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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가 모두 결성된 건 저녁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다.
비교적 순탄하게 파티를 결성한 레오와 다르게 다른 학생들의 경우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작부터 트러블을 일으키고 있는 다른 파티들을 보며 칼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다른 파티는 임무 난이도를 떠나서 파티원끼리의 화합 때문에 고생할 것 같은데?”
의외로 트러블은 세이룬 학생들과 다른 영웅 사관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단 도시에서 정보 수집을!”
“그럴 필요가 뭐가 있어? 그냥 에르디엔 산을 뒤지면 될 거 아니야?”
“아! 진짜! 말이 안 통하네! 누가 단순 무식한 수인 아니랄까 봐!”
루메른 여학생과 아조니아 남학생이 대립하고 있었다.
데미안 남학생은 다소 냉소적인 태도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상황을 방관하고 있었고 중재를 하는 건 의외로 세이룬의 여학생이었다.
안절부절못하며 두 사람을 말리는 세이룬 여학생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다른 파티의 분위기를 살피러 왔던 칼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분위기가 좋은 곳이 없냐.’
다른 파티의 상황을 파악한 칼이 파티로 돌아갔다.
‘그래도 우리 파티는 분위기 하나만큼은 좋아서 다행이야.’
칼은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파티로 돌아갔다.
‘누가 뭐래도 중심을 잡아주는 레오가 있으니까!’
환한 웃음을 지으며 파티로 돌아간 칼은 서로를 노려본 채 마주 서 있는 루니아와 아르를 발견하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 칼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에이란이 허둥지둥 다가와 칼을 부축하려고 했다.
“난 평화가 좋은데. 흑흑흑.”
좌절하는 칼을 보며 에이란이 당황했다.
좌절하던 칼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쟤들은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두 분 다 서로가 리더를 하겠다고 싸우고 계세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루니아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파티의 리더는 나야.”
그런 루니아를 보며 아르가 허리에 양손을 올리고 가슴을 쫙 펴며 코웃음을 쳤다.
“무슨 소리! 리더는 나거든!”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칼이 레오를 바라보았다.
“레오, 네가 안 해?”
“하고 싶은 애들이 해야지.”
레오는 웃으면서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칼이 머리를 벅벅 긁을 때였다.
‘레오 녀석은 은근히 리더 자리에 욕심이 없다니까.’
1학년 반장 때도 그랬다.
학생회장이 될 때도 딱히 원해서 된 게 아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되었다는 느낌.
‘이게 타고난 리더라는 거겠지. 주변을 자연스럽게 아우르니까.’
뛰어난 자는 자연스럽게 리더가 되고 싶어 한다.
특히 칼이 보기에 루메른의 2학년 탑들의 경우 재능도 재능이지만 각자 가진 카리스마 역시 대단했다.
‘모두 리더의 자질을 타고났지.’
그런데도 레오는 2학년의 리더로서 인정받고 있다.
타도 레오를 목표로 하는 노블의 기숙사장들도 레오의 리더십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 자존심 덩어리들이 수긍할 정도니까.’
아마 지금도 레오가 파티 리더로 나서겠다고 했다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뭘 보려고 하는 거야?’
레오가 파티 리더의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면 마찰은 당연했다.
루니아도 아르도 강력한 세이룬과 아조니아의 차기 학생회장 후보다.
루니아의 경우에는 이번에 선생에게 반항하면서 애매하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도 세이룬 최고의 우등생인 건 변함 없다.
그렇기에 두 사람 모두 자존심상 파티 리더의 자리를 양보하지 못했다.
“그럼 투표로 정해.”
“네 친구가 있잖아! 불공평해!”
“참 불만 많은 고양이네.”
눈을 게슴츠레 뜨던 루니아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럼 깔끔하게 대련 승부로 정할까?”
“호오? 엘프치고는 좋은 제안을 하는군.”
아르가 히죽 웃으며 손가락 관절을 우두둑- 우두둑- 풀었다.
“세이룬 학년 대표는 얼마나 대단한지 늘 궁금했거든.”
“나도 아조니아 학년 대표의 실력이 알고 싶었어.”
고오오오오-!
루니아의 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흘러나왔다.
아르는 어느새 건드리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었다.
‘얜 용자가 가졌던 수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 그래서 나보다 한 발자국 앞서 있다고.’
루니아가 힐끗- 레오를 바라보았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주겠어.’
루니아의 붉은 눈이 번뜩였다.
아르 역시 하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검은 토끼가 요 며칠 동안 이 엘프랑만 자주 논단 말이지.’
아르의 호수 같은 푸른색 눈동자가 반짝였다.
‘나도 검은 토끼랑 놀고 싶다고!’
아르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손톱을 세웠다.
영락없이 당장에라도 튀어 나갈 것 같은 고양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칼은 얼굴을 덮었고 에이란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흠. 분위기가 안 좋군.”
드리아나는 덤덤히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할 때였다.
짤랑-
방울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아르 앞으로 방울 달린 털 뭉치가 굴러왔다.
팍-!
아르가 본능적으로 발로 그걸 짓밟았다.
“…….”
침묵하던 아르가 눈을 치켜뜨고 레오에게 달려들었다.
“사람 갖고 놀지마아아악!”
아르가 분노한 얼굴로 레오의 옷자락을 마구 붙잡고 흔들었다.
“고양이처럼 구니까 그러지.”
“이건 본능이야!”
악을 쓰듯 소리친 아르를 보며 루니아가 한숨을 쉬었다.
“맥 빠지네.”
그런 루니아를 보며 레오가 말했다.
“파티 리더로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레오의 말에 루니아와 아르가 움찔 몸을 떨었다.
드리아나는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칼 역시 이제야 좀 정리가 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레오님이 추천하는 파티 리더라면 따르겠어요!”
에이란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에이란도 누가 파티 리더가 되든 상관이 없었다.
루니아와 아르만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레오가 추천하는 애가.’
‘가장 뛰어나다는 소리잖아?’
두 소녀가 서로를 힐끗 바라보고는 고개를 획 돌렸다.
별 관심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루니아의 뾰족한 귀와 아르의 고양이 귀가 쉴 틈 없이 쫑긋거렸다.
둘은 그 누구보다도 레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루니아와 아르의 속이 잔뜩 타들어 갈 때였다.
“칼. 네가 리더를 해줬으면 하는데.”
“엉? 나?”
칼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에이란은 환하게 웃었다.
“전 찬성이에요.”
“아니, 신중하게 생각해. 넌 레오 말이라면 지나가던 강아지를 데려와서 파티 리더라고 해도 찬성할 거잖아.”
“아, 아니거든요?!”
칼의 말에 에이란이 살짝 붉어진 얼굴로 항의했다.
“흠. 절망남이 파티 리더라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
“절망남은 또 뭐야?”
“절망하는 모습이 걸작이기 때문에 내가 붙인 이름일세. 마음에 드나?”
“이 말투 이상한 변태 드워프가…….”
자신을 이상한 별명으로 부르는 드리아나를 보며 칼의 이마에 힘줄이 하나 솟았다.
하지만 칼은 더 이상 드리아나와 투닥거릴 수 없었다.
‘노려보고 있어, 엄청나게 노려보고 있어.’
루니아와 아르가 어느새 빤히 칼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듯한 맹수 같은 시선이었다.
칼은 식은땀을 흘리며 두 사람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고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야, 레오. 농담도 심하다. 너도 있고 세이룬과 아조니아의 학년 대표도 있는데 내가 파티 리더가 되는 건 좀 이상하지 않냐?”
“그럼! 그럼!”
“음! 음! 그렇지!”
루니아와 아르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난 충분히 네가 이 파티를 이끌 자질이 있다고 보는데.”
레오의 말에 루니아가 팔짱을 꼈다.
“레오, 네가 이 애를 파티 리더로 선택한 건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겠지. 하지만 나는 납득하기 조금 어려워.”
“얘 말에 나도 동감이야.”
아르가 눈을 가늘게 떴다.
“파티 리더는 가장 뛰어난 사람이 되는 거야. 검은 토끼. 네가 리더였다면 난 불만이 없었을 거야. 하지만 네 친구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나나 세이룬 대표를 제치고 파티 리더가 될 그릇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아.”
“지당하신 말씀.”
칼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너희는 충분히 한 무리의 리더로서 자격이 있어.”
레오는 루니아와 아르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파티의 리더로서는 너희보다 칼이 알맞아. 지금 이 파티에는 앞에서 파티를 이끌어 나갈 리더가 아니라 뒤에서 파티원들을 밀어줄 리더가 필요하거든.”
레오는 단순히 칼이 전문적으로 서포터를 지망하기 때문에 제일 처음 파티에 영입한 게 아니었다.
처음 파티 이야기를 나왔을 때부터 이 멤버들을 모을 생각이었다.
한 명, 한 명이 최고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인원이며 루니아와 아르는 세이룬과 아조니아 2학년들을 이끌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두 사람 중 한 명에게 리더 자리를 맡기면 자칫 파티에 균열이 갈 수 있었다.
‘내가 파티 리더를 맡으면 상관없지만…… 모처럼의 기회인데 아깝지.’
인간, 엘프, 수인, 드워프.
이 네 종족의 같은 세대 최고의 맹자들이 모인 파티다.
이것 역시 성장의 기회.
그렇기에 레오는 리더로 칼을 정했다.
‘친화력도 좋고. 관찰력도 좋아. 파티의 흐름도 잘 읽어.’
칼은 리더의 그릇은 아니다.
하지만 리더의 자질이 강한 파티원들을 융화시킬 능력은 충분하다.
그렇기에 레오는 칼을 이번 파티의 핵심으로 뽑은 것이다.
“칼에게 배울 점이 많을걸?”
레오의 말에 루니아와 아르는 빤히 칼을 바라보았다.
“레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번 믿어 볼게.”
“나도. 검은 토끼가 그렇게까지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루니아는 빙긋 웃었다.
하지만 눈은 빤히 칼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르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고양이처럼 칼을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였다.
마치 레오에게 이 정도까지 인정받은 칼을 두고 보겠다는 듯한 시선이었다.
‘왜 내가 이 무서운 여자애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아야 하냐고.’
세이룬과 아조니아 학년 대표의 표적이 된 칼은 울고 싶어졌다.
***
파티 리더가 정해지고 일행은 곧바로 워프 게이트를 통해 타르캄으로 향했다.
타르캄에 도착한 후 곧바로 머물 숙소를 찾았다.
그 상황에서 칼은 말했다.
“일단 주점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할까?”
“왜 굳이 시끄러운 주점을 가야 하는 거야?”
“조용한 곳에서 밥 먹자.”
루니아와 아르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주점에서 식사를 하나요?”
에이란이 순수하게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묻자 칼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정보 수집이 쉽잖아.”
“오오.”
에이란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엘프의 명가 중의 명가.
에르사르 가문의 후계자인 에이란은 세상 물정이 확실히 어두운 편이었다.
“책에서 봤어요! 실제로도 그러는군요! 주점에 잠복하고 있는 정보 길드와 접촉하기 위해서죠!”
“……아니, 그냥 사람들이 떠드는 소문을 듣기 위해서인데. 정보 길드를 쉽게 만날 수 있을 리 없잖아.”
“네? 하지만 책에서는 분명…….”
“책이 세상에 진리는 아니야.”
에이란이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정보 수집을 할 주점을 정하고 들어가려 할 때 레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주점 옆의 골목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난 잠시 어디 갔다 올게.”
그 말에 아르가 말했다.
“어디? 나도 같이 가줄게.”
“화장실 가는데.”
“어음…… 그래, 잘 갔다 와.”
슬그머니 고개를 돌린 아르가 민망한지 딴청을 부렸다.
파티원들과 멀어진 레오는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멈추자 앞에서 멜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레오님.”
정중하게 고개를 숙인 멜이 말했다.
“드웨노님의 유산에 관해 보고 드릴 사항이 있어 레오님을 이렇게 불러…….”
“멜. 그 전에 이번 타르캄에서의 소문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다.”
“타르캄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 괴물에 대해 말씀하시는 건가요? 단순한 소문 아닌가요?”
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가 한숨을 쉬었다.
“드래곤 로드인 너조차도 헛소문으로 취급을 하는 걸 보면. 그 자식은 정말 5000년 동안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은폐한 모양이군.”
“……설마?”
멜의 얼굴이 살짝 하얗게 질렸다.
“그래.”
레오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어쩌면 거인왕 기아스가 움직였을 확률이 높아. 이 세상에서 에르디엔 산의 절반을 덮을만한 덩치를 가진 생물체는 그놈뿐이니까.”
레오의 말을 듣고 멜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거인왕이 움직였다면 왜 갑작스럽게 움직인 거죠? 마물 여왕이 토벌 되었기 때문일까요?”
“글쎄. 놈은 재앙의 시대 당시도 비정할 정도로 신중한 성격이었어. 동료가 죽은 정도로 움직일 녀석이 아니야.”
레오가 눈을 가늘게 떴다.
‘1학년들의 입학시험 당시 영웅의 세계를 통해 에르디엔 산에 왔을 때 봤던 눈동자. 그건 분명 에레보스였어.’
레오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그 산에 뭐가 있는 거야?’