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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56화 (256/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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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오오오오오-!

멜리나는 절망 어린 눈으로 눈앞의 괴물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검게 물들고 있었다.

세상은 불타고 있었다.

온몸을 검은 화염으로 휘감은 절망의 거인은 하늘을 향해 포효를 내지르고 있었다.

“이게…… 태초의 악…….”

멜리나의 턱이 덜덜 떨렸다.

당대 최고의 영웅이자 역사 한 페이지에 위대한 영웅이라고 이름을 남길 드래곤 로드는 겁에 질린 소녀처럼 겁에 질려 있었다.

개벽의 영웅들의 최종장.

지난 3000년 동안 수많은 영웅들을 집어삼킨 히어로 레코드.

하지만 언젠가 꼭 공략해야만 하는 세계의 숙원.

멜리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동료들은 위대했다.

오랜 영웅의 시대 역사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높이 평가받았다.

그녀 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계의 과업을 이룩하고 진정한 평화를 되찾으리라 마음먹었다.

그리고 과거의 재앙의 망령에 도전했다.

그 결과…….

“여러분…….”

멜리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발…… 제발…… 눈을 뜨세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애원하듯.

바닥에 쓰러지거나 모습을 감춘 동료들을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격이 달랐다.

이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공포와 절망이 멜리나를 덮쳤다.

오오오오오-!

화르륵-!

에레보스가 팔을 치켜들었다.

검은 화염이 휘몰아쳤다.

마지막 남은 멜리나를 불태우기 위해 재앙의 불꽃이 움직였다.

멜리나는 체념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콰가가강-!

화염이 휘몰아쳤다.

그리고 멜리나는 누군가 에레보스를 저지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들었다.

등 뒤에 보인 건 순백의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었다.

멜리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뒤를 돌아본 여인은 멜리나를 향해 빙긋 웃었다.

너무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멜리나 역시 그 인물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녀의 까마득한 선대.

“로디아…… 님?”

개벽의 용의 등장에 멜리나는 놀랐다.

철썩- 콰가가가강-!

그때 허공에서 거대한 파도가 지상을 덮쳤다.

치이익-!

검은 불꽃에 의해 물이 증발하며 자욱한 수증기가 몰라왔다.

고오오오오오!

거대한 파도는 이내 용오름이 되어 검은 불꽃을 몰아냈다.

그 중심에 있는 수인 여인의 얼굴을 본 멜리나가 중얼거렸다.

“아조니아님.”

콰득-!

멀리 앞에서 드워프 용사가 용맹하게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에레보스의 팔을 잘라냈다.

그와 함께 롱소드를 쥔 인간이 검을 휘둘러 에레보스의 가슴팍에 거대한 검흔을 새겼다.

데미안과 루메른이었다.

마지막으로 하늘에 별빛이 수놓아졌다.

별빛의 파편이 에레보스의 몸에 꽂혔다.

세이룬.

개벽의 영웅들의 등장에 멜리나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개벽의 영웅들의 최종장은 빙의형 영웅의 세계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나타났단 말인가?

“이름이 뭐니?”

“메, 멜리나라고 합니다.”

“멜리나.”

로디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이 만남에 축복을…… 위대한 지혜의 왕에게 감사를.”

드래곤의 예를 표한 로디아는 물었다.

“우리가 저 빌어먹을 불덩어리를 봉인한 지 몇 년이 지났는지 알려줄 수 있겠니?”

“2900년 정도…….”

“그렇구나.”

로디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뒷일은 우리에게 맡겨.”

“저도 싸우겠어요!”

다급히 일어나는 멜리나를 향해 로디아는 손을 뻗었다.

스윽-!

그리고 자신을 통과하는 로디아의 팔을 본 멜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너와 네 동료는 더 이상 싸우지 못해. 이제 곧 바깥으로 나가게 될 거야.”

로디아는 빙그레 웃었다.

“그, 그런…….”

멜리나는 깨닫고 말았다.

빙의형 영웅의 세계에서 개벽의 영웅들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를.

자신들이 실패한 것이다.

그리고…… 수천 년 동안 이 싸움을 끝없이 반복해온 이들이 또다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절망하는 표정을 짓는 멜리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뜬 로디아가 빙긋 웃었다.

“너는 실패한 게 아니야.”

“예?”

“그래. 이건 작전상 후퇴야.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넌 아직 미숙하지, 그러니까 아직 더 강해질 수 있어.”

로디아는 까마득한 후손을 안심시키듯 말했다.

“나는 믿고 있어. 언젠가 저 빌어먹을 불덩어리를 처단해줄 후대가 나타날 것이라고.”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로디아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젠가 위대한 대영웅들과 같은 이들이 나타나 다시 한 번 세계를 구원해 줄 거라고. 그러니 약속해주겠니?”

로디아는 에레보스와 맞서 싸우고 있는 동료들 쪽으로 몸을 돌리며 말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을 하기 전 세상은 어둠에 휩쓸렸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폐인이 된 동료와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또 다른 동료들.

그런 멜리나 앞에는 [공략 실패] 라는 냉정한 메시지만 떠올라 있었다.

***

“자신들의 히어로 레코드 속에 에레보스를 가두고 히어로 레코드를 찢어 에레보스를 약화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에레보스 스스로가 봉인을 풀고 나오려고 했었다고 해요.”

에레보스는 신의 천적.

결국 히어로 레코드를 불태우고 다시 세상으로 나올 게 분명했다.

“결국 에레보스를 저지하기 위해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들어갔다는 건가?”

“네.”

멜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벽의 영웅들의 최종장에 나오는 에레보스는 결국 ‘진짜’라는 소리였다.

“개벽의 최종장 공략을 시도했다 가까스로 살아 돌아온 이들이 남긴 기록을 본다면…… 개벽의 영웅들은 히어로 레코드 속에서 에레보스를 봉인하는 과정을 계속 반복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루프인가?”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 그리고 세계가 반복될 때마다 그전 공략 때의 기억을 잃는 것 같았어요.”

레오의 얼굴이 굳었다.

히어로 레코드는 신이 만든 물건이다.

그리고 에레보스는 신의 천적.

에레보스를 가둔 세계에 직접 들어갔다면 히어로 레코드가 폭주를 일으켜도 이상할 건 없다.

‘갇혀 버렸다는 소린가.’

그리고 개벽의 영웅들은 어쩌면 그걸 각오했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 에레보스를 봉인하고 있는 히어로 레코드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가…….”

“네.”

레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불꽃은 타오를수록 강해진다.

‘영웅의 세계에서 에레보스의 조각은 3000년 동안 타오르며 힘을 키웠어. 결국 개벽의 영웅들이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지고 있다는 소리야.’

끝없이 반복되는 루프 속에서 개벽의 영웅들이 패배한 경우도 수없이 있을 것이다.

개벽의 영웅들의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에레보스는 불멸의 존재.

대영웅들이 에레보스를 토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에레보스의 천적과도 같은 특성을 가진 카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길어야 100년 이내에 에레보스는 개벽의 영웅들을 쓰러트리고 세상에 나올 거예요. 그러니 그 전에 최종장을 공략할 영웅들이 필요해요.”

최종장 공략 실패 이후 멜은 끝없이 다시 공략하기 위한 준비를했다.

하지만 멜의 세대에서 두 번째 공략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동료들은 오래 살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후에 검성이 등장했지만 결국 한 명뿐.

칼리안의 세대에도 도전할 만한 다섯 영웅은 탄생하지 않았다.

최종장에서 살아 돌아온 만큼 멜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개벽의 최종장에서는 요행 같은 건 통하지 않아.’

필요한 건 에레보스를 토벌할 힘.

그걸 이룰 수 있게 멜은 끝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지금…….

“목표는 정해졌네.”

레오의 말에 멜이 희미하게 웃었다.

보이지 않는 위협에 마침표를 찍어 줄 사람이 눈앞에 있다.

“지금부터 시작하자.”

레오의 붉은색 눈이 의지로 타올랐다.

“개벽의 최종장 공략 준비.”

“네.”

시대가 움직이고 있었다.

***

화악!

바람의 중급 환수들이 바람을 일으켰다.

레오의 하얀 머리가 하늘 위로 치솟았다.

그걸 본 레오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휘오오오-!

작은 회오리 바람과 함께 레오의 앞에 바람의 하급 정령, 실프가 모습을 드러냈다.

실프는 레오 주변을 빙글빙글 돌더니 샤샤의 공격으로부터 레오를 보호해주었다.

“크윽!”

영력을 모두 소비한 샤샤가 휘청거리더니 털썩 주저앉았다.

이를 악물던 샤샤가 고개를 돌렸다.

“레오 선배님의 친구분! 시간 얼마나 남았죠?!”

“거참, 나한테는 칼이라는 이름이 있걸랑요? 후배님아?”

툴툴거린 칼은 품에서 시계를 꺼내 확인하더니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한 시간 정도 남았네.”

칼의 말에 샤샤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문제에 대해 확실히 알겠어.’

샤샤가 이를 앙다물었다.

‘레오 선배의 정령술에 대항할 수가 없어.’

거의 대부분의 도전자들이 나가떨어지고 입학시험 때 자신에게 도전한 다섯 명이 남은 시점부터 레오는 여러 가지 능력을 쓰지 않았다.

아이나와 하비든, 루크를 상대할 때는 오러만 사용했다.

쥬엔을 상대할 때는 마법, 샤샤를 상대할 때는 소환술만 썼다.

그러한 레오를 상대로 그들이 느낀 건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샤샤는 깨달았다.

지금 자신의 실력으로는 레오의 털끝 하나를 건드릴 수 없다는 걸.

“포기한 건가?”

레오의 물음에 샤샤가 멈칫하더니 이내 이를 악물었다.

“네.”

“이걸로 너희 셋은 포기를 했군.”

레오의 말에 샤샤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칼이 있는 쪽으로 갔다.

하비든, 샤샤, 쥬엔은 포기를 선언했다.

“너희는 어쩔 거지?”

레오가 고개를 돌려 아이나와 루크를 바라보았다.

루크는 아이나를 보며 말했다.

“아이나씨. 먼저 하실래요?”

그 물음에 아이나는 주먹을 꾹 쥐었다.

“아니. 지금 내 실력으로는 저 사람에게 절대 닿을 수 없어.”

끈질기게 도전했지만 아이나는 더 이상 도전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나 뿐만 아니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 1학년 중에서 저 사람에게 한 방 먹일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와! 진짜 독하다! 독해! 후배들이 이렇게 노력하는데 한 번쯤 봐 줄 만한데~”

땅바닥에 대자로 누운 쥬엔의 중얼거림에 칼이 킥킥 웃었다.

“레오 사전에 그런 건 없거든? 그나저나 너희 빨리 멘티를 정해야 하지 않겠어?”

그 말에 쥬엔이 벌떡 일어나 양반다리를 하며 말했다.

“대충 아무 마법 학과 선배 잡아서 부탁하면 돼요.”

쥬엔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어차피 그녀가 가진 마법의 근간은 남부 마탑이다.

어떤 마법사를 멘티로 두든 마법사로서 기량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게다가 전 토루아 언니의 개인 과외도 받을 수 있어서요.”

작년 졸업생이자 졸업하자마자 대마법사의 지위를 얻어낸 토루아역시 남부 마탑 소속이다.

그리고 쥬엔은 남부 마탑주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토루아와 매우 친하게 지냈다.

그녀에게 과외를 받을 수 있다면 확실히 2학년에게 배울 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클로에에게 받아 보는 건 어때?”

“남부마탑이랑 북부마탑은 라이벌 관계거든요? 그걸 모르진 않을 텐데요?”

칼의 말에 쥬엔이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때 루크가 레오에게 다가갔다.

“루크, 그만해. 괜히 시간 낭비하지 말고 너도 얼른 멘토 찾아. 멘토를 못 정하면 자퇴 처리당할 수도 있어.”

할린드가 멘토를 찾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된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루메른 통곡의 벽의 이름에 걸맞게 자퇴 처리될 수도 있다.

“한 번만 더 도전해보고 싶어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 루크는 레오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심호흡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루크의 말에 레오가 검을 뽑으며 말했다.

“잘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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