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장송의 대공 아트칸.
사령왕 헬 카이저의 심복이다.
대영웅들과 몇 번의 결전을 벌였음에도 살아남은 괴물.
레오 역시 아트칸과 싸운 적이 있었다.
‘살아 있었나?’
하지만 그가 자신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레오는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분명 악명 높은 마족이다.
하지만 레오는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가 살아 있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레오는 환생한 이후 기록된 타르타로스의 고위 마족들을 파악했다.
그 중 아트칸의 이름은 없었다.
아무리 재앙의 시대 때 살아남았다고 해도 수천 년 동안 기록에조차 등장하지 않았기에 레오는 그가 오래전 다른 이들에게 토벌당했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있다.
레오는 식은땀을 흘리며 아트칸을 경계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생 군단장들보다 더 골치 아픈 상대야.’
5000년의 세월을 살아오면서 축적한 경험과 기술은 분명 위협적이다.
‘놈은 현시대 최상위 영웅들에 버금가는 힘을 가졌어.’
지금은 레오는 감당하기 힘든 상대였다.
거기에 더해 아트칸은 시작의 영웅 카일을 알고 있다.
‘내가 카일이라는 걸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일이 복잡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레오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이곳은 샨 제국의 본거지.
아트칸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그를 저지할 만한 전력은 갖춘 곳이다.
레오가 감각을 곤두세우고 아트칸을 경계하고 있을 때였다.
“호오. 과연.”
아트칸은 레오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당대 최고의 영웅 후보생이라 불릴만하군요. 게다가 올 클래스. 그래요. 마치 시작의 영웅 카일을 보는 것 같습니다. 후후후.”
아트칸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아트칸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장송의 대공? 이름을 본다면 상당한 고위 마족이 분명한데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시치미를 떼며 정체를 물었다.
“후후후. 시체를 주우러 다니는 별 볼 일 없는 마족입니다.”
헬 카이저의 강력한 힘의 근원 중 하나가 바로 시체다.
그리고 아트칸은 그 시체를 수거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하찮은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절대 가볍지 않다.
생전에 강한 힘을 가졌던 자의 시체일수록 강력한 언데드를 만들 수 있다.
그렇기에 그가 수거하는 시체의 대상에는 영웅의 시체도 포함된다.
어떤 경우에는 ‘죽여서’ 시체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타르타로스를 돕는 조력자분들을 보조하는 임무도 맡고 있지만 말이죠.”
그 말에 레오의 눈이 꿈틀거렸다.
“그런 의미에서 레오 플로브님.”
아트칸은 정중하게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레오에게 날렸다.
휘리릭-! 픽-!
레오는 검지와 중지를 펼쳐 아트칸이 날린 걸 집었다.
평범한 종이였다.
‘명함?’
“저희의 후원을 받아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영웅 사관 학교보다 더욱 레오님을 잘 서포트 할 자신이 있습니다. 올 클래스인 레오님이라면 분명 순식간에 영웅의 반열에 오르시겠죠.”
레오는 명함의 내용을 확인했다.
‘히어로 서포터? 에레보스의 영향을 받은 히어로 레코드를 수거해서 쓸 만한 장기말을 육성하는 건가? 내 추측이 맞았던 모양이군.’
그리고 그걸 총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트칸인 듯했다.
‘여전히 뒤에서 수작질을 잘 부리는군.’
지금 시대에 영웅 사관 학교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히어로 레코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령왕은 그걸 음지에서 행하고 있었다.
물론 영웅 사관 학교들만큼 방대한 히어로 레코드를 보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시안처럼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게 해준다는 유혹에 넘어갈 이가 많을 것도 분명했다.
화르륵-
레오는 망설임 없이 명함을 불태웠다.
“저런. 안타깝군요.”
아트칸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정보를 나에게 알려주는 이유가 대체 뭐야? 거절한다 해도 얼마든지 죽일 수 있다는 뜻인가?’
하지만 아트칸이 레오를 처치하는 데 실패하면 이 이야기는 세상에 알려질 게 분명했다.
‘그렇군. 알려져도 상관없다는 건가.’
현재 타르타로스는 마물 여왕을 잃었다.
재앙의 시대가 끝난 이후 타르타로스의 가장 큰 전력 손실이 분명한 상황.
반대로 세계는 대영웅의 재림과 오랜 공포 중 하나가 사라짐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단합력을 보인다.
그런 상황에서 타르타로스가 히어로 레코드를 이용해 영웅의 세계를 열 수 있고 그 보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걸 원하는 자들이 분명 생길 것이다.
그리고 타르타로스와 음지에서 협력한 배신자를 색출하는 움직임도 대대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겉으로는 강한 단결력을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각 종족은 오랜 갈등을 겪어 왔다.
종족 간의 문제뿐만 아니다.
같은 종족 내에서 파벌 다툼은 존재한다.
‘이 사실을 정적 제거의 수단으로 사용할 놈들도 얼마든지 있지.’
엄청난 사회적 혼란이 파생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알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내부에서 무너트리겠다? 음험한 자식.’
사령왕 헬 카이저를 떠올리며 이를 부득- 간 레오가 오러를 일으켰다.
화르르륵-!
그런 레오를 보며 아트칸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럼 어디, 올 클래스의 실력을 한 번 보도록 할까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사방에서 스켈레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평범한 언데드가 아니었다.
하나, 하나가 아트칸의 암흑 마력으로 강화된 언데드였다.
레오가 언데드에 발이 묶인 사이, 아트칸은 가벼운 걸음걸이로 시안에게 다가갔다.
“이런, 엉망으로 당하셨군요. 시안님.”
시안이 떨리는 눈으로 아트칸을 올려다보았다.
아트칸은 그런 시안을 보며 빙그레 웃더니 손을 뻗었다.
레오에 의해 잘려나간 오른팔이 날아와 그의 손에 붙잡혔다.
“다행이군요. 레오님의 검술 실력이 훌륭해 깔끔하게 잘렸습니다. 어렵지 않게 붙일 수 있을 듯하군요.”
그렇게 말한 아트칸은 흑마력을 이용해 시안의 팔을 치유했다.
떨어져 나간 팔이 회복된 걸 본 시안이 이를 뿌득 갈았다.
‘레오 플로브.’
“지금의 레오님은 시안님을 간단하게 압도하는군요”
“뭐라고?”
시안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그런 시안을 보며 아트칸이 웃었다.
“그럴 수밖에요. 두 분은 비등한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레오님은 루메른에서 작정하고 키운 영웅 후보생입니다. 거기에 대영웅의 세계도 공략했죠. 시안님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큭!”
“샨에 잠들어 있는 시작의 영웅 카일의 검을 손에 넣고 저희가 보관하고 있는 카일의 세계를 공략한다면 분명 시안님은 레오님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시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작의 영웅의 힘을 계승하기만 한다면…….”
‘네놈도 같이 쓰러트려 주지.’
시안이 경멸 어린 시선으로 아트칸을 바라본 후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트칸이 웃었다.
‘레오 플로브와는 상대도 안 되겠지. 애초에 그자의 세계를 계승할 수도 없겠지만.’
아트칸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괴물이군.’
어지간한 영웅 후보생이었다면 강화 언데드에 의해 진즉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오는 순식간에 강화 언데드들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스켈레톤 나이트의 검을 분질렀으며 스켈레톤 메이지의 마법을 디스펠로 무력화시켰다.
콱-! 툭- 떼구르르르-
아트칸이 그렇게 생각한 순간.
스켈레톤 하나의 머리가 아트칸의 발치로 굴러왔다.
격렬하게 움직였음에도 숨조차 흐트러지지 않은 레오가 검으로 아트칸을 겨누었다.
“과연. 다른 영웅 후보생과는 격이 다르군요.”
아트칸은 손뼉을 쳤다.
“계속해서 당신의 재롱을 구경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저는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곧 황궁에 일어난 이변을 눈치채고 황제와 샨의 그림자들이 움직일 게 분명했다.
시안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강자들.
그들이 시안을 처리하는 걸 저지해야 한다.
‘황궁의 지하에 들어갈 수 있는 건 황족들뿐.’
샨의 건국 당시부터 타르타로스는 비하르의 후손들이 샨을 건국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하르가 카일의 제자라는 것도 알고 있었던 타르타로스는 오랫동안 샨이 보관하고 있을 카일과 연관된 물건을 노려왔다.
마침내 그 기회가 찾아왔다. 그걸 놓칠 수 없었다.
‘레오 플로브는 분명 우리에게 있어 위험분자다. 하지만 아직 애송이에 불과하지.’
아트칸은 머릿속에서 우선순위를 정리했다.
현재 그의 우선순위는 샨의 그림자들을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안심하시길. 당신을 위한 선물은 확실히 남겨 두고 가겠습니다.”
아트칸이 마치 문을 열 듯 허공을 잡아당겼다.
끼이익-!
허공에서 거대한 석문이 생성되었다.
그와 함께 검붉은 공간이 열렸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창백한 피부.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눈.
마치 꼭두각시 인형 같은 그들을 가리키며 아트칸이 웃었다.
“그림자는 히어로 킬러의 천적이지만, 반대로 영웅의 천적이기도 하죠. 그리고 이들은 모두 그림자입니다.”
그는 정중하게 레오에게 고개를 숙였다.
“평생을 영웅을 위해 봉사했지만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고 허무한 죽임을 당한 하찮은 인생을 산 자들이죠. 그들은 부정하지만, 영웅을 원망하며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용하기 딱 좋은 시체가 되었죠. 최고의 영웅 후보생인 당신에게 아주 큰 원한을 가지고 있죠.”
그 말과 동시에 그림자들이 레오를 향해 돌격했다.
채재재쟁-!
무기와 무기가 교차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다.
열린 문에서는 끝없이 그림자들이 나왔다.
그들 모두가 의지가 없는 망자였다.
살아생전의 기술만 간직한 그들은 레오를 도륙하기 위해 칼날을 세웠다.
화르륵-!
레오의 온몸에서 불꽃의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즐거운 시간이 되시길.”
미소 지은 아트칸이 몸을 돌렸다.
그런 아트칸의 뒷모습을 보며 레오가 말했다.
“난 말이야. 군단장 중에는 사령왕이 가장 싫어.”
“보통은 그렇죠. 가장 공포스러운 군단장이니까요.”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야.”
레오는 낮은 목소리로 더욱더 강하게 오러를 불태웠다.
“놈이 죽은 자들을 우롱하기 때문이야.”
마족이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죽음을 지배하는 사령왕 헬 카이저는 그런 성향이 더욱 심했다.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산 자의 삶을 부정하고 비웃고 조롱한다.
그건 그 수하의 마족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레오는 사령왕을 가장 증오했다.
화악-
“이 사람들의 삶은 결코 하찮지 않아.”
인정받지 못해도.
스스로의 삶을 비관해도.
그들이 끝까지 싸운 이유는 단 하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선대들이 지켜온 평화를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야. 영웅이라 불려도 손색없어.”
“신들조차 외면하는 자들을 당신 한 사람이 긍정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신들의 인정 따위 알 게 뭐야.”
화르륵-
레오의 몸에서 더더욱 맹렬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그 불에 닿은 그림자들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사령술의 주박에서 풀려난 것이다.
안식을 맞이하는 그들을 보며 아트칸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과연, 피닉스의 불꽃인가.’
화르륵-
어느새 레오의 등 뒤에 한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영웅이 됐든, 그림자가 됐든. 그들이 품어 온 의지는 변하지 않고 후대에 전해져 왔어.”
평화를 되찾겠다는 희망.
리시나스가 전하고자 했던 희망은 카일에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희망은 루나에게 이어져 아르온에게로…… 그리고 또다시 드웨노에게로.
이윽고 카일이 에레보스를 토벌함으로써 결실을 보았다.
대영웅들은 5000년 전 사라졌다.
하지만 대영웅들의 뜻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우리가 리시나스에게 받았던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어.’
평화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도. 평화를 지키고 하는 마음도. 결국에는 같다.
레오 입장에서는 영웅과 그림자는 모두가 자신들의 의지를 잇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 의지는 언젠가 타르타로스 토벌이라는 결실을 보았다.’
하지만 사령왕은 그런 그들의 삶을 비웃고 조롱하는 자.
그래서 레오는 그를 가장 증오했다.
스윽-
레오가 자세를 낮추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아트칸이 흑마력을 일으켰다.
‘어차피 애송이. 레오 플로브의 검은 나에게 닿지 않…….’
화르르르륵-!
콰득!
“……!”
자신의 결계를 뚫고 목을 꿰뚫은 레오를 보며 아트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솨아아아-
아트칸의 몸이 검은 모래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텁-!
아트칸이 레오의 목을 틀어쥐었다.
하지만 이내 그 손조차 모래가 되어 사라졌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처음으로 얼굴에 여유가 사라진 아트칸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나?”
레오는 사라져가는 아트칸을 바라보며 붉은색 눈을 번뜩였다.
레오는 아트칸의 검붉은색 눈동자 너머의 존재에게 선전포고하듯 말했다.
“네놈을 토벌할 사람.”
콰악-!
레오가 손에 힘을 주어 아트칸의 목을 날렸다.
퍼석-!
바닥에 떨어진 아트칸의 몸이 모래가 되어 흩어졌다.
‘역시 분신이었나.’
본체도 타격을 입었겠지만, 이 정도는 죽지 않는다.
‘이 정도로 죽을 녀석이었다면 5000년 전에 진즉에 죽일 수 있을을 테니까.’
레오는 화상을 입은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망자를 소환하는 망자의 문을 바라보았다.
일격필살.
방심하고 있는 아트칸의 작은 빈틈을 노려 한 방 먹인 것이다.
그의 본체는 아마 샨의 그림자들을 막고 있을 터.
‘나라는 걸 알아차리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더욱 경계 받을 것 같군.’
심호흡한 레오는 언데드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은 이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고…… 시안이라는 놈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