀석이군.’
“시아님을 데리러 가시려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가요? 영웅 후보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이유 있지만. 건방지잖아. 쪼끄만 게 어둠에 발을 담갔다느니, 자신은 영웅이 될 수 없다느니. 어디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려 들어?”
레오가 피식 웃었다.
“알려 주고 싶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걸.”
“……. 지난번 겨울에 세이룬에 모습을 드러내신 성운의 시조님이 말씀하신 카일님과 똑같네요.”
모두가 포기했을 때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게 카일이다.
성운의 시조는 당시 그런 말을 남겼다.
“그런 말을 했었지.”
피식 웃은 레오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뒷모습을 보며 심호흡한 제인은 아직도 바닥에 엎드린 채 절망하는 프리츠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네가 그렇게 존경해마지 않는 선배를 도와야지!”
그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프리츠가 안경을 고쳐 썼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두 루메른의 학생은 어둠 속에서 눈을 빛냈다.
“최대한 선배님을 방해하는 자들을 배제한다.”
“최대한 선배를 방해하는 자들을 배제해야 해.”
두 사람이 찌릿 서로를 노려보았다.
“따라 하지 마.”
“따라 하지 마.”
***
어둠 속을 돌파한 레오는 순식간에 첸 시아를 찾아냈다.
그리고 말했다.
“데리러 왔어.”
자신에게서 몸을 돌린 친구에게 레오는 말을 걸었다.
스륵-
하지만 이내 첸 시아는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걸 본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일순간 기척을 놓쳤다.
남은 거라고는 첸 시아의 곁에 서 있는 그림자뿐.
그림자는 레오를 저지하기 위해 다가왔다.
그 순간 그림자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니!”
레오 역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샨 가문을 모셔온 그림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림자 밟기?’
샨의 황족들에게만 전해지는 기술.
그걸 샨과 연관이 전혀 없는 레오가 사용한 것이다.
샨의 황제들이 그림자의 왕이라 불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그림자가 경악에 찬 표정을 짓는 사이.
어둠 속에서 첸 시아를 추격하며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이 샨의 황족들은 비하르의 후손이 맞군.’
형태는 많이 달라졌지만 지금 어둠 속에서 기척을 숨기고 이동하는 건 분명 레오가 비하르에게 가르친 기술이었다.
‘뭐, 기본 골자는 아르온이 만든 거고 나는 변형 시킨 것에 불과하지만.’
작정하고 어둠 속에 숨어든 첸 시아를 찾는 건 지금의 레오에게도 버거운 일이었다.
‘나보다 어둠에 친숙하군.’
첸 시아는 어둠에 동화되는데 지나칠 정도로 특화되었다.
‘찾는데 애 좀 먹겠는데?’
샤우가 왜 그런 호언장담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내 레오는 웃었다.
‘어둠에 동화되었다면 어둠째로 제압해버리면 그만이야.’
레오의 감각이 빠르게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어둠이 빠르게 레오의 감각하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였다.
쉭-!
작은 살기가 느껴졌다.
그 순간 레오는 고개를 젖혔다.
화악-!
“호오?”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검을 휘두른 남자는 레오를 바라보며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나이는 십대 후반.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른스러운 이미지가 강했다.
레오와 키가 비슷한 검은 머리카락의 검은 눈동자를 가진 그는 흥미롭다는 듯 레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얼굴, 본 적 있어.”
남자는 눈을 빛냈다.
“레오 플로브지? 최고의 영웅 후보생이라 불리는 루메른의 학생.”
레오는 뺨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너, 뭐냐?”
“내 이름은 첸 시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온화한 미소를 지은 시안이 자신을 소개했다.
“장차 위대한 대영웅이 될 남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