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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렁이던 드웨노의 마나가 이내 사그라들었다.
레오는 손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나중에 확인을 해봐야겠군.’
드웨노의 마나가 반응하는 건 분명 무언가 있다는 소리였다.
‘데미안에 드웨노가 만든 무구들이 잠들어있어도 이상할 건 없지.’
레오는 데미안 아카데미의 가장 높은 곳을 한 번 본 후 발걸음을 옮겼다.
대영웅들의 동상을 지나 데미안 아카데미 내부로 들어섰다.
데미안 아카데미는 5000년 된 오래된 거대한 고성.
재앙의 시대가 끝난 이후부터 5000년간의 드워프 역사가 담긴 건축물이었다.
시대와 지역, 종족에 따라 유행하는 건축 양식이 다르다.
그리고 데미안 아카데미는 세계의 모든 건축 양식이 혼합된 것으로 건축 양식의 유행이 바뀔 때마다 보수를 계속해나간 것이 특징이었다.
그렇기에 성벽 내부의 건물 디자인은 각양각색이었다.
“마치 건물 박물관에 온 것 같아.”
클로에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너무 중구난방 아니야? 조화롭지 못한 느낌인데.”
첼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그랬다.
여러 시대, 여러 지역의 건축 양식을 한번에 볼 수 있는 건 확실히 장점이지만 다양한 건축 양식이 모여 있으니 이상한 느낌도 들었다.
“그러한 혼란스러움이야말로 이 데미안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지.”
그때 누군가 말했다.
학생들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했다.
드워프 한 사람이 풍성한 갈색 수염을 매만지며 웃음 짓고 있었다.
“오랜만이오, 데페토.”
“반갑소, 세드젠 교수.”
세드젠의 인사에 데페토는 껄껄 웃음을 터트리며 반갑게 인사했다.
“모두 인사해라, 여기 있는 데페토 스미스는 데미안의 2학년 총괄 스미스이시다.”
“반갑습니다! 데페토님!”
“반갑습니다!”
“나도 반갑네, 루메른의 어린 영웅 후보생들이여. 자네들 같은 유명한 영웅 후보생들을 보게 되어 영광이로군. 자, 안으로 들게. 우리 학교 2학년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일세.”
데페토의 말에 루메른 학생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2학년들이 기다리고 있어?’
‘설마 오자마자 스미스를 선택하는 건가?’
루메른 학생들이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모든 학교를 모아 놓고 평가를 받는 건 기분이 나쁘다.
하지만 그걸 티 낼 수도 없었다.
“긴장했나 보네?”
첼시가 칼을 보며 키득거렸다.
“당연하지. 앞으로 학교생활에 있어 스미스 전속 계약은 매우 중요하니까.”
칼의 말에 첼시가 입을 가리고 장난치듯 말했다.
“2학기도 간당간당하면서?”
“크아~ 또 아픈 데 찌르네.”
칼이 심장을 부여잡고 신음을 내뱉을 때였다.
“흥. 쓸데없는 짓을 하는군. 칼 토마스.”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칼이 대놓고 혀를 빼물고 싫다는 표정을 지었고 첼시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든 이는 다름 아닌 에미오였다.
“데미안 학생들이 너 같은 열등생을 거들더라도 볼 것 같나?”
“그러니까 최대한 겉모습이라도 잘 보여야 할 거 아니야?”
칼이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자 에미오가 비웃음을 날렸다.
“아바드도 이해가 안 가는군. 네놈 같이 격이 떨어지는 녀석을 왜 1순위로 기숙사에 받았는지 말이야.”
“그러게. 나도 레오네나 첼시네로 갔으면 너 같은 싹퉁바가지 없는 녀석에게 시달릴 일도 줄었을 텐데 말이야.”
칼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그 말에 평소 같았으면 길길이 날뛰었을 에미오였지만, 지금은 진한 비웃음만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바드가 네놈을 기숙사로 끌어들인 건 네놈이 첼시 르왈린의 절친이기 때문이겠지.”
“흥! 우리 오라버니는 그런 이유로 사람을 뽑는 사람 아니거든? 받아 줄 곳 없어서 겨우겨우 노블에 들어간 게 어지간히 분한가 봐?”
“너 말 다 했어!?”
“아니! 못했다! 왜!”
첼시가 사납게 으르렁거릴 때였다.
“그만해.”
레오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다른 학교야. 싸우는 건 자제해. 그리고 에미오.”
레오가 서늘한 눈으로 에미오를 보았다.
“동급생을 깎아내거나 무시하는 발언은 자제하지?”
“흥, 친구 편을 드는 건가?”
“그렇다면 어쩔 건데? 결투라도 할까?”
레오가 싸늘하게 웃자 에미오가 움찔했다.
그러더니 인상을 쓰고 자리를 떠났다.
“아오! 빌어먹을 개자식! 진짜 날 잡아서 개작살을 내주겠어!”
첼시가 발로 쿵쿵! 신경질적으로 바닥을 내려치자 칼이 웃었다.
“어허! 어허! 레오 앞에서는 예쁘고 고운 말만 쓰는 거 아니었어?”
“아차!”
첼시가 화들짝 놀라며 입을 가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첼시를 보며 피식 웃은 레오가 머리를 토닥여주고 앞에 있는 세드젠 곁으로 향했다.
학년 대표로서 학생들의 선두에 설 필요가 있기 때문이었다.
레오의 손길에 기분이 풀린 듯 첼시가 히히-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은 칼이 넥타이를 똑바로 맸다.
‘분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야. 데미안 학생들은 성적 최하위인 날 쳐다도 안 볼 확률이 높으니까.’
데미안 학생들도 최대한 오랫동안 볼 수 있는 학생을 고르고 싶을 것이다.
쥬엔을 멘티로 잡은 만큼 1학기 동안은 학교를 나갈 걱정은 없다.
‘쥬엔 녀석이라면 당연히 2학기는 물론이고 2학년까지 무난하게 진급하겠지. 하지만 난 아니야.’
기말고사 성적이 형편없다면 칼의 루메른 학교생활을 2학년 1학기에서 끝나게 된다.
‘2학년까지 살아남은 것도 기적이지.’
처음 목표는 어떻게든 1학년 1학기까지 살아남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지. 난 레오나 클로에, 첼시가 아니니까.’
다른 학생들이 들었다면 비웃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2학년 중에서는 칼을 비웃는 학생도 많았다.
운이 좋아 2학년 최고의 우등생들과 친구가 된 녀석.
그 덕에 가까스로 2학년까지 살아남은 학생.
심지어 이번에도 1학년 마법학과 최대어라고 할 수 있는 쥬엔을 멘티로 낚은 희대의 행운아.
1학년 중에도 칼을 비웃는 학생이 있을 정도다.
어릴 때는 나름대로 재능 있다고 떠받들어졌지만, 지금은 안다.
자신이 남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범인이란 걸.
‘진짜 천재들 사이에 있으니까 더더욱 뼈저리게 느껴진단 말이지.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야.’
칼이 품에서 거울을 꺼내 머리를 정리하고 씩- 웃었다.
‘그래도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단 말이야.’
거울을 품에 갈무리한 칼은 깔끔한 모습을 취했다.
그러는 사이 루메른 학생들은 거대한 문 앞에 도착했다.
안에서는 쿵- 쿵- 거리는 소리와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세드젠이 문을 열었다.
화악!
“우리는 영광스러운 드웨노의 후예들! 축배를 들어라!”
“들어라!”
“이 순간을 즐기자! 축배를 들어라!”
“들어라!”
와하하하하하-!
안에서는 소란스러운 파티가 한창이었다.
거대한 홀에는 수백 명이 앉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나긴 네 개의 테이블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그중 데미안을 상징하는 모루와 망치 문양이 수놓아진 깃발이 천장에 달린 테이블 쪽에서는 데미안의 학생으로 보이는 드워프들이 이미 소란스럽게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 발을 구르며 서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시장통의 축제의 흥겨움이 홀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드워프들답게 술은 필수인 듯 손에는 맥주가 한가득 담긴 맥주잔을 치켜들며 파티를 즐기던 데미안의 학생들은 입구를 열고 들어와 벙찐 표정을 짓는 루메른 학생들을 발견하고는 손가락질하더니 소리쳤다.
“저기 봐! 루메른 친구들이 왔어!”
“와아아아아!”
“데미안에 온 걸 환영합니다!”
드워프들이 격한 환영 인사를 해왔다.
“아니, 쟤들 우리 평가하려고 부른 거 아니었어?”
“이게 무슨…….”
루메른 몇몇 학생들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와중에.
몇몇 드워프들이 다가왔다.
“교수님들은 앞으로 가시죠. 자리를 마련해뒀습니다.”
“힘드시죠? 외투 들어드릴까요?”
“짐을 들어드리겠습니다.”
데미안의 교복은 루메른, 세이룬, 아조니아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격식 있었다.
까만 로브에 하얀 셔츠. 그리고 깔끔한 검은 넥타이와 검은색 바지.
마지막으로 검은색 학사모가 포인트였다.
“학사모는 졸업식 때 쓰는 거 아니야?”
“데미안은 저게 교복이래.”
“와, 저러면 안 갑갑하나?”
“글쎄. 대신 평소에 교복을 거의 안 입는다는데. 실제로 봐.”
데미안 학생들은 교복을 대충 입은 학생들이 많았다.
머리에 쓰는 학사모는 데미안 자리 구석에 잔뜩 처박혀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그때 남학생 한 명이 앞으로 다가왔다.
드워프답게 작은 키.
하지만 얼굴에는 수염이 없었다.
얼굴 역시 상당히 깔끔하고 귀여운 인상이었다.
“어머, 저 드워프 꽤 멋지고 귀엽게 생기지 않았어?”
“그러게! 난 드워프들은 수염 난 아저씨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학생들이 꺅꺅거렸다.
남학생들은 신나게 술을 퍼마시는 데미안 여학생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꽤 귀엽지 않냐?”
“뭐랄까, 드워프만의 매력이 있네.”
“철컹- 철컹-”
“에이! 철컹철컹은 아니지.”
남학생들이 낄낄거렸다.
“만나서 반갑다! 내 이름은 디그네스. 데미안 2학년 수석이야. 레오 플로브 맞지?”
디그네스는 핸섬한 미소를 지으며 레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레오 플로브야. 나도 만나서 반가워.”
레오도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앞으로 2주일 동안 잘 부탁한다! 너희 자리는 여기야!”
디그네스는 쾌활하게 웃으며 루메른 학생들을 자리로 안내해주었다.
거긴 루메른 아카데미를 상징하는 기사학과의 검과 마법학과의 지팡이, 그리고 소환학과의 아뮬렛이 교차 되어 있는 깃발이 수놓아진 자리였다.
“저기! 2주일 동안 잘 부탁한다는 게 무슨 의미야?”
“그건 스미스 계약을 말하는 거야?”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
루메른 여학생들은 디그네스에 호감이 있는 듯 까르르- 웃으며 물었다.
“그건 내일이면 알게 될 거야. 오늘은 너흴 위한 환영만찬회를 열었으니 즐겨줬으면 해.”
호감 가는 미소를 지으며 떠나는 디그네스의 모습을 보며 칼이 중얼거렸다.
“난 드워프들은 다 우락부락한 마초일 줄 알았는데 저런 쾌남도 있네? 근데 여자 여럿 울릴 것 같은 녀석인데?”
칼의 말에 첼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사람 같은데 어디가?”
“네. 네. 꼬마 아가씨는 못 느끼겠죠.”
“한 살밖에 차이 안 나는데 자꾸 애 취급할래?!”
첼시가 칼에게 발길질했지만, 칼은 냉큼 피했다.
그러는 사이 문이 열리고 아조니아 학생들이 들어왔다.
아조니아 학생들은 순간 루메른을 보고 멈칫했다.
루메른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학교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데미안 학생들은 루메른에게 그랬던 것처럼 살갑게 웃으며 자리를 안내했다.
세 영웅 사관 학교를 평가하기 위해 데미안이 영웅 사관 학교를 집합시킨 걸 아는 아조니아도 그 반응에 루메른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즐기는 분위기로 돌변했다.
“만나서 반갑소, 세드젠 교수. 아조니아의 티그안이라 하오.”
“반갑습니다, 티그안 교관. 세드젠이오.”
세드젠과 티그안이 악수했다.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다.
“오늘 낮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던 건 다시 사과하외다.”
“애들이 그럴 수도 있지 않소. 엘레강스한 우리 학생들도 그 점에 관해서는 개의치 않소.”
세드젠이 훗-! 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에 티그안이 호탕하게 웃었다.
“오랜만이군, 아인.”
“왔나, 베르가?”
아인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아조니아의 교관, 베르가와 인사를 나누었다.
“아인. 너에게 레이나의 아들, 레오 플로브와 관련 되어 할 말이 있다.”
“레오와 관련되어?”
느닷없이 이야기하는 친우를 보며 아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레오 플로브를 우리 학교의 교환학생으로 보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