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9
다음 날 아침.
레오는 떠오르는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
화악-!
칼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배를 긁으며 하품했다.
“언제 들어 왔어?”
“2시간 전에.”
“와, 그럼 겨우 2시간 정도 잤다는 소리잖아? 잠 안 오냐?”
“딱히. 며칠 잠을 안 자도 버틸 수 있으니까.”
“새삼 느끼는 거지만 넌 진짜 체력 괴물이구나.”
칼이 혀를 내둘렀다.
1학년 학기 초까지 레오는 다른 학과 탑들에 비해 힘에서는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최고였던 것이 있으니 바로 그 지칠지 모르는 체력이었다.
실제 기사학과 수업 체력 평가에서 레오는 단 한 번도 1위를 내준 적이 없다.
그리고 2위는 첸 시아.
‘셀리아와 듀란이 이를 악물고 체력 단련하는 데도 레오나 첸 시아가 여전히 1, 2등이라고 했지?’
같은 기숙사를 쓰게 되면서 듀란이 아침, 저녁으로 얼마나 트레이닝에 힘을 쓰는지 아는 칼로서는 그저 혀가 내둘러질 뿐이었다.
‘기숙사 만들어질 때 트레이닝 룸부터 만들라고 얼마나 난리를 피웠는지.’
칼은 노블 기숙사 한쪽에 자리 잡은 트레이닝 룸을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같은 기숙가 기사학과 학생들도 자주 이용하기에 결론적으로는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학과 여학생들도 가끔 이용하고 말이야.’
물론 마법학과나 소환학과 여학생들이 트레이닝 룸에 가서 팔자에도 없을 덤벨을 드는 이유는 듀란을 보기 위해서가 컸다.
거기까지 생각한 칼은 나갈 준비를 마친 레오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레오. 이틀 연속으로 여자를 만나기 위해 야밤에 나가다니. 별일 없었냐?”
“그냥 마법 공부를 했을 뿐인데 무슨 일이 있었겠어?”
“이놈의 우등생들은 진짜! 학생의 로망을 몰라요! 학생의 로망을!”
칼이 툴툴거리며 아침 식사했다.
오늘 역시 어제에 이어 대강당에서 자신에게 맞는 스미스를 찾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은 후.
드워프 학생들은 이미 대강당에서 다른 영웅 사관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어? 쟤 어제 그 모조품만 만든다는 드워프 아니야?”
“대강당에 못 들어가고 저기서 저러고 있네.”
“좀 안 됐다.”
드리아나가 대강당과 떨어진 입구에서 무구를 전시해놓고 있었다.
하지만 드리아나에게 다가가는 영웅 사관 학교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이미 드리아나에 대한 소문은 다른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도 퍼진 상태였다.
드웨노가 만든 무구를 따라 하기만 하는 대장장이.
실력을 떠나서 그런 학생에게 무구를 의뢰하고 싶은 학생은 없었다.
영웅 후보생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을 위한 무구를 만들고 싶어 한다.
물론 영웅의 세계 공략을 통해 공략 보상으로 히어로 웨폰이나 아니면 진품을 받을 수 있다면 누구나 드웨노가 만든 물건을 탐낼 것이다.
하지만 드리아나가 만든 건 어디까지나 후대의 사람이 만든 가짜.
심지어 현재 진열대의 진열된 무구 역시 드웨노의 무구 사전에 수록된 것들이었다.
그렇게 드리아나를 힐끗힐끗 바라보며 루메른과 세이룬, 아조니아의 영웅 후보생들이 모두 대강당으로 들어갔다.
드리아나가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넌 왜 드웨노의 무구만 따라 만드는 거야?”
“어헉?!”
뒤에서 들려 온 목소리에 드리아나가 기겁하며 펄쩍 뛰었다.
“노, 놀랐잖은가?”
드리아나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레오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 드리아나를 보며 레오가 진열대에 진열된 창 중 하나로 손을 뻗었다.
이곳에 진열된 것을 보면 드웨노가 만든 무구겠지만 레오의 기억에는 없는 무구였다.
‘가드스론의 영웅 중 한 사람에게 만들어준 무구인가 보군.’
레오는 손에서 가볍게 휘리릭- 창을 돌렸다.
묵직한 무감의 창이었지만 레오는 손쉽게 다루었다.
그런 레오를 보며 드리아나가 말했다.
“과연, 모든 무구를 다룰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실력답군.”
팔짱을 낀 드리아나가 말했다.
“내가 드웨노님의 무구 만을 만드는 이유? 간단하네. 드웨노님의 무구는 완벽하기 때문이지.”
드리아나는 황홀한 눈으로 진열대에 놓인 검을 손에 들고 얼굴을 비볐다.
“보게나! 예술작품에 가까운 이 아름다운 자태를!”
“더더욱 이해할 수 없네. 대장장이로서 드웨노를 존경하고 있다는 소리 아니야? 당장에 말투도 드웨노를 따라 하고 있잖아.”
그 말에 드리아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드웨노님의 말투를 따라 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책에서 나오는 드웨노의 말투나 억양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어제 난리가 났을 때 넌 말투가 지금과 달랐거든.”
“흠흠! 눈썰미가 상당한걸?”
말투가 변한 드리아나는 어딘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창피한 모양이다.
“드웨노가 만들었던 무구를 따라 만들고 그 말투까지 흉내 내면서 왜 장인이기를 포기한 거야?”
레오가 보기에 드리아나는 스스로 장인이기를 포기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그건 절대 드웨노님처럼 될 수 없기 때문이지.”
드리아나가 피식- 웃었다.
“드웨노님이 무구를 만드는 경지는 지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드리아나의 얼굴에 존경심이 떠올랐다.
“드웨노님이 남긴 무구들의 진품들은 지금 대부분 낡았지. 어떤 것 중에는 거의 망가져 무구로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있어. 하지만…….”
“하지만?”
“사용자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그 어떠한 무구보다 강력한 무구가 되지. 어떤 상태이든. 그게 얼마나 대단한지 넌 아마 모를 거야!”
흥분된 얼굴로 드리아나가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조금 전까지 진중한 영감 흉내를 내던 게 지금은 또래 애들 같군.’
“말 그대로 신의 영역이 이르신 거야!”
드웨노의 무구를 수없이 다룬 레오 입장에서는 드웨노의 무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나나 아르온이나 드웨노가 만든 무구를 몇 번이고 부숴 먹었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투가 끝난 이후다.
전투가 끝날 때까지는 절대로 성능을 발휘한다.
부러지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지금 데미안의 무기고에 저장된 무구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 수백, 최대 수천 년 동안 관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듯 전시되고 있지만.
격을 갖춘 이의 손에 쥐여지는 순간 제 역할을 해내는 무구다.
말 그대로 신의 솜씨였다.
“어릴 때는 그런 드웨노님처럼 되고 싶었어. 다른 데미안의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야. 드웨노님처럼 되고 싶어 하지.”
드리아나가 빙긋 웃었다.
“그래서 무구를 만드는 걸 포기했어.”
“왜?”
“난 절대 드웨노님처럼 될 수 없으니까.”
문헌에 나온 것처럼 말투와 행동을 따라 했지만 드리아나는 생각했다.
절대 드웨노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데미안과 다른 영웅 사관 학교는 달라.”
드리아나가 진열대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만든 모조품들이 가득했다.
“세이룬과 아조니아의 학생들이 성운의 시조 루나와 용자 아르온과 직접적으로 비교당할 일이 없지.”
드리아나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너희 루메른도 시작의 영웅 카일과 비교당하지 않잖아?”
“비교당하고 싶어도 카일은 최근에 실존 인물이란 게 밝혀진 영웅이야.”
“그렇긴 하네. 어쨌든! 용족도 지혜의 왕과 직접적인 비교를 당할 일이 없지만, 우리 데미안 학생들은 달라.”
드리아나가 무구 하나를 쥐었다.
“우린 드웨노님이 만든 무구와 우리의 무구를 직접적으로 비교당해. 그래서 늘 깨달아. 절대 도달할 수 없다는 걸.”
“그래서 포기했다?”
“철없는 시절에야 드웨노님처럼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지. 하지만 지금은 대장장이로서 성장하면 할수록 깨닫게 돼. 스미스로서의 나의 역량을.”
드리아나가 어깨를 으쓱했다.
“난 최고가 되고 싶거든! 그래서 스미스의 길을 일찌감치 포기한 거야.”
“데미안에서 퇴학당할지도 모르는데?”
“어쩔 수 없지. 난 스미스의 길을 포기했는걸?”
‘이런 타입은 처음이군.’
세상의 모든 이들은 대영웅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대영웅을 뛰어넘겠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
그저 선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남겨놓는다.
하지만 드리아나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선망과 동경 이후에 드웨노를 뛰어넘는 스미스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드웨노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없다고 단념했군.’
레오는 손에 쥔 창을 바라보았다.
창을 휘둘러본 것만으로 알 수 있다.
드웨노와 비교하자면 어설픈 솜씨.
하지만 어디까지나 비교 대상이 드웨노였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다.
드리아나는 굉장한 스미스였다.
‘드웨노였다면 대장장이 기술을 전수해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애석하게도 레오는 대장장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전수해줄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드웨노의 무구를 따라 만드는 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소린데.’
레오로서는 드리아나가 다시 망치와 모루를 잡게 해주고 싶었다.
드웨노와 닮은 소녀가 다시금 드웨노를 목표로 삼았으면 했다.
‘이런 애가 있다는 걸 알면 드웨노는 진심으로 기뻐할 테니까.’
비록 스미스가 아닌 예술가로 기억되기를 원했지만 그렇다고 스미스로서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드웨노가 없는 지금은 강력한 무구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꼭 필요해.’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거인왕 기아스는 여전히 건재하니까.’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괴물.
그 자체만으로 가공할 만한 ‘재앙’ 이었다.
재앙의 시대 당시에는 그의 손짓 한 번에 도시 하나가 사라진 적도 있을 정도로 압도적인 물리력을 지닌 괴물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전율스러운 힘과 달리 거인왕은 매우 신중한 군단장이기도 했다.
지난 5000년 동안 대외적으로 활동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시점에서 그 괴물의 신중함을 엿볼 수 있었다.
마음껏 재앙을 흩뿌리고 다닌 마물 여왕과 흉악한 흉계를 꾸며온 사령왕과 달랐다.
그는 그저 침묵할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놈은 타르타로스의 무기고야.’
재앙의 시대 당시.
토벌대에 드웨노가 있었다면 타르타로스에는 거인왕 기아스가 있었다.
온갖 재앙스러운 무구를 만들어냈던 그는 드웨노의 대척점에 서 있던 존재이기도 했다.
‘뭐, 스미스로서의 역량은 압도적으로 드웨노가 앞섰지만.’
하지만 드웨노가 없는 지금 기아스의 무구에 대적할 수 있는 무구를 만들 수 있는 대장장이가 드워프 중에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 애의 마음을 돌리지?’
레오가 고민할 때였다.
“그래서 난 생각했지. 스미스로서 드웨노님을 넘을 수 없다면 예술가로서 드웨노님을 뛰어넘겠다고!”
당당한 드리아나의 외침에 레오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현재 드웨노와 관련된 문헌 중에 드웨노가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예술가라는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드리아나는 드웨노를 뛰어넘는 예술가가 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뜬금없이 웬 예술가?”
“드웨노님께서 남긴 무구만 봐도 알 수 있지. 드웨노님은 분명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예술가였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 수 없어!”
아무래도 스스로 예술가라고 칭한 것도 드웨노의 영향을 받은 모양이었다.
‘대단하네. 무구를 본 것만으로 드웨노의 성향까지 파악하다니.’
레오가 감탄했다.
그런 레오를 보며 드리아나가 말했다.
“널 보고 영감을 받았지. 사실 누드모델이 되어 줬으면 더 큰 영감을 받을 수 있었겠지만…… 아쉬운 대로 너를 조각해봤어.”
드리아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이걸 보면 너도 내 모델이 되고 싶어질걸?”
“그럴 일은 없겠지만 궁금하긴 하네.”
드웨노가 리시나스와 루나를 조각할 때면 정말 살아 움직일 법한 조각을 만들곤 했다.
레오는 드웨노가 조각을 만들 때면 늘 원본보다 드웨노의 조각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그럴 때면 리시나스와 루나에게서 발길질과 주먹질이 날아왔다.
드리아나는 진열대 뒤에서 점토로 만들어진 레오의 조각상을 꺼냈다.
“자! 봐! 내 예술작품을!”
“…….”
레오는 드리아나의 손에 들려진 기형의 조각품을 보았다.
“처음 보는 형태의 마물인데?”
“마물이라니! 이건 네 모습을 조각한 거야! 내 예술적인 감성으로 재해석하긴 했지만! 어때? 멋지지?”
드리아나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레오에게 자칭 레오 조각상을 들이밀었다.
그걸 받아든 레오는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을 느끼며 고민에 빠졌다.
‘이게 어딜 봐서 나라는 거야? 내가 발로 만들어도 이것보단 잘 만들 것 같은데.’
드웨노는 카일이 예술에 저주받았다며 측은한 시선을 보내곤 했다.
만약 드웨노가 드리아나가 만든 무구들을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
‘인자하게 웃으며 격려해주고, 대장장이 기술을 직접 가르쳐줬을 거야.’
그만큼 드리아나의 재능은 뛰어났다.
하지만 반대로 이걸 봤다면?
고민하던 레오는 드웨노가 했을 법한 행동을 그대로 재연했다.
휘익-! 퍼석!
점토로 만들어진 드리아나 자칭 기형상의 레오 조각상이 처참하게 뭉개졌다.
“진지하게 말하는데. 넌 예술가가 안 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니 때려치우고 망치를 쥐어.”
‘예술을 모독하지 마! 이따위 걸 예술이라고 할 거면 때려치워!’
드웨노였다면 격분하여 이렇게 소리치며 온갖 욕을 퍼부어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