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59화 (259/483)

259

주말을 보내고.

2학년들 전체가 워프 게이트 앞에 모였다.

“다들 들떴네.”

“그럴 수밖에요. 고대하던 행사니까요.”

레오의 말에 첸 시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무구는 소모품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신경써서 관리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망가진다.

작년에 레오가 세이룬의 교장에게 선물 받은 롱소드만 해도 실라투나의 싸움에서 못쓰게 되어 버렸다.

물론 검의 성능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너무 나빴다.

“뭐, 레오 도령이야 제르딩거의 가보 중 하나를 받을 테니 크게 관심 없을 수도 있겠지만요. 그래도 데미안의 학생들은 모두 뛰어난 장인이니 전속 스미스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데미안 학생들도 레오 도령에게 관심이 많을 거고요.”

루메른의 학생들이야 전대미문의 올클래스인 레오에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여전히 신기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놀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다른 영웅 사관 학교는 아니다.

특히나 데미안의 경우에는 영웅 후보생이기 이전에 무기를 만드는 장인.

올 클래스에 더더욱 흥미를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레오 도령. 제르딩거에서 받을 무구는요?”

“천천히 고르기로 했어.”

“기사는 좋은 무구를 보면 설렌다고 하던데 넌 그런 거 없어? 물론 넌 순수한 기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 같으면 엄청 기뻐서 얼른 무기를 고를 것 같은데?”

제르딩거의 가보라면 대단한 물건일 게 분명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들떠서 빨리 골랐겠지만 레오는 급할 게 없었다.

레오가 무기 욕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워낙 드웨노가 만든 무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과거 토벌대의 여정 속에서 레오는 당연하다는 듯 드웨노의 무기를 써 왔다.

‘스스로 예술가라고 떠벌리는 괴짜 변태였지만 역사상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건 나나 녀석들도 이견이 없었으니까.’

그런 드웨노의 무구에 기준이 맞춰져 있다 보니 대단한 물건을 봐도 크게 갖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넌 상당히 기대하는 것 같다?”

레오의 물음에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드워프 장인이 만든 마도 지팡이의 성능은 대단한걸?”

클로에가 눈을 빛냈다.

그녀의 옆구리에는 평소와 같은 마도서가 아닌 종이 뭉치가 정리 되어 있었다.

‘지팡이에 새길 마법 술식들인가.’

물론 저걸 전부 집어넣지는 못할 것이다.

마도 지팡이에도 ‘용량’ 이라는 게 있으니까.

마도 지팡이를 만드는 드워프라면 마법에 대한 조예 역시 엄청나야 했기 때문에 토론을 통해 마법 술식들을 골라야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마도 지팡이를 만드는 건 마법사 입장에서는 매우 기대되는 일이었다.

양손을 맞잡고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클로에를 보며 첸 시아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클로에 양, 지금 무척 귀여운 거 알아요?”

그렇게 저마다의 기대감을 품고 학생들이 잔뜩 들떠 있을 때였다.

“제군들! 엘레강스한 아침이로군!”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세드젠 교수님!”

“음! 그래!”

밝은 학생들의 인사에 팔짱을 낀 세드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세드젠의 뒤로는 이번 외부 일정의 인솔을 맡은 교수들이 서 있었다.

각 기숙사의 담당 사관 교수들을 시작으로 2학년 학과 총 책임 교수들.

2학년들에게 있어서는 하나같이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한 교수만 빼고.

“어, 어라?”

“렌 교수님은……?”

마법 학과 학생들 사이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른 학과 학생들도 의아한 눈으로 아인과 유라 사이에 있는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는 교수는 전 학년 영웅학 특별 수업을 담당하는 멜이 서 있었다.

모두가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납득 할 수 없습니다!”

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교장님! 재고해주십시오! 이 중요한 학과 일정에 제가 빠지다니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학생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교장 리이나가 걸어오고 있었고 렌은 그런 리이나의 바짓단을 붙잡은 채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그 기괴한 광경에 학생들의 구경거리가 된 리이나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말했다.

“렌 교수. 미안한데. 이사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라 내 독단으로 바꿀 수 없어.”

“그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교장님의 권한으로 절 명단에 넣어 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럼 2주일 동안 1학년 마법이론 수업은 누가 진행해?”

“안나 부교수를 시키면 됩니다!”

렌은 자신을 따라온 안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1년 동안 가르친 제자들입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 2학년 학생들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습니다! 스미스 계약에 제 조언이 꼭 필요할 겁니다!”

“교장 선생님. 분명 렌 교수님은 2학년 마법학과생들에 대해 아주 잘 파악하고 계세요.”

“안나 부교수!”

안나의 말에 렌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저 역시 2학년들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으니 렌 교수님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저도 해줄 수 있습니다.”

“안나 부교수! 날 배신하는 건가!”

렌의 부교수인 안나는 이번 학과 일정에 참석했다.

렌의 분노에도 안나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결국 보다 못한 리이나가 말했다.

“뭣들 구경해? 어서 이 찰거머리를 끌어내!”

그 말에 아인과 유라가 렌을 붙잡고 끌고 갔다.

처절한 렌의 외침 소리가 들렸지만, 곧 사라졌다.

“쌤통이다.”

안나가 작게 중얼거리자 멜이 볼을 긁적였다.

“렌 교수에게는 미안한 일이네요.”

“이사회의 결정이니까 멜 교수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셔도 돼요.”

사실 왜 1학년 마법 교수인 멜이 갑자기 렌을 대신하게 됐는지 이해하는 교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사회의 결정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소란이 일단락되고 리이나가 2학년들 앞에 섰다.

“잘들 잤냐? 2학년 애송이들.”

리이나의 말에 학생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그림자 출신이라고 밝힌 만큼 2학년들로서는 새로운 교장이 부담스러웠다.

그때 듀란이 손을 들었다.

“뭐가 궁금하지, 듀란 모이라.”

“교장님께서 이번 인솔의 총책임자이십니까?”

“인솔 총책임자는 세드젠 교수야. 데미안에서 영웅 사관 학교 교장 회의가 있거든. 난 거기에 참석하러 가는 것뿐이야.”

“교장 회의가 데미안에서 열리는군요.”

“영웅 사관 학교의 교장들이 전부 모이다니. 별일이네.”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리이나가 말했다.

“모이는 건 교장들뿐만이 아니야.”

“예?”

“데미안 측에서 출발 전 까지 알리지 말아 달라고 공문을 보내서 지금에서야 하는 말인데.”

리이나가 팔짱을 꼈다.

“이번에 데미안으로 가는 건 루메른뿐만 아니다.”

그 말에 2학년들이 설마하는 표정을 지었다.

“세이룬과 아조니아도 데미안으로 향할 거다.”

“왜죠?”

“보통 학교 간 스미스 전속 계약 기간은 겹치지 않도록 조절하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지.”

데미안 학생들은 오랜 기간 동안 루메른과 세이룬, 아조니아 학생들을 위해 무구를 만들어왔다.

그건 어떻게 보면 일종의 봉사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데미안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 보는 게 아니었다.

데미안의 학생들은 영웅 후보생들이기 이전에 장인들이다.

드워프 장인들에게 있어 최고의 영광은 자신이 만든 무구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의 영웅이 될법한 이가 자신의 물건을 사용해줄 필요가 있었다.

다른 영웅 사관학교의 후보생들과 전속 스미스 계약을 맺는 것 역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속 스미스 계약은 데미안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 보는 게 아니었다.

미래의 영웅과 접선할 수 있는 기회인 셈이다.

그렇기에 대등한 관계 속에서 계약을 맺는다.

그런 만큼 각 루메른, 세이룬, 아조니아 학생들을 따로 보는 게 관례였다.

데미안과 다른 영웅 사관 학교의 관계는 어디까지나 대등한 관계.

장인들이 결코 다른 학교의 영웅 후보생들을 품평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 관례를 깬 것이다.

2학년들의 얼굴이 굳었다.

대놓고 다른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과 비교하겠다는데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뭐, 기분은 나쁘지만 데미안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납득이 가긴 하지만.”

리이나가 혀를 찼다.

“왜 납득이 가는 겁니까?”

노블 기숙사의 에미오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우리 기수는 다른 영웅 사관 학교의 2학년들보다 분명 앞서 있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나 되시는 분께서 그 사실을 모르시진 않으시지 않습니까?”

‘와, 저 싸가지.’

‘그림자 출신이라고 대놓고 무시하는 거야 뭐야?

‘어떻게 교장한테 대놓고 저렇게 말하지?’

‘할린드 교수님이 있었다면 가만 안 뒀을 것 같은데.’

2학년들이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말에 공감을 했다.

“물론 너희는 다른 학교의 2학년들에 비해 앞서 있다고 평가를 받아.”

에미오의 말에 리이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근데 너희가 앞서 있다고 평가받는 건 어디까지나 저 규격 외의 괴물 때문이거든?”

리이나가 레오를 가리키며 말하자 루메른 학생들의 안색이 돌변했다.

“제군들 확실히 그대들은 루메른 역사에서 손에 꼽히는 엘레강스한 황금 세대라고 평가받고 있다.”

세드젠이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엘레강스한 건 너희뿐만이 아니야. 공교롭게도 다른 학교의 2학년들 역시 황금 세대라 불리고 있다.”

“세이룬만해도 그래. 작년 루세전 당시에 비등하지 않았어? 특히나 세이룬의 2학년 수석은 그 깐깐한 세이룬에서 이미 학생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어. 차석은 그런 수석의 라이벌이고. 3등 역시 만만치 않지.”

리이나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아조니아의 아르 튠을 필두로 한 5명의 전사들도 절대 만만치 않아. 데미안은 뭐, 워낙 골방에 박혀 있는 애들이다 보니 평가할 지표가 없지만 허언을 하는 곳은 아니야. 건방지게 세 학교를 품평하겠다는 이야기를 한 순간부터 자신이 있다는 소리야.”

리이나가 딱 잘라 말했다.

“분명 세이룬이나 아조니아에서는 지금 영웅 사관 학교의 2학년 중에 제일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건 루메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레오 플로브가 있기 때문이야. 레오 플로브만 없다면 너희보다 자기들이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있을걸?”

2학년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물론 난.”

리이나가 빙긋 웃었다.

“너희들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학생들이 리이나를 주목했다.

“건방지지 않냐? 지들이 뭔데 레오 플로브만 빼면 우릴 시체라고 생각하는데?”

리이나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이참에 누가 최고인지 귀쟁이랑, 짐승들이랑, 난쟁이들 머릿속에 확실하게 새겨주는 거다! 알겠나!”

“예! 교장님!”

2학년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유라가 중얼거렸다.

“와, 애들을 장악하는 솜씨가 장난이 아니시네요.”

“그림자에서는 전설이라고 평가받는 분이니까.”

그림자 세계에서는 그림자의 왕이라 불리는 샨 제국의 황제와 대등하다고 평가받는 것이 바로 리이나였다.

“괜히 할린드 교수님과 세드젠 교수님께서 교장으로 추천하신 게 아니지.”

“자! 그럼! 데미안으로 출발하자!”

“옙!”

***

대륙 최북단의 혹한은 계절을 타지 않는다.

봄임에도 불구하고 세이룬의 날씨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가운데 2학년들을 워프 게이트 앞에 집합시킨 학생이 차갑게 말했다.

“시조의 후예들은 들어라.”

세이룬의 혹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싸늘한 목소리에는 엘프의 권위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른 종족들은 어리석게도 우리 세이룬을 놔두고 최고를 논하고 있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우매한 그들이니만큼 어쩔 수 없지.”

그의 연설에 세이룬 2학년 중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헤르디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베니트님을 대신해 교장 대행이 되신 분이 르하겐님이라니.’

몇 달 전.

세이룬이 마물 여왕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은 후.

세이룬 내에서는 많은 인사이동이 있었다.

가장 큰 것이 바로 교장 베니트가 일선에서 물러선 것이었다.

원래 나이도 많았던 베니트는 마물 여왕의 침공 당시 무리한 결과 건강이 악화하였다.

그러면서 후임으로 룬 에르사르를 지명했다.

하지만 작년 이후 엘프 사회에서는 큰 변화가 있었다.

‘시조님의 강림이 설마 이런 변화를 불러올 줄이야.’

헤르디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용납할 수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르하겐의 눈이 번뜩였다.

“그건 바로 레오 플로브가 시조의 후계자라는 말을 떠벌리는 우매한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미 레오가 루나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마법.

[꽃을 피우는 마법.]을 복원했다는 건 마법 학계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그걸 두고 학계에서는 레오야말로 진정한 루나의 후계자라는 말이 농담으로 나오고 있었다.

물론 엘프가 아닌 인간, 수인, 드워프 사이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종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엘프들로서는 그 말을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게다가 최근 루메른에서는 별의 마법을 다른 종족이 입문할 수 있는 기본 술식을 학계에서 발표했다.

그 덕분에 몇몇 엘프 마법사들이 분노하고 있었다.

“별의 마법은 시조의 유산. 그리고 시조의 유산은 곧 엘프의 유산. 감히 다른 종족 따위가 침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니 증명하고 와라. 다른 종족 따위는 위대한 우리의 유산을 침범할 수 없다는 걸!”

“예!”

단호하게 소리치는 동급생들을 보며 에이란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레오님.’

에이란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동경하는 소년을 떠올렸다.

한편 루니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망신만 안 당했으면 좋겠네.’

***

땡볕이 내리쬐는 사막 한가운데.

호랑이 수인이 꼬리를 살랑거렸다.

“레오 플로브 말이야. 엄청 유명하잖아? 그래 인정해. 전대미문의 올 클래스에다가 1학년 학생회장이잖아. 무지 강하겠지. 그런데.”

아조니아의 교장, 제피아가 눈을 번뜩였다.

“우리가 단순한 싸움박질에서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진 적 있냐?!”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걔가 우리 보다 싸움을 잘 한 대! 너희는 이게 용납이 가냐!?”

“안 갑니다!”

“올 클래스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단순 육탄전은 우리 수인이 최고다! 그걸 증명하고 와라!!”

“우와아아아아!”

아조니아 2학년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원래라면 목표가 뛰어난 스미스와 계약을 맺는 것이지만 단순하기 짝이 없는 아조니아 학생들은 이번에 다른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무술 대련을 통해 레오 플로브를 꺾는 것!

평소 같았으면 함께 소리를 쳤을 아르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아르는 레오가 얼마나 괴물 같은 인간인지 잘 알고 있다.

아르의 하얀 꼬리가 살랑거렸다.

‘이번에 병원에 여러 명 실려 가겠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