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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년 전.
재앙의 시대가 종식된 후 많은 종족이 새로운 터전을 잡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엘프들은 북부로 향했고 수인은 남부로 향했다.
그리고 인간들은 세계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으로 드워프.
그들은 동부의 험준한 드라킨 산맥에 터전을 잡았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탄광 왕국을 건국했다.
워프 게이트를 타고 드라킨 산맥의 중심.
드워프의 수도라고 평가받는 드웨로니아에 도착했다.
신의 대장장이라 칭송받는 드웨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이 도시의 역사는 5000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였다.
워프 게이트에 도착한 루메른 학생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워프 게이트의 모습부터 휘황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벽은 모두 황금으로 도배 되어 있었으며 벽 곳곳에는 아름다운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엄청나네.”
“이곳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여기저기서 감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명문가의 자제들이 많은 루메른의 학생들 눈에도 드웨로니아의 워프 게이트의 화려함은 처음 보는 수준의 굉장한 것이었다.
“와, 저게 다 얼마냐?”
칼이 입을 떡 벌리고 중얼거렸다.
“천장 좀 봐.”
“대영웅들이잖아?”
“완전 예술작품이네.”
천장에는 형형색색의 반짝이는 보석들을 이용해 모자이크로 대영웅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물론 4인의 영웅들뿐.
최근에 실존했다는 것이 밝혀진 카일의 초상화는 새겨져 있지 않은 상태였다.
워프 게이트를 나가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으로 나온 세드젠이 학생들에게 말했다.
“데미안에는 저녁이 되어서야 들어갈 수 있다.”
세드젠은 손으로 드웨로니아의 옆에 자리 잡은 거대한 산을 가리켰다.
그곳은 거대한 구멍이 뚫린 광산이었다.
그리고 그 구멍에 자리 잡은 거대한 성이 보였다.
드워프들의 영웅 사관 학교, 데미안이었다.
“그 전까지는 자유 시간이니 자유롭게 도시를 관광하도록.”
“와!”
학생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후 인원 체크와 전달 사항이 끝난 후 학생들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친한 친구들끼리 모이기 시작했다.
“일단 친한 이들끼리 모여서 관광하는 거 어때?”
“그러자! 그러자!”
“클로에! 오랜만에 1반 여학생들끼리 뭉치자!”
1학년 1반 출신의 여학생 네 명이 클로에에게 다가왔다.
1반은 5반과 함께 단 한 명의 자퇴권고자도 없었던 반인 만큼 학생들끼리의 사이가 매우 돈독했다.
1학년 때 클래스 메이트들의 권유에 클로에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 하지만 너무 들뜨지 않도록 해. 우리는 놀러 온 게 아니니까. 일단 집합 시간을 정해 놓고…….”
“반장은 여전하네.”
“하긴! 이게 우리 반장님 매력이잖아.”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었다.
“셀리아도 부를까?”
“그럴까? 내가 가서 불러올게.”
여학생 한 명이 웃으며 셀리아를 찾으러 가려 할 때였다.
“너희들, 루메른이군.”
한 무리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1반 여학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조니아?”
그 말대로였다.
아조니아 교복을 입은 열 명의 학생들이 여학생들 앞에 서 있었다.
그중 선두에는 190cm는 될 법한 남학생이 서 있었다.
척 보기에도 단단한 근육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있는 곰 수인은 야성적인 갈색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호전적인 인상에 여학생들이 살짝 목을 움츠렸다.
클로에는 앞으로 나섰다.
“아조니아 학생들이 우리에게 무슨 볼일이야?”
클로에의 물음에 늑대 수인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웨른 다문이라고 한다.”
“웨른 다문?”
“아조니아 2학년 중 서열 8위였지?”
여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웨른 다문.
아조니아 2학년 중 서열 8위.
즉 아조니아 2학년 중 8번째로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다.
아조니아 학생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학생이었다.
갑작스러운 상대 학교 측에서 거물이 등장에 여학생들이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을 때였다.
“내 이름은 클로에 뮐러야.”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군.”
웨른의 말에 여학생들이 발끈했다.
“뭐? 어떻게 클로에를 모를 수 있어?!”
“맞아! 우리 학교 마법학과에서 1, 2등을 다투는 우등생인데!”
클로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웅 후보생이다.
그런데 다른 영웅 사관 학교 학생이 무시하는 듯 말을 내뱉자 여학생들은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반응에도 불구하고 웨른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마법사나 소환사에게는 관심 없다.”
“어머! 어머! 무슨 말을 저렇게 해?”
“흥! 마법사랑 소환사에게 관심 없으면 왜 우리한테 말 걸었어!”
“맞아! 저리 가! 우리 중에 기사학과 애들 한 명도 없거든?!”
처음에는 웨른의 덩치 때문에 주눅이 든 여학생들이었지만 이내 사나운 표정을 지었다.
루메른에서 1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덩치가 조금 크고 숫자가 많다고 절대 기죽거나 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들의 학과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니 반응은 더더욱 날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여학생들의 반응에도 웨른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너희 중 레오 플로브와 친한 학생이 있나?”
그 물음에 클로에가 말했다.
“레오는 내 친구야.”
“잘 됐군. 같이 좀 가지.”
웨른이 클로에의 손목을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쩌저적-!
순간 웨른의 앞에 얼음벽이 치솟았다.
웨른이 흠칫하며 물러섰고 다른 수인들 역시 경계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무슨 짓이야?”
클로에의 목소리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분위기가 돌변한 클로에를 보며 웨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법학과에서 1, 2등을 다툰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군.’
수인은 강함을 숭배하는 종족.
하지만 그 강함은 ‘육체적인’ 강함에 국한되어 있었다.
5000년 전.
모든 수인이 존경해 마지않는 용자 아르온은 오로지 육신의 힘만으로 가공할 만한 경지를 이룩한 남자였다.
그렇기에 아조니아는 최강의 무인을 목표로 학생을 육성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세이룬과 경향이 비슷했다.
별의 마법을 익히지 않은 자는 세이룬에 입학할 수 없는 것처럼.
아조니아는 무인으로 약한 자는 입학할 수 없었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아조니아 학생들중 대다수가 루메른의 마법학과와 소환학과의 우등생들에게 무신경하게 되었다.
클로에 역시 아조니아 학생들이 그런 경향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기에 자신을 모른다고 했을 때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다짜고짜 데리고 가려고 하다니.’
웨른의 행동은 기분이 몹시 나빴다.
클로에의 물음에 웨른이 말했다.
“나쁜 의도는 없다.”
“느닷없이 데리고 가려는 게?”
“넌 그냥 레오 플로브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만 되어주면 된다.”
“미끼?”
클로에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웨른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레오 플로브의 명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가 루메른 최강의 전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지.”
“그런데?”
“하지만 그가 우리 아조니아 학생들조차 뛰어넘은 무인이라는 건 용납 할 수 없다!”
“그래서? 레오를 쓰러트릴 함정을 파겠다는 거야?”
“흥!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쓸 것 같나?”
웨른이 코웃음을 쳤다.
“나는 놈에게 대전사의 의례를 신청할 생각이다!”
대전사의 의례.
다른 루메른 학생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박식한 클로에는 잘 알고 있었다.
‘순수하게 무술을 겨루는 아조니아의 전통 의식.’
오러의 힘도 빌리지 않고 순수한 육체의 힘으로 최강을 겨루는 대련이었다.
그리고 대전사의 의례에서 패배한 자는 승자의 말에 따라야 했다.
“그런 걸 해서 뭐 하게? 레오는 아조니아 학생도 아닌데.”
“훗. 나는 레오 플로브를 쓰러트리고 진정으로 강한 무인은 아조니아에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을 뿐이다.”
웨른의 말에 클로에가 팔짱을 꼈다.
‘그래서 미끼라고 한 거구나.’
납득이 갔다.
그리고…….
‘짜증 나네.’
클로에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그러니까. 날 레오를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 정도로 생각한다는 거잖아?’
방식도 마음에 안 들지만 의도는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쯤 되니 마법사와 소환사에게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아조니아의 성향을 안다고 해도 기분이 나빴다.
‘날 아주 무시하네?’
클로에가 훗- 하고 웃었다.
셀리아나 듀란이 봤다면 흠칫했을 미소였다.
“알았어. 따라갈게.”
“크, 클로에.”
“해하려는 의도는 없는 것 같아. 내가 가지 않으면 소란이 일어날 수도 있고. 첫날부터 소란이 일어나면 학교 위신에도 큰 문제야.”
“하, 하지만…….”
“난 걱정 마.”
“그래. 그녀는 미끼로서 정중하게 대할 것이다.”
‘끝까지 미끼 취급하네?’
클로에가 방긋- 웃었다.
만약 그 모습을 다른 여학생들이 봤다면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 클로에를 말렸을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들이 보는 건 클로에의 뒷모습뿐이었다.
우르르르-!
아조니아 학생들이 클로에를 감쌌다.
“가도록 하지. 이것으로 난 레오 플로브를 가장 먼저 쓰러트릴 기회를 얻은 것이다. 보상 역시 내 것이야.”
웨른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떠났다.
클로에는 웨른의 뒤를 따라 걸으며 생각했다.
‘다 얼려버리고 탈출해줄 테다.’
언제나 차분한 우등생인 클로에.
하지만 그녀는 뚜껑이 열리는 순간 2학년 중 가장 물불 안 가리는 성격으로 돌변했다.
그런 클로에의 상태를 모르는 다른 여학생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달려갔다.
“세, 셀리아! 큰일 났어! 큰일!”
그러다가 셀리아와 듀란을 발견하고 다급히 소리쳤다.
“무슨 일이야?”
셀리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묻자 여학생들이 소리쳤다.
“클로에가 아조니아 학생들에게 납치됐어!”
“뭐?”
셀리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누가 납치됐다고?”
그리고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본 여학생들이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곳에 있는 건 같은 1학년 1반이었던 듀란과 하울이었다.
하울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고 듀란은 언제나처럼 특유의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심기가 불편한 듯 눈썹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자세히 말해봐.”
셀리아의 말에 여학생들이 상황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셀리아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당장 교수님께 말하고 올게.”
“후, 무르군. 셀리아 제르딩거.”
“뭐?”
“아조니아 놈들의 의도는 명백하다.”
듀란이 뚜둑- 손가락 관절을 풀었다.
“레오 플로브를 끌어들이겠다는 빌미로 클로에 뮐러를 납치했다? 이건 우리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그래서?”
“교수님들께 말해서 일을 해결하는 건 놈들의 도전을 피하는 꼴이 된다.”
“그래서? 학교끼리 항쟁이라도 하겠다고?”
“그것도 좋은 생각이군.”
“클로에는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따라간 거야. 최대한 사건이 커지는 건 피해야 해.”
“실망이다, 셀리아 제르딩거.”
“뭐?”
“단순히 학교의 자존심 문제가 아니야. 놈들은 너와 내가 반장으로 인정했던 클로에 뮐러를 건드린 거다.”
듀란이 무표정한 얼굴로 셀리아를 바라보았다.
“교수님들께 이야기하면 놈들을 두들겨 팰 수 없게 된다.”
듀란의 말에 여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음, 그러니까 해석하자면……. 내 친구를 건드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라는 건가?”
“그런 것 같아.”
“그러고 보니 듀란은 까칠하게 굴면서도 은근히 챙겨주긴 했어.”
“닥쳐라.”
여학생들의 수군거림에 듀란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한편 듀란의 말을 듣고 고민하던 셀리아가 팔짱을 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네 말이 맞아.”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군.”
듀란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을 때였다.
“나도 끼워줘요.”
그때 지붕 위에서 폴짝- 누군가 뛰어내렸다.
첸 시아였다.
“이건 1반의 일이다, 첸 시아.”
“하지만 클로에 양은 내 친구이기도 한걸요? 게다가 지금은 우리 기숙사 장이기도 하고요. 저도 연관 있다고 보는데요?”
“흥. 그렇다면 말리지 않지.”
듀란이 팔짱을 꼈다.
그 모습을 본 하울이 물었다.
“작전은?”
“일단 아조니아 학생을 찾는다.”
듀란이 대답했다.
“그리고?”
“흠씬 두들겨 패준 다음 웨른이라는 놈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야죠.”
첸 시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모른다고 하면?”
“다음 아조니아 학생을 찾아 그 과정을 반복하는 거야.”
머리를 쓸어 넘기며 대답하는 셀리아를 보며 하울은 속으로 생각했다.
‘하필이면 저 셋한테 한꺼번에 찍히다니. 그 웨른이란 놈도 불쌍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