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55화 (255/483)

255

“모두 영웅학 교과서를 꺼내세요.”

멜의 말에 학생들이 책 두 권을 꺼냈다.

<영웅학 강론>과 <영웅들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의 책들이다.

보통 2학년 영웅학 교과서는 영웅학 강론뿐.

하지만 올해 학기 준비물에는 <영웅들의 삶과 죽음>이라는 책 역시 추가되었다.

‘<영웅들의 삶과 죽음>은 전 학년 공통 구매 서적이었던가?’

루메리아 시티에서 교과서를 구매할 때는 그냥 서점 직원이 주는 책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래서 책을 제대로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영웅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책을 본 레오는 멈칫했다.

저자: 멜리나

레오가 고개를 들어 멜을 바라보았다.

레오와 눈이 마주친 멜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이 책 말이야.”

학교 최고의 우등생답게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는 클로에는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신기하게 저자가 지금 드래곤 로드와 이름이 똑같다?”

그 말에 레오는 멜을 쳐다보며 말했다.

“드래곤 로드가 쓴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이 책은 올해 출간된 책인걸? 그냥 이름이 똑같은 사람이겠지.”

‘진짜 본인이 쓴 건데.’

하지만 그 누구도 드래곤 로드가 직접 이 학교에 교수로 취업하고 수업을 하고 있으며 그걸 위해 책을 출간했다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비상식적인 일이니까.’

레오는 힐끗- 멜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리며 책을 넘겼다.

“올해 출간된 책이지만 책 내용은 매우 좋아. 특히나 개벽의 영웅들에 관한 내용은 정말 대단한 수준이야.”

착실한 우등생답게 이미 책을 몇 번 정독한 클로에가 눈을 반짝였다.

‘개벽의 영웅들.’

레오는 개벽의 영웅들에 대한 페이지를 펴고 턱을 괴었다.

최초로 영웅의 세계를 공략해내어 새로운 시대를 연 영웅들.

‘이 녀석들을 우리의 후계자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

그들은 최초로 영웅의 세계를 발견했을 뿐만 아니라, 최초로 대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하여 힘을 계승하기도 했다.

‘타르타로스의 일곱 명의 군단장 토벌. 그리고 에레보스의 조각을 봉인함으로써 재앙의 재림을 막아내기도 했지.’

재앙의 재림.

기록으로만 본다면 재앙의 시대 초창기와 거의 유사했을 정도다.

수많은 나라가 멸망하고 타르타로스의 군단장들이 날뛰던 시기.

하지만 다섯 영웅으로 인해 또다시 재앙의 시대가 오지 않을 수 있었다.

멜이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칠판에 있던 분필이 혼자서 허공에 떠올랐다.

그리고 춤을 추듯 칠판에 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냈다.

[황혼의 기사, 루메른.]

단신으로 타르타로스의 군단장과 군단을 토벌했던 최강의 기사로 칭송받는 남자였다.

“개벽의 영웅들에 관한 자료와 일화는 많이 남아 있죠.”

멜이 2학년들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지난 3000년 동안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는 공략이 시도 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 이유를 아는 학생 있나요?”

질문과 동시에 여러 학생이 동시에 손을 들었다.

“일리아나 라덴 학생.”

“아잣!!”

주먹을 꼭 쥐며 자리에서 일어난 일리아나가 대답했다.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는 모두 드래고니아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드래곤들은 선택된 영웅들에게만 공략을 허락하기 때문입니다!”

“맞았어요.”

멜이 환하게 웃으며 손뼉을 한 번 쳤다.

“상으로 일리아나 학생에게는…….”

“발표 점수를 주시는 거죠!?”

“쿠키를 주도록 하겠어요.”

“예엑?”

일리아나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쉬운 질문에 대답했다고 발표 점수를 바라냐?”

“날로 먹으려고 하지 마라!”

여기저기서 야유가 흘러나왔다.

“시끄러웟!”

붉어진 얼굴로 소리친 일리아나가 우물쭈물 멜 앞으로 갔다.

사실 어려운 것도 없는 질문에 대답하고 당당하게 발표 점수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쪽팔려 나가고 싶지 않았다.

‘에잇! 뭐 어때! 쿠키 맛있어 보이기도 하고.’

하지만 첫 수업부터 교수의 호의를 거절하기 힘들었기에 얼굴에 철판 깔고 나가기로 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일리아나가 웃으며 쿠키를 받고 제자리로 돌아와 한입 물었다.

“으음~!”

눈을 동그랗게 뜬 일리아나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볼을 부여잡고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맛있어~”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우물우물 쿠키를 먹던 일리아나는 멈칫하더니 입에 손가락을 넣었다.

“이게 뭐지?”

[참 잘했어요. 점수 5점]

귀여운 토끼 그림이 그려진 작은 종이에는 발표 점수가 있었다.

“몇 점인가요?”

“5점이요.”

멜의 질문에 일리아나가 대답했다.

“일리아나 학생, 추가 점수 5점이에요.”

“오오!”

일리아나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멜이 웃으며 학생들을 보았다.

“수업 태도가 좋은 학생들에게는 쿠키를 줄 거예요. 그리고 쿠키 속에는 태도 점수가 랜덤으로 들어 있답니다.”

“랜덤이요?”

“네. 쿠키도 먹고. 점수도 얻고. 다 같이 즐겁게 공부하는 거죠.”

듣도 보도 못한 뽑기 방식 태도 점수에 학생 전원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토를 달거나 하지는 않았다.

루메른의 수업 방침은 교수가 정한다.

그에 관해 토를 다는 건 교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수업이 진행되었다.

황혼의 기사의 유년기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의 가치관과 심리.

그리고 추구하는 목표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분석하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멜의 수업은 영웅학 수업이 아니라 황혼의 기사를 학문의 대상으로 삼고 철저하게 연구를 하는 것만 같았다.

2학년들은 자료와 일화로만 접해왔던 황혼의 기사에 대해 이해해나갔다.

딩동-댕동-!

수업을 마치는 소리가 울렸다.

“수업이 끝났군요.”

멜은 빙긋 웃으며 교과서를 덮었다.

“숙제를 하나 내겠어요. 루메른의 가장 첫 번째 업적은 13살의 나이에 그 일대를 지배하던 오크왕을 쓰러트린 일화죠. 만약 여러분이 루메른이었다면 오크왕을 토벌하러 가기 전 루메른이 어떤 심정이었는지에 대해 레포트를 제출하세요. 질문 있나요?”

멜이 쿠키 단지를 정리했다.

그런 멜을 보며 첼시가 손을 들어 올렸다.

“네, 첼시 르왈린 학생.”

“멜 교수님. 수업 무척 재미있었어요. 초대 학장님에 대해 좀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도 되었고요. 하지만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때까지 1학년 때는 여러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는 법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했는데요. 멜 교수님의 수업은…….”

“왜 공략법이 아닌 ‘영웅’에 대한 이해를 중점에 두냐는 거죠?”

“네.”

“좋은 질문이에요.”

멜이 빙긋 웃었다.

“아까 일리아나 라덴 학생이 발표했던 것처럼,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는 드래고니아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나요?”

그 말에 2학년들이 침묵했다.

그 이유에 대해 아는 학생은 없었다.

멜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위험하기 때문이랍니다.”

“영웅의 세계 공략이 위험한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네. 하지만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는 현재로서는 공략 불가능인 상태입니다. 지난 3000년 동안 수차례 공략을 시도했지만 단 한 번도 공략에 성공하지 못했어요. 공략을 시도한 분들은 당대 최고의 영웅이라 칭송받는 분들이었지만 대부분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죠.”

멜은 분필 지우개를 마력으로 움직여 칠판을 지우며 말했다.

“1학년 때와 같이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기 위한 수업 방식은 다른 교수님께서 여러분께 해주실 거예요. 다만 이런 특별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멜은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여러분뿐만이 아니랍니다. 세이룬과 아조니아, 데미안에서도 여러분과 똑같은 수업을 진행하고 있답니다.”

학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다.

“여러분이 지금껏 배워온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는 방법은 불특정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는 방식이에요.”

영웅의 세계를 분석하고 연구한다.

혹은 빠르게 임무와 목표를 알아내는 방법.

그것이 지금까지의 루메른 학생들이 배워온 영웅학 수업이었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칠 방식은 집중적으로 개벽의 영웅들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한 수업이 될 거예요. 그리고 이것 역시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는 방법 중 하나랍니다. 왜 이것이 공략 방법 중 하나인지 자기 생각을 발표해 볼 학생 있나요?”

그 말에 학생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필 때였다.

그때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다.

“레오 플로브 학생.”

모두의 시선이 레오에게 향했다.

“그 영웅조차 해내지 못한 걸 해내기 위해서입니다.”

멜이 환하게 웃었다.

“정답이에요.”

멜은 레오에게 쿠키를 주지 않았다.

레오 역시 쿠키를 받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여러분에게 가르칠 방식은 영웅의 세계를 [초과달성]을 하기 위한 기초랍니다.”

학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왜 그 영웅을 이해하는 게 [초과달성]을 하기 위한 기초인 건가요?”

이번에는 셀리아가 손을 들며 질문했다.

“영웅의 세계 공략은 선대 영웅들의 위업을 답습하는 겁니다. 그래서 영웅의 세계를 공략하는 이들은 대부분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고 그걸 얻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하는지 알고 있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초과달성은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 영웅조차 불가능했던 위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그 영웅이 놓쳤던 것, 그 영웅이 할 수 없었던 것까지 해내야 하죠.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그 영웅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말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대상을 개벽의 영웅들로 삼은 이유는 간단해요.”

멜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드래고니아에서 각 영웅 사관학교에 요청 사항을 전달했습니다.”

“드, 드래고니아에서요?”

“갑자기요?”

“세상에. 거의 천 년만에 있는 일 아니야?”

학생들이 놀라고 있을 때 워레든이 팔짱을 꼈다.

“내용이 뭐죠?”

그 물음에 멜이 빙긋 웃었다.

“지금 여러분 세대에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눈을 부릅떴다.

* * *

“난 추가 점수 안 주냐?”

수업이 끝나고.

레오는 쉬는 시간에 멜의 교수실에 찾아갔다.

레오의 투덜거림에 멜이 한숨을 푹 쉬었다.

“제가 어떻게 감히 레오님에게 쿠키를 주고 추가 점수를 운운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레오님에게는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잖아요.”

“그거 차별이야.”

레오는 투덜거리면서도 멜 앞에 앉았다.

“그래서. 지금 세대에서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해야 하는 이유가 뭐야?”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세대가 가능성이 몹시 크기 때문이죠.”

“나 때문에 그렇긴 하지.”

“네.”

멜이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그분들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어봐야 100년 정도이기 때문일 거예요.”

“그분들?”

레오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드래고니아에 방문하셨을 때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어요.”

멜의 얼굴이 굳었다.

“드래고니아에서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를 공개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히 ‘공략 불가능’ 하기 때문이 아니에요.”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네. 에레보스를 그들의 히어로 레코드 속에 가두는 과정에서 개벽의 영웅들의 히어로 레코드 대부분은 불타버렸지만 그래도 굵직한 기록은 남아 있어요. 가령 군단장들을 토벌과 관련 된 기록이요.”

“군단장의 기록이 담긴 히어로 레코드라면 공략이 불가능하진 않을 텐데.”

“네. 문제는 개벽의 영웅들의 세계는 공략한다고 해도 공략 보상은 주어지지 않아요.”

“어째서?”

“히어로 레코드는 아직 그들을 죽은 영웅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에요.”

수많은 자료가 남아 있는 개벽의 영웅들이지만 그 마지막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은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냈다는 말도 있으며 은거에 들어가서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는 말도 있다.

분명한 건 그들의 마지막이 어땠는지 전혀 알려진 게 없다는 소리다.

“설마…….”

레오의 얼굴이 굳었다.

“네.”

멜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다섯 영웅은 자신들의 영웅의 세계에서 자신들이 봉인한 에레보스의 조각과 지금도 싸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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