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설급 영웅은 아카데미 우등생-261화 (261/483)

261

“우리가 가장 먼저 검은 토끼를 찾아야 해.”

“검은 토끼가 누굽니까?”

드웨로니아의 거리를 걸으며 아르가 중얼거리자 옆에서 걷던 늑대 수인 여학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긴 누구야. 루메른 학생회장이지.”

“오오!”

“역시 두목님입니다!”

아르의 말과 함께 그녀를 따르던 아조니아 학생들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포부가 남다릅니다! 두목!”

“역시 아조니아 2학년의 1인자!”

“레오 플로브와 가장 먼저 붙으실 생각이신 거죠!”

“붙기는 붙을 건데 말이야.”

아르가 아조니아 교복 베레모를 고쳐 썼다.

“바보들이 사고 치기 전에 쓸데없는 싸움은 막아야…….”

“아르 두목님이 레오 플로브의 목을 노리신다! 찾아!”

“내 말 좀 들어 이 바보들아!”

자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을 보며 아르가 빽 소리쳤다.

‘검은 토끼는 날 보고 단순 무식 바보 고양이라고 놀리는데 이 녀석들을 좀 봐야 해!’

아르는 이마에 힘줄을 빡- 선 상태로 주먹을 꾹 쥐었다.

‘진짜 단순 무식 바보들은 따로 있다는 걸!’

현재 아르의 뒤를 따르고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아르의 파벌 학생들이었다.

아르가 파벌을 만든 건 아니다.

파벌이 생긴 이유는 아조니아의 교풍 때문이었다.

영웅 사관 학교는 어딜 가든 기본적으로 실력주의다.

루메른은 교풍에 따라 모든 학생을 평등하게 가르친다.

그 과정에서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은 학교를 떠나야 한다.

세이룬은 상급반과 중급반, 하급반을 철저하게 나누며 반 수준에 따라 교육 시킨다.

그리고 아조니아.

아조니아의 교육 이념은 단 하나.

약육강식.

아조니아에는 루메른이나 세이룬처럼 학기별로 학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존재하지 않는다.

매 순간이 시험.

학년 별로 매일 결투가 일어나며 순위가 정해진다.

약자는 언제든지 강자에게 도전해 그 자리를 쟁탈할 수 있다.

그리고 강자에 대한 우대는 확실하다.

서열이 낮은 학생들은 서열이 높은 학생들의 말을 따라야 했다.

물론 절대적인 명령은 아니다.

학년 별로 절대적인 명령권을 가진 학생은 최상위 다섯 명뿐.

그리고 이들의 지위는 동등하다.

그렇다 보니 학생들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상위권 학생들 밑으로 모여 파벌이 형성되는 것이다.

다른 파벌의 학생에게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

그렇다 보니 파벌 형성은 아조니아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아르는 머리를 얼굴을 감싸 쥐며 자신 앞에서 마치 강아지마냥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학생들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조니아 2학년 1인자.

아르 튠.

그녀의 파벌 학생은 특히나 충성심이 높은 것으로 유명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르가 강하기 때문이었다.

아르는 입학한 그 순간부터 아르의 자리를 노리는 도전자들에게 시달려왔다.

파벌이 형성된 이후에는 조직적으로 아르를 실각시키기 위해 다른 파벌에서 음모를 꾸미기도 했다.

하지만 아르는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그 모든 걸 돌파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감히 어느 누구도 쉽게 아르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고 있다.

압도적인 강함.

수인은 강함을 동경하는 만큼 강자도 동경한다.

그러면서도 1인자로서 주어진 특권을 휘두르지 않았다.

아르의 파벌은 모두가 평등했다.

강자는 특권을 휘두르는 것이 당연한 아조니아에서 아르의 행동은 굉장히 파격적이었다.

자연스럽게 서열 순위가 낮은 학생들은 아르의 파벌로 모여들었다.

다른 파벌에서는 아르의 파벌을 가리켜 ‘약자 집합소’라고 뒤에서 조롱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아르는 상대를 가만두지 않았다.

이것이 아르의 파벌이 그녀에게 충성심이 높은 이유였다.

“두목! 나한테 좋은 생각이 있어!”

그때 덩치가 큰 곰 수인 남학생 한 명이 자신 있게 말했다.

베레모 밑으로 고양이 귀가 쫑긋거렸다.

‘분명 이상한 소리 할 것 같은데.’

두르안 티그.

아르의 파벌 내에서 생각 없이 일 벌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였다.

“뭔데?”

‘그래도 일단 들어는 보자.’

“이건 웨른의 계획을 슬쩍 들은 건데 말이야.”

“그 곰탱이?”

‘더 불안해지는데.’

웨른 다문.

2학년 곰 수인 중 가장 머리가 좋은 것으로 유명한 학생이다.

물론 그 머리 좋다는 것은 ‘곰 수인’ 에 국한되었을 때 이야기다.

수인 내에서도 곰 수인은 힘이 가장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다 보니 뭐든지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가장 강한 종이기도 했다.

모든 곰 수인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웨른 다문은 머리가 좋으면서도 전형적인 곰 수인의 성향을 지닌 학생이다.

즉, 꼼수는 잘 부리는데 그 꼼수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앞뒤를 재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레오 플로브와 친분이 깊은 학생을 찾은 다음 그 학생을 우리 소굴에 데려가는 거야.”

“기각!”

“왜?”

“너 지금 루메른 학생을 납치하자는 거야?!”

아르의 외침에 두르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두목. 납치를 하면 일이 커지잖아. 그 정도는 나도 안 다고! 정중하게 데려가서 정중하게 대해주면 돼!”

“검은 토끼 친구가 안 가겠다고 하면?”

“음…… 조금 힘을 써서…….”

“그게 납치잖아! 이 멍청아!”

두르안의 명치에 발차기를 꽂아 넣은 아르가 흠칫했다.

“잠깐. 이런 망할 계획을 세웠다는 건…… 그걸 이미 실행에 옮겼다는 소리 아니야?”

“그럴걸?”

아르는 뒷목을 잡았다.

‘야이 교장아! 왜 그런 걸 상품으로 걸어!’

아조니아 학생들이 눈에 불을 켜고 레오를 꺾으려는 이유.

그건 단순히 레오의 명성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조니아의 교장, 제피아는 이번에 레오의 목에 상품을 걸었다.

‘레오 플로브와의 무술 대련에서 레오 플로브를 꺾고 아조니아의 명성을 드높이는 자에게는 아르온님의 히어로 레코드를 공략할 기회를 주겠다!’

용자 아르온은 모든 수인의 선망의 대상.

그리고 아조니아의 학생들은 그처럼 최강의 무인이 되는 걸 열망한다.

그런 수인들에게 용자의 히어로 레코드 공략이라는 보상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

그런 걸 상품으로 걸었으니 2학년 전체가 눈이 뒤집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단 디온 녀석부터 찾아.”

“디온은 왜?”

디온 덴.

아르의 소꿉친구이자 아조니아 2학년 부동의 2인자.

아르의 최고 라이벌이라고 평가받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웨른은 디온의 파벌이다.

“자기 파벌의 멍청이가 사고 치려고 하는데 말려야 할 것 아니…….”

“아르 튠!”

그때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르가 고개를 돌렸다.

아조니아 2학년 서열 5위.

호랑이 수인 보르만 파벌에 속해 있는 학생이었다.

“큰일 났다! 지금 우리 학교가 거점으로 잡은 곳에 루메른 학생들이 쳐들어 왔어! 우, 우리가 자기 학교 학생들을 납치했다고…….”

아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개탄했다.

‘그 곰탱이 자식. 찾아서 개작살을 내주겠어.’

***

레오는 느긋하게 혼자 드웨로니아를 관광하는 중이었다.

도시 곳곳에는 드웨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부유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동상은 모두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하나의 예술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름다운 동상들이었다.

실제로 당장이라도 살아 움직일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 레오는 웃음이 나왔다.

‘이 도시는 드웨노를 찬양하고 있군.’

이름조차 드웨로니아에서 따왔다.

그런 만큼 드웨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인 건 분명했다.

‘드웨노가 이 도시를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레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확실히 자신의 친구들은 실제와 다르게 기록된 경우가 많았다.

드래곤들은 리시나스를 지혜롭고 공명정대한 대현자 같은 이미지로 이야기한다.

물론 그녀에게 그런 면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기꾼 기질도 다분했다.

‘거짓말도 많이 했고 말이야.’

가장 많이 속은 것이 루나와 아르온이었다.

루나가 리시나스를 사기꾼이라고 분개할 때 아르온은 옆에서 소심하게 동조하곤 했다.

‘거짓말로 사람들에게 가짜 희망을 전해주기도 했지. 뭐, 그 희망은 대부분 진짜가 됐으니 이제 와서 거짓말이라고 하기도 그렇지만.’

선의의 거짓말로 사람들을 속여 희망을 주던 리시나스의 모습을 떠올랐다.

어쨌든 드래곤들이 기억하는 것만큼 그녀가 정의로운 드래곤은 아니었다.

‘그리고 루나.’

온화하고 자애로운 시조.

‘개뿔. 선머슴에 사나운 여자 깡패지.’

오죽했으면 드웨노가 ‘입만 다물면’ 신이 내린 예술작품이라고 평했겠는가?

‘그리고 아르온은…….’

용감하고 강인한 남자.

실제로는 소심한 겁쟁이에 유약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큰 전투에서 토벌대 전원이 놀랐다.

‘그 겁쟁이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란 말이지.’

아르온을 떠올리며 레오가 쓴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드웨노.

‘드웨노는 실제 모습과 똑같이 기록되었지.’

파티의 연장자로서 파티원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 굳은 의지와 굳건한 성격.

그리고 흔들림 없는 강철 같은 정신으로 언제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리시나스가 토벌대를 이끄는 리더라면 드웨노는 토벌대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다.

‘아르온이 죽고…… 드웨노가 없었다면 모두가 무너졌겠지.’

아르온의 죽음으로 가장 큰 충격과 죄책감이 시달렸던 건 다름 아닌 드웨노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드웨노는 다른 파티원을 챙겼다.

‘정신 차리게! 리시나스! 리더인 자네가 흔들리면 어쩌자는 건가!’

가까스로 에레보스를 패퇴시킨 이후 드웨노는 화를 냈다.

‘루나! 눈물 따위는 집어치우게! 우리는 선택을 한 거야! 아르온도 각오를 한 거야! 슬픔 따윈 버리게! 아르온의 죽음은 잊게! 한 가지만을 생각해!’

가장 많이 흔들리던 루나에게 유독 독하게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루나는 진심으로 드웨노에게 분노했었다.

하지만 드웨노는 기꺼이 악역을 맡았다.

‘카일.’

드웨노의 굳건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내 만든 무기가 형편없었기 때문이지 자네 책임이 아닐세.’

그는 그렇게 아르온의 죽음의 책임을 혼자 짊어졌다.

마음을 추스르고 다음번 전투 직전 드웨노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보니…… 루나. 그대의 말대로일세. 내 손…… 못생겼구만.’

드웨노는 자신의 손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이 손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손이라며.

일행 중 가장 예쁜 손이라고 자랑했다.

그럴 때면 루나가 드워프의 못생긴 손이라고 놀리곤 했다.

드웨노의 말에 루나는 당황했다.

‘아, 아니야. 네 손도 제법 귀엽게 생겼어!’

그 말에 드웨노는 웃음을 터트렸고 그때서야 두 사람은 화해할 수 있었다.

그것이 드웨노와 루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생각해보면 그런 성격이었지.’

언제나 어른으로서 모든 걸 받아줬었다.

그렇기에 지금 역사에 기록된 성격 중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이 드웨노의 성격이었다.

큰 형님.

‘뭐, 변태라는 게 빠졌지만.’

레오는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드웨노가 이 도시를 본다면 아마 욕을 했을 것이다.

드웨노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지 화려한 사치는 극도로 싫어했다.

분명 자신의 황금 동상을 보면 그 솥뚜껑 같은 손으로 뭉개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드웨노를 떠올리며 레오가 과거의 기억에 빠져 있을 때였다.

“자네.”

누군가 레오에게 말을 걸었다.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작은 체구의 여성이 서 있었다.

레오의 허리춤에 오는 작은 키.

누가 봐도 드워프였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뭔가 드워프 답지않았다.

기본적으로 패션이 매우 화려했다.

“남자이지만 일반적인 남성상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가졌군.”

그녀는 레오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진지하게 물었다.

“누드 모델이 되어 볼 생각 없나?”

‘뭐야, 이 여자 드웨노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