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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넌 멘티 정했어?”
“응. 어제.”
2학년 교실동 대강의실.
오늘은 영웅학 합동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수업 전 한자리에 모인 2학년들은 친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요 며칠 동안 당연히 화젯거리는 당연히 이번에 도입된 멘티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멘티와 멘토를 정하는 날이 하루도 남지 않게 되었다.
멘티를 받아들이는 데 관심이 있었던 2학년 대부분은 1학년 후배들을 멘티로 받은 상태였다.
“넌 어때? 건방지다고 별로라고 하지 않았어?”
“그랬지! 근데 들어 봐! 처음에는 건방지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이야기를 조금 나눠 보니까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게 제법 귀엽더라고?”
2학년들은 자신이 멘티로 받은 후배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즐겁게 떠드는 모습을 보며 첼시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네.”
“그럴 수밖에 없지.”
“응? 그게 무슨 뜻이야. 레오 오빠?”
“우리 신입생 때 생각해 봐.”
같이 있던 칼이 팔짱을 꼈다.
“선배들 무서워서 눈이라도 마주쳤냐?”
“응? 전혀 안 무서웠는데? 오히려 엄청 친절했는데.”
“이래서 영웅 명가 것들은.”
칼이 참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검지를 입에 물고 고민하던 첼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확실히 우리 반 애들은 선배들을 많이 무서워했네.”
기수 간의 서열이 가장 빡빡한 건 소환학과다.
하지만 그만큼은 아니라도 다른 학과 역시 학기 초에는 선배에게 감히 말도 못 거는 경우가 많았다.
“신입생 때는 학교생활에 적응한다고 정신이 없는 데다가 선배들 눈치를 보느라 바쁘지. 2학년들도 언제 학교를 떠나도 이상하지 않을 1학년들과 친해질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말이야.”
칼이 턱을 괴었다.
“그렇다 보니 동기들 빼고는 제일 오랫동안 같이 볼 사이인데 별로 친해지지 못해. 최악의 경우에는 학년 간의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도 많고. 4학년 5학년 선배들만 봐도 그렇잖아? 우리도 3학년 선배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고.”
루메른은 한 기수 위의 선후배 간의 사이가 극도로 나쁠 때가 많았다.
지금의 5학년은 루메른의 여왕이라 불리는 엘레나를 필두로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해 온 4학년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그건 지금 2학년과 3학년들 역시 마찬가지다.
학년 대표인 레오와 릴은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지금 3학년은 소위 말하는 황금 세대라 불리는 지금의 2학년들을 눈엣가시처럼 여겨 왔다.
1학년 때까지야 선배들의 눈치를 보고 벌벌 떨었지 2학년이 된 지금은 3학년에 대한 상당한 반발심을 가진 학생들도 많았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 전에 1학년들이랑 친해질 기회가 생긴 거지.”
최소한 1학기 때까지 헤어질 일은 없다.
그렇다 보니 2학년들 입장에서도 1학년들에게 정을 붙이기가 쉬웠다.
“원래 애들은 선배라는 말에 약해서 후배를 챙기고 싶어 하거든.”
레오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칼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넌 애 아니냐?”
“가끔 레오 오빠는 말하는 게 너무 아저씨 같다니까.”
첼시도 어깨를 으쓱거렸다.
“반장! 다른 기숙사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 돼! 우리 기숙사의 정보를 빼 가려 할지 모른다고!”
그때 일리아나가 냉큼 달려와 말했다.
그런 일리아나를 보며 첼시와 칼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레오한테 어떻게 정보를 빼내냐?”
“그래, 너 같은 바보라면 몰라도.”
“반장! 쟤들이 나보고 바보래!”
일리아나가 울상을 지으며 레오에게 하소연했다.
“사실이잖아.”
“테이드! 너까지 그러기냐!”
“그래도 여전히 모이니까 떠들썩하네.”
테이드가 일침을 가하며 다가왔고 함께 온 넬라는 특유의 나른한 미소를 지었다.
1학년 5반의 주축 맴버 여섯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그나저나 다들 멘티는 정했어?”
테이드가 팔짱을 끼며 묻자 일리아나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난 오스틴이라는 애로 정했어!”
“오스틴?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기사학과야 마법학과야?”
넬라와 테이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리아나는 2학년 상위권 성적자인 만큼 유명한 1학년을 골라잡을 수 있다.
그런데 무명의 1학년을 멘티로 받았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마검사야. 훗! 듣고 놀라지 마시라! 제르딩거 수련생 출신으로 반장의 기사단원이야!”
일리아나가 우쭐한 표정을 지었다.
“반장의 부하인데 자퇴권고를 받을 것 같으면 반장이 멱살을 잡아서라도 수련시키지 않겠어?”
“쟤는 어떻게 평소에는 바보 같은데 저런 쪽으로는 어떻게 머리가 잘 돌아가냐?”
칼이 감탄하자 일리아나가 발끈했다.
“야! 나 머리 좋거든! 나름 우등생이거든?”
“그러면 뭐 해? 단순 무식한데.”
“칼 주제에!”
일리아나가 발끈하며 칼에게 덤벼들었지만 넬라에 의해 잡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가 말했다.
“경고해 두겠는데 난 내 기사단원이라고 따로 챙기거나 하지 않을 거야?”
“헉?!”
일리아나가 우지직- 굳었다.
“조언 정도는 해주겠지만 녀석들의 수련은 자율에 맡길 거야. 오스틴도 자기 힘으로 루메른에서 살아남는 걸 원하고 있을 거고.”
“우어어어어어억!”
머리를 부여잡은 일리아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 일리아나를 무시한 다른 이들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넬라, 넌?”
“난 기사학과 후배로 두 사람을 받았어. 테이드는?”
“난 환수술사로 한 명.”
테이드가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는 아직 한 명도 없지? 칼 넌 아무도 널 멘토로 하고 싶지 않아 할 거고.”
“말하지 마라. 가슴 아프다.”
칼이 울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기숙사장들도 의외로 멘티를 안 받고 있지?”
넬라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우리야 뭐, 반장이야 소란의 중심이고. 클로에는 오늘 독후감 과제를 제출 한 학생 중 선별한다고 했고. 첸 시아는 꽤 여러 명을 받았다고 하던데?”
일리아나의 대답에 넬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첸 시아는 의외네. 그림자 출신인 게 밝혀져서 없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네.”
“응.”
‘걔들도 대부분 그림자 후보생이지만.’
레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첼시, 너희는?”
“난 애초에 받을 생각이 없었고 셀리아는 신중하게 고르는 중이야. 그리고 워레든은.”
첼시가 팔짱을 꼈다.
“멘티가 되고 싶어하는 애들이 엄청 많다? 물론 워레든은 별생각 없는 것 같지만.”
정령을 이용해 마법 술식을 발동시키는 워레든의 정령술은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물론 워레든 본인의 재능과 센스에 의한 결과물이지만 정령술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런 만큼 워레든의 지도를 받고 싶어 하는 정령술 전공 1학년은 굉장히 많았다.
“노블은 어때?”
“오라버니는 이미 받았어.”
“아바드가? 누구야?”
일리아나의 물음에 대답한 건 칼이었다.
“프리츠라는 녀석.”
“처음 듣는 이름인데? 왜 받은 거야? 실력이 대단해?”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바드가 그 녀석을 멘티로 받은 이유는 그 녀석의 마법 때문이야.”
칼이 설명했다.
“그 녀석, 피를 매개로 마법을 사용하더라고.”
“피? 굉장히 레어한 특성이네?”
“응. 그거 때문에 오라버니가 연구하고 싶다고 멘티를 권유했데.”
‘네 특성이 흥미로워. 연구 좀 해 보고 싶은데 내 멘티가 되지 않을래?’
‘그러죠.’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로 권유하는 아바드를 보며 프리츠는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며 대답했다고 한다.
“호오호오. 특이하군! 듀란이랑 엘리자는?”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 왕자님이야 멘토 요청은 엄청나게 많지. 근데 성격 잘 알잖아? 성에 차는 사람이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아. 그리고 엘리자는…….”
거기까지 말한 칼이 풉-! 하고 입을 가렸다.
“멘토 요청을 하는 1학년이 한 명도 없다?”
“한 명도 없다고? 거절하는 게 아니라?”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걔 성격이야 유명하잖아?”
“그래도 성격 더러운 건 듀란도 못지않잖아?”
첼시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자 칼이 킬킬 웃었다.
“듀란이야 그래도 나름 우등생으로 소문이 자자하잖아? 하지만 엘리자는 성적만 좋지 완전 불량 학생인데 누가 그 여자 멘티를 하고 싶겠어? 괜히 멘티 되었다가 하인, 하녀 취급당할까 봐 주변에 얼씬도 안 하는 거지. 푸하하하하하하하! 나랑 처지가 똑같…….”
쉬리릭! 콱!
“니…… 커헉!!”
갑자기 날아든 채찍이 칼의 목을 휘감았다.
모두의 시선이 채찍을 쥔 이에게로 향했다.
그곳에는 엘리자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어깨를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따라오세요.”
“도, 도와줘!”
눈을 치켜뜬 엘리자는 하얗게 질린 칼을 질질- 끌고 갔다.
잠시 후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레오 오빠는 아무도 멘티로 안 받을 거야?”
“첼시 너. 칼이 걱정 안 돼?”
테이드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묻자 첼시가 빙긋 웃었다.
“칼은 생명력이 끈질기잖아. 조금 이따가 멀쩡하게 돌아올 거야.”
첼시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장 인기는 많이 시들해졌지?”
처음에는 레오의 멘티가 되기 위해 거의 대부분의 1학년이 덤벼들었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레오의 멘티에 도전하는 학생은 소수뿐이었다.
레오에게 유효타를 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포기한 것이다.
“끈기 있는 애들은 그때 다섯 명뿐. 멘티를 받을 생각이라면 이쯤에서 슬슬 받아 주는 게 어때?”
일리아나의 말에 레오가 말했다.
“난 멘티가 필요 없어. 날 필요로 하는 건 그 녀석들이지. 필요한 건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거야.”
“맞아. 맞아.”
레오의 말에 첼시가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때였다.
끼익-
대강의실 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
그러자 학생들이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처음 보는 교수가 들어오고 있었다.
“저 교수님은 누구야?”
“이번에 새로 오신 교수님인가?”
일단 굉장한 미인이었다.
보기 드문 은색 머리카락과 눈동자.
전체적으로 포근한 인상과 함께 마음에 안정을 주는 분위기.
하지만 역시 가장 눈에 뜨이는 건 왼쪽 눈의 안대였다.
“멜 교수님이잖아? 저분이 왜?”
엘리자에게 짓밟히던 칼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에 엘리자가 멈칫하며 물었다.
“아는 분인가요?”
“응. 웃차.”
몸을 일으키며 옷에 먼지를 턴 칼이 말했다.
“1학년 마법학과 교수님으로 알고 있는데 왜 2학년 영웅학 수업에 들어오신 거지?”
교탁 앞에 선 멜은 빙긋 웃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여러분. 이번에 1학년 마법 이론 담당 교수 겸 모든 학년의 영웅학 특별 강의를 맡게 된 멜이라고 해요.”
짝짝짝짝-
멜의 소개에 박수를 치며 2학년들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 어지간해서 루메른 교수는 한 과목만을 담당한다.
그런데 1학년 마법 이론 교수이면서 전 학년의 영웅학 특별 수업을 담당하다니?
‘대체 영웅학에 얼마나 조예가 깊길래?’
모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멜을 바라보았다.
영웅학.
히어로 레코드가 존재하는 지금 시대에 그 누구보다 중요한 학문이다.
그리고 영웅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영웅 사관 학교다.
그런 영웅 사관 학교 중 한 곳인 루메른에서 특별 초빙까지 할 정도라면 대단한 지식을 가진 사람일 게 분명했다.
멜은 빙긋 웃으며 아공간을 열었다.
그리고 교탁 위에 쿠키를 놔두었다.
쿠키의 고소한 향기가 강의실 전체에 퍼졌다.
여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멜이 꺼낸 쿠키 그릇에 주목했다.
루메른의 디저트로 다져진 후각과 감이 말하고 있었다.
‘저 쿠키…… 엄청 맛있겠다.’
멜은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다리를 까딱거렸다.
“나에 대해 궁금한 학생이 있나요?”
그 물음에 여러 학생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네, 듀란 모이라 학생.”
2학년 전원의 얼굴과 이름을 파악해 둔 멜은 빙긋 웃으며 가장 먼저 손을 든 듀란에게 질문권을 주었다.
“영웅학 특별 강의를 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영웅들에 대해 강의를 해주시는 겁니까?”
“개벽의 시대에 활약한 영웅들에 대한 강의를 할 예정이에요.”
멜이 덤덤히 말했다.
하지만 2학년들은 모두 경악했다.
개벽의 시대.
대영웅들이 에레보스를 토벌한 이후의 시대를 영웅의 시대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영웅의 시대도 전기와 후기로 나뉜다.
그리고 그사이.
아주 짧은 시간의 시대를 개벽이라 불렀다.
히어로 레코드의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영웅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게 알려진 시대.
“자, 잠깐만요! 개벽의 시대에 대해 강의를 해주신다면 설마……!”
영웅의 시대에는 수많은 영웅이 탄생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영웅이 다섯 명이 있다.
개벽의 시대에 탄생한 영웅들.
개벽의 영웅이라 불리는 그들은 대영웅처럼 단 다섯 명만 존재한다.
“맞아요.”
멜이 빙긋 웃었다.
“내가 강의할 영웅들은 개벽의 용, 황혼의 기사, 혜성의 마법사, 대전사, 불굴에 대해 강의를 할 거예요.”
2학년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독-
쿠키를 한 입 깨문 멜이 말을 이었다.
“일단 첫 수업은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이 학교의 설립자. 황혼의 기사 루메른에 대해 하는 게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